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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7: 오사카로 가는 길 (2)
Episode 17: 오사카로 가는 길 (2)
“네,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일본에는 전 일본 구원자협회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나라 협회랑 같은 거죠. 회장은 구라모토 신스케라는 사람이고, 가입 인원은 8월 말 현재 1,600명 정도 됩니다.”
“규모가 꽤 크네요.”
“구원자 숫자는 인구를 따라가니까요. 우리나라의 세 배 정도 되는 게 맞긴 한데. 그래도 조금 더 많죠? 일본 협회 홈페이지 보니까, 구원자 사망률이 다른 나라보다 낮다고 자랑을 해놨더라고요.”
“거긴 뭐 협회장 파벌, 반협회장 파벌 이런 게 없나 봐요?”
“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구원자가 대략 백 명 정도 있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이 사실상 반협회장 파벌이라고 봐야겠죠.”
“그래도 뭐, 우리나라에 비하면 반대파가 없는 거나 다름없네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반대한다고 따로 협회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협회 내부에서 권력 투쟁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협회에 가입하지 않는 거니까요. 투표하지 않는 일본인들과 비슷한 느낌이네요.”
“그런데 그··· 뭐였죠? ‘국제구원자대회’였나요?”
“아, ‘세계구원자포럼’이요?”
“아, 맞다. 네. 그거요. 세계구원자포럼, 언제 어디죠? 그냥 가면 되는 건가요?”
“세계구원자포럼 5차 대회가 10월 10일 일요일부터 일주일 동안 오사카에서 열립니다. 국가별로 대표단이 오기는 하지만, 구원자분들은 누구든지 자유 입장 가능합니다. 숙소 잡는 게 문제일 뿐이죠.”
“우리나라에서는, 이상덕 협회장이 가나요?”
“네, 각국 협회장은 다 참석하시니까요. 대표단에 누가 가느냐 하는 것도 알력이 좀 있어요. 포럼에서 별로 중요한 걸 결정하지도 않는데 말이죠.”
이준기는 회상했다.
구원자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조슈아 테일러의 소위 ‘샌프란시스코 연설’.
바로 제6차 포럼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세계 대전으로 인해 한 달 늦게 열린 포럼, 2022년 5월이었다.
“이번에 대표단은 누가 가나요?”
“협회에서 자기들끼리 결정해서 말이 많아요. 아직 아무도 모를걸요? 이제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말예요. 그런데 평소대로라면, 반협회장 파벌에서도 한 사람 정도 들어갈 거예요.”
“형식은 맞추는군요.”
“네. 지난 4월 스페인 포럼에는 이상덕 협회장, 권영호 길마, 고성하 길마, 이렇게 세 명이었어요.”
“그렇게 세 사람만 간 건 아니죠?”
“그럼요. 한 200명 정도 간 걸로 알고 있어요. 일주일 동안 먹고 마시고, 아주 호화판으로 한다고 들었어요. 더구나, 유명한 사람들이 오니까요.”
“헬렌 카자크 같은··· 말이죠?”
“이준기 구원자님도 헬렌 카자크 팬이신가요? 저도 팬인데요. 저는 헬렌 카자크도 좋지만 조슈아 테일러가 더 좋거든요. 혹시 아세요?”
“아뇨, 잘 몰라요. 좀 얘기해 주세요.”
최정윤 과장의 눈이 빛났다.
좋아하는 화제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그녀의 눈동자에 드러났다.
아니, 좋아하는 화제 정도가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동경이 빤히 보였다.
“조슈아 테일러!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이고요, ‘검은 책의 어린 왕자’라고 불린답니다. ‘악마의 미소’라는 별명도 있는데, 저는 어린 왕자 쪽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어둠 계열 전문화고요. 처음에 각성했을 때 고등학생이었고, 지금은 대학생이죠. 구글에 찾아보세요. 조슈아 테일러. 한글로 찾아도 검색 결과가 엄청나게 많아요!”
“하하. 최 과장님 팬이시군요.”
“아, 죄송해요. 제가 원래 보이그룹 이런 거 완전 좋아했었는데, 조슈아 테일러를 알게 된 이후로는 아웃오브안중이에요. 솔직히 길드 사무실에서 일하다 보면 언젠가 조슈아 테일러를 실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하죠.”
“이번 포럼은 가까운 일본이니까 가시면 되겠네요?”
“조슈아는 길드 마스터도 아니고 미국 협회 임원도 아니라서 안 올 것 같다고 하네요. 제 얘기가 아니고 팬클럽에서 하는 얘기예요. 당연하지만 한국에도 조슈아 팬클럽이 열 개도 넘거든요. 조슈아는 먹고 놀고 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해서, 그동안 포럼에 참석한 적이 없대요.”
“안타깝네요. 같은 구원자 신세인데, 제가 미국 가면 안 만나 주려나요? 제가 가서 사인이라도 받아다 드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조슈아를 미리 만나볼 수 있다면, 정보 수집 차원에서도 좋다.
그러나 최정윤은 고개를 저었다.
“구원자들은 중요한 전략자원이라서, 정부에서 관리하잖아요. 우리나라는 안 그렇지만. 그래서 못 만나실 거예요. 미국은 길드도 많고 구원자 계가 민간 주도이긴 하지만, 정부에서 일일이 등록해서 관리한다고 들었어요. 구원자 한 명 한 명에 전부 CIA 담당 요원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군요.”
“이도협 부회장도 올봄에 영국 출장 가서 헬렌 카자크 만나려고 했다가 못 만나고 왔잖아요. 창피해서 얘기는 잘 안 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럼요. 스페인 포럼 참석하고 영국 들러서 오는 일정으로 출장을 짰거든요. 물론 그때는 제가 여기서 일할 때가 아니라서, 들은 얘기지만요. 영국 협회에 가서 어떻게 좀 만나볼까 했는데 못 만나고 왔대요.”
“이도협 부회장이 헬렌 카자크 팬이라는 얘기죠, 그거?”
“그렇죠. 이도협 회장이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지, 린핑 루 팬이기도 하거든요. 린핑 루는 아세요?”
“아뇨.”
“린핑 루는 중국 구원자인데, 아시다시피 중국은 구원자들이 전원 공무원으로 되어 있어요. 공안 소속이죠. 그래서 거의 비밀 요원 취급한대요. 그래서 만나는 건 꿈도 못 꾼다는군요. 세계구원자포럼에도 중국은 참석 안 하거든요.”
“아, 그래요?”
“네. 세계구원자포럼이라는 게 처음에 미국에서 시작된 거라서, 민간이 주도하는 형식이거든요. 그래서 중국 정부는 공안 공무원이 민간 대회에 참석하는 걸 금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나라별로 사정이 복잡하군요.”
이준기는 맞장구를 쳐가면서 최정윤의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다 아는 얘기다.
그러나 최정윤이 알고 있는 사실들, 즉 세상에 알려진 정보가 어떤 모습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준기는 생각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과 아귀가 맞지 않는 부분, 그런 부분이 말하자면 꺼림칙한 정보다.
그런 부분을 파악하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현재 나라별로 최고레벨 구원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있나요?”
“오오, 세계 최고를 노리시는 거예요? 이준기 구원자님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요.”
“하하, 비행기 태우지 마시고요. 최 과장님, 그런 정보는 알 수 있어요?”
“구원자 레벨이 얼마인지, 다른 사람은 알 수가 없잖아요. 정확히 말하자면요.”
“상태창 링크 찍어주면 되잖아요? 구원자들끼리는 다 서로 정보 공유가 되니까요.”
“그렇죠. 그 말은, 반대로 생각하면 스스로 공개하지 않으면 자기가 몇 레벨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잖아요?”
“아··· 설마. 그래서 그걸 공개 안 하는 구원자라도 있다는 거예요?”
“중국이나 러시아에는 있을지도 모르죠. 중국은 공안이고, 러시아는 마피아니까요.”
“하긴, 비밀 관리되는 구원자가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고레벨 구원자를 나라에서 비밀리에 관리하고 있으면, 핵무기 같은 느낌이네요. 인권침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그쪽 사정이니까요.”
“인터넷에도 별 괴담이 다 돌아다녀요. 헬렌 카자크보다 더 높은 레벨의 구원자가 있다! 이런 얘기는 흔하잖아요?”
“그래서, 지금 일본 최고 레벨은 얼마나 됩니까?”
“다케다 시게히데. 34레벨이고, 탱커라고 합니다.”
“그건 협회 정보인가요?”
“협회 정보는 업뎃이 늦잖아요. 일본 구원자 팬카페에서 봤어요.”
*****
이준기만큼은 아니지만, 문아린에 대한 언론의 관심도 엄청났다.
이준기가 신출귀몰하게 언론을 피해 다니자, 문아린에 대한 기사가 상대적으로 많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문아린이 경영하다가 지금은 여동생에게 맡겨 놓은 커피숍, ‘별’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매일 꽉 찼다.
“문아린 구원자님은 카페에 자주 안 오시나요?”
“가족으로서, 문아린 구원자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중견 구원자로서 돈도 많이 버실 텐데, 카페를 계속하시는 이유는 뭡니까?”
커피숍이라고 해 봐야, 테이블이 열 개도 되지 않는다.
근처에 사무실 빌딩이 몇 개 있어서 목은 좋지만, 경쟁도 심하다.
주변에 커피숍이 열 개도 넘게 있는데, 매달 새로 하나씩은 더 생기는 것 같다.
이렇게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밀려드는 걸 싫다고 할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문아린의 동생, 문아영은 웃으면서 기자들에게 대답했다.
“언니가 원래 카페 하는 게 꿈이어서요. 오랫동안 준비해서 간신히 오픈한 가게예요.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가게를 접을 수는 없잖아요. 여기 아메리카노 세 잔 나왔습니다.”
기자는 아메리카노를 받침 채로 받아, 뒤에 서 있던 사람에게 통째로 넘겼다.
커피를 샀으니 질문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기자는 뒤에 줄 선 사람들을 애써 무시하면서 한 마디를 더 했다.
“질문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종각 던전에서 무슨 아이템이 나왔는지는 왜 아직 공개를 하지 않는 겁니까?”
“제가 협회 사람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협회 쪽에서도 시원하게 말을 안 해줘서요. 혹시 문아린 구원자님한테서 들으신 얘기는 없나요?”
“아뇨. 언니는 저한테 일 얘기는 거의 안 해요.”
“아, 그렇군요. ‘동생에게 일 이야기는 거의 안 하는 문아린 구원자.’ 이렇게 써도 되겠습니까?”
“네, 네. 뒤에 줄 서신 분들이 많아서, 죄송합니다.”
사실, 이번 던전 이야기는 언니에게 귀가 아프게 들은 문아영이었다.
평소와는 달리, 문아린은 동생에게 종각 던전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다.
특히 사원 기둥 뒤에서 둘이 컵라면 먹던 이야기는 거의 외울 지경이다.
그 이야기 외에도 문아린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처음부터 이준기와 한 팀이 되기로 약속한 이야기, 북쪽 끝까지 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김형채라는 사람이 휴전하자고 말하고 나서 뒤통수를 쳤던 것 등등.
바로 전 던전 ‘해운대’에서 겨우 500골드로 에픽급 양손 도끼를 먹었다고 엄청 좋아하던 언니가, 웬일인지 이번 던전에서 무슨 아이템을 얻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궁금해서 문아영은 물었다.
“그런데 언니, 아이템은? 뭐 좋은 것 좀 먹었어?”
“응. 몇 개 좋은 걸 먹기는 했지.”
“뭔데? 어디에서 나온 거야? 이준기 오빠랑 반띵 한 거야? 설마, 두 사람이 주사위 굴리고 그런 건 아니지?”
“그 아이템들을 쓸 수나 있을까. 아이템 얘기는 나중에 하자.”
문아영도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구원자들끼리 서로 죽이는 던전이었다면, 죽은 사람들의 아이템을 어떻게 했겠나.
문아린이 얻어온 아이템 중에서는 다른 구원자가 쓰던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아이템이라면, 사용하기에 꺼려질 법도 하다.
예전에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때까지 길게 오픈했던 가게지만, 요즘에는 점심시간 중심으로 짧게만 영업한다.
오전 10시 30분에 오픈, 오후 4시 30분에 문을 닫는다.
겨우 여섯 시간만 열어도, 커피 찌꺼기가 대형 쓰레기통에 가득 찼다.
예전에는 커피 찌꺼기를 종이컵에 담아 손님들에게 무료로 가져가게 놓아두고는 했다.
그러나 매출 규모가 너무 커지다 보니, 그런 잡일을 할 시간이 나지 않았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이렇게 경쟁이 심한 상권에서. 복 받은 거지.’
문아영은 가게 문을 닫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문아영은 문아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장사가 잘되는 건 좋은데, 기자들이 너무 많이 와.”
“미안하다, 아영아. 내가 우리 카페를 홍보한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가니까 내가 어쩔 수가 없네.”
“기자들 질문에 계속 모르겠다고 할 수도 없고, 도대체 뭐라고 그래야 돼?”
“무슨 질문?”
“언니랑 이준기랑 사귀냐고 자꾸 묻는단 말야.”
“하하. 무슨 그런 질문을 하냐. 다른 건 몰라도 그건 답이 확실하네. 아냐. 아니라고.”
“어, 그래? 좀 의외네.”
“의외는 무슨 의외. 내가 그 사람이랑 사귀는 거 같아? 네가 보기엔?”
“언니, 그 사람 좋아하는 거 아냐? 그 오빠 얘기할 때 보면, 고등학교 때 형석이 오빠 얘기할 때랑 비슷한데?”
“아냐!”
“농담이야. 왜 그렇게 반응이 격렬해? 더 수상하잖아.”
“아니, 그게 아니고. 아영아, 비밀 지킬 수 있지? 나도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 우울해.”
“뭔데, 언니? 말해봐. 비밀 지킬게. 형석이 오빠 때도 내가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잖아.”
“준기 오빠,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는 것 같아서.”
“엥? 정말? 언니같은 미인을 놔두고··· 몹쓸 놈, 아니 몹쓸 오빠네. 그게 누군데?”
“이뻐. 길수연이라고.”
“그래? 뭐하는 여잔데? 모델이나 영화배우라도 되는 거야?”
“아니, 구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