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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7: 협회 (3)
Episode 7: 협회 (3)
“최고의 시나리오가··· 완성됐습니다.”
“뭔데? 빨리 말해봐.”
“이도협이 레이드 직전에 공격대에서 빠졌습니다!”
“그래? 그럼 14명이 들어간 건가?”
“어제 저녁때까지도 자리가 하나 비었다고 하니, 지금 나간 사람 대타를 구하는 건 어려울 겁니다. 14명이 들어간다고 봐야죠. 게다가 그중 한 명은 레벨이 13이라고 합니다.”
“13? 열셋?”
“네. 레벨 13이요. 이제 박충기는 사실상 13명 공격대로 2층 던전을 털다가 사망···”
“쉿!”
“죄송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될 일만 남은 거죠.”
“어제만 해도 열 받는 뉴스만 전해주더니, 오늘은 완전히 역전극이군. 잘했어! 그래야 내 불알친구 신학길이지.”
“아닙니다. 무슨 황송한 말씀을. 심려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냐. 아주 잘했어. 코냑이라도 좀 마실 텐가?”
“네? 네.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상덕이 캐비넷에서 헤네시 XO를 꺼내 글래스 두 개에 조금씩 따랐다.
“자, 건배!”
신학길은 황송하다는 듯, 자기 잔의 윗부분을 이상덕 잔의 밑바닥에 가져다 살짝 부딪쳤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한 모금 밖에 안되는 코냑을 단숨에 마셔버렸다.
“이런, 신학길이!”
“네?”
“코냑을 그따위로 마시면 어떡하나? 품위 없어 가지고는··· 날 좀 보고 배워. 코냑이란 말야.”
“네.”
“이렇게 조금씩, 입안에서 돌려가면서 음미하면서 마시는 거란 말야. 또 어디 가서 그렇게 마시지 말라고! 내 이름에 먹칠하는 거야! 온더락스로 달라느니 그딴 무식한 말도 하지 말고. 글래스에 아주 조금 따라서, 손바닥 온도로 덥혀가면서, 천천히 음미하면서. 알았지?”
이상덕은 코냑 병을 열어 신학길의 잔에 다시 조금 따라주었다.
“이제 가르쳐준 대로, 품위 좀 지켜가면서! 마시란 말야.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래. 아무리 그 잘난 한상태가 탱커라고 해도, 설마 13인 공격대가 그 ‘해운대’를 깨지는 못하겠지? 그렇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요, 카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뭐였지?”
“딜러진 중에서 박충기와 이도협 다음으로 센, 그러니까 레벨이 높은 남궁훤. 그자는 우리 편입니다.”
“이도협이 나갔으니 딜러진에서는 박충기 바로 다음이군?”
“네, 그렇습니다.”
“포섭됐다는 게 무슨 말이야? 태업이라도 한다는 건가?”
“훨씬 더 센 계약을 했습니다.”
“그래?”
“사냥 계약입니다. 현상금 액수를 듣고 침을 삼키더군요.”
“남궁훤. 믿을 만한 자인가?”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입니다. 회장님도 아마 아실 겁니다.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습니다.”
“아니, 그거 말고. 정말 믿을 만하냐고. 그 사람, 돈이 필요해? 돈이 쪼들려?”
“바람피우다 걸려서 아내와 합의 이혼했습니다. 위자료 잔액이 너무 많이 남아서 던전도 위험한 데만 골라 다닌다고 할 정도입니다.”
“잘했어. 이제 말귀를 좀 알아듣는군.”
구원자가 된 친구를 상관으로 떠받들고 사는 인생.
그러나 구원자가 되지 못할 바에야, 이런 인생이 나쁠 것도 없다.
‘성질머리가 지랄 같아서 그렇지, 그래도 친구 잘 둔 덕에 호강하는 거 아니냐. 그런데 아까부터 전화는 왜 자꾸 징징거리고 그래?’
카톡 알림 진동이었다.
같은 내용의 카톡이 열 개도 넘게 와 있었다.
- 비상사태! 이도협 대타로 충무공 길마 권영호 등판. 현재 헬기로 이동 중.
신학길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런 젠장. 이걸 어떻게 저 지랄 맞은 상덕이 놈한테 말하지?’
*****
충무공 길드의 부회장, 이도협이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면서 공격대를 나가자, 공격대장 박충기는 전화를 붙잡고 한참 통화를 했다.
전화에 대고 고맙다는 말을 연발하는 박충기.
통화는 끝났다.
이어,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일신상의 이유로 공격대에 참가하지 못하게 된 이도협 딜러를 대신해서, 대체 공격대원이 지금 서울에서 헬기를 타고 오는 중입니다. 차원문 입장 시간은 두 시간 뒤, 오후 1시 30분으로 조정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뭡니까?”
공격대원 일부가 박충기 공격대장에게 항의했다.
“이도협이 나가면, 도대체 대체할 만한 사람이 누가 있다는 거죠?”
“충무공 길드 부길마가 나갔으니, 길마가 오기라도 한다는 겁니까? 권영호가 온대요?”
“네.”
박충기의 한마디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에? 정말요?”
“책임진다고 합니다. 자기 길드 때문에 생긴 일, 자기가 매듭짓겠다고요.”
“그럼, 전화위복이군요. 대한민국 탑랭커 중 한 명이 더 들어오네.”
“이거 정말 유사 이래 최고의 드림팀인데요?”
헬기로 아무리 빨리 온다고 해도 1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했다.
던전 입장 시간을 두 시간 뒤로 미루고, 공격대원들은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부산, 울산, 경남 지방 전체를 나와바리로 하는 한국 최대의 길드, 문경새재.
부산에서 내놓으라 하는 맛집 하나를 통째로 섭외하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수도권에서 합류한 인원들은 KTX를 타고 왔기 때문에 문경새재 길드 차량이 동원되었다.
몇 달이나 시간을 끈 ‘해운대’ 차원문의 봉쇄는 부산광역시 입장에서도 시급한 문제였다.
부산시 교통경찰 통제 하에, 공격대원들을 실은 차량들은 카퍼레이드 대열로 통제된 시내 도로를 질주했다.
“캬. 이런 걸 또 다해보네. 이럴 때는 구원자 할 맛 난다니까.”
“그러게. 구원자 노릇도 목숨 걸어가면서 하는 건데, 가끔은 이런 특혜도 있어야지.”
“목숨 걸고 차원문 닫으러 다니는 거, 알아주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아. 맨날 방송에서는 구원자가 신종 귀족이라는 말이나 나오고.”
“아까 그 사회자 녀석 말야. 예전에는 무슨 원숭이 흉내 같은 거나 내더니, 차원문 때문에 세상이 바뀌니까 금방 전공이 바뀌네. 근데 예능 프로라니, 장난하나? 남은 목숨 걸고 하는 게 노는 걸로 보이나 봐?”
“그래도 나름 톱스타인데, 차원문 레이드 브리핑에 불려 오는 거 보면, 우리들도 대단한 거 맞잖아요?”
“그럼, 대단하지. 목숨 걸고 하는 거기는 하지만, 난 구원자가 돼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 아니면 아직도 우유 대리점 하면서 본사 직원 갑질이나 당하고 있었을 거 아냐? 그때 생각만 하면 정말.”
전국적으로 소문난 맛집이라는 해물탕집에 도착했지만, 공격대원 14명의 입맛을 전부 맞출 수는 없었다.
몇 명은 밖에서 먹고 오겠다고 하고 나가고, 몇 명은 아예 주변 카페로 가버렸다.
“정확히 1시 정각에 이곳에서 다시 출발합니다. 경찰 교통 통제에 맞춰야 하니까 절대 늦지 말아 주세요.”
‘흠, 교통 통제라? 그런 일도 했었군. 아직 공권력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도 말이지.’
이준기는 자신이 기억하는 오늘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2021년 9월 11일 토요일이라면, 서울 관악구 소재 소형 길드, ‘관피아’ 소속으로 일주일 정도 된 시점이다.
꿈에 그리던 경찰 배지를 버리고 들어간 길드였지만, 구원자 12명밖에 안 되는 길드가 예상보다 초라해서 조금 후회스럽기도 했다.
아직도 꿈속에서 고블린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놀라서 깨고는 했다.
‘내가 아직 5레벨 햇병아리였을 때, 부산에서는 구원자들이 교통 통제하고 카퍼레이드를 했단 말이지.’
길수연은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 구원자, 성나린과 함께 브런치 카페에 갔다.
오는 길에 리무진 안에서 검색을 한 모양이다.
길수연, 이렇게 일찍 그녀와 재회하게 될 줄은 몰랐다.
*****
기자들이 줄을 서서 카메라를 들이미는 가운데, 공격대원 15명은 차례로 차원문 안으로 들어갔다.
가족들이 배웅을 나온 공격대원도 많이 있었다.
수십 명이 죽어 나간 던전이다.
‘드림팀’을 꾸렸다고 대대적인 홍보 기사가 나갔지만, 여느 때보다 더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레벨 순서대로 차원문에 입장했고, 입장하기 직전에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준기는 줄 맨 끝에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그의 바로 앞에 장혁수가 서 있었다.
‘장혁수. 원래 대로라면 이 공격대 최저 레벨 참가자. 재벌 2세. 마약 전과 7범.’
거기까지는 알려진 사실이다.
조금만 조사해보면 알 수 있는 것들.
‘문제는 이놈이 사이코패스라는 거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발현된 사이코패스. 즉, 범죄자.’
원래의 공격대는 지금보다도 더한 드림팀이었다.
끝까지 마지막 한 자리가 채워지지 않아 협회 쪽 고레벨 구원자가 가세했었으니까.
그렇게까지 해서 간신히 닫은 차원문.
그 지옥을 뚫고 살아나온 네 명 중 하나가 고작 이런 녀석이었다니.
사이코패스에게 경험치와 자신감을 심어준 셈.
이 던전에서 살아나온 이후부터 놈의 연쇄 살인 행각은 시작됐었다.
‘싹을 잘라야 한다. 어차피 내 손은 피로 물들 운명이다. 얼마나 많은 구원자들을 내 손으로 죽였던가. 이런 쓰레기 녀석 하나 없애는 걸 주저해선 안 된다.’
장혁수의 비싼 재킷에 달린 제비 꼬리가 바닷바람에 휘날렸다.
베르사체.
검붉은 색은 좋아하는 색일까, 아니면 자신의 전문 분야를 상징하는 걸까.
어둠과 불.
장혁수는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쑤셔 넣고 삐딱한 자세로 서 있었다.
쪼리 샌들에 모래가 들어간 걸 털어내려는지, 발가락을 까딱거리는 게 눈에 거슬렸다.
“형씨.”
장혁수가 뒤에 서 있는 이준기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뒤를 돌아보지는 않고, 그냥 목소리로만.
시비조가 잔뜩 들어간 목소리.
“형씨.”
이준기가 무시하자 장혁수는 목소리를 조금 높여 다시 그를 불렀다.
“그렇게 존나 쪼렙에 사상 최고의 공격대에 끼었다고 우쭐대지 마쇼.”
이준기는 도발을 무시했다.
장혁수는 계속했다.
“죽으면 모든 게 쫑나는 거 아뇨? 템 욕심에 여기가 어디라고 와서 서 있는 거요? 좀 이따가 안에서 좀 봅시다. 키킥.”
*****
C급 던전의 입구 오두막.
기억하는 대로, 아래 등급 던전보다 훨씬 호화로운 자판기가 그들을 맞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자기 차례가 되면 빠른 속도로 구입하기 위해 이준기는 구매 목록을 마음속에서 되뇌었다.
‘중급 힐링 포션 다섯 개, 얼음 화살 20개, 강화 국궁, 그리고 소방용 부츠.’
해운대 던전 2층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화염 저항이다.
‘지옥불 호수’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화염 정령 다수를 잡아야 한다.
불화살, 화염구가 아무런 대미지를 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
화염 저항은 가격 대비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소방용 부츠로 해결하고, 얼음 화살로 화염 정령의 화염 오라를 잡아줘야 한다.
2층으로 올라간 뒤에는 보급품 오두막으로 돌아올 수도 없으니, 부러질 염려가 없는 강화 국궁도 준비해둬야 한다.
지금까지 이 던전에 도전했던 공격대 중에 ‘지옥불 호수’까지 진행했던 팀은 없다.
그래서, 퇴각한 사람들조차 몰랐던 것.
박충기의 공격대는 어찌어찌해서 이 던전을 클리어하는 데 성공하기는 한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난 뒤다.
협회장 파벌이 전원 사망하는 바람에 온갖 의혹이 일었다.
그것이 이준기가 기억하는 미래.
이제부터 사흘 뒤, 2021년 9월 14일까지 일어난 일의 전모다.
당시 레벨 5에 불과했던 이준기는 당연히 던전 ‘해운대’와 관련한 직접 경험이 없다.
그러나 ‘지옥불 호수’ 세팅은 다른 던전에도 많이 나온다.
‘은둔자의 오두막’ 같은, 던전 구성 시 조합되는 빌딩 블럭의 하나다.
다양한 던전에서 여러 차례 ‘지옥불 호수’를 경험했던 이준기가 대처 방법을 알고 있는 건 당연하다.
‘얼음 화살을 사라고 넌지시 이야기라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왜 사야 하는지 근거도 댈 수 없고. 한 개에 이백만 원이나 하는 화살을 사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하면.’
자판기 앞에 선 줄은 또다시 레벨 순서.
그러나 예상대로, 장혁수는 줄을 서지 않고 오두막 문밖에 앉아 쉬고 있다.
어쩌면, 앞으로 사나흘 간 마약을 못 하게 된 자기 처지를 비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열다섯 명 중 반 정도가 자판기에서 물건을 구매했다.
보급품을 챙기는 사람은 이준기뿐.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지 않고 가죽바지, 장갑, 모자를 챙겼다.
이준기는 상태창을 체크했다.
- 레벨 13.
- 전문화: 바람 3, 마나 10.
- 힘 20. 민첩 50. 체력 40. 정신력 10. 물리 저항 5. 마력 저항 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