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41화 (4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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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4: 인간은 금방 적응한다 (3)

Episode 14: 인간은 금방 적응한다 (3)

“소현배보다는 문아린을 찾는 쪽이 더 좋다는 말씀이죠?”

“네.”

“하지만 여섯 시간 내에 우리는 누군가를 죽여야 합니다. 그 대상으로는 소현배가 제격이고요.”

“네. 알고 있어요.”

“먼저 문아린을 찾고, 힘을 합쳐서 소현배를 치자는 말씀이죠?”

“네. 그래요.”

이준기는 아이템 ‘게스 후’를 발동했다.

특정 인물의 위치를 1시간 동안 지도에 표시해 주는 아이템.

- 추적 대상을 정해주세요.

“문아린.”

문아린의 위치가 지도에 표시되었다.

이준기와 하민서의 현재 위치에서 동쪽으로 많이, 남쪽으로 조금 가면 된다.

“이동하는 것도 보이나요?”

“네. 북서쪽으로 이동 중입니다. 아린이도 저랑 약속한 대로 북쪽 끝으로 오고 있었네요.”

이준기가 문아린을 친근하게 부르는 걸 듣자, 하민서는 살짝 질투심이 일었다.

이준기가 미남인 것은 사실이지만, 딱히 연애 감정 때문은 아니다.

서로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 두 사람이 서로 신뢰하는 것을 보니 부러울 수밖에 없다.

“아린 씨와는 친해요? 어떻게 알게 된 사이예요?”

“별로 친하진 않고요, 지난번에 부산에서 던전 공격대로 잠깐 같이 지냈죠.”

“아, 해운대요?”

“네.”

“거기서 준기 씨 활약이 대단했다고 들었어요. 하필 우리 길드 나린이가 사망자 명단에 들어가서 우울하긴 했지만.”

“아, 나린 씨. 정말 안타까운 죽음이었죠. 정말 좋은 탱커셨는데.”

전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서, 둘의 대화가 잠시 중단되었다.

수풀 사이에서 나타난 땅쥐가 그들의 눈앞을 또르르 달려서 땅 위에 난 구멍으로 들어갔다.

“휴.”

“긴장했네요.”

“아린 씨는 뭐 하던 사람이에요?”

“글쎄요. 뭐라고 했었더라. 아, 카페 하신다고 했던 것 같은데.”

“카페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카페를 운영하신다고요? 금수저네요.”

“그런가요? 임대 건물 아니겠어요?”

“그래도 카페 사장이면, 금수저 아닌가요? 저는 전에 보육교사였어요. 어린이집에서 하루에 열 시간씩 일해서 간신히 먹고살았죠. 결혼은커녕 데이트할 생각도 못 해보고.”

“쉿!”

이준기의 신호에 따라 둘은 자세를 낮추고 자기 위치에서 이탈했다.

뒤쪽에서 누군가가 빠른 속도로 쫓아오고 있었다.

이준기는 수풀 사이에 몸을 숨기고 소리가 나는 쪽을 응시했다.

전생이랄까, 아무튼 회귀 전에 익혔던 탱커의 기본 소양을 총동원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소리가 나는데.

그것도 발걸음 소리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남서쪽을 응시하는 이준기.

발걸음 소리가 멈췄다.

끼이익.

활시위에 화살 거는 소리다.

피잉!

화살이 활시위를 떠났다.

이준기는 곧바로 스킬 ‘점멸’을 시전했다.

순간적으로 전방 10미터를 옮겨간 이준기.

공격 행위로 은신이 풀린 소현배.

땅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바로 앞에 나타난 이준기를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준기!”

이준기는 오른손에 ‘오캄’, 왼손에 ‘카데쉬’를 쥔 채, 마치 물길을 가르는 수영 선수처럼 양팔을 바깥으로 휘둘렀다.

*****

한참 동안 아무도 못 본 한택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한참 전에, 뭔가를 딛고 공중에 서 있던 주석을 공격한 것이 전부다.

누구나 다 보이는 위치에 있던 미끼에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아주 신중하게 조금씩 천천히 다가갔다.

그래서 그런지, 도착했을 땐 이미 아무도 없었다.

아니, 아예 흔적도 없었다.

‘주석. 브릴리언트 길드의 추격자 유망주라고 들었는데, 실력이 제법이군.’

한택수. 충무공 길드의 3인자였고, 길드 마스터 권영호가 죽은 이후로는 넘버 투다.

언제나 충무공 길드 부동의 에이스 탱커였다.

그런데 이제 2탱으로 밀려나게 생겼다.

탑픽 길드와 합병하는 바람에, 탑픽 길드의 마스터이자 메인 탱커인 오대영에게 밀리게 된 것.

이도협 부길마와 이상덕 협회장의 농간이다.

‘이래서 길마는 탱커가 해야 하는 건데 말야. 길드 운영진이 죄다 딜러니까 탱커 귀한 걸 모르고···’

아무도 못 본 지 이미 두 시간째.

두 번째 미션이 시작된 지도 한 시간이 된 것 같다.

다섯 시간 내에 누군가가 죽지 않으면 아무나 한 사람이 무작위로 선발되어 죽게 된다.

‘그건 안 되지. 주석이든 소현배든, 아니 같은 길드 이준기라도 죽어야 한다. 나만 아니면 되니까.’

랜덤 아이템 뽑기에서는 다시 ‘맵핵’이 나왔다.

지도에 적의 위치를 표시해주는 아이템.

그러나 이름처럼 성능이 대단하지는 않다.

반경 약 100미터 정도가 표시되는 상태창의 지도, 그 범위 내에 있는 적의 위치만이 표시된다.

‘지도 전체가 표시된다면 좋았을 텐데.’

아까부터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엄폐 상태를 유지하며 움직이고 있지만, 수확이 없다.

섬의 남서쪽은 샅샅이 조사한 것 같은데, 사람은커녕 오크 한 마리도 없다.

‘이 던전은 몬스터가 아예 없는 건가?’

동쪽으로 조금씩 움직이던 한택수의 맵에 적 표시가 깜빡였다.

‘뭐지?’

위치는 섬 중앙에 자리한 거대한 나무다.

아마도 나무 위의 그 통나무집, 그 안에 있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사람은 아니고 몬스터일 수밖에.

피해야 하나?

각자도생하는 스타일의 던전이기는 해도, 몬스터는 강할 것이다.

한국에는 처음 등장한 무려 B급의 던전.

탱커라고 해도 혼자 당해낼 수 있는 상대일 리 없다.

어쩐지 이쪽으로 오는 것 같기도 하고.

지도상의 표시에 따르면 아직 나무 위에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멀어지는 게 상책이다. 지금 몬스터와 엉켰다가는 다른 사람의 사냥감이 될 뿐이지.’

한택수는 최대한 기척을 숨기고 조금씩 서쪽으로 발을 옮겼다.

핏, 핏, 핏!

갑자기, 나무 쪽에 있던 빨간 점이 무서운 기세로 이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무 위 통나무집에 있던 오크가 뛰어내려 쫓아오는 건가? 너무 빠르다.’

한택수는 뒤를 돌아보았다.

마치 시야에 잔상이라도 남길 것처럼 빠르게 뭔가가 날아왔다.

퍽!

“끄억!”

한택수는 배에 칼을 맞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주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풍림화산.”

“뭐?”

“나아가지 않을 때는 숲처럼 고요하게, 그러나 움직일 때는 바람처럼 빠르게! 멋지지 않아요, 한택수 선배?”

“으으··· 뭐라는 거냐?”

파팟!

주석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런, 썩을.”

한택수는 허겁지겁, 인벤토리에서 힐링 포션을 꺼내 들이켰다.

왼손에 든 방패에 몸을 구겨 넣기라도 할 것처럼 몸을 잔뜩 움츠린 한택수.

힐링 포션을 입에 댄 채로, 핏발이 잔뜩 선 눈은 보이지도 않는 상대를 쫓고 있다.

*****

이준기와 소현배가 현란하게 칼날을 교환했다.

십여 미터 거리에서 벌어지는 불꽃 튀는 칼싸움.

하민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도 못 하고 멍하게 그걸 쳐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적’은 본 적이 없다.

몬스터의 움직임은 거기서 거기니까.

소현배는 ‘백혼검’과 ‘다마스커스’를 양쪽에 들고 이준기를 노려보았다.

그 시선의 반대편에는 ‘오캄’과 ‘카데쉬’를 양손에 든 이준기.

롱소드인 백혼검을 든 소현배 쪽이 리치는 분명히 우위다.

그러나 ‘해안약탈자의 샌들’을 신은 이준기 쪽이 이동속도는 조금 더 빠르다.

시작부터 소현배는 이준기의 ‘점멸’에 선공을 빼앗겼다.

그래서 활을 인벤토리에 넣고 쌍검으로 전환하기도 전에 이준기에게 칼침을 맞았다.

그러나 소현배도 곧바로 반격을 개시했다.

백혼검이 발동 효과를 터뜨려 두 배의 대미지를 먹이자, 연쇄 효과로 왼손의 다마스커스가 치명타로 박혔다.

“현배 씨, 스나이퍼인데도 검술이 아주 좋군요? 그런 실력으로 동료를 죽이고 다니니 좋아요?”

“준기 씨는 레벨이 20밖에 안 되는데 나랑 맞짱을 뜰 생각을 다 하네?”

“현배 씨가 고른 미션은 현배 씨가 결말을 지어야겠죠. 우리 중에 죽는 건 이제 딱 한 명뿐일 겁니다.”

“그게 준기 씨가 아니라는 법도 없겠지?”

분명히 선공을 빼앗겼음에도 이준기와 대등하게 맞서는 소현배를 보자, 하민서는 갈등했다.

아직까지 그녀는 누구에게도 적대 행위를 하지 않은 상태.

따라서 누가 이기더라도 승자의 편에 설 수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분명히 소현배가 살인자라고 알림 메시지가 떴는데.’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이준기와 대치 중이던 소현배가 그녀에게 외쳤다.

“하민서 씨! 선택 잘하세요. 저는 27레벨이고 이 친구는 20레벨. 누가 이길까요?”

하민서 주위를 돌던 몇 권의 책이 사그라졌다.

시전을 멈춘 그녀는 뒤로 한 발자국을 물러났다.

소현배의 말을 듣고 보니, 양측의 레벨 차가 너무 크다.

이준기가 선공을 먹였음에도 불구하고 고전하는 이유는 바로 현격한 레벨 차이 때문이다.

이준기와 소현배가 다시 한 번 검을 교차했다.

네 개의 검날이 두 개씩 짝지어 맞서 불꽃을 튀기다가 분리되었다.

두 사람도 이제 서너 걸음 정도로 거리를 띄우고 숨을 몰아쉰다.

‘나는 너한테 두 배의 대미지를 입히고 있다. 넌 그걸 모르겠지만.’

소현배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승리를 자신했다.

‘설마, 네놈 따위가 그 희귀하다는 성흔을 가지고 있지는 않겠지. 난, 선택받은 구원자니까.’

숨을 몰아쉬던 이준기가 큰 소리로 말했다.

소현배와 하민서, 둘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이.

“현배 씨!”

“뭐냐, 이준기!”

“그래엄의 축복, 마음에 들어요?”

“뭐, 뭐라고?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놀랐습니까? 아무한테도 말한 적이 없는 음침한 성흔을 들키고 나니까?”

“무, 무슨 소리냐? 그것도 어디 SNS에서 본 유언비어냐?”

“현배 씨가 그런 성흔을 등에 업고 구원자들을, 사람을 죽이는 걸 계속 방치할 수는 없어요. 응보라고 생각하고, 저승에 갈 준비하시죠.”

“헛소리를 잘도 지어내는군. 하민서를 네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개수작이냐?”

“뒤통수를 치며 살아야 하는 게 당신 운명이라면, 이제 끝내야죠.”

“헛소리 집어치우고 덤벼라, 이준기!”

소현배가 백혼검과 다마스커스를 교차해서 든 채로 이준기에게 달려들었다.

숨을 한 번 들이쉬면서, 이준기는 소현배의 발놀림을 지켜본다.

소현배가 두 걸음 앞으로 오자, 이준기는 몸을 낮추면서 소현배의 다리 쪽으로 넘어지면서 양손에 쥔 무기를 휘둘렀다.

“커억!”

오캄과 카데쉬가 소현배의 다리를 베는 느낌을 확인하자마자, 이준기는 연이어 ‘점멸’ 스킬을 썼다.

다리를 노리고 들어온 이준기의 등을 베려고 백혼검과 다마스커스를 휘두르는 소현배.

그러나 두 개의 검은 허공을 가르고 흙바닥을 스친다.

이준기는 이미 소현배의 등 뒤로 10미터나 이동한 뒤다.

하민서의 몸 주위로 푸른색 표지와 초록색 표지의 책들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둘 중 누구의 편에 설 것인지, 하민서가 드디어 마음을 정한 것이다.

“얼음 회오리!”

*****

- 두둥!

김형채의 등을 주시하며 정확하게 네 걸음 뒤를 따라가던 문아린이 깜짝 놀랐다.

또 알림 메시지가 뜬 것이다.

- 두 번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 아주 잘하셨어요! 두 명이 거의 동시에 쓰러졌네요. 피바다를 보여주세요! 데스매치는 역시 이런 맛이 있어야죠.

김형채가 걷다가 멈추고 뒤를 돌아 문아린을 바라보았다.

“뭡니까, 이거? 우리 또 쉬어야 하나요?”

“글쎄요. 어떡하죠. 지도를 보면 거의 다 온 것 같긴 한데.”

“걱정할 필요도 없었네요. 첫 번째 미션보다 더 빨리 끝난 것 같아요.”

“정말 그렇군요.”

“소현배가 또 누굴 죽인 걸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이?”

“두 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걸까요? 설마 소현배가 두 명을 동시에?”

“둘이 싸우다가 같이 죽었을 수도 있죠.”

“미션을 클리어한 사람이 다음 미션을 선택하는 거잖아요?”

“그런 설명이었죠.”

“지금, 미션을 클리어한 누군가가 다음 미션을 고르는 중이겠군요.”

쉬는 시간이 길어지자, 둘은 자기 자리에서 바닥에 앉았다.

문아린도 이제 김형채에 대한 경계심은 접어둔 것 같아 보였다.

김형채가 물었다.

“배 안 고파요?”

“고파요.”

“그럼 우리 식량 팩이라도 먹을까요?”

“네. 그래요, 그럼.”

둘은 각각 인벤토리에서 기본 식량 팩을 꺼냈다.

기본 식량 팩이라고 부르는 것은, 종이로 포장된 딱딱한 빵 같은 덩어리다.

종이 포장을 조금씩 벗겨가면서 둘은 퍽퍽한 덩어리를 베어 물고 씹었다.

중간중간에, 역시 인벤토리에서 꺼낸 물병의 물을 마셔가면서.

“그나마 물은 무제한이라서 다행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동감이에요. 9월도 끝나가는 마당에 왜 이렇게 더운 걸까요.”

식사를 끝낼 즈음, 상태창이 다시 솟아오르며 알림 메시지가 떴다.

깜짝 놀래킬 정도로 요란하던 알림음이 왠지 바람 빠진 느낌으로 바뀌었다.

- 두 번째 미션을 클리어한 두 명의 선택이 갈렸습니다.

- 각각 다른 걸 골랐다는 얘기죠. 별일 다 봅니다.

- 이럴 땐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시죠?

- 둘 다 합니다!

- 선택은 여러분의 몫!

“무슨 소리야? 알림 메시지가 왜 이렇게 요란한 거죠, 이번 던전은.”

“그러게요. 무슨 유튜브 생방이라도 하는 것 같아요.”

- 세 번째 미션으로, 주석은 ‘멋진 신세계’, 이준기는 ‘고공 침투’를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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