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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9: 지옥불 호수 (2)
Episode 9: 지옥불 호수 (2)
노련한 탱커, 한상태는 되도록 먼 거리에서 화염 정령의 수와 분포를 확인했다.
그리고 공격대장 박충기와 전략을 짰다.
메인 힐러 길수연,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지만 지옥불 호수에 관해 잘 아는 이준기도 전략 테이블에 포함시켰다.
“좋아. 10마리만 잡으면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아.”
“다리 위에서 전투를 해야 하니까, 애드 거리를 잘 재야 해.”
“화염 오라에 의한 대미지는 입지 않는다 하더라도, 호수를 건너는 동안 공격대원들은 체력이 조금씩 소모될 겁니다. 그야말로 타는 듯한 더위와 싸워야 하니까요.”
“얼마나 걸릴까?”
“아까는 5분 정도 걸렸어요. 그런데 지금부터는 조직적으로 움직일 테니까, 3분 내로 가능하지 않을까요?”
“좋아. 갑시다!”
자기 인벤토리에 있는 힐링 포션은 물 먹듯이 마시는 한상태였지만, ‘마력 저항의 펜던트’는 조심조심 다루었다.
도발 당한 화염 정령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려, 최후의 순간에 펜던트를 사용했다.
5분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노련한 움직임이었다.
사용할 때마다 10%의 확률로 사라지는 아이템이 5번 사용 후에 사라지지 않고 있을 확률은 59%, 열 번 사용 후에도 사라지지 않을 확률은 35%에 불과하다.
가능한 한 적은 숫자의 화염 정령을 잡고 다리를 건너는 것도 중요하지만, 펜던트가 사라질 확률을 낮추기 위해 사용 횟수를 적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펜던트가 사라지면 단지 이준기의 재산상 손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화염 정령 사냥이 훨씬 어려워지고, 공격대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해운대’ 던전에서 죽은 열한 명의 구원자 중 반수는 바로 이 지옥불 호수를 건너다가 죽은 것이다.
열 명밖에 남지 않은 공격대로 최종 보스를 공략한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지옥불 호수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면, 최종 보스전에서의 인명 희생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물론 오크 전쟁기지의 최종 보스전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 물건을 구할 수 있다면.’
이준기, 문아린, 그리고 소현배는 침착하게 기다렸다가 한상태가 탱킹을 시작하면 얼음 화살을 날렸다.
얼음 화살의 디버프가 중첩하면서 화염 오라가 꺼지면, 딜러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화염 정령을 에워싸고 몰매를 퍼부었다.
그러는 동안, 화염 정령의 탱킹은 2탱, 성나린이 담당했다.
한상태는 그 다음 타깃이 되는 화염 정령을 풀링했다.
펜던트의 화염 저항 버프 5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제 끝이 보이는군요.”
한상태가 그렇게 말하고 여덟 번째 화염 정령을 풀링했다.
10미터.
5미터.
한상태는 펜던트의 사용 효과를 활성화했다.
- ‘마력 저항의 펜던트’가 어둠의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져버렸습니다.
마력 저항의 펜던트가 부서졌다.
언제나처럼 쿨한 표정을 유지했지만, 길수연은 남은 책으로 얼마나 힐을 넣을 수 있을지 셈하기 시작했다.
*****
화염 저항이 크게 낮아졌지만, 한상태는 노련하게 화염 정령과의 거리를 조절하면서 탱킹했다.
길수연도 칼 같은 힐을 통해 최대한 자원 소모를 줄였다.
“빨리, 이쪽으로!”
한상태가 외치자, 공격대원들이 일시에 한상태가 선 지점으로 이동했다.
다리의 동쪽 끝이 멀지 않았다.
이제 한 마리, 운이 없더라도 두 마리만 잡으면 지옥불 호수를 건널 수 있다.
마지막 한 마리가 되기를 기도하며, 한상태가 화염 정령을 풀링했다.
뜨거운 공기 속에서, 한 시간 가까이 정신 집중을 계속해온 공격대원들의 피로가 극심한 수준에 다다랐다.
아직 화염 오라가 꺼지지 않은 화염 정령에게, 장혁수가 에픽 숏소드 ‘오캄’을 휘두르며 다가갔다.
뜨거운 공기에 너무 오래 노출되어 정신줄을 놓은 게 분명했다.
“장혁수!”
박충기의 외침에 놀란 장혁수가 화염 정령에서 멀어지기 위해 백 점프를 했다.
너무 멀리.
다리의 동쪽 언저리를 지키던 오크 부대가 장혁수를 보고 달려들었다.
파박!
2탱 성나린이 다리에서 점프를 해서 동쪽 기슭으로 착지했다.
성나린이 포효하자, 장혁수가 몰고 온 오크들이 그녀를 에워쌌다.
성나린은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고 적의 수를 헤아렸다.
여덟, 아니 아홉이다.
장혁수는 뒤로 물러나면서 성나린에게 오크들의 분노를 넘겨줬다.
“빠야르 데킨!”
오크 주술사가 그렇게 외치면서 허리에 맨 북을 두드렸다.
순간, 오크들의 눈이 붉게 변했다.
아홉 마리의 오크 전원이 동시에, 광란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런. 호수 건너편에 오크 주술사가 있을 줄이야.’
예상외의 전개에 이준기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현재로서는 패시파이어를 든 자신이 성나린을 도와야 한다.
이준기는 시위에 당겼던 얼음 화살을 화염 정령에게 날리자마자, 성나린을 향해 뛰었다.
그녀를 둘러싼 오크들 중 한 마리에게 패시파이어를 날렸다.
- 치명타! 45!
- 오크 돌격병에게서 ‘광란’ 효과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칼날을 수직으로 세워 오크 돌격병에게 붙으면서 이준기는 마나 폭발을 시전했다.
- 마나 폭발로 오크 돌격병에게 45의 대미지를 입혔습니다.
- 오크 돌격병이 죽었습니다.
“책, 거의 다 썼어요. 힐 부족합니다!”
성나린에게 힐을 퍼붓던 최아람이 외쳤다.
오크 아홉 마리의 동시다발적인 공격을 받는 성나린의 체력은 무서운 속도로 떨어졌다.
“저는 됐으니, 성나린 탱커에게 힐을 주세요!”
한상태가 그렇게 외치면서, 이제는 주먹을 휘두르는 풍선이나 다름없는 화염 정령을 다리 건너편으로 끌고 갔다.
2소대 딜러들이 2탱 성나린을 돕기 위해 몰려갔다.
메인 힐러 길수연도, 제3 힐러 하정태도 성나린에게 힐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좋다, 이거야!”
들러붙는 오크 돌격병을 방패로 밀어내고,
성나린은 오른손으로 고쳐잡은 롱소드를 바닥에 쓰러진 오크 주술사의 배에 찔러넣었다.
“다음은 누구냐!”
호기롭게 외치며 뒤를 돌았지만, 오크 주술사는 죽지 않았다.
기어서 뒤로 물러난 오크 주술사는 일어서서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레르크 히돈 샤하페츠.”
“뒤로 피해!”
이준기가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오크들에 둘러싸인 성나린은 피할 곳이 없었다.
*****
퍽!
오크 주술사의 사악한 주문에, 성나린을 공격하던 광란 오크 한 마리가 그 자리에서 폭발했다.
주술로 인해 강산성 부식 물질로 바뀐 오크의 피가, 성나린을 덮쳤다.
판금 갑옷으로 전신을 덮은 그녀였지만, 목과 얼굴은 가려져 있지 않았다.
치이익!
성나린이 방패를 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쓰러졌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오크들이 쓰러진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쓰러진 그녀의 하늘이 도끼날로 가득 덮였다.
도끼들이 날아들었다.
아직도 손에 꽉 쥐고 있는 방패와 칼을 그녀는 마구 휘둘렀다.
오크 한 마리가 칼을 맞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성나린은 힘을 짜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조금 전에 일격으로 날려버린 오크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때.
그녀의 뒤에 있던 오크 돌격병이 광란 상태에 돌입하며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
챙!
오크의 도끼는 그녀의 롱소드에 걸렸지만,
그녀는 돌진해온 오크 돌격병과 함께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졌다.
붉은 거품이 부글거리는 용암의 호수를 향해, 그녀의 날렵한 몸이 까마득하게 사라져갔다.
“나린아! 성나린!”
추락하는 성나린을 향해 길수연이 팔을 내밀었지만, 이미 그녀는 낭떠러지의 반이 넘는 거리를 떨어지고 있었다.
최아람이 뒤에서 길수연을 붙잡고 다리 난간에서 떨어졌다.
분노와 슬픔으로 정신 집중이 강해진 공격대원들이 나머지 오크들을 도륙했다.
오크 돌격병들이 하나둘 다 쓰러지고, 마지막까지 버티던 오크 주술사에게 공격대원들의 칼날이 쏟아졌다.
오크 주술사가 쓰러지는 모습 뒤로, 한상태가 전력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 뒤로, 화염 오라가 다시 살아나 기세등등해진 화염 정령이 뒤를 쫓고 있었다.
*****
‘오히려 잘 됐다. 이렇게 되지 않았다면 화염 정령을 일부러 하나 더 잡아야 했을 테니.’
이준기가 강화 국궁을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활시위에 얼음 화살을 걸면서, 소현배와 문아린에게 소리쳤다.
“얼음 화살!”
화염 오라가 다시 불타오르는 화염 정령을 보면서, 둘은 얼음 화살을 활시위에 걸었다.
얼음 화살 세 개가 거대한 화염 정령을 향해 날아갔다.
화염 정령의 불타는 오라가 피식거리면서 잦아들었다.
하지만 완전히 꺼지지는 않은 상황.
얼음 화살 개수를 세고 있던 이준기가 외쳤다.
“하나 더! 문아린 님 화살 하나 남았죠?”
“네.”
그렇게 대답하면서 문아린이 활시위에 얼음 화살을 걸었다.
3층 건물 높이인 화염 정령을 향해 얼음 화살이 높은 궤적을 그리고 날아갔다.
피시시시···
화염 정령을 열 마리째 잡는 공격대원들은 화염 오라가 꺼진 것을 이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일제히 화염 정령을 향해 달려들었다.
“후아.”
이준기가 터진 물풍선처럼 바닥에 퍼져 버진 화염 정령의 잔해를 뒤졌다.
- ‘되살아난 화염의 핵’
- 등급 희귀.
- 오크 주술사들이 최고 등급 주술에 사용하는 재료입니다.
“오크 주술사들이 사용하는 거라고? 그럼 이걸 주워서 뭐 하게?”
한상태가 물었다.
“오크 전쟁기지에서, 최종 보스를 잡을 때 필요합니다. 챙겨두세요.”
이준기는 ‘되살아난 화염의 핵’을 한상태에게 넘겼다.
한상태는 이준기가 어떻게 그런 걸 알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하나하나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을, 이상한 녀석이다.
성나린이 지옥불 호수로 빨려 들어가 사망했다.
시신도 수습할 수 없는 상황.
전투의 열기가 끝나자, 침통한 분위기가 공격대를 휘감았다.
“잠시, 성나린 탱커의 희생을 기리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공격대원 전체에게 주목을 요청하고, 공격대장 박충기가 말했다.
모두 눈을 감고, 죽어간 동료를 추모했다.
원래 구원자란 그런 직업이다.
자신들이 뭘 내놓고 이런 일에 달려드는 건지, 공격대원들은 다시금 사무치게 깨달았다.
워낙 심각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일행은 잠시 나무 그늘에서 쉬기로 했다.
조슈아 나무를 닮은 이계의 나무.
그늘이 시원치 않아 공격대원들은 두셋씩 따로 앉아야 했다.
공격대장 박충기가 돌아다니면서 대원들의 상황을 체크했다.
박충기는 작전 회의를 하려고 한상태와 길수연을 불렀다.
“아 참, 이준기도 불러야지.”
한상태가 그렇게 말하자 길수연도 찬성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수뇌부가 모인 쪽으로 이준기가 불려가자, 장혁수가 낮은 목소리로 궁시렁거렸다.
“아, 씨발. 저 새끼는 뭔데 자꾸 저기에 끼는 거야? 내가 레벨이 훨씬 높구만.”
이준기는 평소처럼 무시했다.
공격대장, 메인 탱커, 그리고 메인 힐러가 모여 있는 그늘막으로 걸어갔다.
넷이 모두 모이자, 박충기가 자기 의견을 말했다.
“현재 맵 밝혀진 걸 보면, 현재 보급 수준으로 간신히 맞출 수 있을 것 같기는 해요,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힐링 포션, 모자랄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요.”
“아슬아슬할 것 같아. 간신히 되거나, 안 되거나.”
모두들 이준기를 바라보았다.
“됩니다.”
“엉?”
갑자기 너무 확신에 찬 말이 나오니 모두들 어안이 벙벙했다.
“운 좋게도, ‘되살아난 화염의 핵’을 구했잖아요. 그걸로 쉽게 갈 수 있습니다.”
“설명을 좀 해주세요.”
길수연이 사무적으로 물었다.
“오크 전쟁기지의 중심부에는 세 개의 부대가 있습니다. 족장의 부대와 두 명의 주술사가 각각 이끄는 부대, 이렇게 셋입니다. 세 부대는 전부 연결되어 있어요. 그래서 하나만 풀링해도 전원이 끌려오죠. 전부 해서 30마리가 넘는 대부대입니다. 불가능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대단히 어려운 싸움이 되죠.”
“그런데? ‘되살아난 화염의 핵’은 그거랑 무슨 상관이지?”
“아이템 설명에 나와 있듯이, 이건 오크 주술사들이 탐내는 물건입니다. 이걸 두 주술사 사이에 던지면, 두 주술사 부대 사이에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난장판이 됐을 때, 족장 부대만 풀링해서 처리할 수 있습니다.”
한상태, 박충기, 그리고 길수연, 셋 모두가 조금씩 다른 표정을 띄고 이준기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이 사람의 정체는 뭘까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것이 박충기.
어떻게 그런 걸 아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참아야지 하고 생각하는 듯한 한상태.
그리고 길수연은···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밑질 것이 전혀 없으니까, 한번 믿어보세요. 최악의 경우라도, 그 세 부대가 동시에 풀링되는 것뿐이니까, 그냥 풀링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박충기가 물었다.
“하지만 그 세 부대가 모두 링크되어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지? 한 부대씩 풀링할 수 있는데 괜히 위험한 짓 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잖아?”
“그건, 한상태 탱커님이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죠?”
“응. 그렇지. 적 무리가 어떤 방식으로 링크되어 있는지는 잘 관찰하면 보이니까. 그런데···”
“네?”
“어떻게 그렇게 탱킹에 관해서 잘 알지? 설마 탱킹을 해 보기라도 한 거야?”
“열심히 공부합니다. 실전이 아니더라도,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배울 수 있는 게 많이 있죠.”
길수연이 말했다.
“저는 믿어볼래요. 이준기님 아니었으면 지옥불 호수 건너는 것, 훨씬 더 힘들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