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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3: 새로운 위협 (3)
Episode 23: 새로운 위협 (3)
월요일 오전, 이준기는 전용택의 전화를 받았다.
민주광장 차원문에 들어갈 파트너가 정해졌다는 것이었다.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하자는 전용택의 제안에, 이준기는 택시를 타고 금남로로 왔다.
“준기 씨, 이거 정말 미안해. 내가 길드 마스터씩이나 돼가지고 이런 일 하나 정리하지 못하고···”
“아닙니다. 무슨 그런 말씀을··· 그래서, 같이 들어갈 사람 이름이 야마시타 씨라고요?”
“응. 전 일본 랭킹 4위라고 하던데.”
“갑자기 한일 연합 공격대 2탄이 나온 거군요?”
“일본 협회랑 한국 협회 공동명의로 이미 어제저녁에 보도자료를 뿌린 모양이야. 곧바로 두 나라 방송을 타버렸다고.”
전용택이 보여주는 휴대폰 화면에 톱뉴스로 뜬 기사가 보였다.
- 제2차 한일 연합 공격대, 전격 발표!
- 초기 공략 실패 후 3개월간 방치되어 있는 광주 5.18 민주광장 차원문이 대상.
- 이번에도 호화 로스터! 일본 랭킹 4위 야마시타 시게루와 한국 랭킹 9위 이준기.
“어제 길드원 중 한 명이 급하게 전화를 걸어와서, 기사를 확인하고 이상덕 협회장에게 항의 전화를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서.”
“언론에 터뜨려버렸으니 되돌릴 수는 없겠죠.”
“도대체 준기 씨가 그 던전에 들어갈 거라는 걸, 어떻게 안 거지?”
“세상에 비밀이라는 건 없다는 얘기겠죠.”
“우리 길드 내에 첩자라도 있나?”
“그렇게 생각하실 것도 없습니다. 사실 어제 제가 미행을 당했거든요.”
“뭐, 미행?”
한 대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전용택이 어이가 가출한 표정을 지었다.
차원문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오기는 해도, 아직은 평화로운 세상이다.
구원자로 각성하기 전까지 그저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던 사람들로서는, 미행이니 암살 같은 이야기가 자신과 상관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일단 어떻게 잡아서 경찰서에 넘기기는 했지만, 배후가 밝혀지는 일은 없겠죠.”
“어제라면, 우리 밥 먹고 헤어진 뒤에?”
“네. 호텔 근처에서 마주쳤습니다. 권총을 들고 있더라니까요.”
“뭐, 권총?”
“이 얘기는 전 회장님만 알고 계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좋은 일도 아니니까요.”
권총 이야기에 전용택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구원자로 각성하고 나면, 영화에서 보던 슈퍼히어로가 되었다고 느끼기 마련이다.
구원자가 아닌 존재에 대해서는 무적이 된다고 은연중에 착각을 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다가 총 이야기를 들으면 정신이 퍼뜩 든다.
구원자라도 총 맞으면 죽겠구나, 아니 죽을 수밖에 없지.
당연한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그, 그렇다면 이거 아주 위험한 거 아냐?”
“제가 언론의 주목을 받아버리면, 오히려 안전해질 수도 있죠. 나쁘게만 생각할 건 아닙니다.”
“권총을 든 미행이었다면서? 이번에 일본에서 오는 야마시탄가 뭔가 하는 녀석도 자객일 수 있다는 얘기잖아?”
“그렇죠.”
“준기 씨가 꼭 그 던전에 들어갈 이유는 없어. 내가 당장 언론사에 연락할게.”
“아니오. 그러지 말아 주세요. 회장님도 아시잖습니까. 던전 안이 더 안전합니다. 우리들 구원자들에게는요.”
“아··· 그렇군.”
전용택은 마치 새내기 구원자라도 되는 듯이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의 구원자 생활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니 당연하다.
구원자들끼리의 살육전이 이제 곧 시작된다.
전쟁의 그림자를 미리 흘끗 보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찬물 세례라도 맞은 것처럼 정신이 퍼뜩 나는 것이다.
구원자들의 귀족 코스프레라는 것은, 사실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하면서.
“뭐, 양쪽 협회장들 덕분에 한 가지 걱정은 덜었네요.”
“응?”
“문아린 구원자가 끼어들 틈이 없어졌으니까요.”
“문아린 씨가 그렇게 귀찮아?”
“아뇨. 이번 던전은 정말 위험할 것 같아서, 그래서 말리고 싶은 겁니다.”
“준기 씨는 괜찮고?”
“아까 말씀드렸듯이, 던전 안으로 도망가는 겁니다.”
*****
이준기의 생각대로, 제2차 한일 연합 공격대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미행 따위의 위협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초국적 연합 공격대에 대한 관심으로, 한일 양국은 물론 세계 각국의 언론이 광주로 몰려들었다.
하루 전에 기습 발표되었던 제1차 한일 연합 공격대에 비해, 제2차는 사흘 전에 발표되었으므로 언론이 모여들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기자들을 마치 보호막처럼 두르고 돌아다니는 이준기의 곁으로 암살자를 보내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문아린은 불평보다는 걱정 투로 말했다.
“오빠는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겠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위험하지 않아? 그냥 그만둔다고 해.”
“언론 기사가 100개도 넘게 났을 텐데 어떻게 그래?”
“이건 생각할 여지도 없이 너무 뻔하잖아! 준기 오빠 죽이겠다고 오는 거잖아!”
“던전 안이 더 안전해. 그걸 또 설명해야 해?”
“아니, 알겠어. 아무튼 몸조심해.”
“고마워.”
전용택도, 김나리도 조심하라는 말을 전해왔다.
김나리는 서울에서 광주까지 내려왔다.
이준기는 전용택과 문아린이 했던 말을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
“제가 보기에, 이건 한일 양쪽 협회장들의 음모예요.”
“네. 그렇겠죠.”
“야마시탄가 하는 그 사람은 준기 씨를 죽이려고 오는 거라고요!”
“네. 그래서 던전 안으로 도망가는 거라니까요.”
“참, 여유만만하시네요. 그게 준기 씨 장점이기는 하지만.”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준기 씨한테 목숨을 빚진 사람이잖아요.”
윤동직 역시 전화해서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했다.
“준기 실력이야 믿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조심할게요. 감사합니다.”
헬렌 카자크에게서도 메신저 연락이 왔다.
일본에서 만난 외국인 구원자들과 전화번호를 교환하면서 다른 나라에서 많이 쓰는 메신저를 깔았다.
제2차 한일 연합 공격대 소식이 전 세계에 보도되자, 메신저 알림이 계속 울려댔다.
고맙다는 말 정도로, 단답형으로 응대하면 되는 메시지들이었다.
하지만 헬렌 카자크에게만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 차원문을 또 들어가시네요. 정보를 좀 드리고 싶어도, ‘배회하는 오크들’이라는 던전은 저도 들어본 내용이 없어서요. 조심하시고 잘 다녀오세요.
영국에도 지금 같은 유형의 던전이 분명히 열려 있을 것이다.
‘배회하는 오크들’이라는 이름이 아닐 뿐.
이 던전 유형이 악랄한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다.
이름을 다르게 해서 정보 공유조차 가능하지 않게 만드는 것.
이준기는 헬렌의 메시지에 답신을 보냈다.
- 감사합니다. 다녀온 후에, 뭔가 알게 되면 말씀드릴게요.
곧바로 헬렌의 답변이 떴다.
- 네. 응원하겠습니다. 준기 씨에게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준기가 기억하는 그대로, 겸손하고 예의 바른 헬렌다운 답변이다.
*****
던전 안에서는 온갖 기기묘묘한 일들이 벌어진다.
감각을 속이는 일쯤은 당연히 예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사육제’ 포맷의 던전에서도 시청각을 속이는 트릭이 사용되었지만, 대단히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웃기려는 것이 목적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허술한 감각 트릭.
그들이 진지하게 인간을 속이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걸 보여주는 것이 ‘배회하는 오크들’ 포맷의 던전이다.
수십 가지의 다른 이름으로 위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아침 6시면,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이른 시각이다.
6시에 차원문 입장이라면, 5시에 일어나서 준비해도 될 일이다.
차원문 입장이 개인적인 일이었다면 말이다.
이준기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났다.
다섯 시까지는 차원문 앞에 도착해야 했기 때문이다.
언론 때문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스타일의 이준기였지만, 4시 기상은 그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나도 그렇지만, 야마시타에게도 괴로운 일이겠군.’
야마시타 시게루. 전 일본 랭킹 4위의 실력자.
바람과 흙 쪽으로 전문화한, 단단하고 저돌적인 스타일.
한국 내에서 길드 전쟁이 종료되자마자 발발했던, 한일 전쟁 당시 만났던 상대다.
목포 전투에서 이준기가 직접 처단했던 상대.
‘이번에는 조금 더 일찍 죽을 운명인가 보군.’
다섯 시 오 분 전에 현장에 도착한 이준기는 예상했던 것을 봤다.
전용택이 목소리를 높여 가면서 항의하고 있었다.
항의의 대상은 이상덕 협회장.
“말도 안 됩니다. 협회의 어거지를 어디까지 들어줘야 한다는 겁니까?”
“전 회장, 내가 이렇게 부탁하는 거니까 한 번만 좀 봐주세요.”
이상덕은 짐짓 온화한 표정을 하고 부드러운 어조로 전용택을 달래고 있었다.
말하는 내용을 모르고 보는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전용택이 억지를 부리고 이상덕이 받아주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핏대를 세우면서 하이톤으로 말하는 전용택에 비해, 이상덕은 온화한 표정과 부드러운 목소리를 유지하고 있다.
보통 노련한 정치꾼이 아니다.
“이 차원문, 우리 관할입니다. 그걸 멋대로 연합 공격대에 넘기고, 이제는 그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다 마음대로 하겠다는 겁니까?”
“사소한 부분이잖아요. 멀리 일본에서 건너온 분이 5분 정도 먼저 입장하고 싶다는데, 그 정도도 양보 못 합니까?”
“양보 못 합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알아야겠습니다.”
“꿍꿍이라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아, 마침 이준기 씨가 오셨군요. 이준기 씨가 좋다고 하면 전 회장님도 불만 없으신 거죠?”
이상덕은 이준기가 나타난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이준기 구원자님! 반갑습니다. 이상덕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신 것 같군요.”
“아, 안녕하세요.”
전용택이 둘 사이에 끼어들려고 했지만, 이준기는 눈짓으로 그를 제지했다.
이상덕이 말을 이었다.
“이준기 구원자님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려고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일단 말씀해 보시죠.”
“하하.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좋습니다. 일본에서 어제 도착하신 파트너분 말입니다.”
“야마시타 시게루 씨?”
“네. 야마시타 상이요. 그분이, 이준기 구원자님보다 한 5분 정도 먼저 차원문에 입장해서 조금 둘러보고 싶다고 하시는데.”
“네? 둘러본다고요?”
“네. 이해합니다. 조금 이상한 얘기죠. 그런데 그분 스타일이 원래 그렇다고 합니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들어가서···”
“하하. 제 스타일과 비슷하군요.”
“네? 아! 그렇군요. 하하하!”
5분 동안 뭘 하겠다는 건지는 뻔하다.
먼저 입장해서, 자리를 잡고 기습 위치를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들어가서 던전 입구 오두막에서부터 치고받기 시작하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이준기보다 레벨이 7이나 높은 자객치고는 꽤 신중한 성격이다.
“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이준기의 대답에, 전용택이 소리를 질렀다.
“준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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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던전, 일본에도 영국에도 열려 있을 것이다. 이름은 다르겠지만.’
7월 초에 광주 금남로에 발생한 이후, 이 차원문은 지금까지 총 네 번에 걸쳐 입구가 열렸다.
한국 측에서는 7월 한 차례만 차원문 안으로 공격대가 들어갔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면 이 던전은 이미 세 차례에 걸쳐 클리어된 던전이다.
그런데도 이 던전에 관한 정보는 없다.
이름이 달라서, 같은 던전을 클리어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이유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이 던전을 클리어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차원문을 만드는 자들이 이걸 스포츠나 유흥거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꽤나 여러 차례에 걸쳐 어떤 포맷이 흥미로운지 연구를 했을 것이다. 가장 흥미로운 진행을 위해서 여러 가지로 궁리를 했겠지. 그 결과가 이거다.’
이준기는 야마시타와 인사를 나누고, 그와 나란히 앉아 인터뷰도 진행했다.
몇몇 기자들이 요구하는 괴상한 포즈의 사진까지 찍고 나니, 새벽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6시가 되자마자, 야마시타가 ‘엔료’적인 억지웃음을 지어가며 연신 이준기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먼저 차원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