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39화 (39/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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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4: 인간은 금방 적응한다 (1)

Episode 14: 인간은 금방 적응한다 (1)

“주석!”

“마상욱 선배?”

풀숲에 몸을 숨기고 움직이던 두 사람은 3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를 두고 서로를 마주쳤다.

바람 소리가 강해져서 서로의 움직임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무기를 들고, 허리를 숙인 채로 그들은 대치했다.

마상욱이 먼저 말을 이었다.

“네놈이냐, 날 쏜 게?”

“무슨 얘기예요, 그게? 저기 공중에 한 30분 동안 매달려 있느라 죽을 똥 쌌구만.”

“그게 너였다고?”

“소현배 선배가, 무슨 아이템을 써서 절 매달았죠.”

“그런 아이템도 있어? 난 컵라면 나왔는데.”

“네? 컵라면? 마 선배, 이 상황에 개그가 나와요? 대단하시네요.”

“농담 아냐. 그런데, 소현배가 널 공격했다고?”

“그 사람, 유명하잖아요. 설마 모르세요?”

“그 사람이 설마 진짜 자객이라고?”

“절 죽이려고 했다니까요?”

“그거야 미션이 그렇게 나왔으니까···”

“그랬다고 아무나 막 죽여요? 아니, 그렇게 거리낌도 없이 사람을 공격해요?”

“소현배가 그랬단 말이지···”

“우리 함께 소 선배를 잡아서 왜 그랬는지 한번 물어볼까요, 마 선배?”

“뭐야, 지금 한 팀 먹자는 거야?”

“우리끼리 싸워서 피 흘리면, 남들만 좋잖아요. 저는 마 선배를 죽이고 싶지는 않아요.”

“소현배는 죽일 마음이 있고?”

“날 죽이려고 했으니까요. 정당방위잖아요.”

“그래, 그럴까, 그럼? 그런데 우린 서로를 어떻게 믿지? 네가 내 뒤통수 안 칠 거라는 걸 내가 어떻게 확신하냐고?”

“마 선배님, 제가 사람 죽일 그런 녀석으로 보여요?”

“살인자라고 얼굴에 쓰여 있는 사람도 있냐···”

“믿어주세요. 저를 소현배 선배 같은 부류로 생각하시면 섭섭합니다.”

“그런가···”

마상욱은 잠깐 생각했다.

잘은 몰라도, 구원자들의 스킬 종류는 백 가지도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슨 이상한 방법으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른다.

“주석!”

“네, 마 선배.”

“신뢰를 확인하기에는 모자랄지 모르지만, 이건 어때? 우리 서로의 빌드를 공개하는 거야.”

“에? 그게 가능해요?”

“아이템 링크 공유하는 거랑 마찬가지야. 그냥 상태창 연 다음에, 빌드를 찍어서 나한테 공유하면 돼.”

“아, 그래요? 그건 뭐 간단하죠.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뭐야, 그걸 못 찾아? 빨리해.”

“잠깐만요. 이거던가? 그런데, 선배.”

“왜?”

“아이템, 컵라면 나왔다는 거 사실이에요?”

“몇 번 말해야 믿겠냐? 링크해 줘?”

“일단 제 빌드 링크해 드린 다음에요. 하하.”

“그래, 빨리 좀 해라. 뭘 그렇게 못 찾아.”

“제가 말이죠···”

파팟!

칭!

피핏!

“크헉···”

팟!

“끄으으···”

손에 든 다마스커스로 날아오는 검날을 막으려고 했지만, 너무 빠르다.

전광석화.

눈에 잔상이 남을 정도의 속도로 달려드는 주석의 칼날.

어떻게 한 번은 막아냈지만, 나머지 두 번은 그의 몸에 깊은 자상을 남겼다.

마상욱이 배를 붙잡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컵라면은, 제가 직접 확인해 볼게요. 마 선배.”

“이, 이게 뭐 하는···”

“아, 그리고 제 빌드 알고 싶다고 하셨죠? 어둠-바람입니다.”

“으으으···”

“링크 뭐 그런 건 좀 유치하잖아요? 직접 기술로 보여드렸습니다. 짜잔!”

주석은 양팔을 벌리고 한쪽 발을 들어 다른 쪽 발 앞으로 포개며 포즈를 취했다.

“사, 살려줘···”

“그리고, 마 선배! 레벨업은 어떻게 한 거예요? 뭐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네요.”

“으으···”

“이게 지금 데스매치라서 다행이지. 마 선배한테 뒤를 맡겨야 하는 상황이었으면··· 으, 상상만 해도 싫다. 민폐 끼치지 마시고, 이제 저승에 가시죠.”

“아, 안돼··· 살려줘···”

“두 번 실수는 안 합니다. 소 선배를 얕봤다가 아까 죽을 뻔했는데. 마 선배는 얕보지 않을게요.”

눈에 힘을 주고 주석을 노려보려고 했지만, 마상욱의 시야가 자꾸 흐려졌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그런지, 밀려오는 졸음을 참기가 버거웠다.

검을 들고 달려드는 주석의 모습이, 내려오는 눈꺼풀에 가려졌다.

*****

풀숲이 길게 자란 안쪽으로 들어와서 문아린은 걷고 또 걸었다.

몸을 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빨리 이준기를 만나서 둘이 되는 게 더 중요한 상황.

섬이라서 그런지 바람이 계속해서 불어왔다.

발소리따위, 바람 소리에 묻혀 들리지도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자세를 낮게 해서,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것만 신경을 쓰고, 걷는 속도는 빠르게 했다.

한참을 걸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물론 몬스터도 보이지 않았다.

이준기의 말대로였다.

“데스매치 포맷이라면, 몬스터는 아무래도 적겠지. 공격대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투가 메인이니까.”

왼쪽 멀리 보이는 거대한 나무.

무슨 통나무집 같은 것이 꼭대기에 얹어져 있는 그 나무를 보면서 북쪽으로 문아린은 올라갔다.

나무는 꽤 멀리 있는지, 한참을 움직여도 별로 위치가 이동한 것 같지 않았다.

여기에서 나무까지의 거리는 대략 얼마 정도 될까?

이준기라면, 그런 것도 눈대중으로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이런 연습을 해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건가. 공격대장 리드를 따라 움직이고 공격하고만 반복했으니. 그런데, 대부분 나와 마찬가지 아닐까? 던전 리드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정찰, 탐색, 전략 같은 거, 누가 신경 쓴단 말인가?’

푹!

너무 경계심 없이 걸었는지, 왼발이 진흙탕에 박히고 말았다.

재빨리 오른발에 힘을 주고 빼려고 했지만, 빠지지 않았다.

‘이거 뭐지? 어울리지 않게 그냥 풀밭 한복판에 딱 사람 하나 빠지기 딱 좋은 크기로 진흙탕이 있네. 아니, 늪인가? 늪이라면···”

어느새 왼 다리가 발목 위를 지나 종아리 중간까지 빠져들고 있었다.

왠지 진흙탕이 꾸무럭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이 기분 나빴다.

아무리 힘을 줘도 왼발을 빼낼 수가 없다.

‘살려달라고 외쳐야 하나? 어떻게 하지? 소리를 듣고 오는 사람은 날 죽이려 들겠지?’

아등바등하면 더 발이 빠지는가 싶어 가만히 있어 봤지만, 작은 늪은 왼쪽 다리를 점점 더 잡아당겼다.

어느새 무릎 바로 아래까지 늪이 차올랐다.

계속해서 꾸물거리는 늪이 모양새가 무척 기분 나빴다.

‘이거, 혹시 생물인가?’

문아린은 양손 도끼 ‘척추파쇄자’를 꺼냈다.

얼마 전, ‘해운대’ 던전에서 아이템이 쏟아지는 바람에 겨우 몇백 골드 정도의 푼돈으로 먹은 에픽 도끼.

문아린은 왼발을 잘 보면서, 왼쪽 다리 아래로 마치 그림자처럼 퍼져 있는 바닥 쪽의 늪에 도끼를 대고 살살 쳐보았다.

뭔가 꿈틀거린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어차피 늪에 발이 묶여 다른 사람에게 발각되기라도 하면 당장 사냥감이 된다.

그것도 한쪽 발이 묶여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로.

문아린은 도끼를 높이 들었다.

어쩐지 꾸물럭거리던 늪이 가볍게 떨리는 것 같다고 느꼈다.

문아린은 도끼를 내려쳤다.

왼발 아래쪽에 거대한 껌딱지처럼 들러붙어 있던 늪이 반으로 갈라졌다.

소름끼치는,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내면서.

“꾸웨에엑!”

던전 전체에 울려 퍼질 것 같이 큰 소리.

화들짝 놀랐지만 이제 되돌아갈 방법은 없다.

문아린은 도끼를 들어 다시 한 차례 내리쳤다.

“꾸웨에에엑!”

‘휴대용 슬라임 늪’이 단말마를 내뱉으며 땅바닥으로 퍼져버렸다.

슈슉!

문아린은 공기를 가르는 위협적인 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화살이 그녀의 머리 바로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의 갈색 머리칼 몇 가닥이 잘려 나가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발소리가 빠르게 다가왔다.

*****

“크헉!”

화살을 맞은 주석의 몸이 3미터를 뒤로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다.

쉬쉭!

수풀을 가르며 날아온 화살이 몸을 일으키던 주석의 오른쪽 가슴에 와서 박혔다.

싸한 냉기가 오른쪽 가슴에서 시작해서 주석의 몸을 방사형으로 번져갔다.

웃음소리와 함께 수풀 속에서 소현배가 나타났다.

“크크크크! 내 빌드도 알려줄까? 바람 화살에 이은 얼음 화살은 어떠냐?”

“소 선배··· 비겁하게 숨어서 쏘깁니까?”

“숨어서 기습하던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을까? 어, 이건 또 누구셔? 마상욱 씨?”

죽어가던 마상욱이 힘겹게 눈을 치켜뜨면서 소현배를 바라보았다.

때마침 나타난 생명의 은인, 소현배에게 마상욱은 애원하듯이 말했다.

“소, 소현배 씨! 우리 둘이... 주석 저놈을 잡아 죽입시다.”

“자, 잠깐! 이러지 말고, 우리···”

당황한 주석이 힐링 포션을 꺼내면서 말을 더듬었다.

소현배가 인챈티드 롱보우에 화살을 메긴 채 주석을 쏘아 보았다.

“인벤토리에서 뭔가 꺼내는 시늉만 해봐라. 네놈의 목에 이 화살을 꽂아주마.”

“아, 소 선배! 지금 그렇게 여유 부릴 때가 아니에요···”

“그래? 하긴 내가 이러고 있을 때는 아니지.”

“사, 살려줘요, 소현배 씨, 아니, 소현배 님!”

마상욱이 소현배의 등을 향해 소리쳤다.

“너무 여유 부리면 안된다는 조언. 접수한다.”

그렇게 말하고, 소현배는 뒤를 돌아 마상욱의 이마에 화살을 쏘았다.

“꺽···!”

마상욱이 꾸물거리던 움직임을 멈췄다.

소현배는 다시 뒤를 돌아 바닥에 쓰러져 있던 주석을 찾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소현배는 빠르게 몸을 낮추었다.

“주석!”

아무 대답이 없다.

그 사이에 어디로 도망가는 게 가능하다고?

“주석!”

솨아아아···

바람이 또 한차례 불어와 풀숲에 길게 가르마를 내며 지나갔다.

‘이런 젠장. 너무 여유를 부렸나.’

수풀에 몸을 가린 채 사방을 둘러보던 소현배에게 알림창이 떴다.

- 짜잔!

- 첫 번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 한두 명 더 죽였으면 좋았을 텐데, 현재 상황을 보니 그게 쉽지 않아 보이네요. 다음번 미션으로 넘어갑니다.

- 미션을 클리어한 소현배 님에게 보상이 지급됩니다.

- 소현배 님이 레벨업 하여 27레벨이 되었습니다.

- 에픽 보상 상자 교환권을 드립니다. 안전한 곳에서 사용해주세요.

‘이제 내가 단독 최고레벨이다. 주석, 이준기. 죽여주마.’

소현배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그의 알림창에 계속해서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 첫 번째 미션을 클리어한 소현배 님에게 다음 미션 선택권을 드립니다.

- 선택 1. ‘아름다운 사냥’.

- 미션 클리어 조건: 6시간 내에 공격대 멤버 1인 이상 사망.

- 보상: 레벨업.

- 미션 실패 시 페널티: 무작위 추첨에 의한 공격대원 1인 사망 후 미션 제한 시간 6시간 연장.

- 선택 2. ‘더러운 밀약’.

- 미션 클리어 조건: 6시간 이내에 살아 있는 공격대원 반수 이상이 오크 사원 입구를 동시에 클릭.

- 보상: 공격대원은 각각 오크 사원 진행 또는 던전에서 퇴각 중 선택을 할 수 있음.

- 미션 실패 시 페널티: 공격대 전원 사망.

- 선택 3. ‘비겁자의 도주’

- 미션 클리어에 대한 보상을 포기하고, 던전에서 도망칩니다.

- 다른 공격대원들은 다시 첫 번째 미션을 반복하게 됩니다.

“미친···”

소현배는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세 번째 선택지는 무시하고, 나머지 두 개의 선택지를 여러 차례 다시 읽어보며 비교해 봤지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두 번째 선택지를 골라서 얻는 이득이 뭐란 말인가?

*****

- 첫 번째 미션을 클리어한 소현배 님이 두 번째 미션으로 ‘아름다운 사냥’을 선택했습니다.

- 두 번째 미션. ‘아름다운 사냥’.

- 미션 클리어 조건: 6시간 내에 공격대 멤버 1인 이상 사망.

- 보상: 레벨업.

- 미션 실패 시 페널티: 무작위 추첨에 의한 공격대원 1인 사망 후 미션 제한 시간 6시간 연장.

“소현배가 사람을 죽였군요!”

알림창에 뜬 메시지를 보고 하민서가 말했다.

“자세한 정황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됐군요.”

이준기가 드라이하게 답했다.

소현배가 성흔 ‘그래엄의 축복’을 가진 이상, 다른 구원자에 비해 데스매치에 있어 유리한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변수가 많은 프리포올 데스매치에서 그런 유리점은 쉽게 다른 요소에 의해 압도될 수 있다.

당장 두 명이 한 팀으로만 덤벼도 소현배가 혼자 싸워서 이길 가능성은 크게 낮아진다.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알림창 메시지가 모든 공격대원에게 전달되었으니, 소현배는 화들짝 놀랐을 것이다.

“소현배가 다음 미션을 선택했다는 말은 또 무슨 뜻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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