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61화 (6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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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2:. 불청객의 기자회견 (1)

Episode 22:. 불청객의 기자회견 (1)

이준기가 다시 물었다.

“그럼 말해봐.”

“내가 알고 있는 건 그것뿐이야. 협회장이 그 이상은 얘기하지 않았어.”

“짐작 가는 건 있을 거 아냐? 저기 전용택 씨는 오늘 당신한테 죽을 뻔했어. 왜 살해당할 뻔했는지, 알 권리가 있다고.”

“아마, 한국 협회에서 의뢰한 걸 거야. 이상덕 협회장과 구라모토 협회장은 아주 친하다고 들었거든. 저 전용택이라는 사람이 이상덕 협회장 반대파라며? 그래서 죽이라고 한 거겠지. 하지만 이건 내 추측일 뿐이야. 직접 들은 얘기 따윈 없다고.”

“이상덕을 도와서 너희들이 이득 보는 건 뭔데?”

“그거야말로 나는 전혀 몰라. 협회장이 시키니까 한 거라고!”

“협회장이 시키면 살인도 거리낌 없이 한다? 그걸 믿으라는 거야?”

“내가 아는 건 다 말했잖아! 추측한 것까지 말했어. 살려줘!”

“아무래도, 전용택 회장이 말하는 대로, 너를 죽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아, 아냐! 왜 그래? 살려줘! 다 말했잖아!”

“오늘 살인을 해서, 네가 얻는 이득이 뭐냐고 물었다. 지어내서라도 말해라. 아니면, 던전과 함께 네 시체도 소멸하게 해주지.”

다케다가 침을 삼켰다.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자기 심장이 뛰는 소리를, 여기 모든 사람들이 다 듣고 있을 것 같다고, 다케다는 생각했다.

“이상덕 협회장은, 나중에 조선 총독을 하고 싶어 한다고 들었다.”

“조선 총독?”

“그래. 일본의 구원자 수는 한국의 3배가 넘는다. 거기에 이상덕 협회장 파벌의 한국 구원자들까지 가세하면, 한국을 다시 점령할 수 있다.”

“계속 말해봐.”

“아직 전면전을 하기에는 시기가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일단 이상덕 협회장에게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세력을 좀 줄여야 한다고 했어. 이상덕 협회장은 그동안 반대파 구원자들을 은밀히 손봐주고 있다고 들었거든. 그래서 이번에 구라모토 협회장에게 도움을 청한 거지.”

“타깃이 전용택만은 아니겠지?”

“전용택, 그리고 박충기다.”

“솔직히, 너무 놀라운 얘기다. 한국을 침략하겠다고?”

“차원문은 돈이 된다. 일단 그걸 접수하겠다는 거다. 한국에는 엄청난 규모의 군대도 있는데, 군사적으로 침략하겠다는 게 아니다.”

“’아직은’이라는 거겠지?”

“그··· 그렇다.”

이준기는 생각했다.

지금 들은 내용을 전용택, 김나리와 공유하는 것이 맞는지.

전용택은 일본어를 전혀 모르지만, 김나리는 생활 수준의 일본어를 구사한다.

지금 말하는 내용을 전부 알아듣지는 못했겠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은 느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전용택은 암살 표적이었다.

일의 전모에 대해 들을 자격이 있다.

이준기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케다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오늘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오크 도시를 정공법으로 공략해서 던전을 클리어했다. 몬스터가 갑자기 너무 몰리는 바람에,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알겠나?”

“그··· 그래. 그렇게 말할게.”

“허튼 소리를 한다고 해서, 내가 널 말릴 방법은 없다. 하지만 네가 다른 소리를 한다면, 나도 네놈이 살인 계획에 가담했다는 걸 밝힐 수밖에 없다. 피차 그건 피곤한 일이겠지?”

“그래, 알았다. 내가 그 시나리오대로 입을 맞추면, 너도 오늘 일을 비밀에 부치겠다는 거지?”

“그렇다.”

“그래, 그렇게 하겠다. 사무라이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마.”

“훗. 좋다.”

*****

2021년 10월 12일 오전 10시 30분.

기자회견장은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찼다.

한일 연합 공격대 성과를 발표하기 위한 자리.

내외신 기자 200여 명이 몰려들었다.

구원자들끼리 놀고먹는 포럼 취재와는 열기가 달랐다.

원래는 토요일 오전에 계획되었던 것이지만, 던전이 일찍 클리어되는 바람에 수요일 오전으로 급히 재조정해야 했다.

계획했던 것보다 사흘이나 일찍 소멸한 차원문.

인명 피해는 좀 있었지만, 이런 대성공을 무시하고 기자회견을 취소할 수는 없었다.

“한일 연합 공격대가 첫발을 잘 뗀 것 같은데요. 인명피해는 좀 있었지만 C급 던전을 몇 시간 만에 클리어해버렸습니다.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상덕 협회장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 앞에 섰다.

정치질의 생명인 표정 관리에는 자신이 있는 이상덕이었지만, 오늘은 어쩐지 표정이 기괴하게 보일 거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이상덕이 입을 뗐다.

“이렇게 많이들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한일 연합 공격대의 성공에 크게 고무된 것이 사실입니다만, 우선 희생자 여러분들을 위한 묵념을 제안합니다.”

이상덕에게는 매우 불편한 자리다.

계획대로라면, 공격대가 던전을 공략한 것을 축하하면서, 아깝게 희생된 전용택 탱커의 명복을 빈다고 말하려던 자리다.

계획대로 됐다면,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기 위해 노력해야 했던, 그런 자리.

그런데 그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자꾸 인상이 구겨지려는 것을 억눌러야 해서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묵념이 끝나자, 이상덕이 말을 이었다.

“인명 피해가 있었기는 했지만, 사상 처음 시도한 한일 연합 공격대가 이런 대성공을 거둔 것은, 연합 공격대라는 개념이 유효하다는 증거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분야에서, 한일 양국의 협력이 진행되기를 희망합니다.”

전 일본 구원자협회의 구라모토 협회장도 한마디 했다.

“10명의 공격대 중에서 겨우 네 명이 귀환한 것은 뼈아픕니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밑거름 삼아, 앞으로는 더욱 안정적으로 연합 공격대를 운영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음에는 공격대 생환자들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다케다 상에게 묻겠습니다. 던전을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공략한 비결은 뭡니까? 통상적인 경우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빨리 정리가 됐는데요, 한국 구원자들 때문인가요?”

“연합 공격대의 시너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전은 누가 세웠습니까? 역할 분담은요?”

“작전은 다 같이 수립했습니다. 다만, 생각보다 빠르게 던전 공략이 된 것은, 생각보다 많은 수의 몬스터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희생자도 더 많이 나온 것입니다만.”

“이준기 구원자가 던전에 무단 진입해서 문제가 좀 됐었잖습니까. 이준기 구원자는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이준기 구원자는 정찰과 탐색을 담당했습니다. 이준기 구원자가 새벽부터 일찍 정찰을 마쳐 놓았기 때문에, 던전 공략이 좀 더 수월했습니다.”

“이준기 구원자의 차원문 무단 진입에 대해서는 징계 같은 걸 생각하고 계십니까?”

기자들을 마주 보고 앉은 좌석 배치는 이랬다.

왼쪽부터, 김나리, 다케다, 이상덕, 구라모토, 전용택, 이준기.

대답을 하려고 마이크에 얼굴을 가져가던 이상덕이 이준기를 흘끗 쳐다보았다.

순간적으로 구겨지는 얼굴.

이준기는 무표정으로 맞받아쳤다.

이상덕이 대답했다.

“원래는 중징계 사안입니다만, 던전 공략에 이준기 구원자의 공로가 크기 때문에, 주의 조치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다음은 이준기 상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번에 또 3레벨이 올라서 26레벨이 되셨습니다. 각성 이후 두 달도 되지 않아 한국 구원자 랭킹 10위권에 들어가셨는데요, 비결이 있는지, 레벨업을 서두르시는 이유라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레벨업을 서두른다기보다는, 차원문들을 빨리 닫아버리고 싶어서 그러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차원문을 방치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저도 이준기 구원자에게 질문드리겠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것, 즉 차원문이 위험하니까 빨리 해치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차원문에 무단 진입하신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현재 차원문 관리는 길드와 협회에 위임되어 있는데요, 내부적으로 행정 절차가 너무 복잡합니다. 차원문은 정부 차원에서 관리하고, 입장하고 싶은 구원자들은 언제라도 입장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식으로 건의하시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차원문 정리가 빨리빨리 될 수 있도록, 차원문 입장 절차를 간략하게 하거나 폐지하는 것을 정식으로 건의 드립니다.”

기자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일었다.

“현재 차원문 관리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기자회견장 전체가 술렁거렸다.

이상덕에 이어, 구라모토 협회장도 이준기를 쳐다보았다.

날아오는 눈총을 무시하고, 이준기는 전방을 주시했다.

전용택이 이준기의 옆구리를 찌르자, 이준기는 구라모토와 이상덕을 쳐다보았다.

이상덕이 말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잖소.”

이상덕이 눈을 부라리며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세상이 만만해 보이나? 까불지 마라.”

“난 당신을 협회장으로 뽑은 적도 없고, 당신의 방식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협회장으로서 존중을 받고 싶다면, 존중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해야 할 거다.”

이상덕이나 이준기나,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 낮은 목소리로 한국말 대화를 한 것이지만, 뜻은 몰라도 분위기는 전달된 것이 분명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사회자는 기자회견을 중단한다고 안내했다.

*****

기자회견장에서 이준기의 돌발 행동은, 저녁 시간 뉴스에까지 톱뉴스가 되어 다루어졌다.

일본과 한국, 두 나라의 포털에서 이준기가 검색어 순위 1위를 하루 종일 유지했다.

세계구원자포럼 기간 중에 일어난 일이기도 해서, 다른 나라들에서도 이준기에 대한 관심이 폭증했다.

그 효과는 회의장에서도 나타났다.

저녁 식사 시간에 헬렌 카자크가 나타난 것이다.

다른 영국인 구원자들과 함께 다른 호텔에 묵는 헬렌 카자크는, 첫날 공식 환영 만찬을 제외하면 저녁 식사도 따로 했다.

그런데 수요일 저녁 식사 시간, 그녀가 공식 만찬장에 나타났다.

첫날과 마찬가지로, 그녀가 나타나자 사람들이 그녀 주위로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청바지에 셔츠 차림이었지만, 몰라보고 지나치기에 그녀의 미모는 너무 튀었다.

이준기는 접시에 가득 담아온 여러 가지 음식을 허겁지겁 먹어 치우고 있었다.

같은 테이블에 윤동직, 전용택, 김나리, 그리고 문아린이 앉아 있었다.

접시에 얼굴을 파묻듯이 하고 음식을 흡입하는 이준기의 옆구리를 윤동직이 찔렀다.

이준기가 돌아보자, 윤동직이 뒤를 가리켰다.

헬렌 카자크가, 천장의 샹들리에를 배경으로 이준기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이준기는 허겁지겁 일어났다.

헬렌 카자크가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헬렌 카자크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이준기입니다. 반갑습니다.”

유창한 영어로 답변하는 이준기를 보고 테이블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원래의 28살 이준기라면, 영어라고 해봐야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토익 공부를 한 것이 다였다.

그러나 조슈아 테일러에 대항해서 거의 1년 동안이나 국제 공격대를 이끈 이준기다.

룬문자나 오크 주술사의 주문에 대한 지식과 마찬가지로, 이준기는 영어 능력도 그대로 유지한 채 회귀했다.

“영어를 잘하시는군요.”

“의사소통이나 하는 정도죠. 감사합니다.”

“오늘 기자회견에서 하신 말씀, 잘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자꾸 그 얘기를 하시네요. 쑥스럽게시리.”

“저도 같은 의견이라는 말씀드리려고 왔어요. 지구 반 바퀴 떨어진 나라에 있지만, 멀리서라도 응원하겠습니다. 같은 구원자니까요.”

“감사합니다.”

“우리 영국은 차원문 관리를 정부에서 하는데, 다른 나라들은 왜 민간에 맡기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글쎄요.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의료보험과 마찬가지네요. 영국은 정부에서 도맡아 하는데, 미국부터 시작해서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않죠.”

“오? 영국에 대해 잘 아시는군요? 맞아요. 저는 의료보험도 차원문 관리도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준기가 영국 의료보험에 대해 알 리가 없다.

예전에, 헬렌 카자크가 이준기에게 했던 말을, 이번에는 이준기가 미리 해버린 것뿐이다.

“카자크 씨가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한국 의료보험은 영국 쪽에 훨씬 가깝거든요. 정부가 100% 도맡아서 하는 건 아니지만요. 의료보험과 비슷하게 하려면 한국도 영국처럼 해야 하는데 말이죠.”

“아, 그거 재미있는 생각이네요. 그렇게 되길 바랄게요. 그리고, 헬렌이라고 불러주세요.”

“네, 그래요, 헬렌.”

“저녁 맛있게 드시고요. 휴대폰에 연락처 찍어드릴게요.”

헬렌이 이준기로부터 휴대폰을 건네 받았다.

그녀는 이준기의 휴대폰에 자기 번호를 찍은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진동하는 자신의 휴대폰을 보여주면서, 그녀가 말했다.

“자. 이제 됐죠? 언제든지, 필요한 것 있으면 연락 주세요.”

“그래요. 또 봐요, 헬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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