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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8: 해운대 (3)
Episode 8: 해운대 (3)
남궁훤은 기가 막혔다.
어떻게 한꺼번에 덤벼든 오크 30마리를 전멸시켰지?
게다가 공격대원은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
탱커 한상태와 힐러 길수연을 너무 우습게 봤나?
애드가 발생했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공격대원 중 단 한 명이 사라졌다는 것도.
목격자가 없더라도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남궁훤은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했다.
그러나 생각나는 게 없었다.
한길협에서 제명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공격대원 14명과 그들의 소속 길드뿐 아니라, 모든 구원자들이 그를 적대시할 것이다.
이제 빠르게 던전을 나가서, 다른 나라로 도망을 가든지 하는 방법밖에 없다.
기자들에게는 적당히 둘러대면 된다.
진실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이상덕이 나를 도와줄까? 아니, 직접 내게 일을 맡긴 건 사무총장 신학길이지. 그가 나를 도와줄까?’
협회장 이상덕이든, 사무총장 신학길이든, 도와줄 것 같지 않았다.
실패했다고 솔직하게 말한다면, 당연히 도움을 거절할 것이다.
성공했다고 거짓말을 한다면, 박충기를 제거했다는 증거를 요구할 것이다.
며칠 기다려보고, 박충기가 죽은 것이 확실해지면 대가를 지급하겠다고 말하겠지.
‘이렇게 된 거. 신학길 이 새끼라도 죽이고 제3국으로 떠야겠다.’
남궁훤은 수풀 속을 최대한 조용하게 이동했다.
*****
박충기에게 문경새재 길드 간사이기도 한, 딜러 소현배가 다가왔다.
“박충기 대장.”
“왜?”
“남궁훤이 고의로 그런 일을 벌였다면, 배후가 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누구? 설마, 이상덕이?”
“그렇다고 봐야죠.”
“그 자식이 개자식인 건 맞지만, 정말 그 정도까지 할까?”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남궁훤을 잡아야 합니다.”
“벌써 도망가지 않았을까?”
“사주를 받은 거라면, 대장 시체를 확인하려고 싸움을 지켜봤을 겁니다. 소멸 스킬을 익힌 놈이니 일도 아니죠.”
“지금 가서 붙잡자는 거야?”
“도망가지 못하도록 오두막만 지키면 됩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빨리 움직여야겠는데.”
“놈과 레벨이 비슷한 제가 가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오크들 잡느라고 스킬이 남은 게 없으니, 누군가 같이 가야 합니다.”
“누구?”
“우리 길드 내에서 해결해야죠. 장혁수와 제가 가겠습니다.”
*****
에둘러 오는 바람에, 오두막까지 오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입구 오두막에서 2층 계단까지, 길을 뚫어 놓았지만, 공격대 전체가 바로 그 길을 통해 오두막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남궁훤은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라도 외진 곳을 따라 이동해야 했고, 기척도 숨겨야 했다.
공격대에게 발견돼도 문제지만, 몬스터 무리에게 걸려도 위험한 상황.
그래서 공격대보다 훨씬 먼저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남궁훤은 늦었다.
오두막이 보이는 공터까지 와서 한숨을 돌린 남궁훤.
아직 본대는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다.
“남궁훤.”
나무 뒤에서 사람 하나가 나오며 말했다.
“헉, 뭐냐? 장혁수? 왜 여기 있지?”
“선배 덕분이지. 오크 30마리 잡느라고 정말 죽을 뻔했네. 좋은 경험이야. 경험치 바가 많이 찼어.”
“무슨 소리야?”
“네가 독화살 날려서 오크 무리 끌어오는 거, 내가 다 봤거든. 나는 탱커가 완전히 자리를 잡은 다음에 움직이는 주의라서 말야. 네가 독화살 날릴 때까지만 해도, 놀고 있었거든.”
“무슨 소리냐? 독화살이라니?”
“시치미 떼지 마시고. 할 말이 있으면 나랑 같이 갑시다. 박충기 공격대장이 기다리시고 계시니.”
“어, 어디에 있는데? 박충기 대장.”
“한 10분쯤 있으면 도착할걸?”
“아, 그래? 아직이란 말이지?”
남궁훤이 숏소드 ‘오캄’을 꺼냈다.
장혁수도 자신의 무기를 꺼냈지만, ‘오캄’은 장혁수의 ‘다마스커스’에 비해 월등한 무기.
남궁훤이 싱긋 웃자, 장혁수의 등을 타고 땀방울이 흘렀다.
무기도, 레벨도 현격한 차이.
장혁수는 그래도 상대를 도발했다.
“무기를 꺼냈단 말이지? 이건 실토나 다름없는데.”
“약쟁이 애송이. 한 수 가르쳐주마.”
남궁훤이 전광석화와 같이 움직이며 장혁수의 오른팔을 치고 지나갔다.
장혁수가 다마스커스로 맞받아 치려고 했지만, 상대방이 너무 빨랐다.
‘귀검’.
어둠-바람 연계 속성 희귀 스킬.
“으아아악!”
장혁수는 오른팔을 감싸 쥐고 바닥에 쓰러져서 울부짖었다.
무기도 이미 내팽개친 뒤다.
“파, 팔이···”
“그러게, 꼬맹아. 왜 까부냔 말이다.”
남궁훤은 바닥에 떨어진 장혁수의 다마스커스를 슬쩍 보았다.
레어템이지만 몇천만 원은 한다.
그걸 집어 인벤토리에 넣으려면 장혁수를 좀 멀리 치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남궁훤은 바닥에 쓰러져 울부짖는 장혁수의 복부에 발차기를 한 대 먹였다.
“끄억!”
장혁수가 고통에 숨을 삼키면서 옆으로 굴렀다.
그때.
휘유우우!
퍽!
“컥!”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남궁훤의 왼쪽 어깨에 박혔다.
남궁훤은 왼손으로 들어 올리던 다마스커스를 떨어뜨렸다.
휘유우우!
또 하나의 화살이 날아왔다.
퍽!
“으아악!”
남궁훤은 몸을 숙여 피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다리였다.
휘유우우!
계속해서 공기를 가르는 새된 위협음이 이어졌다.
퍽!
이번에는 오른팔.
고통을 못 이기고 남궁훤은 바닥에 쓰러졌다.
‘소멸··· 소멸!’
소멸 스킬을 시전하려고 했지만, 정신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이런 젠장, ‘물의 화살’인가? 말로만 듣던···’
침묵 효과를 가진 스나이퍼의 속성 화살.
소멸을 쓰고 어디론가 숨어버려야 하는데, 스킬 발동이 봉쇄되었다.
휘유우우!
또다시 공기를 가르는 무서운 소리가 들렸다.
남궁훤은 눈을 감았다.
“제기랄.”
*****
“이런 씨발. 존나 아프네.”
연신 욕을 해대면서 장혁수는 자판기에서 뽑은 힐링 포션을 들이켰다.
떨어져 나갈 것 같던 팔이 빠르게 아물었다.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해 보았다.
다 나은 것 같다.
“어때요? 간지 나죠?”
장혁수는 새로 얻은 검을 휘둘러 보였다.
- 오캄.
- 숏소드. 에픽 등급.
- 10~16 대미지. 공격속도 2.5초.
- 발동 효과: 자신에게 가해진 ‘설명이 복잡한’ 스킬을 무효화합니다.
‘오캄의 면도날’에서 유래한 이름, 오캄.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억지 설명은 아예 듣지 않겠다, 무시하겠다는 발동 효과다.
어떤 스킬이 무효화 되는지는 아마 주인인 남궁훤도 잘 몰랐을 것이다.
경험으로 하나하나 알아가는 수밖에 없으니.
공격속도도 빠른 한손검이니 탱킹에도 좋다.
힐러를 제외하면 누구라도 탐낼 만한 무기.
그걸 들고 빙빙 돌리면서 장혁수는 웃음을 못 참고 있었다.
“그거, 네 꺼 아니다. 일단 들고만 있어라.”
“아이씨, 이게 내 꺼지, 왜 아녜요? 팔 떨어지는 줄 알았구만. 내가 탱킹했고, 내가 죽였는데.”
“미끼 역할은 잘했다만, 죽이지는 말았어야지.”
“날 죽이려고 한 놈인데, 살려두라고요?”
“누가 사주한 일인지 알아냈어야 하는 거잖아.”
“전 그냥 한두 번 찔렀을 뿐이잖아요! 현배 씨는 화살을 도대체 몇 발을 맞춘 거야? 하나, 둘···”
“젠장.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죽이게 될 줄이야.”
“죽일 놈이잖아요.”
“어떻게 설명할 거야? 우릴 죽이려고 해서 죽였다고?”
“걱정 마세요. ’나를’ 죽이려고 해서 죽일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할 겁니다. 현배 씨는, 말마따나 죽이려는 생각이 없었던 것 같네요.”
소현배는 시체가 돼버린 남궁훤을 바라보았다.
화살을 여러 대 맞고 바닥에 쓰러진 남궁훤을 향해 장혁수는 괴수처럼 울부짖으며 달려들었다.
남궁훤의 일격에 떨어뜨렸던 다마스커스를 왼손에 들고, 그는 쓰러진 남궁훤의 위에 올라타 난도질을 시작했다.
한두 번 찌른 게 아니다.
가죽 갑옷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찌르고 또 찔렀다.
피가 줄줄 흐르는 오른팔을 치료할 생각은 안 하고, 이미 시체가 되어버린 남궁훤의 신체를 훼손했다.
‘살인마를 보는 것 같다. 설마 저놈은 사람을 죽인 경험이 있는 걸까?’
일어선 다음에도, 장혁수는 넝마 꼴이 된 남궁훤의 시체에 침을 뱉고, 발로 몇 번을 더 걷어찼다.
분풀이에 만족한다는 듯, 묘하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낸 뒤, 장혁수는 오두막으로 들어가 자판기에서 힐링 포션을 샀다.
갑자기 아파 죽겠다면서 온갖 엄살을 떨면서, 힐링 포션을 들이키는 장혁수는 조금 전까지와는 다른 사람 같아 보였다.
“죽인 건 아쉽지만, 놈이 고의로 우리를 함정에 빠뜨린 건 확실하니까.”
“그럼요. 아까 제 입으로 그렇게 말했잖아요.”
“말이 아니라 행동이기는 했지만, 자백한 거나 다름없지.”
“내 말이 그말예요.”
“그러니까, 내가 옹호해 주겠다는 거야.”
“그건 당연한 거 아녜요? 사람을 미끼로 써서 칼침을 맞게 했으면서. 무슨 선심이라도 쓴다는 듯이.”
“그래, 그래. 네 말이 맞다. 이번 일에는 네 공이 커. 그것도 대장에게 잘 이야기해줄게.”
“히힛. 고맙습니다. 캬캬캬.”
기괴하게 웃는 장혁수를 보니 소현배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저놈. 정말 같은 편에 둬도 괜찮을까?’
‘오캄’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좋아하는 장혁수.
그것만은 소현배도 양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레벨 차이에도 불구하고, 잘 싸워줬어. 그건 인정하지. 하지만 그 칼, ‘오캄’은 안 돼. 사람을 죽이고 빼앗은 물건을, 전리품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에? 왜 아니에요? 전리품이지.”
“지금 너랑 말싸움할 기분 아니다. 암튼 이제 조금 있으면 공격대가 도착할 거야. 박충기 대장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피곤해서 좀 쉬어야겠다. 너도 쉬어.”
“네, 그러죠, 뭐. 히힛!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캬캬캬!”
*****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소현배는 잠에서 깼다.
본대가 도착한 것이다.
사람들은 거적때기로 덮지도 않은 채 방치된 남궁훤의 시체를 보고 기겁을 했다.
“꺄악! 시, 시체가.”
“남궁훤인가?”
“저렇게 잔인하게···”
“아주 피떡을 만들어 놨군.”
“둘이 저렇게 한 거예요? 소현배, 장혁수가?”
오두막 문을 열고 나오는 소현배를 향해 박충기가 물었다.
“이거, 네가 한 짓이냐, 설마?”
“화살은, 제가 맞습니다.”
“난도질은?”
“그건, 장혁수.”
“어디 있어?”
“근처에 없나요?”
소현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장혁수는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피곤해서 잠깐 눈을 붙였는데, 잠이 들었고, 그 사이에 장혁수는 어디론가 가버린 모양이었다.
‘설마, 미쳐버린 건 아니겠지. 남궁훤을 죽이고 나서 눈빛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장혁수를 찾아볼 것을 부탁하고, 박충기는 소현배에게 물었다.
“그래서, 현배야. 놈이 자백을 했냐?”
“네. 말로 한 건 아니었지만, 자꾸 추궁을 하니까, 장혁수를 죽이려고 무기를 꺼냈습니다. 실제로 공격도 했고요.”
“2대1인데 덤볐단 말야?”
“아, 그건 아니고, 제가 장혁수를 미끼로 썼습니다.”
“미끼?”
“장혁수가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놈을 추궁하고, 놈이 발뺌을 하거나 장혁수를 공격하면 내가 스나이핑 하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공격했다?”
“네. 박충기 대장은 나중에 도착할 거라고 하니 웃으면서 칼을 꺼내더군요.”
“내가 목표였다는 걸 인정한 거야?”
“대놓고 인정했다고 보기에는 애매하죠. 하지만 애드를 낸 것이 고의라는 건 확실합니다. 누군가 사주를 했냐는 질문에도 과잉반응을 한 걸 보면, 사주도 있었던 것 같고요. 그렇다면 정황상 누가 사주를 했는지는 뻔한 것 아닙니까?”
“알았다. 수고 많았다.”
“그런데, 대장님.”
“응?”
“장혁수가 남궁훤이 가지고 있던 무기를 빼앗았습니다. 그게 자기 전리품이라고.”
“내가 잘 타이를게. 그건 우리들 사이에서 경매라도 해서 힐링 포션 사는 데라도 보태야지.”
“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너와 혁수가 수고한 데 대해서는, 나중에 길드에 돌아가서 사례를 하마.”
공격대원들이 근처의 숲에서 장혁수를 발견했다.
늑대 시체에 난도질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눈이 풀려 있는 듯도 하고, 기묘하게 웃고 있는 듯도 한, 무서운 얼굴이었다고 한다.
역시 약쟁이라고, 조심해야겠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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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훤의 무기 ‘오캄’을 자기 전리품이라 주장하는 장혁수 때문에 말썽이 좀 있었다.
박충기는 길드에서 그 무기를 사서, 장혁수에게 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일단락했다.
장혁수의 아버지, 즉 장오현이 회장으로 있는 대기업, 백제그룹은 문경새재 길드의 메인 스폰서이기도 하다.
그런 장혁수가 눈이 뒤집어질 정도로 좋아하는 전리품.
박충기로서도 뺏기가 쉽지 않았다.
함께 남궁훤을 사냥했던 소현배를 비롯해서, ‘오캄’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모두 입맛만 다시게 됐다.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저놈을 미끼로 쓰지 않는 건데.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고 그 무기까지 낼름 할 줄이야.’
결국 남궁훤의 목숨을 끊은 자가 그의 무기조차 탈취하게 된 셈.
사람들은 단순하지만 무서운 사실을 실감했다.
구원자에게 최고의 사냥감은 구원자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