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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4: 인간은 금방 적응한다 (2)
Episode 14: 인간은 금방 적응한다 (2)
소현배가 공격대 전체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했다는 말이고, 던전 돌파라는 장기적인 이익보다 단기적인 보상을 선택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하민서의 질문은 그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현배가 첫 번째 미션을 클리어했기 때문에 두 번째 미션에 대한 선택권을 가져갔다는 말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민서 씨가 생각하는 게 맞을 겁니다.”
“미션을 클리어한 사람이 다음 미션을 선택한다는 건가요?”
“그렇게밖에는 생각이 안 드는군요.”
“다른 선택권은 뭐였을까요?”
“소현배가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해서 저런 선택을 한 건 아닐 겁니다. 자기가 딱히 유리한 것도 아니니까요. 소현배는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하고 선택한 걸 겁니다. 누구나 그렇게 했겠죠.”
“그러면 또 누군가가 여섯 시간 내에 사망해야 한다는 얘기군요. 이번에는 보상도 그저 레벨업 하나뿐인데.”
FFA 포맷에서 두 번째 미션은 보통 두 개의 선택지가 주어지는데, 둘 중 하나는 데스매치의 반복이고 다른 하나는 최종 목표로 한 단계 접근하는 것이다.
물론, 던전에서 나가는 선택지도 주어지기는 하는데, 미션을 클리어한 사람이 그걸 고를 가능성은 희박하다.
평화적인 선택지의 보상은 모호하게 적혀있기 때문에, FFA 포맷을 처음 경험하는 소현배로서는 그걸 선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평화로운’ 선택지의 무시무시한 실패 페널티까지 고려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분명히 두 번째 선택지 설명에 ‘오크 사원’ 운운하는 내용이 있었을 텐데, 그걸 선택하지 않았다니.’
요란한 소리와 함께 두 번째 미션에 필요한 보급품 상점이 개방되었다.
- 짜잔!
- 아이템 상점입니다. 보급품, 힐링 포션, 그리고 랜덤 아이템의 행운이!
- 메뉴: 보급품, 소모품, 랜덤 아이템.
“아이템 뽑기가 다시 나왔네요.”
“이걸 또 해야 하나요? 아까 뽑은 아이템 사용하지도 못했는데.”
“그건 사라져 버렸을 겁니다. 저도 사용하지 못하고 사라졌네요.”
“어? 그렇군요. 어쩔 수 없이 또 20골드를 넣어야 하겠네요.”
“사소한 일에 목숨 걸 필요 없죠. 혹시 돈이 모자란 건 아니시죠?”
“아뇨. 골드는 충분해요. 아직은.”
이준기는 특정 인물의 현재 위치를 1시간 동안 표시해주는 ‘게스 후’를 뽑았고, 하민서는 최대 24시간 동안 던전과 분리된 공간에서 혼자 숨어 있을 수 있는 ‘아늑한 1인실’을 뽑았다.
“민서 씨는 원하신다면 그걸 사용해서 다음 미션 때까지 그냥 숨어 계세요.”
“이거 안전할까요?”
“안전할 겁니다. 시스템을 믿어야죠. 우린 모두 던전에서 나오는 무기와 아이템을 사용해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아! 그렇군요.”
“전 제 아이템을 사용해서 소현배를 추격하거나, 문아린을 찾겠습니다.”
“어느 쪽으로 하시게요?”
“생각을 좀 해봐야겠어요.”
“소현배를 추격하신다면 전 숨겠어요. 하지만 문아린을 찾으시겠다면 같이 갈게요.”
‘소현배는 첫 번째 미션에서 사망한 사람의 아이템까지 두 개를 뽑을 수 있지. 그게 변수다.’
*****
가까스로 화살을 피한 문아린에게 달려든 것은 김형채.
김형채는 두 레벨 아래의 문아린을 깔보고 덤볐지만, 문아린은 만만치 않았다.
둘이 한창 치고받고 있는데, 갑자기 상태창에 알림 메시지가 떴다.
문아린도, 김형채도, 메시지가 궁금했다.
둘은 일단 서로에게서 거리를 벌리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첫 번째 미션이 끝났다고요?”
“우리 중에 누군가가 죽었다는 거죠?”
“형채 씨, 이제 우리 싸움 그만해도 되는 거죠?”
“미션이 끝났는데 왜 싸웁니까. 휴전합시다.”
김형채는 문아린 처단이 목표였지만, 일단 숨을 돌리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일반 던전에서 실수나 사고를 가장해서 살인을 해왔다.
이렇게 대놓고 배틀로얄을 펼치라고 하니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
게다가 문아린이 가진 무기가 생각보다 너무 셌다.
두 번째 미션 내용이 출력되지 않아, 둘은 일단 멀리 떨어져 앉아 쉬었다.
첫 미션을 클리어한 소현배가 보상을 고르는 중이었지만, 둘은 그걸 알 방법이 없다.
“아린 씨, 무기가 정말 훌륭하네요.”
“감사합니다.”
“어떤 무기인지 링크 찍어줄 수 있어요?”
“조금 전까지 절 죽이려고 하시던 분한테요? 좀 곤란한데요.”
“하하. 하긴 그렇죠. 근데 미션이 그렇게 나와서 어쩔 수 없었다는 건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글쎄요. 죽은 사람도 동의할까요?”
잠깐 침묵이 흘렀다.
“어딜 가시던 중이었는지 물어봐도 돼요, 아린 씨?”
“아뇨. 대답하기 싫어요.”
“저, 그냥 저쪽으로 사라질까요?”
“그랬다가 다시 덤비실까 봐 두려운데요.”
“미션이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고요! 너무 경계하시는 거 아녜요?”
“저한테도 똑같은 미션이 있었지만, 저는 누굴 공격하려고 하지 않았잖아요!”
“그걸 제가 어떻게 믿습니까?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 보세요.”
“형채 씨야말로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 보시죠. 제가 지금 형채 씨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역시 그런가요.”
“어쨌든 먼저 공격한 건 형채 씨였으니까요.”
- 두둥!
- 첫 번째 미션을 클리어한 소현배 님이 두 번째 미션으로 ‘아름다운 사냥’을 선택했습니다.
- 두 번째 미션. ‘아름다운 사냥’.
- 미션 클리어 조건: 6시간 내에 공격대 멤버 1인 이상 사망.
- 보상: 레벨업.
- 미션 실패 시 페널티: 무작위 추첨에 의한 공격대원 1인 사망 후 미션 제한 시간 6시간 연장.
“헐.”
“이런.”
“소현배가 살인자였군요.”
“그 소현배가 또 살인 미션을 선택했네요.”
“어떻게 하실 건가요? 다시 우리끼리 죽을 때까지 싸우는 건가요?”
“아린 씨가 절 믿어주신다면, 전 아린 씨와 함께 팀을 짜서 소현배를 죽이러 갈 용의가 있습니다.”
“글쎄요. 지금 결정해야 하는 거죠? 전 형채 씨한테 공격받은 게 너무 충격이라서.”
“절 경계하시는 건 이해합니다.”
문아린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자, 김형채도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두 사람 사이에는 몇 걸음의 거리가 있는 상황.
“아린씨, 제가 앞에서 걸으면, 절 믿어주시겠어요?”
“글쎄요. 정말 잘 모르겠어요.”
“제가 서너 걸음 앞에서 걸으면 되잖아요. 그렇게 하면 제가 아린 씨를 먼저 공격하기는 절대 가능하지 않을 텐데요.”
“그래서 제가 얻는 이득은 뭐죠?”
“함께 소현배를 죽이고 미션을 클리어합시다.”
문아린은 잠깐 생각했다.
지금 서로 갈 길 가자고 헤어지는 것은 좋지 않은 선택이다.
김형채가 다시 기습을 할 수도 있으니까, 주위에 놓고 감시하는 것이 낫다.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하라는 격언도 있지 않은가.
김형채를 믿는 건 아니지만, 둘이 다니면 한 팀처럼 보일 것이고, 제삼자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도 줄어든다.
“좋아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제가 앞을 걷는 것만으로는 부족한가요?”
“네. 부족해요.”
“조건이 뭡니까?”
“어디로 갈지, 제가 정하게 해주세요.”
“하하. 전 또 뭐라고. 그 정도 권력은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다만.”
“다만?”
“목표는 소현배를 죽이는 겁니다. 그것도 제한 시간 내에.”
“좋아요. 여섯 시간이라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뭔가 계획이 있으신 거죠?”
“천천히 말씀드릴게요. 우선 우리, 신뢰를 좀 쌓아보죠.”
“좋습니다.”
원래 문아린을 타깃으로 정한 이유는 가장 만만할 것 같아서다.
김형채로서는 문아린과 연합하여 소현배를 처리할 수 있다면 더 잘된 것.
문아린의 신선자 길드보다는 소현배의 문경새재가 훨씬 강한 반협회장파 길드다.
소현배는 박충기의 자객이라는 소문이 있는 정도의 인물이니, 문아린보다는 소현배를 처치하는 것이 훨씬 큰 공을 세우는 것이다.
반협회장 파벌의 핵심, 박충기에게 큰 타격이 갈 것이니까.
- 짜잔!
- 아이템 상점입니다. 보급품, 힐링 포션, 그리고 랜덤 아이템의 행운이!
- 메뉴: 보급품, 소모품, 랜덤 아이템.
“헉, 이거 또 하네요.”
“아이템 뽑기는 해야겠죠?”
“목숨이 20골드보다는 비싸니까요.”
힐링 포션 채우고, 보급품 점검을 끝낸 뒤 둘은 각각 아이템 뽑기를 돌렸다.
“뭐 나왔어요, 아린 씨? 저는 이거 나왔습니다.”
김형채는 ‘섬광탄’을 링크해 보였다.
적의 시야와 청각을 잠시 마비시키는 아이템.
“저는 이거요.”
문아린은 ‘도플갱어’를 링크했다.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적을 유인하는 아이템이다.
“우리, 이제 팀인 거죠, 아린 씨?”
“일단은요.”
“자, 그럼, 소현배 잡으러 가는 겁니다.”
“아까 약속한 대로, 일단은 제가 가자는 쪽으로 가셔야 해요.”
“네, 네.”
문아린의 리드에 따라, 둘은 북서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김형채가 앞서 걷고, 문아린은 그 뒤를 네 걸음 정도 떨어져서 걸었다.
*****
두 번째 미션으로 ‘아름다운 사냥’을 선택한 소현배는 경악했다.
첫 번째 미션을 클리어한 것도, 두 번째 미션을 선택한 것도 소현배라는 알림 메시지가 떴기 때문이다.
모든 공격대원에게 같은 메시지가 갔을 것이다.
소현배가 살인자라는 사실을 명시한 메시지가.
이제 공공의 적이 되었다.
그러나 되돌릴 방법은 없다.
사냥당하기 전에 사냥하는 수밖에.
소현배는 빠른 속도로 뽑기 아이템을 뽑고, 비교적 튼튼해 보이는 나무를 찾아 숨었다.
그리고 첫 번째 미션 클리어 보상 상자도 열어보았다.
상자 뚜껑 사이로 에메랄드 색깔이 새어 나왔다.
- 백혼검.
- 롱소드. 에픽 등급.
- 아이템 설명: 백 개의 영혼을 가두는 검. 백 명의 구원자를 살해하면 이 검은 전설 등급으로 깨어납니다.
- 13~17 대미지. 공격 속도 3초.
- 발동 효과: 일정 확률로 적을 1초 동안 얼어붙게 만듭니다.
- 발동 효과: 일정 확률로 적에게 두 배의 대미지를 입힙니다. 이 경우, 다음 타격이 무조건 치명타로 적중합니다.
- 발동 효과: 일정 확률로 입힌 대미지만큼 사용자의 체력을 회복시킵니다.
- 발동 효과: 일정 확률로 3미터 이내에 있는 적의 아군에게 동일한 대미지를 입힙니다.
- 발동 효과: 일정 확률로 적의 버프를 빼앗아 사용자에게 옮겨옵니다.
- 주의 사항: 제한 시간 내에 100개의 영혼을 모으지 못하거나, 주인이 바뀌면 이 검은 저절로 파괴됩니다. 제한 시간이 앞으로 2,400시간 남았습니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아이템 설명에 소현배는 압도되었다.
‘도대체 이 검은 뭐지? 이렇게 좋은 검이 전설 등급이 아니라고?’
2,400시간이라면 100일. 하루에 한 명씩만 죽이면 된다.
소현배는 다시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 성흔: 그래엄의 축복.
- 구원자에 대한 공격 시 100% 추가 대미지를 가합니다. 또한 구원자를 죽일 때 얻는 경험치가 400% 증가합니다.
조금 전에 죽인 마상욱까지 해서, 지금까지 모두 다섯 명의 구원자를 죽인 소현배.
처음에는 박충기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고, 사람을 죽였다는 자책감도 컸다.
그런데 20레벨이 되자,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불길한 성흔이 개방되었다.
그래엄의 축복.
구원자에 대해 공격력이 증가하고, 구원자를 죽이면 많은 경험치를 얻는 특성.
구원자 처단이 자신에게도 이득이 된 것이다.
이제 ‘백혼검’까지 얻고 나니, 소현배는 자신의 운명이 명확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했다.
그의 눈에 안광이 번쩍였다.
‘이 던전을 나가기 전에, 백혼검에 네놈들의 영혼을 모조리 봉인해주마.’
소현배는 아이템 뽑기로 얻은 ‘게스 후’를 사용했다.
특정 인물의 위치를 1시간 동안 맵에 표시하는 아이템.
- 추적 대상을 정해주세요.
소현배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이준기.”
그리고 소현배는 죽은 마상욱의 몫으로 뽑은 아이템도 클릭했다.
- 은신 망토.
- 사용 효과: 최대 2시간 동안 은신 상태가 됩니다. 투명 인간이 된다는 말이죠! 다른 아이템을 사용하거나 공격을 개시하면 은신이 풀립니다.
- 주의 사항: 은신 상태는 눈에 안 보이는 것일 뿐, 소리도 들리고 냄새도 납니다. 그러니까 노래를 부르거나 방귀를 뀌는 것은 삼가 주세요. 또 한 가지. 던전을 나가거나 미션이 클리어되면 이 아이템은 우주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 영원히 사라집니다. 그러니까 당장 쓰세요!
소현배는 은신 망토를 뒤집어쓰고 이준기의 현재 위치를 따라 북동쪽으로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