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54화 (5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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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9: 던전 스틸러 (2)

Episode 19: 던전 스틸러 (2)

숲속의 공터, 이상한 것은 아니다.

누가 인공적으로 조성한 숲도 아니고 자연적으로 발생한 숲이라면, 나무가 빽빽한 곳도 있지만 성긴 곳도 있는 법.

그러나 이렇게 오두막 한 채 지으면 딱 맞을 것 같은 크기의 공간이 빈터로 남아 있는 데다가, 주변의 나무에는 이상한 색깔로 변색된 잎들이 달려 있다면, 답은 하나다.

마법적인 방법으로 숨겨진, 주술사의 오두막.

그 공간에 대고 팔을 마구 휘저어 봐도 닿는 것은 없다.

그렇게 허접한 마법이 아니다.

이 오두막의 위치를 드러내는 방법은, 놀 주술사 자신이 결계를 풀고 나오게 하는 방법뿐이다.

그리고 놀 주술사가 정말 싫어하는 것이 바로 오크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크 족속의 꽥꽥거리는 목소리.

주변에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준기는 오크 무리를 끌어 오기 위해 꽤 멀리 움직여야 했다.

몬스터를 끌고 가는 것도 일이고, 기술이다.

그러나 전 세계 탱커 랭킹 1위까지 올랐던 이준기에게는 몸에 익은 일이다.

유럽인들이 두 손 놓고 자전거를 잘 타는 것처럼, 그에게는 익숙하고 쉬운 일.

코피를 흘리는 오크, 팔뚝에 화살이 박힌 오크, 그리고 다리를 절름거리는 오크.

이렇게 세 마리가 이준기와 함께 아까 그 숲속의 공터로 들어왔다.

이준기의 피를 보고야 말겠다는 신념으로, 충혈된 눈으로 도끼를 마구 휘두르며 따라오는 그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오크 특유의 그 불쾌한 꽥꽥거리는 소리를 내지르며 쫓아온다는 점이다.

“우 안타케 퀴디 놀?”

중저음의 놀 목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졌다.

놀란 오크들이 그쪽을 쳐다보았다.

놀 주술사의 팔이, 그리고 나머지 몸의 윤곽이 허공으로부터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하란 차스 사스키 챠 하도르!”

놀 주술사의 손끝에서 밝게 빛나는 푸른 광선이 뻗어 나왔다.

나오면서 세 갈래로 갈라진 그것은 오크 세 마리에게 각각 날아가 박혔다.

세 갈래 빛은 오크들의 상처를 정확히 찾아 파고 들어갔다.

푸른 광선에 맞은 상처가 타들어 가자, 오크들은 더욱 큰 소리로 꽥꽥거리며 버둥거렸다.

오크들이 쓰러져서 조용해질 때까지, 이준기는 옆에서 구경만 하면서 기다렸다.

오크들의 목숨을 끊은 놀 주술사가 이준기를 쳐다보았다.

이준기는 사냥 중에 주워 모은 오크 검치 세 개를 내밀어 보였다.

“무하하하!”

놀 주술사가 호쾌하게 웃자, 그의 뒤에서 통나무 오두막 한 채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한참 웃던 놀 주술사는 인간의 언어로 말했다.

“그대는 오크의 적이로구나. 그래, 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느냐?”

놀의 말을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

지상에서 3미터 높이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놀의 눈을 올려다보면서, 이준기는 대답했다.

“숲 건너편에 있는 오크들의 도시, 그걸 파괴하고 싶습니다.”

“그건 나에게도 즐거운 일이군. 주술을 써달라는 말이렷다?”

“네. 그렇습니다.”

“어떤 주술이 좋겠느냐? 지진, 홍수, 그리고 벼락이 있다.”

지진과 홍수는 과거에 해본 적이 있다.

지진이 제일 확실한 방법이지만, 모아야 할 재료가 부담스럽다.

홍수는 적어도 사흘 동안 비를 내리게 해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벼락은 해본 적이 없는데, 난이도가 좀 있다고 들었다.

“벼락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시오.”

“오크 도시 중앙 광장에는 그들이 신성시하는 탑이 서 있다.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그 탑이 파괴되면, 오크들은 신의 노여움을 샀다고 생각하고 도시를 버리고 도망갈 것이다.”

“아, 그렇군요.”

“벼락의 주술을 위해서는 재료가 필요하다. 단 한 번의 시도로 탑을 맞출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벼락 주술을 세 번 정도는 내려야 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좋습니다. 재료를 말씀해 주십시오.”

“벼락 맞은 나뭇가지, 오크 부족 애뮬릿, 그리고 고블린 폭약이 필요하다.”

*****

벼락 맞은 나뭇가지는 물론 벼락 맞은 나무에서 구할 수 있다.

열 명이 들어왔다면 숲을 샅샅이 뒤져서 벼락 맞은 나무를 찾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혼자 들어온 이준기로서는 그렇게 할 여유는 없다.

제일 좋은 방법은 이것저것 희귀한 물건을 모아놓는 습성을 가진 땅쥐의 소굴을 찾는 것인데,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해볼 만한 방법으로는, 오크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몬스터를 잡아 그들이 혹시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벼락 맞은 나뭇가지’를 전리품으로 얻는 것이다.

벼락 맞은 나뭇가지는 부적으로 쓸모가 있다고 알려져 있어서 던전의 여러 몬스터들이 가지고 다닌다.

다만, 전리품으로 얻을 확률은 상당히 낮다.

오크 부족 애뮬릿은 오크라면 어떤 종류든 전리품으로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

전투 중에 부서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수의 오크를 잡아야 할 가능성이 있다.

이도협이 우유를 따르거나 야구공을 옮길 때 쓰는 스킬, ‘텔레키네시스’가 있다면 오크 병졸이 목에 걸고 있는 애뮬릿을 몰래 훔쳐 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들키지 않는 경우나 가능한 것이고, 대개 날아가는 애뮬릿을 따라온 오크와 한 판 붙어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준기는 현재 그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다.

고블린 폭약은 아마 고블린 용병대에게서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고블린 폭파병을 고용해 본 적은 있어도, 이준기는 아직 폭약을 사본 적은 없다.

무엇이든 돈으로 환산하는 고블린이라면, 폭약 정도는 쉽게 돈을 받고 팔 것이라고 예상할 뿐이다.

이준기는 일단 정찰 중에 지나쳤던 고블린 용병대를 찾아갔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던 고블린 몇 명이 이준기를 보고 칼을 뽑아 들었다.

이준기는 양쪽 손을 활짝 펴서, 손에 무기가 없음을 보였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오크 검치 몇 개를 꺼내 보였다.

고블린들의 얼굴에서 험악했던 분위기가 사라졌다.

한 마리의 고블린이 앞으로 나오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야? 용병대의 도움이 필요한가?”

“도움이 필요하긴 한데, 혹시 고블린 폭약을 좀 살 수 있을까?”

“고블린 폭약은 사고파는 물건이 아닌데. 고블린 폭파병을 고용하는 거라면 모를까. 우린 서비스 업자라고, 물건 파는 상인이 아니고.”

“돈을 줘도 안 된다는 말이야?”

“물론 돈은 중요하지. 하지만 지금 당장은 돈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많아서 말야. 폭약을 돈 받고 넘겨줄 만한 상황이 아니야.”

이준기는 잠깐 생각했다.

고블린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니, 도대체 뭘까?

그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폭약을 나눠줄지도 모른다.

“문제 해결을 도와주면? 그러면 폭약을 좀 팔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건, 맞는 말이네.”

“어떤 문제야?”

“땅쥐 말야. 땅쥐를 좀 잡아야 돼.”

이준기는 속으로 ‘앗싸’를 외쳤다.

어쩌면 도랑 치고 가재 잡을 수도 있는 상황.

땅쥐를 잡으러 다니다 보면, 땅쥐 소굴에서 번개 맞은 나뭇가지도 찾을 수 있다.

“땅쥐를, 왜?”

“우리 고블린 부족의 고관대작 나리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 보석함을 잃어버려서 말야. 그게 이 숲을 지나가다가 그랬는데, 땅쥐가 이것저것 좀 신기해 보이는 물건들을 모아놓는 습성이 있잖아? 그래서, 우리의 과학적 분석에 따르면, 땅쥐가 갖고 있는 게 분명해.”

“아하. 너희들은 땅쥐를 잡지 못하니까, 내가 대신해달라는 거군?”

“인간 친구가 뭘 좀 아는군. 땅쥐는 멸종 위기 제3급 보호종이라서 말야, 고블린 사회에서는 애지중지하는 놈들이지. 나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래서 우리는 나설 수가 없어. 곤란하다구.”

“그래서, 땅쥐를 무작정 잡으러 다녀야 하는 건가?”

“아니. 우리 고블린들을 뭘로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여기 이 ‘멸종 위기 보호종 추적 장치’를 사용하라고. 멸종 위기 보호종 243종을 종류별로 자동 추적해 주는 놀라운 제품이지. 3개월 동안 사용해 보고 영 맘에 들지 않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환불해 준다고! 게다가 12개월 무이자 할부 행사 중이지. 어때? 안 사고는 못 배기겠지?”

“이봐, 지금 뭔가 상황을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닌가? 나는 심부름 해주겠다고 하는 건데.”

“아차차. 그렇군. 이거 물건 팔 기회가 보이니까 저절로 호갱 사냥 모드로 들어가 버렸군. 음하하!”

“그러니까, 그 ‘멸종 위기 보호종 추적 장치’를 쓰면, 땅쥐들의 위치가 표시된다 이거야?”

다른 고블린이 건물 안에서 기계를 가지고 나왔다.

미니어처 석궁 모양에 스크린이 달린 장치로, 손목시계보다 좀 큰 크기였다.

고블린은 그 기계를 보여주면서 말을 계속했다.

“그럼. 찾고 싶은 멸종 위기 보호종을 여기 화면에서 세팅한 다음, 여기 버튼을 누르라고. 근처에 가까이 있으면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지. 소리가 울리면, 근방 5미터 이내에 있다는 얘기야. 가까이 가면 소리가 더 커지니까 찾는 데 도움이 되지. 어때? 기능이 꽤 신박하지?”

“역시 고블린 과학기술은 따를 자가 없군. 이걸로 땅쥐들을 때려잡고 그 보석함을 찾아오면 폭약을 좀 나눠주겠다는 거지?”

“아, 잠깐, 잠깐. 말은 정확하게 해야지, 친구. 폭약을 공짜로 주겠다는 게 아니고, 좀 팔아주겠다는 거야. 아까 말했듯이, 지금 폭약을 팔고 사고 할 상황이 아니란 말야.”

“돈은 얼마나 준비해야 하지?”

“한 자루에 1,500골드야. 한 푼도 못 깎아줘. 누차 말하지만, 팔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팔아주는 거니까, 고맙게 생각하고 사가라고.”

고블린 골드로 1,500골드라면, 15골드. 세 자루는 사야 하니 45골드다.

“세 자루 팔아줄 수 있지?”

“흠··· 어려운 부탁이기는 한데. 네가 그 보석함을 찾아 준다면, 세 자루 팔아 주지.”

“고마워. 오전 중에 보석함을 찾아 돌아올 테니, 기다리라구.”

이준기가 ‘멸종 위기 보호종 추적 장치’를 가지고 가려는데, 고블린이 손을 놓지 않았다.

“이봐, 인간 친구. 이거 사용료는 따로 내야지. 500골드야.”

“쳇.”

이준기는 고블린에게 5골드를 떼어 주고, ‘멸종 위기 보호종 추적 장치’를 받아 손목에 둘렀다.

기계를 작동시키자, 조그만 화면에 총천연색으로 그라이데이션이 된 지도가 표시되었다.

땅쥐가 있을 확률이 높을수록 더 진한 붉은색으로 표시된다는 것.

‘그렇게 던전을 돌아다녔는데, 이런 건 또 처음이군.’

*****

9시 27분.

스물아홉 마리째로 잡은 땅쥐의 소굴에서 이준기는 드디어 보석함을 찾았다.

고블린이 그려준 보석함의 모양과 일치했다.

‘하지만 번개 맞은 나뭇가지는 아직 하나밖에 구하지 못했다. 기계를 돌려주기 전에 땅쥐를 더 잡아야겠군. 그런데 이거 정말 멸종 위기 보호종 맞아? 엄청 많구만.’

이준기는 또한 중간중간에 만나는 소규모 오크 무리를 사냥했다.

‘오캄’과 ‘카데쉬’를 양손에 쥐고 선공을 넣으면 순식간에 첫 번째 타깃이 쓰러졌다.

스킬 시전을 끊는 발동 효과도 잘 터졌다.

흑마술이나 힐을 시전하는 주술사나 사제를 우선적으로 공격하면 별 변수 없이 빠른 사냥이 가능했다.

‘11시까지는 이제 한 시간 반가량이 남았다. 그 전에 모든 재료를 모아 주술사에게 돌아갈 수 있을까? 일단 저들이 들어오면 여러 가지로 복잡해지는데.’

한 사람의 행동이 역사의 경로를 얼마나 휠 수 있을지, 이준기는 회의감이 일었다.

광평교 차원문을 조기에 소멸시켜버림으로써 그는 ‘세종고 사건’이 아예 일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수학 여행차 한국에 온 일본인 고등학생들이 차원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건.

바로 그 사건을 구실로 한국의 차원문 관리 실태에 문제를 제기하고, 간섭을 하는 것이 일본 측의 예정된 수순인데, 그럴 빌미가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어떻게든 원래 가려던 길을 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양측이 합의하는 형태로, ‘국가 간 연합 공격대’라는 개념이 도입된 것이다.

그것도 일본이 도움을 요청하고, 한국이 대승적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그림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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