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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9: 던전 스틸러 (1)
Episode 19: 던전 스틸러 (1)
“야! 윤동직!”
전화를 받자마자 이도협의 성난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이도협이 길마이기는 해도, 길드원에게 이렇게 소리를 질러도 되는 건가?
윤동직은 매우 언짢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이도협 회장? 지금 나한테 반말하는 겁니까?”
“이준기 어디 있어?”
“이준기가 어디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압니까? 그리고, 반말하지 마세요.”
전화 저쪽에서 이도협이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좋아요. 윤동직 씨. 제가 좀 말이 짧았는데, 사과하겠습니다. 이준기 어디 있습니까?”
“그걸 제가 어떻게 아냐는 겁니다. 이제 같은 길드 사람도 아니잖아요.”
“어제 같이 있었잖아요. 같이 저녁 먹었다면서요?”
“네. 그건 맞는데, 그 이후로 본 적이 없어요.”
“어제 무슨 얘기 하셨어요?”
“그냥, 별 얘기 안 했는데요. 자기가 아는 라멘집 데려가서, 라멘 먹은 것뿐이에요. 엄청 잘 먹던데. 하하.”
“지금 여기 난리가 났어요. 알아요?”
“왜요? 그리고 거기가 어딥니까?”
“오늘 한일 연합 공격대 들어갈 차원문 바로 앞이에요. 이준기가 오늘 아침에 거길 몰래 들어가 버렸다고요.”
“네?”
윤동직은 전화 하단부를 손으로 가리고 웃었다.
설마 그런 일을 벌일 줄이야.
“여기 지키고 있던 자위대 군인 말에 따르면, 인상착의가 딱 이준기예요.”
“글쎄, 이준기가 그렇게 특이한가요? 다른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키 180. 호리호리한 체격. 연갈색 머리. 속눈썹 길고 미남형. 이래도 아니에요?”
“저도 키 180인데요. 그런 사람이 어디 한둘입니까.”
“사진을 보여줬어요. 딱 맞다고 하는데요. 그래도 아니에요?”
“아.”
“어제 같이 저녁 먹을 때, 정말 도톤보리 차원문 얘기 안 했어요?”
“안 했습니다. 라멘 얘기만 했다고요.”
“아, 알았어요. 전화 끊어요.”
이도협이 전화를 끊자, 윤동직은 문아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침 일곱 시.
이른 시간이지만 특수한 상황이니까 예의를 따질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여보세요. 아린 씨?”
“네, 여보세요. 아! 윤동직 구원자님?”
“어제저녁에 헤어지고 나서, 준기랑 전화라든가 따로 만나서 얘기하지는 않으셨어요?”
“아뇨. 그 이후로 연락 없었어요.”
“준기가 도톤보리 차원문에 무단 진입했다고 하네요. 이도협 회장이 조금 전에 저한테 전화를 했는데.”
“네?”
“아린 씨도 전혀 몰랐다는 거죠?”
“네. 전혀요.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모르겠어요. 인원 제한이 있는 던전이라면, 말썽이 좀 있겠네요.”
“그보다, 준기 오빠는요? 던전에 혼자 들어가다니···”
“전 준기 걱정은 별로 안 되는데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모르셨구나. 준기는 던전을 혼자 쓸고 나온 적도 있어서요. 그것도 C급 던전을. 이번 던전도 C급이잖아요?”
*****
던전은 안이나 밖이나 한국의 던전과 다를 게 없었다.
이준기는 물론 알고 있는 사실.
한국, 일본은 물론 유럽과 미국에서도 던전을 수도 없이 드나들었던 그다.
회귀 전에는 거의 탱커로만, 파티로만 드나들던 던전.
회귀 이후에는 혼자 던전에 들어온 것이 벌써 여러 번이다.
리딩을 중시하는 탱커였기 때문에 언제나 정찰과 상황 파악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썼다.
그것이 이제 와서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보급품과 식량, 힐링 포션을 챙기고, 이준기는 문밖에 나와 심호흡을 했다.
청량한 가을 공기가 맴도는 숲.
숲 건너편에는 오크들이 들끓는 그들의 ‘도시’가 있다.
그걸 없애버리는 것이 이번 던전의 과제.
‘오크 도시’에 얼마나 많은 오크 주민들이 살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수비대의 규모로 보아 추정은 해볼 수 있다.
오크 도시의 수비대 규모는 약 200마리 정도.
따라서 그들이 방어하는 도시의 주민 수도 꽤 된다고 볼 수 있다.
오크 도시 공략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정공법.
그냥 수비대를 전부 다 학살하고 도시 안으로 쳐들어가는 것이다.
민간인 오크를 상대로 학살극을 벌이기 시작하면, 그들은 도망치기 시작한다.
도시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 방법은 장단점은 뚜렷하다.
직관적인 방법이고, 따라서 별다른 변수가 없으므로 열심히 하면 된다는 것이 장점이다.
반면, 200 마리나 되는 오크를 잡아 죽여야 하므로 여러 날에 걸쳐 지루하게 공격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 단점이다.
숙련되고 조직화되지 못한 공격대의 경우 많은 수의 오크와 대적하는 것이 부담될 수도 있다.
처음 이런 유형의 던전이 열렸을 때, 사람들은 정공법 이외의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연구와 정찰, 그리고 시행착오를 거쳐 다른 방법들을 찾아냈다.
사실, 던전 내부를 주의 깊게 정찰만 했더라도 처음부터 알 수 있는 방법들이다.
‘오크 도시’ 유형의 던전 내부에는 오크 도시와 그 입구를 지키는 오크 경비 막사가 있고, 그보다 훨씬 넓은 지역에 숲이 존재한다.
그 숲을 잘 찾아보면, 이 맵에 오크 도시 외의 다른 요소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바로 오크 도시와 적대하고 있는 두 개의 세력, 즉 고블린 용병대와 놀 주술사다.
이들을 이용하는 것이 오크 도시를 공략하는 두 번째 방법이다.
이준기는 과거에 ‘날개’ 길드 메인 탱커로서 던전 공략 브리핑을 하던 때를 떠올렸다.
“정공법은 간단합니다. 오크 도시에 존재하는 모든 무장 병력을 잡아 죽이는 겁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도시 안으로 쳐들어가면, 오크들은 도망을 가겠죠.”
“경비 병력이 수백 마리라고 하셨는데, 한 번에 보통 몇 마리씩 잡게 되나요?”
“도시 입구에는 경비 초소가 양쪽으로 있고, 초소당 보통 15마리가 근무를 합니다. 그래서 한 무리당 15마리가 표준입니다.”
“10인 공격대로는 꽤 어렵겠는데요.”
“레벨만 받쳐주면 충분히 할 만합니다. 문제는 레벨이 충분한 공격대가 흔치 않다는 거죠. 그래서 충분히 쉬어주면서 조심조심 공략해야 하는데, 사람이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계속 그렇게 신중하게 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어렵겠군요.”
“휴식과 정비를 철저하게 하면서 진행해야 하는데, 넋 놓고 사냥하다가 삐끗하는 겁니다.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정공법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다른 방법을 설명해 주시겠어요?”
“오크 도시 포맷의 던전에는 고블린 용병대와 놀 주술사가 존재합니다. 숲을 잘 뒤져보셔야 합니다. 제가 언제나 정찰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요소들을 파악하기 위해섭니다.”
“고블린 용병대요?”
“고블린 용병대를 이용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더 있을 수도 있는데, 현재까지 제가 아는 방법은 두 가지예요. 첫 번째는 돈을 주고 그들을 고용해서 함께 오크 경비병들을 때려잡는 방법입니다. 병력 보강은 되겠지만, 기본적으로 정공법과 다를 바가 없죠. 돈도 들고 말입니다.”
“다른 방법은요?”
“고블린 용병대에는 폭파 전문가가 있습니다. 이들을 고용해서, 오크 도시 외벽에 테러를 가하는 겁니다. 맵상의 오크 도시에는 남쪽 벽과 서쪽 벽이 있는데, 이중 한쪽 벽을 집중적으로 공격해야 합니다. 24시간 내에, 같은 벽에 세 번 이상 폭발 사고가 일어나면 오크 도시 공략이 성공합니다.”
“쉬워 보이네요. 다들 그 방법을 쓰면 될 것 같은데요?”
“첫 번째 폭발이 일어나면, 그쪽 외벽에는 특별 경비 초소가 설치됩니다. 그러니까 경비 초소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두 번째, 세 번째 폭파 공격은 어렵다는 거죠. 그래서 특별 경비 초소를 처리하는 것이 폭파 공략법의 핵심입니다.”
“특별 경비 초소에는 오크가 몇 마리가 들어 있습니까?”
“총 세 번 폭파를 해야 하니까, 경비 초소는 두 번 만들어집니다. 첫 번째 경비 초소에는 오크 열 마리가 있습니다. 충분히 처리 가능한 숫자죠. 그런데 두 번째 경비 초소에는 오크가 무려 스무 마리가 배치됩니다.”
“헉. 그건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고블린 폭파병에게는 폭탄 설치 시간을 미리 지정해 줄 수 있습니다. 지정 시간보다 몇 분 미리 가서, 경비 초소 병력들을 전부 바깥으로 유인해 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다음에는 재주껏 도망 다니는 거죠. 세 번째 폭발이 일어나면, 오크 수뇌부는 도시 자체를 포기합니다. 따라서, 경비병들도 같이 철수를 합니다.”
“도망 다니는 것이 포인트네요.”
“그렇습니다. 몇 분 동안이라고는 해도, 이게 상당히 어렵습니다. 게다가 여러 명이 함께 도망을 다니려고 하면, 여러 가지로 더 어려울 수가 있어요. 변수도 많고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보통, 저 혼자 도망 다닙니다.”
“탱커 혼자서요?”
“탱커가 아니라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하지만 탱커가 더 유리하죠. 어그로를 충분히 먹으려면 화살 한두 번 쏘는 걸로는 안 될 수도 있고, 몇 대 맞아줘야 하는 상황도 올 수 있으니까요.”
“아까 다른 방법이 하나 더 있다고 하셨죠? 놀 주술사 말입니다.”
숲 어딘가에 숨어 있는 놀 주술사.
이번에 이준기는 바로 그 놀 주술사를 이용하려고 한다.
*****
오크 도시 포맷의 던전은 섬 형식의 던전만큼이나 넓다.
맵의 북서쪽에 오크 도시가 자리하고 있고, 나머지 75%는 숲이다.
여러 가지 종류의 오크들이 득시글거리는 그 숲에 존재하는 두 가지의 색다른 존재들이 바로 고블린 용병대와 놀 주술사다.
‘일반적인 활엽수 숲. 놀 주술사를 찾으려면 일단 잎이 변색된 나무를 찾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놀 주술사의 오두막은 마법적인 방법으로 숨겨져 있다.
그래서 그 마법의 영향으로 인해 근처의 나무들은 병들어 있다.
그렇게 병든 나무는 잎사귀가 변색된다.
잎이 변색된 나무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이준기는 일단 던전 입구가 위치한 맵의 남서쪽부터 정찰을 시작했다.
동쪽으로 움직이면서 남쪽 숲을 훑기로 한 것이다.
세 마리 이하의 몬스터 무리는 잡았지만, 그 이상 규모의 것은 패스했다.
작은 규모의 몬스터 무리를 잡는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경험치도 먹고, 사냥 감각도 유지하기 위해서다.
다른 이유는 놀 주술사를 만날 때를 대비해서, 오크 검치를 몇 개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좋았어. 이걸로 세 개. 다 모았군.”
오크 약초꾼의 시체에서 ‘온전한 오크 검치’를 챙겨 넣으면서 이준기는 생각했다.
이제 놀 주술사의 오두막을 찾는 데 전력하면 된다.
맵의 남동쪽 끝에 다다른 이준기는 조금 북쪽으로 이동해서 다시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숲을 정찰했다.
빗자루로 쓸듯이, 걸레로 마루를 닦듯이 샅샅이 훑는다.
중간에 소규모 몬스터 무리를 만나면 빨리 결정한다.
피해 가는 것이 빠를지, 그냥 잡아버리는 것이 빠를지.
머지않아, 고블린 용병대가 눈에 들어왔다.
고블린 식으로 지은 통나무집.
그 앞에 놓인 야외 테이블 주위에 고블린 여남은 마리가 앉아 잡담을 하고 있었다.
‘7시 45분.’
11시나 되어야 정규 공격대가 진입해올 것이므로 아직 시간 여유는 있다.
고블린들을 약간 고용해서 오크 도시에 테러를 가하는 것도 재미있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모아 놓은 오크 검치를 소모해야 한다.
고블린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인간이 오크와 적대적인 입장이라는 것을 납득시켜야 한다.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그들에게 오크 검치를 선물하는 것.
그러나 놀 주술사에게 선물하려고 모아놓은 오크 검치를 여기에서 낭비할 수는 없다.
‘현재 가진 오크 검치는 모두 네 개. 지금은 여유가 없다.’
이준기는 고블린들의 시야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서쪽으로 나아갔다.
중간에 오크 십여 마리로 구성된 순찰대를 지나쳤다.
정공법으로 오크 도시 정문에 공격을 퍼붓는 작전이 실패하는 경우의 수에서 단연 최악인 것이, 바로 이 순찰대가 애드 되는 경우다.
오크 도시 정문에 진을 치고 경비병들을 공격하고 있는데, 숲을 돌아보고 귀환하는 순찰대 병력이 마침 정문에 도착할 때와 겹치면, 지옥문이 열리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은 정공법을 쓰는 경우라도 도시 정문 앞에서 싸우기보다는 조금 후미진 곳에서 오크 경비병 무리를 끌어와서 잡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오크 백여 마리를 잡는 반복 업무를 계속하다 보면, 주의력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전투 위치가 조금씩 도시 정문 쪽으로 옮겨오게 되는 것이 보통인데, 그러다가 순찰병 무리가 애드 되면 딱, 전멸 각이 나오는 것이다.
다시 맵의 서쪽 끝에 도착한 이준기.
조금 더 북쪽으로 옮겨가서 이번에는 동쪽 방향으로 진행하면서 맵을 훑는다.
그리고 드디어, 대단히 부자연스러운 색깔을 띤 나뭇잎들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