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25화 (2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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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9: 지옥불 호수 (1)

Episode 9: 지옥불 호수 (1)

새벽 네 시에 불침번을 끝내고 잠이 든 이준기는 일곱 시에 눈을 떴다.

또 장혁수가 없어졌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 제정신이야? 여긴 2층이라고.”

장혁수가 나타났다.

그 비싼 베르사체 재킷이 온통 피바다였다.

“하, 하하. 대장님, 저 칭찬해 주세요. 새벽부터 공격대에 도움 되려고 전투 연습했습니다. 잘했죠?”

박충기가 앞으로 나가서 물었다.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습니다. 깔끔해요!”

“야, 장혁수! 여기 2층이라고. 내가 몇 번 말해야 돼? 이제 힐링 포션을 살 수도 없다고. 이제 힐링 포션 없으니 힐 달라 이거야? 네가 탱커냐?”

“아, 정말. 우리 대장님. 경험치 쌓아서 공격대에 도움 되려고 그런 거잖아요. 왜 저한테만 그러세요.”

“힐링 포션은 몇 개 남았어?”

“없는데요.”

박충기는 중급 힐링 포션 두 개를 장혁수에게 넘겼다.

그리고 다시는 개인행동을 하지 말라고, 장혁수를 다그쳤다.

어깨를 붙잡고 흔드는 폼이, 정말 빡친 모양이었다.

문경새재 길드의 스폰서, 백제그룹 장오현 회장의 아들 장혁수.

장오현 회장 입장에서 봐도, 아들이 죽는 것보다는 길드 마스터에게 혼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장혁수가 공격대에 있는 것만 해도 박충기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통제가 안 되니, 더욱 불안했다.

장혁수가 이렇게 위험한 던전에 오겠다고 자원할 때부터 박충기는 심기가 불편했다.

“장혁수. 공격대장이자 네 길드 마스터로서 경고한다. 다시는, 개인행동 하지 마라.”

“네?”

“한 번만 더 개인행동을 할 경우, 공격대에서 내보내겠다.”

“히힛.”

“여기 공격대원 전원이 증인이야. 사람들 앞에서 한 말을 내가 어길 것 같냐?”

“키킥. 알겠습니다, 대장님. 길마님.”

‘해운대’ 던전은 1층도 넓었지만, 2층은 더 넓었다.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은 차원문과 마찬가지다.

단지, 던전 안에 있을 뿐.

1층, 2층이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사람들이 편의상 그렇게 부르는 것일 뿐, 2층이 1층 위에 포개져 있다는 말도 아니다.

그러니까 기후나 면적이나 서식하는 몬스터가 비슷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1층과 마찬가지로 오크들이 깔려 있었다.

오크 학살자의 반지를 낀 이준기의 오크 대상 치명타율은 여전히 무려 54%에 이른다.

레벨업을 하면서, 민첩성에 몰빵하기가 어려워서 조금 낮아졌지만, 여전히 무시무시한 수치.

2층에 올라와 처음에는 조금이나마 몸을 사렸던 메인 탱커 한상태.

1층과 별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에, 이제는 처음처럼 마구 들이댔다.

열 마리 정도 오크 무리를 향해 돌진으로 전투를 개시하고, 한두 마리가 남은 시점에서는 그걸 2탱 성나린과 3탱 윤동직에게 넘기고 다른 무리를 향해 달려 나갔다.

공격대장 박충기도, 메인 힐러 길수연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워낙 매끄러운 탱킹에, 웬만한 상처는 스스로 힐링 포션을 마셔대니 당연했다.

그렇게 공격대는 맵 중앙 언저리까지 별 탈 없이 전진했다.

갑자기 공기가 뜨거워졌다.

해가 중천을 지나고 있어 그렇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뜨겁다.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자, 공격대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눈 아래로 천 길 낭떠러지.

그 아래에는 기포를 부글거리며 용암이 들끓고 있다.

‘지옥불 호수’에 다다른 것이다.

무섭기는 해도, 그 장엄한 광경을 보며 탄성을 지르는 공격대원들.

뭔가 준비를 할 새도 없이 눈앞으로 두둥실, 거대한 불덩어리가 솟아올랐다.

*****

“꺄아악!”

2소대 딜러 문아린이 나가떨어지며 비명을 질렀다.

탱커들이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화염 정령이 불 주먹을 날린 것이다.

놀란 한상태가 위협음을 내질러 화염 정령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르르르르.”

화염 정령이 기괴하게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리며 한상태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파팟!

공기 중에서 붉게 타오르는 창 두 개가 나타나서 한상태를 찔렀다.

반사적으로 팔을 쳐든 한상태.

화염 창 둘 중 하나는 전설급 방패 ‘아스트라아제’에 막혀 사라져 버렸지만, 나머지 하나는 그대로 한상태의 허벅지를 찔렀다.

“흐읍.”

한상태가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물, 물 전문화 딜러!”

공격대장 박충기가 다급하게 소리 질렀다.

“여기 있습니다!”

소현배가 활을 들고 나타났다.

그의 주변을 돌던 파란 색 ‘물의 책’ 두 권이 그의 활 끝에 모이면서 얼음 화살로 바뀌었다.

콱!

마치 콘크리트 구조물에 쇠파이프가 박히는 소리가 나면서, 얼음 화살이 얼음 정령의 팔뚝에 적중했다.

화염 정령을 둘러싸고 활활 타오르던 화염 오라가 사그라들었다.

“뭐, 뭐지?”

물의 책으로 소환한 얼음 화살을 당기던 소현배가 활시위를 놓으며 말했다.

조금 전 화살은 그가 쏜 것이 아니다.

“이준기!”

“꺄아, 준기 오빠!”

이준기가 강화 국궁에 얼음 화살을 하나 더 장전했다.

길수연의 힐을 받고 일어선 한상태가 다시 화염 정령을 도발했다.

얼음 화살 두 개를 맞은 화염 정령은 아까보다 훨씬 덜 뜨거운 오라를 발산하고 있었다.

“스톤 스킨!”

한상태가 방어력을 올리는 스킬을 구사했다.

‘아예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물리 저항이 문제가 아니다. 1급 탱커인 한상태지만, 당황했구나.’

이준기는 얼음 화살을 화살통에서 뽑으면서 한상태를 향해 외쳤다.

“흙 보호막!”

그 말을 듣고, 한상태가 ‘흙 보호막’ 스킬을 시전했다.

다음 한 차례의 공격을 무효화시키는 스킬.

화염 오라로 인한 대미지는 들어오겠지만, 물리 저항이나 올려주는 스톤 스킨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

소현배와 이준기가 연이어 얼음 화살을 쏴대자, 화염 정령을 감싸고 돌던 불의 기운이 어느새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이제 남은 건 그저 붉은 용암 덩어리에 불과하다.

화염 오라에 팔다리를 그을려 가까이 붙지도 못하던 공격대원들이 일제히 공격에 나섰다.

이준기도 강화 국궁을 패시파이어로 교체하고 화염 정령의 뒤로 돌아가 검을 휘둘렀다.

- 33!

- 화염 정령이 ‘둔화’에 걸렸습니다.

화염 오라가 사라진 화염 정령은 동급의 다른 몬스터에 비해 물리 저항도 낮은 물렁살에 불과하다.

공격대원들이 둘러싸고 집중 공격을 퍼붓자, 불이 꺼진 화염 정령은 순식간에 녹아 버렸다.

피시시시···

“휴우.”

“후아.”

여기저기에서 공격대원들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이준기!”

“네?”

“넌, 탱킹도 할 줄 아냐?”

화염 정령이 쓰러지자마자 달려 온 건지, 한상태가 이준기의 눈앞에 서서 질문을 했다.

*****

박충기의 리드에 따라, 공격대원들은 지옥불 호수에서 떨어져 뒤로 후퇴했다.

멀리 아래로 보이는 지옥불 호수.

온통 불바다인 그 호수 위를 돌아다니는 화염 정령이 한둘이 아니었다.

한 마리를 잡는 것도 꽤 힘들었는데.

모두들 겁을 집어먹기에 충분했다.

“잠깐, 여기서 정비를 하고 움직입니다.”

야트막한 언덕길을 다시 내려온 공격대는 앉아서 쉬었다.

조슈아 나무 그늘을 찾아서 앉았지만, 나무 자체가 줄기가 성겨서 그런지, 그늘막이 초라했다.

두 시를 향하는 태양은 강렬하게 그들 위로 내리쬐었다.

이준기가 상황을 미리 알고 대응을 하는 것, 그것을 사람들은 이미 목격했다.

이제 그의 말이 먹힐 것이다.

박충기와 한상태의 요청에 따라, 이준기는 브리핑을 시작했다.

“보셨다시피, 저놈들은 얼음 화살로 잡아야 합니다. 딜러 분들 중 몇 분, 저와 함께 얼음 화살을 담당해 주세요. 얼음 화살이 많지 않으니, 소대당 한 명에게 얼음 화살을 나눠드리겠습니다. 1소대는 스나이퍼이신 소현배님이 하시고, 3소대는 제가 하겠습니다. 2소대에서 하실 분, 지원해 주세요.”

“제가, 제가 할게요. 준기 오빠.”

누구보다 빠르게, 문아린이 손을 들었다.

“공략법은 간단합니다. 얼음 화살을 3~4발 정도 맞으면, 화염 정령의 화염 오라는 사라집니다. 그렇게 되면, 아까 보셨듯이 그냥 물렁살 바보 몬스터에 불과하죠. 그러니까 화염 오라가 사라질 때까지는 탱커 한 분만 화염 정령에게 다가가는 게 좋습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새어 나왔다.

이준기는 계속했다.

“마력 저항, 다들 별로 높지 않으시죠? 화염 저항이 높으면 화염 오라에서 받는 대미지가 크게 감소합니다. 많은 공격대원들이 화염 저항을 갖추면 좋겠지만, 현재로서는 일단 메인 탱커 한 분이라도 갖추셔야죠.”

지금 상황이 불편한 건지, 한상태가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말했다.

“마력 저항, 25밖에 안 됩니다. 마력 저항이나 화염 저항이 붙은 템은 하나도 없고요. 이것 참. 메인 탱커로서 부끄럽네요.”

박충기가 보충 설명이라도 하듯이 말했다.

“여기가 이런 상황인지 아무도 몰랐으니, 준비를 못 한 게 당연합니다. 지금까지 원정 들어왔던 공격대 중에 여기까지 진행했던 팀도 없었고요.”

박충기의 말이 끝나자, 이준기가 말했다.

“제가, 화염 저항템이 조금 있습니다. 하나는 빌려드리고, 하나는 팔게요.”

돈을 받고 팔겠다는 말에, 공격대원들 사이에 살짝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박충기가 재빨리 말했다.

“그럼. 당연하지. 던전에 자선활동 하러 들어온 것도 아니고. 공격대원들 목숨이 걸린 일인데. 공격대장이자 관할 길드 마스터로서, 최대한 공정한 값을 치뤄주겠소.”

“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이준기는 인벤토리를 열어 아이템을 링크했다.

공격대원 전체의 상태창에 이준기가 링크한 내용이 표시되었다.

- 소방용 부츠

- 신발. 일반 등급.

- 물리 저항 0. 화염 저항 30.

“던전 입구 자판기에서 40골드에 구입한 겁니다. 가격이 맞는지는, 나중에 확인해 보시면 되겠죠. 100골드 청구해도 될까요? 이런 사소한 물건으로 폭리 취했다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습니다.”

“당연하지. 100골드 주겠네.”

박충기가 재빨리 대답했다.

“빌려드리려고 하는 템은 이겁니다.”

이준기가 아이템을 링크하자, 여기저기에서 탄성과 논평이 흘러나왔다.

“헉.”

“우왓!”

“에픽템이네?”

“이준기 님은 대체 이런 걸 어디에서···”

- 마력 저항의 펜던트.

- 장신구. 에픽 등급.

- 착용 효과: 마력 저항 +5

- 사용 효과: 7개 영역 중 하나를 골라 해당 계열 마력 저항을 5분간 25만큼 증가시킵니다. 사용할 때마다 아이템이 영구히 파괴될 가능성이 10% 존재합니다.

“빌려드리는 것이긴 한데, 저한테도 리스크가 상당히 큽니다. 사용할 때마다 무려 10% 확률로 아이템이 아예 사라져 버릴 확률이 있습니다.”

“아, 그렇군. 이런 에픽 아이템이 사라져버리면.”

“에픽급 이상 아이템 중에 이런 식으로 사용할 때마다 부서질 확률이 붙은 게 꽤 있죠.”

“저도 하나 쓰다가 부서져 봐서 잘 압니다. 그 고통은···”

“펜던트를 사용하면 5분간 화염 저항을 25 높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상태 탱커님 화염 저항이 85까지 높아지죠. 한상태 탱커님 레벨을 고려하면, 화염 오라로 인한 대미지가 절반 이상 감소한다는 이야깁니다.”

“그건, 훌륭하군요. 화염 오라 때문에 힐 하기 무척 힘들었거든요.”

길수연이 말했다.

“공격대 전체로서도 매우 좋은 거죠. 좋습니다. 이준기 님, 사용할 때마다 다음번에 펜던트가 부서질 확률이 증가하는 거니까, 사용할 때마다 10골드를 드릴게요. 그 정도면 괜찮을까요?”

사용할 때마다 부서질 확률이 증가한다는 박충기의 말은 틀렸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정확하게 사용료를 매기는 것이 아니다.

이준기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이건, 진짜 소방용 부츠네. 소방대원들이 쓰는 것과 비슷한걸.”

한상태가 소방용 부츠를 신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훨씬 더 고급져 보이는 금속제 전투 장화가 한상태의 인벤토리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은 화살 문제인데, 저한테 얼음 화살이 36개가 남아 있습니다. 살짝 보니까 화염 정령을 열 마리는 잡아야 길을 낼 수 있어 보입니다. 충분히 샀다고 생각하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소현배 님은 얼음 화살을 만들 물의 책을 조금만 남겨 주세요.”

“알았어요.”

“우선 제가 드리는 얼음 화살을 쓰시고, 나중에 모자라면, 스킬로 만들어 주세요.”

“네.”

그렇게 이준기의 공격대 첫 브리핑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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