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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1:. 용병과 주술사 (2)
Episode 21:. 용병과 주술사 (2)
이준기에게 최우선 목표는 암살 타깃, 즉 전용택의 보호다.
던전 클리어도 중요하지만, 그건 놀 주술사에게 부탁해 놓은 것이 있으니 기다리면 될 일.
고블린 용병대에는 이미 의뢰한 일이 있으니, 공격대가 오크 무리를 공격하는 것을 방해할 것이다.
이준기는 일단 전용택을 보호하기로 했다.
김나리가 옆에 있기는 하지만,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면 안심할 수 없다.
‘최악의 경우. 즉, 저들 일곱 명이 돌아와서 이 둘을 죽일 수도 있다.’
이준기는 경우의 수를 정리해 보았다.
첫째, 저들이 정말로 순수하게 던전 클리어를 목표로 오크를 잡기 시작한다면, 그건 고블린 용병대의 방해를 받을 것이다.
둘째는 저들이 오크 무리를 끌고 와서 전용택을 공격하도록 유도할 경우인데, 마찬가지로 고블린 용병대의 훼방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세 번째 가능성은 저들이 적으로 돌변하여 이들 둘을 학살하는 것이다.
7대2의 압도적인 숫자 차이도 문제지만, 레벨 차이도 심각하다.
한국 팀 대 일본 팀으로 탱커와 힐러 둘씩만 붙이더라도 한국이 불리하다.
그런데 7대2로 덤빈다면 손도 못 쓰고 당할 것이다.
더구나 기습을 하기라도 한다면.
최선의 대비책은 저들을 따라다니면서 감시하는 것이다.
이쪽의 두 명을 공격하려고 하면, 그걸 막는 것이다.
사람을 직접 공격할 필요도 없다.
소리만 질러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일곱 명의 공격대가 이동한 방향, 즉 북쪽으로 이준기는 움직였다.
전용택과 김나리에게서 충분히 멀어졌다고 생각한 그들은 멈춰서서 자기들끼리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일본어로 대화하면, 이도협을 제외한 전원이 자유롭게 의사소통 할 수 있다.
눈치를 봐야 하는 두 사람이 없어져서, 그들의 대화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여러분 모두 2레벨 강등은 각오하고 들어온 거죠?”
“물론입니다. 보상받기로 했으니까요.”
“그렇다면 여기에 들어온 진짜 목표부터 달성하는 게 맞죠. 동의하시죠?”
“그런데 전용택 저 사람이 그 정도로 중요 인물입니까? 2레벨 강등을 감수해야 한다니.”
“차원문 안쪽이라서 살인도 가능한 겁니다. 차원문이 없었다면 정적을 암살할 생각을 할 수도 없었겠죠.”
“하긴, 그렇군요.”
“그렇다면, 저들이 눈치채기 전에 당장 행동을 개시하죠. 이의 있으세요?”
“그래도 오크 한 무리 정도 잡고 시작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조금 꺼림칙해서요.”
“니와 상은 참 무르시군요. 이건 일입니다.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가죠. 저, 고성하가 먼저 기습을 날리겠습니다.”
고성하는 은신이 가능한 전설급 신발, ‘아킬레우스의 샌들’을 신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동 속도를 올려주고, 공격을 받을 경우 일정 확률로 이동 속도가 대폭 증가하는 신발.
거기에 더해서, 하루에 한 번 은신을 가능하게 해준다.
은신은 최대 1시간 동안 지속되지만, 이동 이외의 다른 행동, 예컨대 공격을 하면 은신이 해제된다.
선제 공격을 보장해주는 최고의 옵션이다.
고성하가 전용택을 한 방에 죽이지는 못하겠지만, 강력한 선빵을 날리고 전투를 개시할 수 있다.
‘고성하는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는 건가? 어떻게 저렇게 대담하지?’
이준기는 인벤토리에서 비장의 아이템을 확인했다.
지난번, ‘종각’ 던전에서 주석을 잡고 획득한 전리품 중에 하나다.
원래는 김형채의 소유였으나, 그를 죽인 주석이 가지고 있다가 이준기에게 넘어온 물건.
이제는 ‘발해의 후예들’ 길드로 통합된 탑픽 길드 소속이었던 두 사람, 즉 하민서와 마상욱의 물건은 길드에 돌려주고 나왔지만, 이것은 김형채와 주석을 거친 물건이므로 아직 가지고 있다.
- 카멜레온 디텍터.
- 반지. 에픽 등급.
- 착용 효과: 은신 중인 존재들을 볼 수 있습니다.
- 사정거리: 착용자 주변 반경 10미터.
‘김형채의 아이템을, 그의 직속 상관 고성하를 상대로 쓰게 되는군.’
*****
고성하가 신중한 성격인 것은 이미 확인했다.
‘아킬레우스의 샌들’을 이용해 은신을 할 때에도, 그는 신중했다.
1시간이나 지속되는 은신이므로, 멀리에서부터 은신 상태를 유지하고 접근해도 되는 상황.
그러나 그는 최대한 은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타깃이 수십 미터 이내 거리로 들어온 다음에 은신 기능을 사용했다.
다른 여섯 명의 구원자들의 눈앞에서, 고성하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들보다 조금 남쪽에서, 그들과 함께 이동 중인 이준기의 시야에서도 그가 사라졌다.
은신 감지 반지, ‘카멜레온 디텍터’의 사정거리를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이준기는 고성하를 볼 수 있었다.
고성하가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은신 감지 범위로 들어온 것이다.
고성하의 모습은 녹색 윤곽선에 둘러싸인 약간 투명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보인다면 오히려 혼란스러울 수 있다.
상대가 은신 중이라는 것까지 알려주는 좋은 기능.
‘착각하지 말자. 고성하는 은신 중이지만, 나는 아니다. 숨어서 잘 이동해야 한다.’
고성하가 먼저 움직이고, 다른 사람들은 10미터 정도 떨어져서 그의 뒤를 따랐다.
태연하게 전용택의 앞에 다가가서 그를 찔러도 된다.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기습 공격이라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전용택은 레벨 29의 구원자이자, 한국 구원자 랭킹 3위에 해당하는 실력자.
그동안 그가 거쳐온 사냥과 살육의 경험, 그것을 무시할 수 없다.
중견 레벨 이상의 구원자라면 살의는 쉽게 감지할 수 있다.
그래서 은신과 기습이 필요한 것이다.
고성하가 일격을 날리면, 뒤에서 곧바로 지원이 들어온다.
김나리가 전용택을 도와준다 하더라도, 순식간에 상황이 정리될 것이다.
누군가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이준기는 전후를 잘 살피면서 수풀 사이로 이동했다.
전용택과 김나리가 가시거리 안으로 들어왔다.
둘은 남쪽으로 걷고 있다.
아마도, 던전 입구의 오두막으로 가는 중인 것 같다.
뒤쪽에는 고성하.
은신 중에도 소리는 들리므로, 고성하는 최대한 조용하게, 걸음을 가볍게 해서 걷고 있었다.
수풀 사이에 몸을 숨기고 움직이는 이준기와 기본적으로 마찬가지 움직임.
차이가 있다면, 고성하는 엄폐물을 찾지 않고, 그냥 개방된 공간을 나아가고 있다는 것.
최대한 조용히 움직이다 보니, 고성하는 전용택과의 거리를 좀처럼 좁히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걷는 전용택에 비해 속도가 뒤쳐질 수밖에 없다.
전용택과 김나리가 걷는 도중에 몇 차례 멈추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따라온 것.
다시 한 번, 전용택과 김나리가 멈춰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냥 오두막으로 돌아가면, 던전에 들어온 의미가 없잖아요. 차라리 이준기 씨를 찾으러 가는 건 어떠세요?”
“저도 그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던전이 너무 넓은 데다, 몬스터 무리에 걸리기라도 하면 우리 둘이 살아남기는 불가능하잖아요. 너무 위험해서요.”
“아무래도, 그런가요.”
전용택과 고성하 사이의 거리는 이제 10미터.
거리가 충분히 좁혀졌다고 생각한 고성하가 몸을 날쌔게 움직이며 전용택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준기가 수풀에서 뛰쳐나가면서 전용택에게 소리쳤다.
“피해!”
갑자기 수풀 속에서 뛰어나오는 이준기의 모습을 보고 전용택이 놀라서 움찔했다.
탱커의 직감으로, 전용택은 인벤토리에서 방패를 꺼내 들었다.
허공에서 튀어나온 고성하의 단검이 방패에 막혔다.
단검에 이어, 고성하의 몸도 허공으로부터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전용택이 경악하면서 외쳤다.
“고성하!”
*****
고성하의 단검은 방패에 막혔지만, 곧바로 멀리에서 화살이 날아들었다.
김나리가 화살을 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이준기 구원자? 이게 무슨 일이죠?”
이준기는 대답보다 급한 일을 먼저 처리했다.
그는 숲속을 향해 외쳤다.
“이봐! 고블린 친구들! 나를 살려야 잔금을 받을 수 있을 거야!”
길 건너편에서 고성하를 향해 화살이 날아왔다.
동시에, 그쪽 수풀 속에서 고블린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고블린 용병대의 리더가 말했다.
“이건, 별도 요금이라구!”
“알았어! 일단 도와줘!”
화살을 맞고 뒤로 쓰러졌던 김나리가 물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저들이, 공격대원들이 당신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고블린들은 우리 편이에요.”
“고블린들이 우리 편이라고요?”
“용병입니다. 제가 고용했어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우지는 못했지만, 김나리와 전용택은 고블린 무리와 힘을 합쳐 갑자기 나타난 적들과 싸웠다.
고블린 스무 마리를 상대로 30레벨을 넘나드는 고레벨 구원자들이 고전할 리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구원자 일곱 명이 상대해야 하는 것은, 고블린 20마리뿐 아니라 구원자 셋도 포함된다.
그것도 탱힐딜이 갖추어진 세 명의 구원자.
숲의 오솔길 위로 뛰쳐나온 고블린들과 구원자들 사이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아시카가와 이도협이 고블린 한 마리씩을 처치했으나, 아직 많은 수가 남은 상황.
게다가 김나리가 고블린들에게 힐을 넣고 있다.
탱커 전용택도 만만치 않은 상대다.
숏소드 오캄과 단검 카데쉬를 들고 앞을 막아서는 이준기를 향해, 이도협이 외쳤다.
“미쳤구나, 이준기! 미친 거 맞지?”
“살인미수는 당신 아닌가?”
“언제 네놈을 혼내주나 벼르고 있었는데, 오늘이 그날이구나!”
“27레벨 주제에 나에게 덤비다니. 이도협, 내가 한 수 가르쳐 주마!”
이준기가 힘을 가해 오캄을 앞으로 밀자, 흑요석 칼날과 썬더볼트를 든 이도협이 뒤로 밀려나면서 말했다.
“뭐가 어쨰? 넌 23레벨이잖아. 미친 거 맞구나.”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이도협. 너 따위, 내 상대가 못 된다.”
“개소리!”
쌍 단검을 들고 양팔을 벌린 이도협이 이준기를 향해 점프했다.
한편, 전용택은 아시카가와 고성하의 연합 공격을 막고 있었다.
고블린들이 중간에 끼어 들어온 덕분에, 김나리는 일본인 구원자들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서 힐에 전념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방패를 밀어 도끼를 든 아시카가를 옆으로 넘어뜨리고, 전용택은 고성하를 향해 롱소드를 휘둘렀다.
롱소드를 단검으로 쳐내고, 고성하는 뒷걸음질 쳤다.
“고성하! 뭐 하는 짓이냐!”
“곧 죽을 놈한테 할 말은 없다.”
“내가 네깟놈한테 죽을 거 같냐? 여기서 죽는 건 너다!”
“고블린 따위한테 도움을 받아서 이길 수 있다고?”
아시카가가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들자, 전용택은 고개를 숙여 피했다.
그 사이를 고성하가 파고들었다.
단검을 찌르려는 순간, 고성하의 몸이 공중으로 빨려 올라갔다.
이준기가 스킬 ‘회오리’를 써서 공중으로 날려버린 것이다.
“이준기, 네 이놈!”
그러는 사이 이도협은 고블린 한 마리를 더 쓰러뜨렸다.
하지만 빈자리로 고블린 둘이 들어와서 그와 대치했다.
이준기는 고블린들이 진격하는 틈을 타서 일본인 힐러, 스즈키 사나에를 향해 뛰었다.
그를 포착한 일본인 딜러, 니와 아카네가 긴 창을 들고 앞을 막아섰다.
이준기가 일본어로 말했다.
“당장 그만두시죠. 청부 살인을 하려 하다니, 제정신입니까?”
“사사로운 감정은 없어요. 이건 일일 뿐입니다!”
“이런 일을 하고 밤잠을 잘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문답무용!”
이준기가 한손검을 상대의 창에 걸고 한 바퀴를 돌리자, 그녀가 손에서 창을 떨어뜨렸다.
이준기는 떨어진 창을 발로 차서 길섶으로 밀어버렸다.
무기를 떨어뜨린 니와 아카네가 뒷걸음질을 치면서 인벤토리에서 활과 화살을 꺼냈다.
“당신들은 절대 성공하지 못합니다.”
“대단히 오만하시군요.”
“오만인지 실력인지, 직접 확인하시죠.”
순식간에 하늘이 어두워졌다.
먹구름이 사방에서 솟아올랐다.
한순간, 어두워진 하늘이 환하게 작렬했다.
곧이어 우르릉거리는 천둥 소리가 머지 않은 거리에서 들렸다.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이준기가 싸우던 니와 아카네가 멍한 얼굴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준기도 그녀에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는 주먹 쥔 손을 하늘을 향해 내질렀다.
“드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