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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38화 (38/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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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3: 규칙이 없는 싸움 (3)

Episode 13: 규칙이 없는 싸움 (3)

‘일단 지형부터 파악해야 한다. 내게 유리한 전장을 골라야 하니.’

소현배는 일단 엄폐물이 거의 없는 해안가에서 안으로 들어왔다.

해안가에서 육지 쪽으로 사람 키가 넘는 높이의 언덕이 있어서 섬 안쪽이 잘 안 보였는데, 일단 안쪽으로 들어오니 섬 한가운데는 꽤 울창한 수풀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텅 빈 해안가보다는 역시 엄폐물이 충분한 이곳이 소현배에게 유리하다.

‘스나이퍼인 나에게 수풀은 최적의 전장이지.’

소현배는 20골드 뽑기로 얻은 아이템을 다시 확인했다.

- 결박석.

- 사용 효과: 상대방을 현재 위치에 고정시켜서 아주 답답하게 만듭니다. 그냥 얼려버리는 거죠. 상대방이 공격을 받거나 1시간이 지나면 효과가 사라집니다. 그러니까, 상대방이 꼼작 못하고 있을 때 멀리멀리 도망가는 게 좋겠죠?

- 사정거리: 100미터.

- 주의 사항: 던전을 나가면 파괴됩니다. 이거 가지고 은행 털 생각이 아니시라면, 던전 안에서만 사용해 주세요! 아차차, 그리고, 이번 미션이 끝나도 파괴되고요. 이번 미션에 꼭 쓰세요. 꼭이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이템.

던전을 나가면 파괴된다니, 아마도 FFA 포맷에만 나오는 아이템인 것 같다.

제일 좋은 활용법은 아마도, 누군가를 들판 한가운데 같은 곳에 고립시켜서, 다른 구원자들을 유인하는 용도로 쓰는 것.

‘엄폐가 절대 불가능한 곳에 결박시켜야겠지.’

공격대원들 중 마상욱만이 자신과 같은 26레벨이고, 나머지는 모두 그보다 레벨이 낮다.

유리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레벨이 크게 낮은 이준기와 문아린을 제외하면 어차피 전원 25 또는 26레벨.

최고 레벨이기는 하지만, 큰 이점은 아니다.

‘이 정도 차이라면 템빨이 큰 영향을 미칠 텐데. 이준기 이놈이 오캄이라는 무시무시한 무기를 들고 있고. 마상욱도 나보다 26레벨을 먼저 달았으니 나보다는 좋은 템을 들고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준기를 잡기로 결정을 했지만, 소현배는 계속 갈등했다.

레벨 차이만 보면 쉬운 사냥감이다.

소현배의 다섯 번째 구원자 킬 후보로 손색이 없다.

경험치도 두둑하게 들어오겠지만, 무엇보다 오캄이라는 좋은 무기를 빼앗을 수 있다.

그러나 ‘해운대’ 던전에서 보여주었던 이준기의 모습을 생각하면, 만만한 상대가 아닐지도 모른다.

화염 정령, 레프리콘, 그리고 오크 족장 앞의 주술사 부대 둘.

이준기가 아니었으면 훨씬 고생했을 것이다.

공격대원 몇 명이 죽거나, 아예 전멸했을 수도 있다.

이준기는 어떻게 그런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을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정보를 공부해서 알았다는 것은, 아무래도 믿기 어렵다.

거짓 정보가 횡행하는 그곳에서, 맞는 정보만을 추려내서 기억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차라리 문아린을 잡을까?’

그러나 소현배가 이 던전에 자원한 이유는 이준기 때문이다.

문아린을 죽이면 27레벨이 되어 가장 유리한 고지에 서기는 하겠지만, 여전히 템빨에서 이준기에게 뒤진다.

FFA는 서로가 서로를 적대한다는 의미일 뿐, 하나가 남을 때까지 서로 죽고 죽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 수도 있다.

만약 그런 의미였다면, 첫 번째 미션이라는 이름으로 겨우 한 명을 죽이라고 하지는 않았을 터.

‘첫 번째 미션이 한 명을 죽이는 거라면, 그다음 미션은 뭘까? 모두 몇 개의 미션이 있을까?’

그때, 갑자기 등에 격렬한 통증이 밀려왔다.

*****

“하하하! 죄송합니다. 한 방에 보내드려야 하는 건데.”

주석이 소현배의 등에서 칼을 뽑으면서 말했다.

FFA용 아이템 ‘은신 망토’로, 소현배의 바로 뒤까지 다가온 것이다.

소현배가 바닥을 기어 달아나려고 하자, 주석은 발을 들어 소현배의 등을 밟았다.

“으아아악!”

“소 선배님, 죄송합니다. 첫 번째 미션은 제가 먹어야죠. 아이템까지 썼는데.”

있는 힘을 다해 몸을 돌린 소현배는 공중을 향해 손에 쥔 다마스커스를 휘둘렀다.

주석은 가볍게 옆으로 한 발짝 움직이며 피했다.

상큼하게 웃으며 말하는 주석의 얼굴이 정오의 태양을 가렸다.

“거참 이상하네요. 한 방에 보내드리려고 쓴 기술인데. 오크도 이거 두 방이면 잡거든요. 소 선배님이 무슨 탱커도 아니고, 체력이 기껏해야 40 아녜요? 왜 안 죽었지?”

“사, 살인자···”

“우아, 무서워라. 살인자라니 너무하시네요. 미션이 그렇게 나왔는데, 어쩌라구요.”

“살인자···”

“소 선배님이 하실 말씀이 아니잖아요? 말해봐요, 지금까지 몇 명이나 죽였어요?”

“무, 무슨 소리야?”

“아이, 왜 자꾸 모른 척하시나. 다들 알아요. 소 선배가 던전에서 다른 길드 사람들 죽이고 다니는 거.”

“누, 누가 그래? 거짓말이야! 사, 살려줘!”

“우와, 소 선배 그렇게 안 봤는데. 추하시네요. 뭐, 실토를 안 하시더라도 죽여는 드립니다.”

주석이 소현배를 향해 상큼하게 웃으며 양손에 든 단검을 손안에서 빙빙 돌렸다.

등을 땅에 대고 누워 양팔을 휘저으며 신음하는 소현배.

주석은 양손의 단검을 바꿔 쥐고 소현배를 공중에서 내리찍을 자세로 점프했다.

*****

“휴, 살았다. 꿀맛이네, 이거.”

소현배가 인벤토리에서 꺼낸 힐링 포션을 마시면서 입맛을 다셨다.

주석은 몸이 공중에 30센티미터쯤 뜬 상태로 굳었다.

소현배는 등의 상처가 아무는 것을 느끼면서 주석에게서 1미터 정도 떨어졌다.

“주석이라고 했나? 브릴리언트 길드에는 별 또라이가 다 있구만. 너만 아이템이 있겠냐?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소 선배! 이게 뭐예요?”

“결박석이라고 하던데, 성능이 좋네. 공중에서 얼려버리네. 신기하네. 보기 좋아, 음, 아주 좋다구.”

“결박석? 설마, 난 이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소 선배한테 죽는 거예요?”

“음하하, 아마 그렇겠지? 아주 천천히 즐기면서 죽여줄게.”

“소 선배님, 잠깐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우리 둘이 팀을 짜는 게 어때요?”

“넌 그런 제안을 등에 칼을 꽂으면서 하냐?”

“지금 우리 둘이 이렇게 싸우면 다른 사람들이 너무 유리해지잖아요.”

“아니, 아니. 틀렸어. 바로 내가 유리해지지.”

“게임을 장기적으로 보세요. 겨우 첫 번째 미션이잖아요. 갈 길이 멀어요.”

“그래? 그건 네 생각이고.”

소현배는 다마스커스를 주석의 눈앞에서 빙빙 돌렸다.

여전히 웃는 표정의 주석이었지만, 관자놀이에 땀이 흘렀다.

“무서워? 주석, 무섭냐? 땀 엄청 흘리네. 식은땀?”

“태양이 좀 뜨겁네요. 9월 말인데 왜 이렇게 덥나요.”

“너 지금 되게 웃긴 포즈인 거 알아?”

“네. 잘은 몰라도 그렇겠죠. 참 남사스럽네요.”

“그렇게 공중에 뛰어오른 채로 얼어 있다니. 한 500미터 바깥에서도 잘 보일 거 같다. 하하하.”

“그러니까 좀 풀어주세요, 선배님.”

“굳이 내가 죽일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드네.”

“네?”

“그렇게 날 죽여줍쇼 하는 포즈로 있으면, 누군가가 와서 죽여주지 않을까?”

어차피 공격을 하면 결박이 풀린다.

그걸 모르는 주석을 상대로 겁을 주는 것도 재미있고 고소하지만, 너무 시간을 끌면 안 된다.

공중에 뜬 채로 얼어 있는 주석은 곧 다른 사람의 눈에 띌 것이다.

주석을 미끼로 하여 다른 구원자를 끌어들이는 것이 최고의 선택지.

결박석을 가장 효과적으로 쓴 것 같아 소현배는 싱긋 웃음이 나왔다.

“왜 웃어요, 소 선배님?”

“네놈 꼬라지를 봐라. 웃지 않을 재간이 있냐.”

“이제 좀 내려주세요.”

“다른 사람들도 네놈의 웃기는 꼬라지를 좀 구경해야지. 난 간다. 공중에서 잘 지내봐.”

“선배님! 저랑 한 팀 먹어요, 제발요, 네?”

“미친놈.”

*****

“상욱 씨, 저게 뭐예요?”

“네? 어디요?”

하민서의 손가락을 따라가 보니, 기묘한 모습이 마상욱의 눈에 들어왔다.

뭔가를 밟고 서 있는지, 어떤 사람이 기묘한 자세로 공중에 서 있는 것이다.

던전 안에 사람이라면 구원자들뿐.

왜 남의 표적이 되려는 듯 자기 위치를 노출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좋은 기회다.

마상욱은 흥분해서 목소리가 커졌다.

“사람이잖아요! 구원자라는 얘기잖아요!”

“그런 것 같아요. 상욱 씨, 목소리는 좀 작게.”

“아, 네. 죄송해요. 우리가 선제공격을 할 수 있겠네요. 2대1이기도 하고.”

그렇게 흥분해서 말하던 마상욱이 하민서를 다시 돌아보며 덧붙였다.

“2대1 맞죠, 민서 씨?”

“네? 네!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상욱 씨. 우린 한 팀이잖아요!”

“네, 네. 물론입니다. 저 사람, 잡으러 갈까요?”

“그런데, 상욱 씨.”

“네?”

“저거, 진짜 사람일까요?”

“내 눈에는 아무래도 사람으로밖에는 안 보이는데요.”

“아까 아이템 뽑기. 저는 이런 걸 뽑았거든요.”

하민서는 인벤토리의 아이템 링크를 마상욱과 공유했다.

- 도플갱어.

- 사용 효과: 자신과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를 만들어 냅니다.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상대방을 속여서 뒤통수치기에는 딱 좋은 아이템이죠! 허수아비가 아니라 도플갱어라고 불러주세요!

- 주의 사항: 사용 후 1시간이 경과하거나, 이번 미션이 끝나거나, 던전을 나가면 파괴됩니다. 소모품이라고 생각하고 마구 사용해주세요. 그래야 저희도 먹고산답니다.

“아!”

“그렇죠?”

“민서 씨 아니었으면 함정에 걸려들 뻔했네요.”

“미끼가 저기에 있다면, 미끼를 쓴 사람도 근처에 숨어 있겠죠?”

“그럴 겁니다. 미끼에 다가든 사람을 공격하려면, 그래도 일이백 미터 안에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활이 주 무기인 사람이라면, 문경새재 길드 소현배가 스나이퍼라고 알고 있어요.”

“무슨 활을 쓰는지는 몰라도, 스나이퍼라면 더 먼 거리에서 공격도 가능하겠군요.”

“여기에서부터 최대한 조심하면서 다가가죠.”

둘은 다시 원래대로 2미터 정도 서로 떨어진 상태로 정찰을 재개했다.

수풀 안에 몸을 숨기고, 서쪽 방향으로 천천히 전진했다.

“그런데 상욱 씨.”

“네, 민서 씨.”

“상욱 씨는 아까 아이템 뽑기에서 뭐 나왔어요?”

“아, 저는 꽝 나왔어요.”

“꽝도 있어요?”

“그러게 말예요. 20골드나 되는 돈을 날렸네요.”

“정말이에요? 꽝이 나왔다는 게?”

“민서 씨, 지금 의심하시는 겁니까?”

“지금 상황이 좀 그렇잖아요.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 보세요. 제가 그걸 믿을 수 있겠어요?”

이런 상황이 올까 봐, 꽝이 나왔다고 말한 것인데, 좋은 전략이 아니었나 보다.

마상욱 입장에서는 사실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다.

꽝이나 다름없는 아이템, ‘컵라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 컵라면.

- 사용 효과: 뜨거운 물을 붓고 3분! 맛있게 먹습니다. 던전 안에서 언제 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겠어요?

- 주의 사항: 던전을 나가면 파괴됩니다. 이번 미션이 끝나도 파괴됩니다. 음식물 쓰레기가 발생하는 건 안타깝지만, 다른 아이템과 형평성은 맞춰야 하지 않겠어요?

“민서 씨. 사실은 말이죠.”

“네? 사실은 뭔데요?”

“컵라면이 나왔어요. 그래서 꽝이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컵라면이요? 거짓말도 수준이 너무 낮지 않나요, 그건?”

“왜 나를 못 믿습니까? 내가 왜 민서 씨를 속인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잠깐! 다가오지 마세요. 거리 유지하세요. 우리, 2미터 떨어지기로 했잖아요. 상욱 씨가 그렇게 하자고 한 거고요. 기억 안 나요?”

“컵라면 나왔다니까요! 그거 보여드릴게요. 그러면 믿으시겠죠?”

“다가오지 마시라고요! 거기에서 꺼내세요.”

슈우욱!

“으아악!”

어디선가에서 날아온 화살이 마상욱의 오른손을 관통했다.

“민서 씨! 어디 가요! 도와줘요!”

하민서는 손에 화살을 맞은 마상욱을 놔두고 북쪽으로 뛰어갔다.

*****

처음에는 두 명이 한 팀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움찔했다.

그러나 아이템을 소비하여 어렵게 만든 미끼다.

그걸 보고 걸려든 사냥감을 놓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소현배는 일단 화살을 날렸다.

몸통을 노렸는데, 마지막 순간에 마상욱이 움찔하는 바람에 손을 맞히고 말았다.

‘둘이 싸우는 것 같더라니. 공격을 받자마자 찢어지는 팀이었군.’

마상욱이 힐링 포션을 마시는 것을 보면서, 소현배는 풀숲에 몸을 숨긴 채 움직였다.

이런 지형에서 전투를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닐 텐데, 마상욱은 겁에 잔뜩 질려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힐링 포션을 마셨다.

제대로 수풀 속에 몸을 숨기지도 않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매번 파티로 들어와서 몰이 사냥이나 하다 보면, 저렇게 되는 거지. 레벨만 높은 바보였군.’

처음의 위치에서 충분히 멀어졌다고 생각한 소현배는 다시 활시위에 화살을 메겼다.

숨을 죽이고, 정확하게 몸통을 겨냥해서 시위를 놓으려는 순간.

“크헉!”

깜짝 놀란 소현배는 활을 거두면서 소리가 나는 뒤쪽을 쳐다보았다.

조금 전까지 공중에 매달려 있던 주석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누군가가 공중에 떠 있는 그를 공격한 것이다.

‘어느 쪽에서 공격한 거지? 바람 소리 때문에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를 듣지 못한 건가?’

어느 방향인지는 몰라도 원거리 무기 사거리에 들어온 또 다른 구원자.

그리고 이제 결박석에서 풀려나 누구보다도 자기를 노릴 주석.

주석을 미끼로 이용해 마상욱을 거의 사냥했다고 생각하며 좋아하던 소현배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소현배는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변수가 너무 많아져서 일단 공격보다는 상황 파악에 치중해야 할 상황.

힐링 포션을 마시고 손의 부상을 치료한 마상욱은 이제 소현배의 손아귀를 벗어날 것이다.

자신을 추격할 것이 확실한 주석, 그리고 주석을 공격한 또 다른 구원자.

‘일단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몸을 숨긴 채, 소리에 집중하자.’

*****

누가 들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마구 뛰어오는 발소리에 이준기는 일단 몸을 낮췄다.

발소리가 들리던 남쪽에서 하민서가 나타났다.

그야말로 전력으로 달려온 모양이다.

조금만 더 다가오면 이준기와 마주칠 수밖에 없는 경로.

‘하민서. 잘 모른다. 종각 던전에 들어왔다가 전멸한 파티 멤버라는 사실밖에는. 그러나···’

“민서 씨!”

이준기가 일어나면서 이름을 부르자, 하민서는 깜짝 놀라면서 제자리에 섰다.

“준기 씨?”

분명히 자신을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인데 공격을 안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민서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준기가 입술에 손을 대고 쉿 소리를 내고 다가왔다.

“무슨 일인가요?”

“누군가 상욱 씨를, 마상욱 씨를 공격했어요.”

“그걸 목격하고 도망 오시는 거예요?”

“아뇨. 목격한 게 아니고, 마상욱 씨와 같이 있었어요. 그런데 마상욱 씨가 저를 속이려고 해서.”

“속여요?”

“네. 그래서 둘이 말다툼을 하고 있는데···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와서 마상욱 씨가 맞았어요. 저는 무서워서 도망쳤고요.”

“그렇군요.”

“공격한 사람도 무섭고, 상욱 씨도 저를 속이려고 하니 무서워서···”

“조금 전까지 뛰어오시는 소리가 너무 컸으니, 일단 자리를 옮기죠.”

“네? 네. 죄송해요.”

이준기의 리드에 따라 하민서는 북동쪽으로 움직였다.

이준기는 서너 걸음 정도 앞서 걸었다.

그 정도면 안전거리가 충분히 확보되었다고 생각하고, 하민서는 이준기를 뒤따랐다.

이준기가 낮은 자세로 걸으면서 물었다.

“한 명 더 있어도 상관없죠?”

“네? 아! 팀이 있으신 거예요? 같은 길드 한택수 씨?”

“문아린 씨와 만나기로 했어요.”

“아, 문아린 씨! 아직 못 만나신 거예요?”

“네. 아직.”

“절 믿으시는 거예요? 팀으로 받아주시는?”

“네, 일단요. 절 공격하실 거였으면 벌써 하셨겠죠?”

“감사합니다.”

풀숲에 바람이 일자, 하민서는 얼굴이 시원해짐을 느꼈다.

자신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야말로 펑펑 울어서 얼굴 전체가 눈물범벅이었다.

“잠깐 쉴게요.”

이준기가 그렇게 말하고 풀숲 사이에 앉았다.

이준기 바로 옆까지 다가와서, 하민서도 털썩 바닥에 앉았다.

“여기 앉아도 돼요?”

“네, 그럼요. 자리 맡은 사람 없습니다.”

“준기 씨는 침착하시네요. 서로 공격하라고 해서 저는 깜짝 놀랐는데.”

“누군 안 놀랐겠습니까. 살려고 숨어 있는 것뿐이죠.”

“어떻게 하시려고요?”

“누군가 절 공격하면, 그땐 반격해야겠죠.”

바람이 풀밭을 마구 쓰다듬으며 지나갔다.

바람 소리, 바닷새 소리, 그리고 멀리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가 섞여 긴장감을 지우는 듯했다.

“문아린 씨와는 어떻게 만나기로 하신 거예요?”

“북쪽 끝에서 보기로 했습니다. 이제 거의 북쪽 끝인데, 주위에 안 보이는 거 보니 아직 도착 못 한 모양이에요. 저보다 더 멀리 떨어졌나 봐요.”

“만나서 어떻게 하시려고요?”

“일단 여러 명이 되면, 다른 사람들이 공격하기 어렵겠죠.”

“누군가 죽지 않으면 미션이, 던전이 안 끝나잖아요.”

“미션 설명에서 보셨겠지만, 한 사람만 죽으면 됩니다.”

“그렇다면 누가?”

“다들 저를 죽이려고 하지 않을까요? 제가 가장 저렙이니까.”

“네? 하하···”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기도 해서 하민서는 어색하게 웃었다.

이준기가 고개를 숙이면서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쉿!”

멀리에서부터 분명하게 들려온다.

검날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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