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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5: 번져가는 불길 (3)
Episode 25: 번져가는 불길 (3)
그날 저녁에는 최정윤을 만났다.
식당 입구에서부터 이준기를 알아본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함께 사진을 몇 장 찍고 나서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웨이터까지 사진을 부탁해 오는 통에, 이준기는 억지웃음을 지으면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역시, 이준기 구원자님. 오늘 만나기를 잘했네요.”
“저 때문에 불편하시죠?”
“제가 뭐 불편할 게 있나요. 셀럽 옆에 있으니까 좋네요.”
그렇게 말하는 최정윤을 쳐다보니, 정말로 상황을 즐기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최정윤은 말을 이었다.
“일전에 제가 밥을 얻어먹었으니 답례도 해야 하지만, 오늘은 뭘 좀 여쭤보려고요. 그래서 뵙겠다고 한 거예요.”
“그렇군요. 말씀하시죠.”
“일단 주문부터 할까요?”
이준기의 식당 취향을 아는지, 최정윤이 데리고 온 곳은 이탈리아 식당이었다.
이준기는 평소대로 브루스케타를 전채로 해서 스파게티와 피자 하나씩을 시켰다.
메뉴를 앞뒤로 넘기고 있는 걸 최정윤이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자, 이준기는 최정윤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아, 제 건 제가 부담할게요.”
최정윤이 손사래를 쳤다.
“아유,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산다니까요.”
“제가 좀 많이 먹어서 그래요. 최 과장님 박봉인 거는 제가 알잖아요.”
“그래도 오늘은 제가 내게 해 주세요.”
“후우. 그러면 맘대로 시키는 게 좀 부담스러운데요.”
“저 돈 많아요. 너무 무시하지 마세요.”
음식이 나오자, 최정윤은 말을 꺼냈다.
“이준기 구원자님, 무소속으로 활동하시니까 어떠세요?”
“어떠냐고 물으시니까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좋습니다. 좋은 것 같아요. 원래 제 성격에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제가 보기에도 그래요.”
“네? 하하. 제가 좀 그렇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해야 하나.”
“아뇨. 그게 아니고요. 이준기 구원자님은 성장 속도가 너무 빨라서 길드에 맞지 않아요.”
“그건 어쩌다 보니까···”
“그래서 혼자 활동하시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문제가 있죠.”
“네?”
“매니저가 필요합니다. 제가 그 자리 꿰차게 해 주세요.”
“어···”
이준기는 어안이 벙벙했다.
개인 매니저와 일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용병으로 활동해 보는 것도 처음이다.
기회비용이라는 걸 생각하면 구원자에게 행정 서포트는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다.
매니저라니, 최정윤이 이준기 본인보다 무엇이 필요한지를 더 정확히 아는 것 같았다.
“지금 자리는 어쩌시려고요?”
“더 좋은 자리로 옮기려고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네?”
“이준기 님 매니저 하는 게 훨씬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게다가 지금 우리 길드에는 행정직이 너무 많아요.”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제가 얼마를 벌지도 저는 잘 모르겠고.”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게 매니저 일의 일부랍니다. 허락만 해주세요.”
“저야··· 최 과장님처럼 능력 있는 분이 서포트해 주시면 감사할 따름이죠.”
“우와, 하하. 이렇게 쉽게 될 줄이야.”
최정윤은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다.
이준기가 멋쩍은 표정으로 귀를 긁자, 최정윤은 손뼉 치는 것을 멈추고 가방에서 패드를 꺼냈다.
“계약서 가져왔어요. 이준기 구원자님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싸인 받아야죠.”
식당 한쪽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다들 그쪽을 쳐다보았다.
대형 벽걸이 텔레비전에 폭발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저녁 8시 뉴스가 시작된 것이다.
“오늘 첫 뉴스는 카탈루냐 독립전쟁 소식으로 시작하겠습니다.”
*****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 카탈루냐 독립.
2021년 10월 20일, 현지 시간 오전 9시에 스페인 정부와 카탈루냐 독립 정부 사이에 협정이 체결되었다.
바르셀로나를 수도로 하는 카탈루냐 독립국이 출범한 것이다.
사실상 사상 최초인 카탈루냐 독립국.
세계 어디에서라도 톱뉴스로 다룰 만하다.
더구나 이 시대의 핫 키워드인 구원자가 개입된 것이라면 더더욱.
이준기가 집중해서 뉴스를 쳐다보자, 최정윤도 화면을 응시했다.
앵커가 전문가 두 명과 문답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뉴스가 진행되었다.
유럽 정치 전문가, 그리고 차원문 및 구원자 전문가.
후자는 다름 아닌 이상덕 협회장이다.
“일단 이번 협정의 의미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죠. 박 교수님.”
“지금까지 카탈루냐가 독립을 선포한 일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만, 길어야 며칠밖에 독립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은 다르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시각입니다.”
“왜 그렇죠?”
“지금까지와는 달리, 힘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원자들 말씀하시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이번 독립운동에는 초기에서부터 구원자들이 적극 가담했고요. 정부군 진압 과정에서 구원자 두 명이 사망하면서 시위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구원자가 총격에 사망했다는 말씀이시죠?”
“네. 그렇습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서요. 이상덕 협회장님께 여쭙겠습니다. 구원자분들도 총에 맞으면 죽습니까?”
“네. 많은 분들이 구원자들에 대해 오해를 하고 계시는데요, 구원자들도 총이나 칼로 공격당하면 죽을 수 있습니다. 구원자들을 영화에 나오는 슈퍼히어로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네, 구원자들도 총 맞으면 죽습니다. 구원자라고 총알을 피하거나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대목에서 최정윤이 이준기를 쳐다보았다.
설마 하는 생각으로 최정윤의 눈빛을 마주친 이준기의 입에서 저절로 말이 튀어나왔다.
“설마? 모르셨던 거예요?”
“네!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은 해봤죠.”
“아, 하하··· 우리도 사람인데.”
60레벨이 되면 총으로 구원자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게 된다.
하지만 60레벨을 달기 전까지는, 구원자들 자신도 아직 모르는 영역이다.
최초의 60레벨 구원자는 세계 대전 이후에나 나온다.
‘그게 조슈아 테일러였고.’
이준기와 최정윤은 다시 뉴스로 고개를 돌렸다.
“차원문 관할권 문제에서 사태가 시작되었다고 하던데요. 맞습니까?”
“네. 그렇다고 보시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스페인을 비롯한 몇몇 유럽 국가들에서는 차원문 관리를 국가 차원에서 합니다. 스페인에서도 국방부에서 담당했고요. 그런데 카탈루냐 출신 구원자들 몇 사람이 카스티야 지방에 생긴 차원문에 들어가기를 거부한 겁니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다른 나라 차원문 정리를 우리가 왜 하냐, 이런 입장이었군요?”
“그렇습니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카탈루냐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50% 정도는 꾸준히 독립을 지지하거든요. 그런데 차원문 입장을 거부한 카탈루냐 출신 구원자들에게 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리니까, 독립 지지율이 90% 수준으로 올라가 버린 겁니다.”
“이 부분은 박 교수님께 보충 설명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여론조사라는 게 원래 그렇잖습니까. 이슈에 따라서 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비율이 확확 바뀝니다. 카탈루냐 독립 지지 여론도 한 달 만에 반 토막이 난 적도 있고 그렇습니다. 카탈루냐뿐 아니라 스코틀랜드라든가 어디라도 그렇습니다.”
“구원자들이 유죄 판결을 받은 게 독립 지지 여론을 갑자기 끌어올린 거군요?”
“축구 경기 결과라든가, 다른 이슈가 있었어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기는 했을 겁니다. 하지만 구원자가 관련된 이슈라서 임팩트가 더 컸던 것은 부정할 수 없죠.”
“그 이후에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간략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당사자들이 법원 판결에 불복한 건 당연하고요. 카탈루냐 지방 구원자들이 전원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카탈루냐가 스페인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 정도 되거든요. 결코 작은 비중이 아닙니다.”
“여파가 상당했겠군요?”
“그렇습니다. 차원문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민간인 피해가 계속해서 발생했습니다. 정부는 차원문 관리를 어떻게든 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결국 총으로 위협해서, 거부하는 구원자들을 던전에 투입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던전 안에서 카탈루냐 대 카스티야 대결이 벌어진 거죠. 구원자들끼리 서로 죽이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두 군데도 아니고 던전 여러 곳에서 계속해서 그런 일이 벌어지니까, 구원자들 인명 피해도 심각하고. 또 던전 안에서 벌어진 일을 바깥에서는 알 수가 없으니, 살아나온 사람들의 증언만 남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시위도 계속됐고요?”
“물론입니다. 시민들의 시위가 과격해지자, 정부 측은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서 진압에 나섰고요. 결국 인명피해가 발생했는데, 그중에 구원자 두 명이 포함된 겁니다.”
“시위가 더 과격해졌습니까?”
“물론입니다. 시위에 참여한 구원자들이 경찰과 군인들을 상대로 화염구, 전기 충격 이런 스킬들을 난사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식당 안의 사람들이 이준기 쪽을 흘끔흘끔 훔쳐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구원자들이 던전 바깥에서 화염구를 날릴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처음 듣는 사람이 많았다.
이번에는 최정윤의 눈빛이 느껴지지 않아, 이준기는 계속 뉴스에 집중했다.
“정부 쪽 피해도 상당했겠군요?”
“그렇습니다. 구원자들이 무기고를 습격해서 무장하기까지 했죠. 총을 든 군인 대 맨손인 구원자라면 몰라도, 총을 든 군인 대 총을 든 구원자라면 이건 게임이 되지 않죠. 내전이 벌어지자, 카스티야 쪽 구원자들도 총을 들고 나서면서 상황이 악화됐습니다.”
“그게, 지난 10월 1일이었군요.”
“네. 카탈루냐 구원자들의 무기고 습격이 벌어진 것이 10월 1일입니다. 그날을 내전의 시작으로 봅니다.”
“대략, 3주 정도 전쟁이 벌어진 거군요?”
“네. 그렇습니다. 국지적으로 벌어진 전투가 대부분이고, 중간에 휴지 기간도 있기는 했지만, 사망자만 3천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구원자들도 많이 죽었습니까? 이 협회장님이 대답해 주시죠.”
“네. 구원자들만 백 명이 넘게 사망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백 명이라고 하면 잘 와닿지 않는데요. 우리나라 구원자는 총 몇 분이나 되십니까?”
“협회에 등록된 구원자는 오늘 기준으로 총 503명입니다.”
“스페인은 어떤지 혹시 아십니까?”
“스페인도 우리나라와 비슷합니다. 국가별로 구원자 숫자는 인구와 비례하거든요. 스페인 인구가 4,600만 명 정도니까, 5천만 명인 우리나라와 비슷하죠.”
“거기서 100명이라면, 전체의 20%가 사망한 거군요.”
“네. 20%가 한꺼번에 사망한 거죠.”
“그런 피해가 발생하면, 차원문 관리는 상당히 어렵겠군요.”
“네.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건이 아니더라도 구원자분들이 많이 사망하시지 않습니까? 던전 자체가 위험한 곳이니까요.”
“네, 물론입니다. 구원자의 사망률은 매달 약 30%로 봅니다.”
“30%씩이나요?”
“던전을 클리어 하더라도, 한두 명이 사망하는 일은 흔합니다. 더구나 전멸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나지 않습니까.”
“평소에도 한 달에 30% 정도가 사망하는데, 거기에 더해서 한꺼번에 백여 명이 사망한 거군요.”
“새로 구원자로 각성하는 분들도 계시니까, 던전 공략에 필요한 인원이 그나마 유지되는 겁니다. 그런데 저런 예상외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 상당히 어렵겠죠.”
“그런데 구원자라는 존재는 정말 대단하군요. 몇백 년 동안 이루지 못했던 독립을 결국 이루게 하고 말다니.”
이준기는 최정윤과의 매니지먼트 계약을 마무리 짓기 위해 근처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테이블에 앉기 전까지는 사인과 사진을 부탁해오던 사람들의 시선이 왠지 바뀐 느낌이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이상덕 협회장의 뉴스 출연은 구원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분명히 영향을 주었다.
던전 바깥에서라면 총으로 쏘거나 칼로 찔러서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 존재.
동시에, 던전 바깥에서라도 화염구나 전기 공격을 할 수 있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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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루냐 독립전쟁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사건이다.
단지 스페인이라는 국가의 문제가 아니고, 유럽 연합의 문제이기도 하고, 분리독립 이슈가 있는 여러 나라들에도 큰 충격을 준 사건이다.
구원자 입장에서도 중요한 사건인데, 독립전쟁에 구원자들이 적극 참여해서뿐 만은 아니다.
던전 내에서 구원자들끼리 전투가 벌어진다는 것이 공공연하게 알려졌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또한 던전 바깥에서 구원자들끼리 싸움이 벌어지면 대참사가 난다는 점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미국에서 벌어진 최초의 길드 전쟁, 즉 동서부 연합 간 대치도 그 뿌리는 던전 내 갈등이다.
그래서 카탈루냐 독립전쟁은 구원자들 사이의 전쟁으로 요약되는 이후의 세계사에서도 중요한 사건이다.
먼 훗날, 21세기 초반에 벌어진 구원자들 사이의 전쟁에 관한 역사가 쓰여진다면, 카탈루냐 독립전쟁은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 취급될 것이다.
대전쟁의 포맷을 결정한 전초전이자, 구원자라는 새로운 무기가 사용된 최초의 전쟁.
모자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준기는 편의점에 들러 싸구려 선글라스를 샀다.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까지 쓰고 나자, 사람들이 알아보기 어려울 것 같아 보였다.
휴대폰 카메라에 비춰본 모습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자신의 사진과 많이 달라 보였다.
“엄청 수상해 보여서 더 쳐다볼 것 같은데요?”
최정윤은 선글라스를 쓴 이준기를 보며 농담조로 말했다.
카페에서 최정윤과의 매니지먼트 계약에 서명을 하고, 이준기는 근처의 호텔을 찾아 묵었다.
주말에는 오피스텔을 찾아보기로 했다.
적당한 크기의 오피스텔을 빌려서, 일부는 이준기의 생활공간으로, 일부는 매니저와 일을 하는 공간으로 쓰기로 했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는 사무실 정리를 마무리하고, 화요일에는 윤동직과 함께 서초구 D급 던전에 들어가야 한다.
동료였던 김창수와 만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