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24화 (2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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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8: 해운대 (4)

Episode 8: 해운대 (4)

휴식을 취하면서 공격대는 여러 가지 문제를 논의했다.

14명이 되어버린 현재의 공격대로 어떻게 진행을 할 것인지,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오늘 2층을 올라갈 것인지,

무엇보다, 원래 일정대로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을지.

이준기는 생각했다.

원래의 공격대는 15명이었고 지금보다 평균 레벨이 살짝 높았다.

그런데 14인의 공격대로 과연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을까?

자판기 앞이 성황이었다.

다 떨어진 힐링 포션을 채워 넣는 사람들.

돈이 없다면서 골드를 빌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길드 마스터가 셋이나 있는 공격대.

골드는 얼마든지 있었다.

균등하게 나뉘어 있지 않은 것일 뿐.

이준기는 얼음 화살을 10개 더 샀다.

화살 20개까지는 인벤토리 한 칸을 차지한다.

그래서 20개를 샀던 것인데, 이제 10개를 더 샀으니 인벤토리 압박이 심해졌다.

얼음 화살 30개, 화염 정령 한 마리당 세 발씩 쓴다면 10마리, 네 발씩 쓴다면 일곱 마리를 잡을 수 있다.

‘애매한데.’

이준기는 짧게 한숨을 쉬고 얼음 화살 10개를 더 샀다.

‘40개면 충분하겠지. 한 마리당 네 발씩 써도 열 마리를 잡을 수 있다. 마세라티 판 돈은 이제 싹 없어졌군.’

짧게 점심 식사를 마치고, 공격대원들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2시도 되지 않았다.

원래 계획대로, 오늘은 2층까지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

경험이 많은 구원자들이어서 그런 건지, 공격대장의 지휘가 훌륭해서 그런 건지, 공격대는 이미 청소해 놓은 길을 따라, 애드 없이, 계단까지 직행했다.

공격대장 박충기가 브리핑했다.

“2층 올라갑니다. 처음이신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던전의 각 층은 별개의 던전이라고 보는 게 좋습니다.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건 퇴각에 해당합니다. 퇴각 페널티에 걸린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위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1층에서 처리할 것이 남아 있는지, 잠깐 체크하도록 하겠습니다.”

“2층이라. 긴장되는군. 준기는 긴장 안 돼?”

“왜 아니겠어요. 긴장도 되고, 기대도 됩니다.”

윤동직의 말에 이준기는 모범생 같은 대답을 했다.

3소대는 이제 4명으로 줄었다.

21레벨 문아린이 다시 2소대로 갔다.

“아쉽네요. 사상 최강의 루키, 이준기 님 활약을 좀 더 봐야 되는데.”

“바로 옆인데요, 뭐.”

“그건 그렇지만, 아쉽네요.”

점검을 마치고, 공격대원은 대열을 지키면서 계단을 올랐다.

조용한 가운데 긴장감이 흘렀다.

- 2층으로 입장하시겠습니까? 1층으로 다시 내려올 경우 퇴각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박충기의 지시에 따라, 모두 ‘예’를 클릭했다.

주변이 빛으로 가득 차더니 모두의 눈앞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삭막하잖아!”

“황무지군.”

“정말이네. 다른 던전이라고 봐야겠네.”

녹음이 가득하던 1층과 달리, 2층은 황무지의 적갈색으로 꽉 차 있었다.

무수한 선인장.

나무도 많이 있었지만, 푸르른 잎이 무성한 그런 나무는 아니었다.

지구의 식물과는 다른 것들이지만, 구원자들은 그냥 비슷하게 생긴 지구 식물 이름으로 불렀다.

‘오크어로는 분명 ‘빌게’라는 이름의 나무지만, 구원자들은 비슷하게 생긴 지구 식물 이름으로 부르지. 바로 조슈아 나무(Joshua Tree)다.’

그 나무를 볼 때마다 누군가가 생각나는 이준기로서는 별로 달가운 나무가 아니다.

경치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2층 입구 지역을 순회하던 오크 무리가 달려들었다.

*****

2021년 9월 12일, 일요일.

회귀자 이준기의 첫 노숙.

공격대장 박충기는 직접 공격대원 전체의 보급 상황을 점검했다.

“그래서, 김새로미님. 식량은 아직 충분하시고, 힐링 포션은 작은 거 두 개, 큰 거 일곱 개 가지고 계신다는 거죠?”

“네, 공격대장님.”

“좋습니다. 내일도 힘내 주세요.”

‘길드 회장이나 되는 사람이 이런 일을 직접 하다니. 괜찮은 사람이군.’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이번 원정에서 단지 네 명만이 살아서 던전을 나가게 된다.

박충기, 한상태, 길수연, 그리고 장혁수.

한상태와 길수연은 절대 박충기 파벌이라고 볼 수 없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상덕 협회장 쪽에서 볼 때 살아남은 사람들을 한 패거리로 몰 논리는 충분히 있었다.

이도협과 남궁훤을 비롯한 협회장 파 구원자들은 전원 사망했다.

그런데 박충기 소속 길드인 ‘문경새재’에서는 겨우 한 명이 사망했고, 최저 레벨인 장혁수조차 살아남았다.

한상태와 길수연은 협회장 선거라는 정치적 이슈에 관심이 없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이상덕보다는 박충기 쪽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상덕 협회장 파벌이 원정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협회장 파와 반협회장 파 사이의 갈등은 계속 깊어진다.

그리고 결국 ‘세종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공격대가 던전 안에서 서로 치고받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

그 모든 사태의 원흉이 이상덕이라는 것, 그리고 그 배후에 일본이 있다는 사실은 너무 늦게 알려진다.

‘박충기도 이미 사망한 다음이고.’

길드 전쟁으로 인해 한상태, 권영호, 박충기 등 1세대 탑랭커가 전원 사망하고, 이준기, 길수연으로 대표되는 제2세대 라인업이 한국 구원자 계의 주류로 등장하게 된다.

말하자면, 이준기는 길드 전쟁의 수혜자라고도 볼 수 있다.

이준기와 길수연의 빠른 성장 속도를 생각하면, 3인방이 사망하지 않았더라도 그들은 곧 최고 레벨 대열에 합류했을 것이다.

그러나 3인방의 사망으로 인해 그 시점이 한두 달 빨라진 것은 엄연한 사실.

던전 안의 계절은 묘하게도 던전 바깥과 비슷하다.

9월 초이니 아직은 늦여름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해가 들어가고 나니 쌀쌀해졌다.

황야에 어울리는 모닥불을 만들어 놓고 구원자들은 자기 전에 잡담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다.

김새로미와 문아린이 생각에 잠긴 이준기 옆으로 와서 앉았다.

“앉아도 되죠?”

“그럼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준기 님은 정말 노련하신 느낌이에요. 우리들도 힘들어하는 던전에서 정말 침착하시네요.”

“그러게요. 14레벨에 던전 2층에 올라와 본 사람이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있을까요?”

“그렇네요. 다들 여러 좋으신 분들 덕분입니다.”

“이번에 들어오시게 된 게, 자리 하나가 끝까지 비어서 그랬다는데, 사실이에요?”

“네. 자리가 비면 가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정말로 그저께 밤에 공격대장님이 전화를 하셨더라구요.”

“왜 그렇게 지원자가 없었을까요. 한국 최초 C급 2층이라서 그런가?”

김새로미가 물었다.

“윤동직 탱커님이 그러시는데, 준기 님은 공부를 열심히 하신다던데요. 이런 유형의 던전에 대해서도 좀 아시는 게 있나요?”

섣불리 대답할 입장이 아니다.

이준기는 잠깐 생각했다.

이들에게 이번 던전에 관한 정보를 알려서 나쁠 건 없다.

믿어주기만 한다면 말이지.

그러나 어차피 이들은 죽을 것이다.

곧 죽을 사람과 친해지는 게 두려운 것이다.

이준기가 입을 뗐다.

“동직이 형님이 사람이 워낙 좋으니까, 그렇게 얘기하시는 것뿐입니다.”

김새로미가 말했다.

“그래요? 없는 사람 이야기하는 건 좀 그렇지만, 윤동직 탱커님 무섭게 생겼잖아요. 우락부락해 가지고. 소문도 있고요.”

문아린도 거들었다.

“구원자 각성 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대답을 안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잖아요.”

“저도 과거는 별로 자랑스럽지 않은데요? 하하.”

“네? 준기 님 과거가요? 뭐 하셨어요?”

“3년 동안 공시족이었습니다. 계속 떨어지기만 했고요.”

“네? 정말요? 너무 안 어울려요.”

“가난한 지방대 출신 구직자한테 옵션은 별로 많지가 않더라고요.”

“무슨 공무원요?”

“경찰요.”

“경찰 공무원은 좀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한데요. 준기 오빠 같이 샤프한 미남이 경찰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경찰 홍보 포스터도 좀 찍고요.”

“하하. 무슨 말씀을. 농담도 참.”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김새로미가 이준기의 팔을 잡고 물었다.

그걸 봤는지, 문아린도 이준기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저도 오빠라고 부를게요. 준기 오빠.”

“아이, 정말 왜들 그러세요.”

모닥불이 센 것도 아닌데, 갑자기 땀이 흘렀다.

만화처럼, 이준기는 난처한 웃음을 지으면서 뒤통수를 긁적였다.

“내일도 잘해봐요.”

“글구, 나중에 던전 나가면 맛있는 거 좀 사주세요, 준기 오빠.”

정말 난처했다.

전우애는 병사들을 총알 밥으로 쓰려는 지휘관들에게나 유용한 것이다.

전사 본인에게는 쓸데없는 감정이다.

이성적인 판단을 그르치게 하니까.

*****

노숙은 단지 지붕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몬스터의 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

두 시간마다 교대로 불침번을 섰다.

이준기는 가장 괴로운 중간 시간 불침번을 자원했다.

금방 잠이 들고 깨는 체질이라, 군대에 있을 때도 중간 시간의 불침번이 힘들지 않았다.

불침번 파트너는 2소대 힐러, 최아람.

길수연 다음으로 높은, 22레벨의 힐러.

이틀이나 같은 공격대에 있어서 그런지, 최아람은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왔다.

“군대, 다녀왔어요?”

“그럼요. 제가 나이가 몇인데요.”

“별로 그렇게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으셔서.”

“스물여덟입니다.”

“헉, 정말요? 대학생이라고 하셔도 되겠는데. 복학생도 아니고 군대 가기 전으로.”

“저레벨이라고 다들 봐주시는 건가. 그런 말씀 들으니 쑥스럽네요.”

“형이라고 부를게요. 저는 스물다섯 살이거든요. 군대랑 워홀 다녀와서, 아직 3학년이긴 하지만.”

남자 둘이 모이니, 군대 얘기가 꽃폈다.

더구나 불침번을 서는 중이니.

몰래 라면 끓여 먹던 이야기에 이르자, 갑자기 라면이 너무 먹고 싶어졌다.

“으아, 라면. 들어오기 전에 해물탕이고 자시고 라면을 먹는 건데. 라면느님.”

“라면, 저는 너무 먹어서 지겹네요.”

“형, 말 놓으시라니까요.”

“아, 그래. 잘 안 돼서. 아람아.”

“형도 참. 그리고 라면느님은 언제나 진리죠.”

“구원자 되고 나서, 좋은 거 많이 먹지 않았어? 나는 아직 초짜라 뭐 별로 그런 경험이 없지만.”

“그래도 전 라면이 젤 좋아요. 던전에 라면을 가지고 들어올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건 그렇네. 던전표 식량은 참 맛이 없으니.”

“그러니까요. 이렇게 불침번 설 땐, 역시 봉지면이. 캬~. 침 넘어간다.”

다들 자는 고요한 시간에 그런 상상을 하다 보니, 하늘에 떠 있는 달이 마치 라면 냄비같이 보였다.

“양은 냄비에 끓여야죠?”

“그런 희귀템이 있으면 당연히 그래야지.”

“일단 파를 좀 썰어 넣어야죠.”

“파 좋지. 파 송송, 계란 탁.”

“형은, 라면부터 넣어요? 아니면 수프부터?”

“난 수프는 맨 마지막에 넣는데?”

“오오, 저랑 똑같네요. 그게 그렇게 해야 라면의 본질을 느낄 수 있잖아요.”

“그렇지. MSG의 진한 향취가. 하핫.”

“형, 이렇게 얘기해 보니까 그냥 보통 사람이네요.”

“응?”

“멀리서 볼 때는 좀 무섭다고나 할까. 너무 진지하다고나 할까. 그랬는데.”

“하하. 그래? 예상외네. 내가 진지해 보여?”

과거로 돌아온 후, 집에 전화를 한 적도, 친구를 만난 적도 없다.

그래서인지 붙임성 좋은 최아람과의 대화가 즐거웠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속은 불편했다.

최아람.

‘해운대’ 던전 생환자 명단에 없던 이름이다.

“나중에, 협회 행사 같은 거 하면 자주 봬요, 형.”

“그래. 그러려면 죽지 마라.”

“아이, 참. 죽긴 누가 죽어요? 존나 센 우리 공격대에서. 아까 애드나서 오크 30마리가 한꺼번에 덤볐는데도 이겼잖아요.”

“그래도 위험했지.”

“형 힐도 제가 한 번 넣었어요. 별로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엄청 침착하게 잘하시던데요. 그러니까 다들 신기하게 생각하는 거죠. 형은, 제가 느끼기에, 한 20렙대 중후반? 그 정도 경험이 되는 구원자 같아 보인다고요.”

“자꾸 주변에서 비행기 태우니까 어지러워. 그러지 마.”

“암튼 뭐 우리 공격대는 최강이라고요. 박충기 대장에, 한상태, 권영호, 길수연.”

“동료가 센 건 좋은 거지. 하지만, 결국 네 목숨은 네가 지켜야 하는 거니까.”

“넵, 알겠습니다. 누가 보면, 제가 14렙이고 형이 22렙인지 알겠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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