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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3: 새로운 위협 (1)
Episode 23: 새로운 위협 (1)
서울로 돌아온 후, 이준기는 일단 호텔에서 묵었다.
서울역까지 오는 택시 안에서 전용택 길마를 들들 볶은 결과, 신선자 길드가 관리 중인 차원문 하나를 다음 주 초에 들러볼 수 있게 되었다.
금요일 하루 동안 서울에서 정리할 일을 정리하고, 주말에는 광주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집도 없고, 짐도 별로 없으니 자유가 생긴 기분이었다.
회귀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가지만, 어머니도 동생도 아직 만나지 않았다.
예전에는 드디어 경찰 공채에 합격했다고 말하면서 돈을 부쳤지만, 이번에는 아무 말 없이 그냥 돈을 부쳤다.
구원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지만, 이제는 어머니도 동생도 그 돈이 어디에서 난 건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양대 포털에서 실검 1위를 거의 하루 내내 유지했다.
어머니는 몰라도, 동생은 모를 수가 없는 상황.
‘예전에는, 경찰에 취직된 것이 구원자로 각성했기 때문이라는 걸 아시고 몹시 걱정하셨지. 생각해 보면, 경찰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인데 말야.’
역시 이번에도 집에 가서 어머니 얼굴을 직접 보는 건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고시원에서 나와 락커에 넣어 놨던 가방을 찾아서, 어머니에게 택배로 부쳤다.
가방에 편지를 써서 넣었다.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토요일 오전에 광주에 도착했다.
일하는 날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구원자들이라서, 토요일에 사무실에 나오는 걸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광주시청 인근의 고층빌딩 두 개 층을 쓰는 ‘신이 선택한 자들’ 길드의 사무실.
종로타워의 4개 층을 쓰는 ‘발해의 후예들’과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호화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준기 씨 전 길드에 2천만 원짜리 커피머신 있었다면서? 아린 씨가 하도 졸라대서 우리는 4천만 원짜리로 샀어. 커피 맛이 마음에 들지 모르겠네.”
“길마님이 통이 크셔서. 헤헷.”
전용택과 문아린이 그렇게 말하면서 커피를 권했다.
커피 맛은 나쁘지 않았다.
사실 기계가 얼마짜리인지가 뭐가 중요한가, 원두가 문제인 거지.
아니, 그것도 아니고 누구와 마시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기도 하다.
“월요일에 가볼 수 있다는 차원문은 어디에 있습니까? 말씀해 주시면 가서 정보라도 체크해 보려고요.”
“아, 그거. 다음 주 초라고 했지, 월요일이라고 안 했는데? 하하, 농담이고. 금남로에 있어. 종각역 사거리에 생겼던 차원문도 그렇고, 교통체증 유발이 차원문의 목표 아닌가 의심된다니까.”
차원문 발생은 인구밀도와 관련 있다는 것이 이준기의 추측이다.
주소를 어디에 두었는지, 어디에서 잠을 자는지가 아니라, 실제 유동인구.
그래서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곳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라고.
아니, 어쩌면 그냥 지구인들을 최대한 괴롭힐 수 있는 곳에 차원문이 열리는 것일 수도 있다.
도시 건설 시뮬레이션 게임을 할 때, 화재가 나고 괴수가 출몰하는 곳은 바로 그런 곳 아니던가.
이 모든 것이 초월자의 게임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귀가 맞는다.
“그럼, 금남로에 가면 그냥 보이겠군요.”
“그럼. 놓칠 수가 없지. 광주 지리는 좀 알아?”
“아뇨. 광주에 온 것은 오늘이 난생처음입니다.”
“오, 그래? 서울 촌놈이셨군.”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금남로 끝에 가면, 5.18 민주광장이라고 있거든. 워낙 크니까 잘 보일 거야. 거기에 분수대가 있어. 바로 그 분수대 옆에, 마치 처음부터 한 세트였다는 듯이 차원문이 열려 있지.”
“지하철로 갈 수 있나요?”
“생명의 은인이 찾아왔는데 내가 지하철로 다니게 놔둘 것 같아? 내 차로 가자고.”
결국 이준기는 문아린의 빨간색 머시디즈를 타고 광장에 도착했다.
문아린의 머시디즈와 전용택의 랜드로버가 사이좋게 광장 한가운데에 주차했다.
랜드로버의 문을 열고 나오면서 전용택이 말했다.
“어차피, 차원문 없어질 때까지는 교통 통제야. 아무 데나 세워도 상관없다고.”
이준기는 분수대 방향에서 희푸른 빛을 발하는 차원문을 향해 뛰어갔다.
상태창을 켜서 정보를 확인했다.
- 차원문 고유번호 09055. 랭크 C. ‘배회하는 오크들’.
- 차원문 입장 조건: 최대 입장 인원 2명.
- 차원문 소멸 조건: 던전 입장 후 정해지는 목표치 만큼 오크 사냥.
- 차원문 소멸 보상: 에픽 등급 이상 아이템 1개.
- 퇴각 페널티: 1레벨 강등.
- 특이사항: 본 차원문 입장은 특정 시간대에만 가능합니다. 다음 입장 일시는 2021년 10월 19일 오전 6시입니다.
“오빠는 워커홀릭인가 봐요. 차원문이 뭐가 반갑다고 뛰어와요?”
“워커홀릭은 무슨. 궁금해서 그런 거지.”
“일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는 사람이 워커홀릭이랍니다.”
“하하. 그렇게 얘기하니 그 말이 맞네.”
전용택도 도착해서 차원문 앞에 섰다.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전용택은 거대한 차원문을 올려다보았다.
“도대체 이렇게 큰 이유는 뭐래?”
“전 회장님. 이 차원문, 사람들이 얼마나 들어갔죠?”
“준기 씨도 봐서 알겠지만, 이 차원문은 아무때나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서.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가능하거든.”
“최근에 누가 들어갔나요?”
“아니. 세계구원자포럼인데 차원문에 들어가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다들 놀러 갔지. 포럼은 구원자들에게는 휴가 시즌이라고.”
“지난달에는요?”
“그때도 안 들어갔을 거야. 이 차원문이 지난 7월에 생겼던가?”
문아린이 대답했다.
“네. 7월 초였던 것 같아요. 제 기억엔.”
“그래, 7월 초. 그때 차원문이 생기고 나서, 며칠 후에 처음으로 입장한 사람들이 나오지 않으니까, 그 이후로는 버려진 거나 다름없어. 광주시에서는 빨리 좀 없애 달라고 재촉하는데, 나도 입장이 곤란해.”
“게다가 던전 조건이 좀 이상하잖아요, 오빠. 그래서 사람들이 겁을 먹은 거죠. 입장 제한도 두 명인 데다가, 오크를 얼마나 잡아야 하는지 던전 입장 이후에 알 수 있다고 하니. 여러 가지로 꺼림칙한 거죠.”
“클리어 조건이 불명확한 게 가장 큰 이유야. 아무리 두 명짜리 공격대라고는 해도, 오크 스무 마리 정도 잡는 거라면 벌써 클리어됐어야 정상이지. 오크를 한 천 마리 잡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그래요. 저는 그래서 이 던전에 오빠가 들어가는 거 별로예요.”
물론, 이준기는 차원문 정보를 보자마자 이 던전의 포맷을 알아차렸다.
FFA보다도 더 악랄한 클리어 조건을 가진 던전이다.
차원문을 만든 존재가 무엇인지는 모르나, 그들이 인간에 대해 품는 악의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그런 조건.
아니, 다르게 생각해 보면, 악의가 없어도 이야기가 된다.
인간이란 존재를 한없이 하찮게 생각하는 존재라면, 이런 장난쯤이야 아무것도 아닐 테니까.
*****
이준기는 신선자 길드에서 예약한 호텔에서 묵게 되었다.
적당한 비즈니스호텔에서 묵으려고 했지만, 전용택이 한사코 고집을 부렸다.
“길드 비용으로 처리할 거야. 어차피 비용 처리되면 세금에서 빠지니까 부담 가질 거 하나도 없어.”
“그럼, 감사히 잘 묵겠습니다.”
“우리 길드에 들어오라니까? 그럼 아예 아파트를 구해줄게.”
전용택 길마, 그리고 문아린과 함께 거하게 저녁 식사를 하고, 이준기는 서둘러 숙소로 왔다.
화요일 아침 6시에 차원문에 입장하려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패턴을 만들어야 한다.
문아린이 함께 더 있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이준기는 연거푸 하품을 해댔다.
더 큰 문제는 공격대 구성이다.
2인 파티이고, 지원자도 딱히 없다.
문아린이 지원하는 걸 막을 구실이 없다.
‘여긴 나 혼자 들어가야 한다. 너무 위험해. 여러 가지 의미에서.’
조금 전,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는 이랬다.
“전 회장님, 여긴 저 혼자 들어가겠습니다.”
“어딜? 차원문을?”
“네.”
“입장 제한이 두 명인데, 아무래도 한 명 더 있는 게 든든하지 않겠어?”
“지원자도 없다면서요. 제가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로 판단해 봐도, 여긴 위험합니다.”
“지원자는 없지만, 다시 한 번 조사를 해봐야지. 아무도 지원 안 하면 내가 가도 좋고.”
문아린이 끼어들었다.
“제가, 제가 갈게요. 준기 오빠랑 저는 이미 두 번이나 공격대를 같이 해봤잖아요. 손발이 잘 맞는다구요.”
“아린이가 실력 있는 구원자이기는 하지만, 여긴 나 혼자 가는 게 좋겠어.”
“왜요? 이제 오빠가 저보다 레벨 높다고 시위하는 거예요?”
“아니. 뭐라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여긴 둘보다 혼자가 유리해.”
이번엔 전용택이 물었다.
“그래? 그런 경우도 있나?”
“직감입니다.”
“하긴, 준기 씨 직감은 꽤 쓸만하지. 그래도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얘기해 줄 수는 있잖아? 같은 길드가 아니어서 곤란한가?”
“저, 용병이잖아요. 용병이 무슨 전략을 쓰든,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용병을 쓰는 거 아닌가요?”
“하하. 말재간하고는. 준기 씨는 용병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준기 씨 우리 길드 가족이라고 생각하는데. 섭섭하네.”
“뭐라고 논리적으로 설명해 드리기 어려워서 그렇습니다. 정말로 오크 몇 마리 죽이는 게 던전 목표라면, 처음에 들어갔던 공격대가 나오지 않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렇긴 하지.”
“저는 입장 후에 클리어 조건이 바뀌는 던전도 경험해 봤고, 클리어 조건이 불명확한 던전도 들어가 봤습니다. 혼자 들어가서, 상황을 봐 가면서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문아린이 말했다.
“위험하다고 하면서, 도움은 거절하는 거야? 지난번에 봤잖아. 나, 오빠 발목 안 잡을 자신 있어.”
“발목을 잡고 말고, 그런 얘기가 아냐, 아린아.”
“김형채와 1대1 상황에서, 내가 우세했잖아. 기억 안 나?”
“기억나. 아린이 실력은 내가 잘 알지.”
“그런데도 안 돼?”
“실력 문제가 아니라서 그래.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데는 혼자가 편해서 그런 거야.”
전용택이 한마디 했다.
“준기 씨는 뭐든지 다 혼자 하려는 것 같아. 던전에서도 준기 씨와 함께한 것은 잠깐뿐이었지만, 그런 느낌이네.”
“원래 성격이 모나서 그렇죠, 뭐. 죄송합니다.”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고. 좋다는 얘기야. 엄청난 장점이지. 단지, 가끔은 속마음을 얘기해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일단 그렇게 대화가 끝났다.
반드시 혼자 들어가겠다고 공언을 한 것이지만, 생각해 보니 다른 사람과 함께 입장하는 것에 결사반대한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문아린이 무단으로 들어오겠다면 그걸 막을 방법은 없다.
지금까지 이준기가 그래왔듯이.
입장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문아린을 떼어 놓고 미리 들어갈 수도 없는 일.
‘던전 안에 들어가서, 그냥 어디 한 군데에서 기다리라고 하면 말을 들을까? 하민서조차도 안전한 곳에 숨어있으라는 말을 듣지 않았는데.’
침대에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잠이 들었다.
*****
일요일에는 광주 관광을 시켜주겠다고 문아린이 제안했지만, 이준기는 다른 할 일이 있다고 사양했다.
“사무실에서 협회 전산망 쓸 수 있지? 정보 좀 정리하려고.”
“그래놓고도 워커홀릭이 아니라고? 그럼 내일 아침 사무실에서 봐.”
“너도 나오려고? 피곤하지 않아?”
“사무실에서 노닥거리면 돼. 신경 쓰이지 않게 할게.”
일요일 아침 시간이라, 사무실 건물은 고요했다.
사무실 입구가 잠겨 있는 데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1층으로 다시 내려와 관리직원에게 사정을 말하려고 하는 찰나.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에서 문아린이 내렸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이렇게 일찍 오면 사무실이 잠겨 있지, 열려 있겠냐!”
“때마침 나타나 줘서 고마워, 아린아.”
“일요일 아침 여섯 시 반이라니. 오빠도 정말 너무한다.”
“그러게. 내가 생각이 없네.”
함께 사무실로 올라와서, 문아린이 카드키로 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어서 휑한 사무실에서, 문아린과 이준기는 나란히 앉아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내가 아직 협회 전산망에 익숙하지가 않아서 그런데, 던전 정보 모아놓은 곳은 어디야?”
“그런 건 오빠가 나보다 더 잘 알 줄 알았는데. 의외네. 마우스 잠깐 줘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