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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5: 고공 침투 (1)
Episode 15: 고공 침투 (1)
- 미션 3-1. ‘멋진 신세계’.
- 미션 클리어 조건: 24시간 내에 공격대 멤버 절반 이상 사망.
- 보상: 생존자 전원 레벨업 및 던전 종료 옵션 부여.
- 미션 실패 시 페널티: 24시간 경과 시점에 멤버 절반 이상이 사망하지 않은 경우, 모자라는 숫자만큼 무작위 추첨에 의해 사망하고 미션 제한 시간 24시간 연장.
- 미션 3-2. ‘고공 침투’.
- 미션 클리어 조건: 24시간 내에 오크 사원 붕괴.
- 보상: 생존자 전원 레벨업 및 던전 종료 옵션 부여.
- 미션 실패 시 페널티: 24시간 경과 시점까지 오크 사원이 붕괴되지 않을 경우, 공격대 멤버 전원 사망.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머리가 너무 복잡하네요.”
“이번에는 살인자가 주석과 이준기였군요.”
“그렇네요. 준기 오빠가 누군가를 죽였군요.”
“준기··· 오빠요?”
“네. 지난번에 ‘해운대’ 던전에서부터 그렇게 불러요. 같이 3소대였었거든요.”
“네? 저하고도 같이 2소대에 계셨잖아요? 저도 준기 씨랑 나이 비슷한 것 같은데.”
“네? 무슨 말씀이세요? 설마, 오빠라고 불러드렸으면 하시는?”
“안 됩니까?”
문아린은 웃음을 터뜨리려다 간신히 참았다.
“그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랍니다.”
“네? 차별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닙니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빨리 아이템 뽑고 다음 위치로 이동해요.”
“하긴. 일단 급한 것부터 하시죠.”
아이템 뽑기 결과, 문아린은 ‘결박석’을 뽑았다.
문아린은 아이템 링크를 김형채와 공유했다.
- 결박석.
- 사용 효과: 상대방을 현재 위치에서 얼려버립니다. 아주 답답하겠죠? 최대 1시간 동안 유지되며, 그 전이라도 얼어버린 상대가 공격을 받으면 풀린답니다. 이쯤 되면, 아주 평화로운 물건 아닌가요?
- 사정거리: 100미터.
- 주의 사항: 계속해서 똑같은 주의 사항 말씀드리는 것도 지겹네요. 던전에서 나가시거나, 이번 미션이 클리어되면 이 아이템은 증발해버립니다. 빨리빨리 소비해버리자구요!
“아, 정말 요란스런 설명이네요. 형채 씨는 뭘 뽑으셨어요?”
그런데 갑자기 김형채가 보이지 않았다.
“형채 씨?”
들리는 것은 수풀을 헤치는 바람 소리뿐이었다.
*****
소현배와 이준기의 싸움 막판에 얼음 회오리를 날린 하민서.
그러나 폭풍에 실려 날아간 얼음 조각들은 소현배의 시신에 박혔을 뿐이다.
소현배의 다리를 베고 그의 등 뒤 방향으로 10미터를 점멸했던 이준기.
곧바로 방향을 틀어 소현배의 등 뒤로 달려들었다.
오캄과 카데쉬를 그의 등에 찔러 넣고,
두 차례 연속으로 이어진 마나 폭발.
구원자를 상대로 하는 스킬은 50%의 대미지밖에 입히지 못한다.
그러나 3초 남짓한 시간에 집중된 폭발적인 대미지,
그리고 카데쉬의 발동 효과에 따른 스킬 시전 방해로 소현배는 쓰러지고 말았다.
하민서는 시체에 날아가 박히는 얼음 조각들을 황망하게 거두어들였다.
앞으로 뻗었던 손을 거둬들인 하민서가 뻘쭘하게 물었다.
“제가, 너무 늦었죠?”
쓰러진 소현배를 내려다보던 이준기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대답했다.
“아니, 잘하셨어요. 조금만 더 늦으셨더라면, 민서 씨를 다음 타깃으로 삼아야 했을지도 모르잖아요.”
등골에 오싹함을 느끼면서 하민서가 한 걸음을 뒤로 디뎠다.
“네?”
“아니, 이젠 됐어요. 한 라운드에 둘이나 죽이는 건 너무하죠.”
“어··· 그게···”
“죽는 사람한테도, 죽이는 사람한테도 못 할 짓이잖아요?”
“준기 씨, 미안해요.”
“아니에요. 민서 씨는 그냥 숨어있을 걸 그랬어요. 결국 문아린을 찾는 게 아니고 소현배를 잡는 꼴이 되어버렸잖아요. 기억해요?”
미션 종료 알림 메시지가 떴다.
- 두 번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 아주 잘하셨어요! 두 명이 거의 동시에 쓰러졌네요. 피바다를 보여주세요! 데스매치는 역시 이런 맛이 있어야죠.
이준기에게는 추가로 레벨업 관련 안내 메시지가 떴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주, 준기 씨! 두, 두 명이라뇨?”
“거의 같은 시간에 어딘가에서 다른 싸움이 벌어진 겁니다.”
“완전히 동시에 죽었다는 거예요?”
“아뇨, 그럴 리가요. 한쪽에서 미션이 클리어되더라도, 그 시점에서 진행 중이던 전투는 계속하게 놔두는 거겠죠. 양쪽 전투가 모두 끝난 다음에 안내 메시지를 내보내고요.”
“그, 그럼 또 누가 죽은 걸까요?”
하민서는 1라운드에서 마상욱이 죽은 것도 모르고 있었다.
누가 죽었는지, 알림 메시지가 나오지 않으니 당연하다.
사망자가 누구인지에 관한 정보도 중요한 정보다.
서로를 적대하는 이런 포맷의 싸움에서는 얼마든지 변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안내 메시지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 모든 걸 마치 게임처럼 즐기고 있는 건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그 방정맞은 신들이라도 있다는 건가?’
이준기에게 다음 미션 선택 화면이 떴다.
‘멋진 신세계’를 선택하면 이제 본격적인 배틀로얄을 벌이게 되고,
‘고공 침투’를 선택하면 원래의 던전 목표, 즉 ‘오크 사원’으로 진입하게 된다.
이준기는 재빨리 ‘고공 침투’를 선택했다.
그러나 소용없다는 것, 알고 있다.
먼저 클릭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이준기와 동등한 권리를 가진 저쪽 승리자도 같은 선택을 해야만, 오크 사원으로 나아가게 된다.
“준기 씨, 다음 미션 선택했나요?”
“네. 오크 사원으로 진입하는 미션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 저쪽이 선택을 하지 않았어요. 저쪽도 나와 같은 선택을 해준다면, 우리는 모두 함께 오크 사원으로 진입해서 몬스터를 상대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만약 저쪽이 다른 걸 선택하면요?”
“미션이 두 개 걸릴 겁니다. 그런 예감이 들어요. 서로 싸워도 되고, 협력해도 되는 거죠.”
예감이라고 말은 했지만, 아는 사실을 말한 것뿐이다.
그보다, 미션을 동시에 클리어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불길한 예감을 억누르며 기다렸다.
드디어, 신서사이저 삑사리가 나는 듯한 효과음.
평소와는 다른 묘한 알림음에 이어, 다음 미션에 대한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 두 번째 미션을 클리어한 두 명의 선택이 갈렸습니다.
- 각각 다른 걸 골랐다는 얘기죠. 별일 다 봅니다.
- 이럴 땐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시죠?
- 둘 다 합니다!
- 선택은 여러분의 몫!
이준기는 하민서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역시, 나쁜 예감은 틀리질 않죠?”
알림 화면이 꽉 차게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주석과 이준기가 선택한 각각의 미션 내용.
하민서는 쩔쩔매면서 읽고 이해하려 했다.
“준기 씨, 이게 무슨 말이에요? 둘 다 하라는 건지, 둘 중에 하나를 하라는 건지도 불확실하고···”
“민서 씨. 잘 들으세요.”
“네··· 네!”
“저기, 섬 한가운데 큰 나무가 보이죠?”
“네.”
“거기에 가서 상태창을 열면 오크 사원으로 올라가는 선택지가 뜹니다. 빨리 오크 사원으로 올라가서 기다리세요.”
“네, 알겠어요.”
“주석도 그것까지는 모를 거예요. 올라가서 몬스터한테 덤비지는 마시고 적당히 숨어 계세요. 제가 나중에 도착하면, 같이 해요.”
“준기 씨는요?”
“전 아린이를 찾아 데리고 올라가겠습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저··· 저도 같이 갈래요!”
“아뇨. 저 혼자가 편합니다. 저 도와주시는 셈 치고 그렇게 좀 해주세요. 이따가 오크도 잡아야 하니까요.”
“저··· 준기 씨, 아린이가 죽었을 수도 있지 않나요?”
“그럴 수도 있죠. 사망자 명단은 알려주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일단 가보기는 해야겠어요. 던전 입장하고 벌써 세 시간이 넘게 지났는데, 전 아직도 약속장소에 가보지도 못했으니까요.”
“네···”
아이템 뽑기가 뜨자, 하민서는 서둘러 20골드를 투입하고 클릭을 했다.
상태창을 보면서 빠르게 손을 놀리는 이준기도 마찬가지였다.
“준기 씨, 저는 ‘게스 후’ 이거 나왔네요. 선택한 상대를 한 시간 동안 맵에 표시하는 그거요.”
“하하, 이런. 하필 이런 때에.”
“준기 씨, 왜 그래요?”
“컵라면 나왔어요. 이런 상황에 장난이라니.”
“컵라면요?”
“네, 컵라면. 그것도 두 개나.”
“아이템 뽑기에서 컵라면이 나왔다고요?”
“네. 보여드릴까요?”
“아, 아뇨.”
하민서는 마상욱을 생각했다.
‘그게, 거짓말이 아니었다고?’
“민서 씨, 부탁해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해주시면 좋겠어요.”
“제 아이템, ‘게스 후’ 빌려드릴까요?”
“그건 주석 추적하는 데 쓰세요. 저는 이만 갈게요. 시간이 없어서요.”
이준기는 더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북쪽으로 이동하는 이준기를 바라보다가, 하민서는 거대한 나무가 있는 섬 중앙부로 걷기 시작했다.
*****
방패 속으로 들어가기라도 하려는 듯이 몸을 구부린 채, 한택수가 쓰러져 있다.
주석은 그걸 바라보면서 차분하게 다음 단계를 준비했다.
보급품 자판기에서 힐링 포션을 두둑이 챙긴 다음, 아이템 뽑기를 눌렀다.
선택한 한 사람을 한 시간 동안 맵에 표시하는, ‘게스 후’가 또 나왔다.
‘나쁘지 않군. 한택수를 잡을 때 잘 썼으니.’
한택수를 죽이고 나서 ‘구원자 첫 킬’ 업적이 떴을 때는 잠깐 놀라기도 했다.
모든 능력치가 5, 모두 합해서 무려 스탯 포인트 30이 주어지는 업적 보너스.
신세계가 열리는 느낌이었다.
‘이쪽이 훨씬 수지맞는 장사잖아?’
게다가 별 필요는 없지만 한택수가 쓰던 방패를 전리품으로 얻었다.
한택수가 쓰러지면서 그의 인벤토리가 바닥으로 쏟아진 걸 보고 속으로 대박을 외쳤지만, 탱커인 그가 쓰던 아이템은 주석에게 별 쓸모가 없어 보였다.
주워가서 다른 구원자에게 팔면 쏠쏠하겠지만, 인벤토리 압박이 있어서 적당히 챙겼다.
‘다마스커스? 개나 소나 쓰는 다마스커스지만, 없는 놈들도 많으니 팔리긴 하겠지?’
주석은 은밀하게 풀숲을 헤쳐나가기 시작했다.
2라운드에서 한택수를 상대로 썼던 방법을 다시 써볼까 생각했다.
섬 중앙의 거대한 나무 근처에 숨어 있다가 기습하는 것이다.
‘이 섬에 두드러져 보이는 구조물이라고는 그것뿐이니까, 사람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제 오크 사원 미션이 함께 나왔으니, 더더욱 그쪽으로 사람들이 모이겠지. 아무리 봐도 오크 사원은 큰 나무 위의 그 통나무집이 맞는 것 같으니까.’
주석으로서는 이준기가 죽인 상대가 누구일까 하는 것이 가장 궁금했다.
한택수의 숨이 끊어진 것이 확실한데도 미션 클리어 메시지가 나오지 않아 당황했다.
그러나 조금 후에 두 명이 거의 동시에 쓰러졌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문제는 그 두 명이 누구인지, 심지어 1라운드에 소현배에게 쓰러진 상대가 누구인지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
아이템 ‘게스 후’에 이미 죽은 사람을 추적하라는 명령을 내리면 어떻게 될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잘못된 대상입니다’라고 정직한 메시지가 나오든지, 아니면 마치 악덕 상인처럼 죽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냥 한군데 가만히 있는 점으로 표시할 것이다.
정보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지난 라운드에 한택수를 추적한 이유는, 초반에 공중에 떠 있던 나를 공격한 것에 대한 보복 성격도 있지만, 역시 잡기 쉬운 상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가 아직까지 살아남았고, 누가 죽었을까.
주석은 차분하게 이번 공격대 명단을 정리했다.
이준기는 두 번째 미션을 클리어한 자이니 살아남은 게 당연하고,
소현배나 김형채도 실력으로 보아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크다.
‘문아린이나 하민서는 어떨까?’
*****
김형채는 숨을 죽였다.
아이템 설명에 그렇게 나와 있다.
보이지만 않을 뿐, 소리도 냄새도 막지 못한다고.
그래서 ‘은신 망토’를 쓰자마자 김형채는 숨을 죽였다.
문아린은 겨우 3미터 거리에 있다.
공격 행동을 하면 은신이 풀린다는 것이지만, 이 아이템의 존재 의의는 바로 그 선공 확보에 있다.
확실하게 기습으로 우세를 점할 수 있다면, 문아린을 잡을 수 있다.
그래서 뽑기 아이템을 확인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용했다.
그런데 그 직후에 문제가 발생할 줄이야.
여전히 그를 동료로 생각한 문아린이 자신이 뽑은 아이템 정보를 링크로 보내온 것이다.
‘결박석’.
현재 위치에서 상대방을 얼려버린다는 설명이다.
김형채가 아는 한도 내에서, 한방에 적을 죽이는 기술은 없다.
코볼트라면 모를까.
그렇다면 김형채의 선공은 그저 선빵으로 끝나버리고 말 것이다.
문아린도 바보가 아닐 테니, 김형채를 얼려놓고 도망가버리겠지.
김형채는 들판 한복판에서 누군가가 선공을 날려주기를 기다리는 상바보가 되는 것이고.
김형채가 선공을 날려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문아린과 그가 피차 서로의 아이템을 소비해 버리는 효과뿐이다.
‘자리를 떠야 한다. 그러면 적어도 두 시간 동안은 숨어있기라도 할 수 있으니.’
그런데, 문아린. 보통내기가 아니다.
딱 한 번만, 그녀는 김형채의 이름을 불렀다.
대답이 없자, 곧바로 경계 상태에 돌입한 그녀는 주위에 온 감각을 집중하고 있다.
김형채를 탐지해내고야 말겠다는 듯이.
이래서야 김형채도 움직일 수 없는 신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