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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3: 새로운 위협 (2)
Episode 23: 새로운 위협 (2)
문아린이 전산망 메뉴를 돌아다니는 것을 이준기는 멀뚱히 쳐다보았다.
사용자 편의는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 협회 전산망 인터페이스.
길드 전쟁으로 협회가 공중 분해된 다음, 이준기가 싹 뜯어고쳤던 바로 그 전산망이다.
고치기 전의 전산망은 사용해 본 적이 많지 않아 잘 모른다.
“휴. 여기 나왔네. 협회 전산망 정말 쓰기 불편하지.”
“고마워, 아린아.”
“커피 마실래? 난 사무실 커피 별론데. 요 앞 커피숍에서 사 올게.”
“생각해 보니, 아린이네 커피 가게 가도 되겠네.”
“일요일은 문 안 열어. 하지만, 오빠라면 오늘 특별히 한 잔 대접할게.”
“그럼 이따가 오후에 갈까?”
“그거 좋지!”
협회 전산망은 인터페이스뿐 아니라 내용도 엉망이었다.
처음에 충무공 길드 사무실에서 구원자 정보를 검색했을 때도, 업뎃이 한 달이나 안 된 데이터가 무더기로 들어 있었던 정도니까 말 다 했다.
던전 정보도 빠진 내용이 많을 거라고 예상해야 하는 상황.
“그런데 뭘 하려는지 물어봐도 돼?”
“나, 이제 용병이잖아. 어떤 던전이 정리가 안 돼 있는지 알아야, 세일즈를 하지.”
“아, 그렇구나. 그럼 내가 도와줘도 되겠네? 클리어 안 된 던전 목록을 만들면 되는 거 아냐?”
“그래 주면 나는 고맙지.”
현재 한국 전체에 걸쳐 정리가 되지 않은 차원문은 총 41개.
이준기가 각성했을 당시보다 오히려 늘었다.
구원자들이 계속 죽어 나가다 보니 정리가 늦어지는 측면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차원문은 단지 방치되어 있기 때문에 정리가 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차원문을 방치하는 것이 구원자들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역시. 대부분의 차원문은 별 이유도 없이 방치되고 있는 거군.”
“그게 무슨 소리야?”
“도둑이 좀 있어야 경찰이 필요할 거 아냐. 그래서 도둑을 전부 다 잡지 않고 놔두는 거지.”
“피리 부는 사나이. 딱 그 얘기네. 마을에 쥐가 전부 없어지니까 피리 부는 사나이가 귀찮아진 마을 사람들.”
“그렇지. 내 입으로 이런 말 하는 것도 웃기지만, 이게 이상덕 협회의 본모습이랄까.”
“다른 사람이 협회장이 되면 나아질까?”
“아니.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네가 말한 것처럼, 이건 인간 본성이야. 쥐가 있을 때와 없을 때 마을 사람들의 생각이 달랐던 것처럼.”
“그럼 어떻게 할 거야? 용병 세일즈는?”
“나중에 먹으려고 놔둔 과자를 내가 먹어드리겠다고 하면, 그걸 그러라고 하는 사람은 없겠지. 먹으려고 해도 먹지 못하는, 그런 과자를 찾아야겠지.”
“그걸 협회 전산망 데이터베이스에서 찾을 수 있을까?”
“던전 포맷이나 클리어 조건 같은 걸 보면서 추려 보려고. 단지 그냥 방치한 것이 아니라, 껄끄러워서 방치해 둔 차원문들을 찾아야지.”
“그 부분은 내가 도와주지 못하겠네?”
“그럴 거 같은데. 내가 하나씩 보면서 판단해야 하니까.”
“그럼, 이번에야말로 일단 커피를 좀 사 올게.”
*****
나른한 일요일 오후.
자그마한 커피 가게지만, 다른 손님들 없이 단 둘이서만 마시는 커피는 좋았다.
문아린의 동생, 문아영이 잠깐 나와서 커피를 만들어 주었다.
이준기는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했지만, 집도 가깝다고 하면서 문아영은 직접 가게로 나왔다.
“양대 포털 실검 1위 하신 분인데, 직접 뵙는 건 영광이죠.”
“자꾸 그러시면, 저 갑니다.”
“아, 안 돼요. 가시면 저 언니한테 맞아 죽어요.”
문아린이 커피 가게를 열기 전에도 다른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오래 했다는 문아영.
실력 있는 바리스타답게 맛 좋은 커피를 만들어 두 사람 앞에 가져다주었다.
어떤 원두를, 어떻게 볶아서 어느 정도로 갈았는지, 블렌딩은 어떻게 했는지 설명해 주고, 문아영은 자리를 떴다.
“이준기 구원자님, 만나 뵈어서 반가웠어요. 언니, 잘 해봐!”
“무슨 소리야, 문아영!”
차가운 바깥 공기, 거기에 대비되는 따뜻한 안쪽 공기, 그리고 따끈한 커피.
문아영이 내뺀 자리를 쳐다보는 문아린의 얼굴이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긴 속눈썹 아래로 옅은 갈색의 눈동자가 보였다.
앞머리가 반쯤 가린 그녀의 이마에, 창으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이 따뜻한 색감으로 비치고 있었다.
평화로운 세상이라면, 이렇게 예쁜 여자와 연애도 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미래를 거쳐온 이준기는 그런 일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불과 몇 달만 지나면, 세상은 전쟁에 휩싸인다.
구원자들끼리의 전쟁이지만, 피해는 칼을 든 당사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래, 컬래트럴 대미지. 아시카가가 말했던 그것.’
전쟁의 와중, 어머니와 동생을 챙기는 것조차 이준기에게는 힘겨웠다.
그저, 집 밖으로 나오지 말고 조용히 숨어서 난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더 튼튼하고 경비도 삼엄한 그런 아파트로 이사라도 해야 했던 건데, 그러지도 못했다.
“무슨 생각해?”
“가을 햇살이 참 따뜻하구나, 그런 생각을 했지.”
“우하하.”
“왜 웃어?”
“아니, 그건 좀 오빠답지 않아서. 웃으려고 한 게 아닌데 그냥 웃음이 나왔어. 미안해, 오빠.”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이렇게 좋은 날 예쁜 사람과 단둘이 커피 마시다 보면 그런 생각도 하는 거지.”
*****
차가 있는 문아린이 이준기를 바래다주겠다고 했지만, 이준기는 그 반대로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래서 저녁을 먹고 나서 둘은 문아린의 집으로 갔다.
문아린이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이준기는 호텔로 걷기 시작했다.
열 블록 정도 되는 거리라서, 그냥 걷기로 했다.
조금은 쌀쌀하게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가 마음에 들었다.
호텔을 한 블록 정도 남겨 놓았을 때, 이준기는 누군가가 뒤를 따라오는 기척을 느꼈다.
던전 안에서든 밖에서든, 추적하고 추적 당하는 일을 수도 없이 해왔던 이준기다.
‘이 정도면, 아주 형편없지는 않군. 등급 B 정도의 미행이라고 해둘까.’
호텔로 곧바로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이 휘말릴 수도 있다.
이준기는 호텔 옆 골목길로 들어섰다.
한쪽이 막힌 길이라서 인적이 뜸한 곳.
미행자는 별생각 없이 골목길을 따라 들어오다가 막힌 길이라는 걸 알아채고 살짝 동요했다.
이준기가 돌아서면서 말했다.
“미행하는 거, 아마 불법일 겁니다.”
후드티를 뒤집어쓴 걸로도 모자라, 미세먼지도 별로 없는 날에 마스크까지 챙겨 쓴 상대방이 멈칫했다.
“무, 무슨 말이오? 길을 잘못 들었소.”
“계속 꾸며댈 거라면, 주머니에서 손은 좀 빼고 하시죠. 무기도 내려놓으면 더 좋고.”
“뭔 수작이냐!”
상대방은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권총이 들려 있었다.
아마도 이상덕 협회장이 구해준 물건이겠지.
“마지막으로 경고합니다. 그걸 쏘기라도 한다면, 저도 당신을 다치게 할 수밖에 없어요. 죽일지도 모르죠.”
“개소리 집어치우고, 뒤로 돌아서 벽 쪽으로 걸어.”
“제가 왜요?”
“이 총이 안 보이냐? 구원자라도 총알이 박힌다는 사실, 혹시 모르는 거냐?”
“호오, 그래요? 제가 구원자라는 건 또 어떻게 아시는 거죠?”
암살 위협도, 미행도 수도 없이 받아본 이준기다.
이런 상황에서 대처 방법이라면 도망가거나 제압하거나 양자택일이다.
점멸로 빠르게 적의 뒤로 다가가 육탄 공격을 하는 방법도 있겠고, 막힌 벽 뒤쪽으로 점멸을 해서 아예 내빼버리는 방법도 있다.
생존을 최우선으로 하자면, 벽 뒤쪽으로 도망가버리는 것이 제일.
튼튼한 벽이 총알을 막아줄 것이니까.
하지만 증거를 확보하려면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 좋다.
제압해서 경찰에 넘긴다 하더라도, 저 사람이 배후를 불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말이다.
‘이상덕이 생각을 고쳐먹게 만들지도 모르지.’
다치는 경우를 생각하면, 차원문 근처에서 싸우는 것이 좋다.
차원문 안으로 들어가서 인벤토리의 힐링 포션을 들이키면 웬만한 부상은 치유할 수 있으므로.
그러나 이 근방에는 차원문이 없다.
“뒤로 돌아서 똑바로 걸어가면, 총 안 쏠 겁니까?”
“말만 잘 들으면 말이지. 그러니까 빨리 뒤로 돌아서 걸어!”
이준기는 천천히 뒤로 돌았다.
그리고 막힌 길의 벽 뒤쪽으로 점멸했다.
“뭐야? 이 새끼 어디로 간 거야?”
이준기는 반대편 골목에서 벽을 타고 올랐다.
아까 그 골목 안쪽에서 미행자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담벼락 위에서 자세를 바르게 고정하고, 이준기는 스킬 ‘회오리’를 시전했다.
잠시 동안 상대를 공중에 띄워 무력화시키는 스킬.
갑자기 회오리바람에 몸이 휘감겨 하늘로 솟구치자, 미행자는 기겁을 하고 소리를 질렀다.
“히익! 사람 살려!”
이준기는 차분하게 경찰에 신고를 했다.
문자 메시지로 신고.
경찰 지망생이었던 이준기라서 알고 있는 기능이다.
- XX호텔 바로 옆 골목길에 후드티, 마스크 쓴 남자가 총을 들고 있습니다.
- 신고 접수되었습니다. 즉시 출동하겠습니다.
이준기는 벽에서 뛰어내려 아까 그 골목길을 달렸다.
공중에 뜬 미행자가 살려달라고 고함을 치고 있었다.
호텔 정문으로 뛰어 들어간 이준기는 프런트 데스크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급합니다. 몇 분만 저를 좀 도와주세요. 사람 구하는 일입니다.”
“알겠습니다.”
프런트 데스크에 있던 남자 직원이 데스크 뒤쪽의 문을 열고 남자 직원 몇 명을 더 불러왔다.
이준기는 그들과 함께 호텔 옆 골목으로 갔다.
공중에서 들려오는 미행자의 외침에 몇 명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놀이 기구라도 타는 것처럼 사람이 공중에 떠 있는 걸 보고 사람들이 놀라서 외쳤다.
“헤엑? 저게 뭐야?”
호텔 옆 골목에는 거대한 쓰레기 수거용 컨테이너가 놓여 있었다.
호텔에서 버린 건지, 침대 매트리스 하나가 그 안에 버려져 있었다.
“이걸, 저기 골목 입구로 옮겨야 합니다. 저 사람이 떨어지면 이걸로 받아야죠.”
“네? 그러면 매트리스만 들고 가면 되겠네요.”
“아뇨. 저 사람이 못 도망가게, 컨테이너로 받으려고 합니다. 저 사람, 조금 전까지 저를 총으로 위협하던 강도거든요.”
“네에?”
여섯 명이 힘을 합쳐 움직이자, 컨테이너는 예상외로 쉽게 움직였다.
컨테이너에는 바퀴가 달려 있었다.
공중에 뜬 미행자를 쳐다보면서, 그들은 위치를 조정했다.
잠시 후, 회오리바람으로 공중에 붙들려 있던 미행자가 딱 죽지 않을 만큼의 속도로 추락했다.
그리고 열려 있는 쓰레기 수거용 컨테이너 안쪽으로 사뿐하게 떨어졌다.
때마침, 경찰차도 도착했다.
“총 들고 난동 부린다는 사람, 어디 있습니까?”
이준기는 쓰레기 컨테이너를 손으로 가리켰다.
*****
이준기를 미행하던 사람은 불법 무기 소지 및 강도 미수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준기로서도 다른 혐의를 주장하기가 어려웠다.
그 사람이 한 일이라고는 총을 들고 죽이겠다고 협박한 것뿐이다.
“그러니까, 아저씨는 저 사람을 왜 협박했냐고요.”
“지갑 뺏으려고 그랬다니까요.”
“지갑 뺏으려고, 호텔 바로 옆 골목길에서 총을 들이댔다고요?”
“돈 좀 있어 보여서 그랬습니다.”
경찰관이 이준기를 쳐다보자, 이준기는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흔해 빠진 청바지, 셔츠, 싸구려 윈드 브레이커 차림의 이준기다.
핑계를 대려면 좀 그럴듯한 걸로 댈 것이지.
아무래도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총은 또 어디서 났어요?”
“주웠어요.”
“아니, 이 사람이 정말.”
경찰이 계속해서 질문을 했지만, 미행자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총을 들고 사람을 협박한 것은 심각한 범죄이므로, 미행자는 일단 경찰서 유치장에서 그날 밤을 보내게 되었다.
피해자이자 참고인으로서 이준기도 경찰의 질문에 대답을 해야 했다.
“사람을 공중에 띄우셨으니, 구원자인 건 알았는데, 요즘 유명한 이준기 구원자님이셨군요. 그런데 광주에는 웬일로 오신 겁니까? 광주 차원문에 들어가시나요?”
“네. 지금 검토 중입니다.”
“혹시 민주광장에 있는 그거 들어가시려고요?”
“네. 혹시 도움이 될 만한 자료라도 가지고 계신가요?”
“처음에 거길 포위한 게 우리 경찰서니까, 기본적인 자료는 있을 겁니다. 좀 기다려 보십시오.”
경찰은 컴퓨터를 두드려 자료를 찾아 출력해 왔다.
“너무 기본적인 자료뿐이네요. 경찰 자료가 원래 그렇죠. 길드협회 쪽에 더 자세한 자료가 있을 겁니다. 구원자님이 더 자세히 아시겠지만요.”
“아, 네. 주신 자료도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게 아마 처음에 들어간 팀이 나오지 않아서, 그 이후로 아무도 못 들어가고 있는 걸 거예요. 조심하십쇼.”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찰 조사로 뭔가를 알아낼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이준기는 미행자를 유치장에 놔둔 채로 경찰서를 나와야 했다.
금남로 던전을 어떻게 정리할지, 그리고 거길 어떻게 하면 혼자 들어갈 수 있을지 생각해야 했다.
그런데, 문제가 의외로 쉽게 풀렸다.
아니, 더 꼬였다고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