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57화 (57/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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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0:. 번개를 기다리며 (2)

Episode 20:. 번개를 기다리며 (2)

이도협이 분통을 터뜨렸다.

“이준기 이 새끼를 그냥! 이게 다 그 새끼 때문에 틀어진 거잖아요.”

“10명 공격대였다고 해도, 금요일까지 깬다는 보장은 없죠.”

“왜 안 됩니까? 지금 한국, 일본 양국의 최고 레벨 구원자들이 모였는데.”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사람들은 서로 옆 사람과 중얼거리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이준기 씨는 도대체 여기에 왜 들어온 거래요? 아이템 욕심인가?”

“죽지 않을 자신은 있나 보죠? 10인 던전, 그것도 C급 짜리를.”

“소문 못 들었어요? 이준기 씨는 C급 던전을 혼자 쓸고 나온 적이 있다는데?”

“네? 그런 소문이 있어요? 어처구니가 없군요.”

“서울 남쪽 어디 던전이라고 들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문이 쓸데없이 디테일하군요.”

아시카가가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끌고, 말을 이었다.

“이렇게 하겠습니다. 거의 점심시간 아닙니까? 일단 한 무리 풀링해서 잡고 나서, 점심 드시면서 다시 논의를 하겠습니다. 어떻게 할지 말이죠.”

*****

메인 탱커 다케다가 성문 왼쪽의 초소로 다가가서 화살을 날렸다.

경비병 하나가 화살을 맞고 쓰러지자, 초소에 있던 오크들이 무더기로 뛰어나왔다.

다케다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숲으로 도망쳐 왔다.

아시카가가 땅 위에 그어 놓았던 선 위를 오크들이 넘어오자, 공격대원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도끼, 둔기, 도검, 단검··· 다양한 무기들이 오크들에게 날아들었다.

전 일본 탑랭커답게 다케다의 탱킹은 노련했다.

방패도 꽤 좋아 보이는 물건.

별다른 부상 없이, 공격대는 첫 번째 웨이브를 막아 냈다.

전리품을 수거하는 공격대원들을 향해 아시카가가 말했다.

“아직 11시 47분밖에 안 됐는데요. 어떠십니까? 한 무리 더 풀링해 올까요?”

고성하가 아시카가의 말을 통역하자, 한국 사람들은 볼멘 소리를 토해냈다.

왜 말을 바꾸냐, 점심 시간이다 등등.

결국, 아시카가가 사과하고, 원래대로 식사 후 계속하기로 했다.

다들 기본 식량 팩, 그러니까 골판지에 싼 빵 모양의 물건을 꺼내는데, 이도협은 다른 물건을 꺼냈다.

포장부터가 다른 사람들의 것과는 달리, 고급져 보이는 데다가, 안에 들어 있던 빵 같은 물건도 훨씬 부드러워 보였다.

일본 사람들은 물론, 한국 사람들도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어? 그건 뭡니까?”

이도협이 의기양양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 이거요? 고급 식량 팩입니다. 설마, 처음 보세요?”

사람들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헐’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예의상 참는 그런 표정.

던전 안에서의 식사는 그야말로 살기 위해 먹는 것이다.

기본 식량 팩이나 고급 식량 팩이나 맛은 거의 비슷하다.

다들 호기심에 한번 사 먹어보고는 그만두는 그런 맛.

그런데 가격이 두 배가 넘는 고급 식량 팩을 인벤토리에 넣고 다니다니.

과시하기 위한 소비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행동이다.

거대 길드의 회장이나 되는 사람이 그런 철없는 행동을 하다니.

“그건 맛있습니까?”

“조금 드셔보실래요?”

일본 여자 중 한 명에게 이도협이 빵조각을 조금 떼어주었다.

비싼 것이니 맛이 있지 않을까 하고 입으로 가져가던 여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냄새가 별로여서다.

이도협에게 받은 빵조각을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넘기고 나서, 일본 여자는 말했다.

“하하. 나쁘지 않네요.”

“훨씬 낫지 않나요? 기본 식량 팩이랑은 차원이 다르죠.”

“저는 맛을 잘 몰라서요··· 하하. 그런 맛이라면 굳이 돈을 두 배나 내고 사지는 않을 것 같아요.”

“흠. 그래요? 저는 이게 훨씬 맛있는데.”

이준기는 수풀 속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생각했다.

예상대로, 공격대는 단합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일본 사람들끼리는 이미 행동과 생각이 일치되어 있는 듯 보인다.

전용택을 몬스터들 사이에 던져 놓고 도망을 가더라도, 그를 구하려고 할 사람은 현재로서는 김나리 한 사람뿐일 것이다.

이준기가 김나리와 힘을 합친다고 해도, 전용택을 살릴 수는 없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

‘어쩔 수 없군. 그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열두 시 반까지 식사를 하면서 작전도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시카가의 공지사항을 듣고, 이준기는 고블린 용병대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

“아니, 인간 친구? 아직도 여기 있었어?”

고블린 용병대장이 이준기를 반갑게 맞았다.

“그런데 무슨 볼일이지? 추적 장치도 없이 땅쥐를 잡다가 ‘보석함’을 발견한 건 아닐 테고 말야.”

“아, 미안하지만 그건 아냐. 그 퀘스트는 포기했다고. 다른 볼일이야.”

“뭔데 그래? 어려워하지 말고 말해 봐. 우린 용병이야. 제대로 된 가격만 치르면 뭐든지 해주는 게 우리 서비스라고. 고객은 언제나 옳다. 그게 우리 모토야.”

“훌륭한 생각이군.”

“그래서, 원하는 게 뭐야?”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는 일인데, 괜찮겠지?”

“용병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돈을 받고 목숨을 내놓는 게 용병이야. 왜 자꾸 뜸을 들여? 오크를 백 마리 정도 잡아달라는 거야, 뭐야?”

“하하하. 그것도 좋긴 하겠군.”

건물 안에 있는 고블린까지 합쳐봐야 전부 해서 30 내지 40명 규모일 것이다.

그 규모로 백 마리가 넘는 오크를 잡아 달라고 부탁한다면, 부탁하는 쪽이 제정신이 아닌 거겠지.

“상당히 어려운 의뢰야. 하지만 고블린 씨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 온 거야.”

“제대로 왔어. 그러니까 그만 뜸 들이고 말 좀 하라고.”

“오크 도시 남문 바깥에 말야, 인간 한 부대가 와서 도시를 공격하려고 준비하고 있어.”

“그래? 간 큰 놈들이군. 배짱이 맘에 들어.”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딱 전멸 각이거든. 되지도 않는 일을 하려다가 사람들이 죽는 건 좋지 않지.”

“그래서? 말려 달라는 거야?”

“그렇지.”

“어떻게? 협상이라도 벌일까?”

“현재 인간 부대의 위치는 여기야. 도시 남문에서 나오는 길 서쪽 숲에 숨어 있지.”

“꽤 자세히 알고 있군.”

“나도 인간이니까 말야. 아무튼, 그러니까 이들이 오크 부대에 공격을 하려고 하면, 적당히 훼방을 좀 놔줘.”

“허허, 그것참 어려운 일이네. 인간을 좀 죽여도 되는 거야?”

“아니. 그건 좀 참아줘. 나는 인간도 고블린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 오크는 별 상관없겠지만.”

“그러니까, 그 말은 이런 뜻이지? 인간 부대가 오크를 공격하려고 하면, 그 직전에 인간 놈들에게 돌멩이라도 던져서 시선을 끌고, 냅다 도망치라는?”

“정확하게 바로 그거야.”

“오케이. 알았다구. 잠깐만.”

고블린은 손을 턱에 가져다 대고 고개를 숙인 채, 생각을 했다.

서비스 비용을 계산하는 모양이다.

“좋아, 친구. 인간 부대 규모가?”

“열 명, 아니 아홉 명이야.”

“그렇다면 우리도 15명이나 20명은 가야 할 것 같아. 그러니까 돈이 많이 든다구.”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넉넉하게 20명 가는 걸로 하지.”

“좋아 그렇게 하지. 인간 친구가 머리가 좀 돌아가는군.”

“그럼 지금 당장 좀 부탁해.”

“우린 용병대야. 준비는 언제든지 되어 있지. 당장 나가기만 하면 된다구. 일단 돈을 받고 나서 말야.”

“그렇군. 비용은 얼마나 되지?”

“착수금으로 두당 500골드. 그리고 시간당 500골드씩 더 줘야겠어. 언제까지 해야 하지?”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그건 지금 알 수 없어. 인간들이 포기하고 던전을 나가버리면, 내가 성공보수로 두당 500골드를 더 주지.”

“좋아, 좋아. 말이 잘 통하는 친구로군, 그래.”

“인간들이 포기하지 않으면, 내가 그만두라고 말할 때까지 좀 해줘. 힘들겠지만.”

“힘드는 건 우리 사정이니 걱정하지 말고.”

이준기는 하늘을 한번 쳐다보았다.

아직도 쨍쨍하게 맑은 가을 하늘이다.

구름이 아예 없다.

이준기는 다시 고블린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아마, 번개가 치면 그만둘 수 있을 거 같아.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번개? 무슨 번개?”

“놀 주술사에게 부탁해 놨거든. 번개를 좀 불러 달라고.”

“엥? 놀 주술사라니? 이 숲에 놀이 있다고?”

주술로 은폐된 놀 주술사의 거처를 본 적이 없을 테니, 당연한 의문이다.

“아무튼, 그런 게 있어. 일단 지금 좀 시작해줘. 빨리 출발해야 할 것 같아.”

“그래, 그러지. 일단 착수금에다, 한 열 시간 정도 비용은 미리 받아야 할 것 같은데.”

환율이 일반 골드의 100분의 1에 불과한 고블린 금화지만, 두당 500골드에 20명이면, 엄청나다.

일반 골드로도 100골드.

착수금에 10시간 분량의 서비스를 미리 부탁하려면 1,100골드를 내야 한다.

연이은 던전 공략으로 사정이 넉넉한 이준기였지만, 그에게도 큰 부담이다.

20시간 내에 쇼부가 나지 않으면 파산하게 생겼다.

“그래. 부탁해.”

골드를 건네주며 이준기가 말했다.

*****

고블린에게 일을 맡기고, 이준기는 서둘러 출발했다.

도시 남문까지 도착하고 나면 이미 열두 시 반은 지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열두 시 반에 그들이 다시 공격을 개시할 수 있을까? 아마 말싸움을 계속하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지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이준기가 구하려는 것은 전용택이라는 한 사람의 목숨이 아니다.

일부 정신 나간 정치꾼들 때문에 두 나라가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그러려면 공격대 내부에서 음모가 벌어지는 것도 막아야 하지만, 이 던전 자체를 소멸시켜야 한다.

그래서 주술사에게 잠깐 들리기로 했다.

어차피 가는 길에 있다.

“주술사님!”

주술사의 거처가 있던 곳은 다시 숲속의 공터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맵에 정확히 표시해둔 바로 그 위치다.

이준기는 연거푸 주술사를 불러댔다.

“주술사님!”

이준기의 바로 눈앞에, 찻잔을 손에 든 주술사가 스르륵 나타났다.

“기다려야 한다는데, 도대체 왜 그렇게 보채나?”

곧이어, 그가 앉은 의자, 그리고 찻잔 받침과 주전자가 놓인 테이블도 모습을 드러냈다.

“한 시간이 넘게 지났는데, 번개가 칠 낌새가 전혀 보이지 않아 그렇습니다. 하늘은 왜 저렇게 맑은가요?”

“하늘이 맑은 걸 왜 나보고 뭐라고 하나? 날씨가 좋으니까 맑은 거겠지.”

“번개가 치려면, 검은 구름도 몰려오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건 신령 마음일세. 검은 구름이 몰려와서 번개가 내리칠 수도 있고, 그냥 지금처럼 맑은 하늘에 벼락이 내리꽂힐 수도 있는 거지.”

“아, 그렇군요.”

“기다려 보세나.”

“번개가 내리친 다음에는, 그게 탑에 맞았는지는 어떻게 확인하실 생각입니까?”

“그건 자네가 확인해 주겠지. 그렇지 않나?”

생각보다도 더 느긋한 주술사다.

그런데 맞는 말이다.

탑에 번개가 맞고, 오크가 도시를 포기하면, 던전 클리어 메시지가 뜰 테니까.

문제는, 그런 과정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하긴, 그렇군요. 하지만 주술사님도 저기 오크 도시가 있는 게 대단히 싫지 않으십니까?”

“그렇긴 하지만, 내가 노구를 끌고 도시까지 가볼 순 없지 않나?”

“벼락이 내리치면, 곧바로 다음번 번개 주술을 시작해 주실 수 있을까요?”

“흠. 그건 좀 어렵겠는데.”

“왜 그렇습니까?”

“신령이 좋아하지 않아. 그런 건 말이지. 지금 자네가 나에게 보채는 것과 비슷한 거지.”

“그럼 그다음 번개는 언제 시작하시려고요?”

“내일쯤?”

이준기는 한숨을 쉬었다.

그때가 되면, 자금 상황에 한계가 온다.

“오늘 저녁에는 안 되겠습니까?”

“생각해 보겠네. 오크 족에 대한 자네의 분노는 참 대단하구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래. 하지만 아마 첫 번째 번개로 될 거야. 자네가 아주 최고급 품질의 고블린 폭약을 가져다줬기 때문이지. 내가 수십 년 동안 본 중에도 최상품이야. 어디서 구했는지 궁금할 정도라고.”

“혹시, 그걸 좀 더 가져다드릴까요? 그러면 두 번째 번개를 더 일찍 준비해 주실 수 있습니까?”

“아냐. 내가 고블린 폭약을 뭐 하는 데 쓰겠나? 만에 하나, 번개를 세 번 불러왔는데도 오크 놈들의 탑이 멀쩡하면, 그때 생각해 보자구.”

“알겠습니다.”

고블린은 돈으로 움직일 수 있는데, 놀에게는 딱히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 없는 모양이다.

적어도 이 주술사는 그렇다.

이준기가 작별 인사를 하자, 놀 주술사 앞에 놓여 있던 테이블부터 모습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놀 주술사의 모습도 공기 중으로 흩어져 갔다.

모습이 사라지기 직전에, 놀 주술사가 말했다.

“걱정 말게. 잘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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