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50화 (5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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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7: 오사카로 가는 길 (3)

Episode 17: 오사카로 가는 길 (3)

10월 8일 금요일.

충무공-탑픽 연합길드 임시총회가 열렸다.

예상대로 회장은 이도협이 당선되었다.

충무공 길드 회원이 탑픽의 배도 넘는 데다가, 이탈표도 별로 나오지 않았다.

부회장은 탑픽의 길마였던 탱커 오대영.

다음은 통합길드 명칭을 정하는 순서.

아이디어 공모와 여론조사를 거쳐서 올라온 두 개의 후보 중에서 길드원들끼리의 투표를 통해 결정했다.

‘발해의 후예들’.

오글거린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한글이라서 좋다는 의견도 많았다.

무엇보다도 여론조사에서 많은 지지를 받은 이름이다.

이유가 뭐겠는가?

구원자라는 새로운 무기를 가지고 민족의 옛 영광을 되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반영된 것.

간단히 말해서, 새로운 민족주의의 대두다.

딱히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수많은 길드 이름이 과거 역사의 인물들, 특히나 정복자의 이름을 활용하고 있다.

몽고, 파키스탄, 이란 등지의 작은 길드들이 그런 이름을 사용하는 건 애교로 봐줄 만한 것들.

정말로 경계해야 하는 조직들은 오히려 평화로운 이름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의 ‘야마토 연합’이다.

일본 내 십여 개의 길드가 모여 만든 사교 모임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정치적인 배후가 있는 단체.

구라모토 현 협회장도 야마토 연합 소속이다.

한일전쟁이 발발하고 나서야 그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난다.

평화헌법으로 군비가 제한된 일본.

구원자라는 이름의 신무기가 주어진 상황에서, 대일본 제국의 부활을 꿈꾼 것은 단지 일부 철부지들뿐만이 아니었다.

구원자들 사이에서도, 생각 없는 일반인들 중에서도, 그리고 그들을 대표하는 정치인들 사이에도 제국주의자는 넘치게 있었다.

기회가 올 때까지 밖으로 표현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한국에서 길드 간 전쟁이 일어나고, 1세대 구원자들이 다 죽고 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일본의 침략이 개시되었다.

거기에 맞서 싸우면서 한국 구원자 계의 일선으로 부상한 것이 이준기와 길수연으로 대표되는 2세대 구원자들이다.

일본 측이 결국 막대한 피해를 입고 한반도에서 철수하기는 했지만, 어렵고 힘든 싸움이었다.

곧바로 이어진 길드 세계대전에서 한국이 별 역할을 하지 못한 이유기도 하다.

일본의 야마토 연합이나 전일협이 조슈아 테일러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는 증거는 없다.

무엇보다, 조슈아 테일러가 이미 이 당시부터 국제적인 규모로 음모를 꾸몄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한 추측이다.

그러나 한일전쟁은 구원자들이 거리낌 없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데 큰 계기가 된 사건이다.

‘일본놈들도 곧 자신들이 그렇게 철저히 짓밟힐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지.’

임시 집행부 부회장 자격으로 회의 진행을 하던 이도협이 이제는 회장 자격으로 두 번째 의제 논의 종료를 선언했다.

“우리 길드 정식 명칭은 ‘발해의 후예들’로 정하겠습니다.”

환호가 쏟아졌다.

“다음 의제는 이번 일요일에 일본에서 열리는 제5차 포럼 참여 건입니다.”

“공식 대표단은 이미 정해진 거 아닌가요?”

“네. 협회 차원에서 공식 대표단은 정해졌죠. 대표단장은 이상덕 협회장이고, 코리아 길드 마스터 고성하, 그리고 신선자 길드 마스터 전용택이 공식 대표단입니다. 박충기 회장이 일신상의 이유로 빠지고, 대신 전용택 회장이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뭐죠?”

“세계구원자포럼은 구원자들의 축제입니다. 즐겨야죠! 그래서 이번 포럼에 개인 자격으로 참가하시는 모든 회원들에게 등록비와 항공료, 그리고 체재비를 지원할까 하는데, 어떻습니까?”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으로 총의가 결정되었다.

“네 번째이자 마지막 의제는, 종각 던전 사후 처리 문제입니다. 아시다시피, 이준기 구원자님이 생존해 나오면서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회의장 구석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이 자리에 앉은 많은 사람들 중, 자신이 이준기의 친구라고 생각하는 유일한 사람, 윤동직이다.

그가 말했다.

“던전에서 얻는 전리품은 던전 참가자들 사이의 문제 아닙니까?”

“물론, 원칙적으로 그렇습니다만.”

“이번 던전의 생존자는 이준기와 문아린. 그 둘이 결정하면 되는 거죠.”

“문제는, 이번 던전이 통상적인 던전, 그러니까 몬스터를 죽이고 전리품을 얻는 그런 던전이 아니었다는 점이죠.”

“던전 별로 다른 규칙을 적용한다는 얘기는 없었잖습니까? 만약 그런 게 있었어도 던전 진입 전에 합의가 됐었어야죠.”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때, 이도협의 맞은편 끝에 앉은 오대영이 손을 들었다.

“오대영 부회장님, 말씀하시죠.”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번 던전에는 우리 길드에서 무려 네 명이 공격대에 포함되었습니다. 그중에 돌아온 분은 저기 이준기 구원자, 단 한 분뿐이었고요.”

“네, 그렇죠.”

“마상욱, 하민서. 둘 다 제가 동생처럼 아끼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자신들이 아끼던 아이템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원수의 손에 있다는 걸 안다면···”

웅성거리는 사람들로 회의장이 소란스러워지더니, 여기저기에서 항의 조의 말이 튀어나왔다.

“원수라뇨!”

“보고서 못 보셨습니까? 마상욱을 죽인 건 소현배고, 하민서는 주석이 죽인 거 아닙니까?”

“살아 돌아왔다고 이준기 구원자를 지금 죄인 취급하는 겁니까!”

오대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던전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걸 어떻게 압니까!”

너무 수위가 높은 발언이라고 생각한 이도협이 끼어들었다.

“오대영 부회장님! 그건 너무 심한 말씀인데요. 던전 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생환자들의 증언을 사실로 인정하는 것이 구원자들 사이의 룰 아닙니까. 이건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세계적으로, 모든 나라에서 인정하는 거잖습니까. 각국 판례도 있고요.”

“우리나라에는 아직 판례가 없죠.”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던전 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우리들이 판결이라도 하자는 건가요?”

“누가 판결하겠다고 했습니까? 논의는 해야한다는 거죠. 던전 안에서, 다른 구원자에게서 강탈한 아이템은 어떻게 할 것인가?”

“강탈이라뇨!”

“죽이고 빼앗는 게 강탈이 아니면 강도인가요?”

“오대영 부회장님!”

이준기가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이도협이 말했다.

“이준기 구원자님.”

자리에서 일어난 이준기가, 이도협과 오대영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말했다.

“제가 길드를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던전에서 제가 들고 나온 아이템은 모두 길드에 두고 떠나겠습니다. 하민서 구원자님과 마상욱 구원자님의 유품은 모두 놓고 나가겠다는 겁니다.”

*****

비행기 옆좌석에 앉은 사람이 자꾸 흘깃거린다.

언론 노출을 최대한 막기는 했지만, 협회에 등록된 사진도 있고 하니 남들이 자기를 알아보는 걸 막을 방법은 없다.

용기를 냈는지, 결국 옆자리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저기, 혹시, 이준기 구원자님 아니세요?”

아니라고 하는 것도 웃기는 상황.

이준기는 그냥 최소한의 대화로 막아보기로 했다.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와아! 이렇게 가까이서 뵈니까, 정말 미남이시네요. 남자 분이 속눈썹이 뭐 그렇게 길어요. 피부도 예술이시고요.”

“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목소리는 조금 낮춰주시는 게···”

“아, 죄송해요. 비행기라서 제 목소리가 안 들리실까 봐 그랬어요.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이래요. 어디 가시는 거예요?”

“오사카 갑니다. 거기에서 무슨 회의가 있어서요.”

“아! 포럼 가시는 거죠? 세계구원자포럼! 저도 거기 가는 거예요. 정말 대단한 우연이네요. 반가워요, 정말.”

“혹시 구원자십니까?”

“아뇨. 전 그냥 보통 사람이에요. 구경 가는 거죠.”

“죄송한 질문입니다만, 포럼에 입장하실 수가 있나요?”

“아뇨. 그냥 바깥에 진 치고 있다가 사진도 찍고 하려고요. 제가 조슈아 테일러 왕팬이거든요. 아니, 아니요. 지금부터는 이준기 구원자님 팬 할 거예요!”

“그건 감사합니다만.”

이준기는 웃으면서 말했다.

조슈아 테일러에 대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조슈아 테일러에 대해서 얘기 좀 해주실 수 있습니까?”

“네? 조슈아 테일러요. 아, 각성한 지 얼마 안 되셔서 잘 모르시나 봐요. 조슈아 테일러는 세계구 급으로 유명한 구원자인데. 무슨 얘기를 해드릴까요?”

“아무거나요. 제가 잘 몰라서요. 아주 유명한 사람인가 봐요?”

“아, 그럼요. 구원자가 뭔지 몰라도 조슈아 테일러는 아는 사람도 많아요. 영화배우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봤거든요. 이것 보세요.”

여자는 지갑에서 조슈아 테일러의 사진을 꺼냈다.

장지갑에 걸맞게 아주 큼직한 사진이 고급스럽게 코팅이 되어 있다.

조슈아 테일러가 ‘뭐야?’ 하는 듯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사진.

구글 검색을 하면 좍 뜨는 그의 사진들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사진이다.

그 사진을 찍은 기자는 사진을 찍자마자 조슈아에게 한 대 맞았다는 도시 전설이 전해진다.

사람들은 그런 행동조차 멋있다고 난리다.

이준기가 겪어본 조슈아라면, 기자를 패는 짓은 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엄청 미남이죠? 꼭 어디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미모잖아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한참 잘 나갈 때보다도 더 이쁘죠? 아차차, 이준기 구원자님도 미남이신데, 웬 호들갑이람.”

“하하, 정말 미남이네요. 저 같은 건 뭐 비교도 안 되네요.”

“무슨 말씀을요. 근데 또 조슈아가 전문화는 올 어둠이잖아요. 그래서 더 멋있어요. 곱상하게 생겨 가지고 흑마법 쓰는 캐릭터. 별명도 그래서 엄청 멋있잖아요. 미스터 블랙, 악마의 미소, 검은 소공자···”

“소공자요? 키가 안 큰가요?”

이준기는 모르는 척 물었다.

조슈아는 키가 190센티미터나 되는 장신이다.

그런데 소공자니 어린 왕자니 하는 이름으로 불리는 걸 들으니 밸이 꼴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뇨! 조슈아 테일러의 키는 프로필상 189센티미터예요. 그런데 사실은 더 크다고 해요. 195센티미터는 된다고 들었어요. 그런데도 아주 날씬하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자기 관리도 철저하니까요.”

자기관리가 철저한 것은 사실이지만, 조슈아가 운동을 한다고?

이준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뭐, 살인도 운동이기는 하지. 조슈아로서는 별로 힘이 들지도 않는 운동이겠지만.’

“지금 37레벨인데, 곧 헬렌 카자크를 따돌리고 세계 최고 레벨이 될 거라고 다들 예상한답니다. 워낙 레벨업이 빨라서요. 헬렌 카자크보다 넉 달이나 각성이 늦었는데 대단하지 않아요?”

“대단하네요. 재능이 남다른가 봐요.”

“현재 사용 중인 무기는 아시라나르의 사복검이랍니다. 사복검이라고 혹시 아세요?”

“사복검이요? 처음 듣는데요.”

“칼날이 막 늘어나기도 하는 검이거든요. 멀리 있는 적도 공격할 수 있죠. 조슈아 테일러 때문에 유명해진 무기일 걸요, 사복검. 저도 예전에는 전혀 몰랐으니까요.”

아시라나르의 사복검.

전설급 한손검.

조슈아 테일러를 상징하는 무기 중 하나다.

그걸 벌써 가지고 있었다니.

“그런데, 조슈아 테일러가 일본에 온대요?”

“아마 안 올 거예요. 그동안 포럼에 참석한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그런데도 가시는 거예요?”

“네. 혹시나 해서요. 그런데 벌써 저는 로또 당첨된 거네요! 이준기 구원자님을, 그것도 비행기 바로 옆자리에서 만났으니까요! 그런데 왜 일반석으로 가시는 거예요?”

“두 시간 가는 건데요, 뭘. 돈도 없고요.”

“네? 길드에서 출장비도 지원 안 해주나요? 이도협 회장이 길드 차원에서 적극 밀어주겠다고 인터뷰 한 걸, 어제 기사에서 읽었는데, 거짓말이었나요? 이준기 등 유망주 적극 지원. 이런 제목이었는데.”

‘길드를 나왔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겠지. 괜히 기자들이나 꼬이게 할 얘기니까. 그런데 이도협 회장이 사표는 수리 안 하고 언론 플레이를 하네. 생각보다 더티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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