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9화 (19/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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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7: 협회 (2)

Episode 7: 협회 (2)

2021년 9월 11일 토요일, 아침 10시 30분.

브리핑 시간은 11시였지만, 이도협은 해운대에 일찍 도착했다.

전날 오후에 KTX로 일찌감치 도착해서 회도 한 접시 먹고 전망 좋은 호텔 방에서 잠도 잘 잤다.

때마침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어, 영화도 한 편 봤다.

바로 앞 모래사장에 희끄무레한 차원문이 펼쳐져 있는데, 해운대 스타벅스는 성업 중이었다.

수많은 군인들과 전경들, 게다가 다른 차원문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이 몰려 있는 기자들.

잘난 척하는 구원자들이 차례로 죽어 나가니 화제의 중심에 오를 수밖에 없는 곳.

스타벅스 바로 앞에까지 전경들이 두 줄로 벽을 만들고 있었지만, 장사는 어느 때보다도 잘됐다.

하지만, 오늘 스벅은 텅텅 비어 있다.

협회, 그러니까 한길협에서 오늘 하루 전세를 내버렸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궁시렁거리면서 인근의 다른 카페에서 모닝커피를 사 왔다.

스벅에 들어가려는 이도협을 기자 서넛이 붙잡고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이도협! 이도협 부회장 아니십니까! 이도협 부회장님 같은 거물이 오실 정도면, 이번에는 해운대 차원문, 확실하게 소멸시키실 생각이신 거죠!”

“오늘 공격대 멤버가 아직 발표가 안 됐는데, 왜 비밀에 부치는 건지 혹시 아십니까?”

“다른 탑랭커들도 오늘 공격대에 끼는 건가요? 박충기 회장이나 권영호 회장은요?”

“항간에서는 이런 소문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른 질문들을 흘려듣던 이도협은 마지막 질문을 한 기자를 돌아보며 되물었다.

“무슨 소문 말입니까?”

“해운대는 문경새재 길드 소관 아닙니까. 문경새재 길드 회장은 박충기, 즉 현재 한길협 회장 이상덕과 라이벌 사이죠. 계속해서 협회장 선거에서 맞붙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요?”

“그러니까 협회 차원에서 일부러.”

“일부러?”

“협회에서 훼방을 놓는 게 아니냐는 소문, 들으셨을 텐데 모른 척하시긴.”

“기자님들! 질문에 짧게 대답 드리겠습니다. 자세한 건 나중에 협회 사무처 기자회견에서 물어주시면 되고요. 공격대가 던전으로 진입한 다음에요. 맛난 거 많이 대접해 드린다고 하니, 꼭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상덕 협회장에게 직접 들은 얘깁니다.”

“오, 그렇군요. 죄송하지만, 이도협 부회장님은 그래도 이상덕 협회장 파벌이신 거죠?”

“파벌이 어디 있습니까? 저희 한국길드협회는 아주 꽉 한 덩어리로 잘 뭉쳐 있습니다. 내분이라니, 어림도 없습니다. 그리고 아까 하신 질문들, 오늘 공격대 멤버에 관해서는 저도 전혀 모릅니다. 30분 뒤에 아시게 될 테니 기다리시죠. 그럼 이만.”

그렇게 말하고, 이도협은 문을 닫고 스벅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도협을 따라 들어가려던 기자들을 전경들이 막아섰다.

“오늘 이곳은 차원문 공략 회의실로 지정이 돼서요, 입장 못 하십니다.”

기자들이 투덜거렸다.

“아이, 이도협이 30분이나 먼저 나타나서 뭣 좀 건지나 했더니.”

“구원자들이 귀족이네, 귀족. 구원자님들 커피 마시는 곳에 기레기는 접근 금지?”

안에 들어서자, 카페 직원들이 일제히 이도협에게 인사를 했다.

안에 아무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돌체 라테, 벤티로 주세요. 약간 뜨겁게 해주시고, 거품은 빼주세요.”

“돌체 라테 벤티 사이즈, 주문받았습니다. 성함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저 몰라요?”

“네?”

기자들도 거물이라고 칭한 자신을 몰라보다니, 이도협은 살짝 기분이 나쁘려고 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선배 바리스타가 끼어들어 사태를 수습했다.

“왜 모르겠습니까, 이도협 부회장님. 저희 직원이 갑자기 놀라서, 성함을 까먹은 겁니다. 이도협 부회장님은 구원자들 탑랭커 중 한 분이신데, 왜 모르겠습니까. 방송에도 늘 나오시는데.”

“아, 네. 하하. 감사합니다.”

“앉아 계시면, 테이블로 커피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이도협은 창가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보이는 건 전경들뿐이라서 사실 전망이 형편없었다.

그래도 커피는 마셔야 했다.

던전에 들어가면 당분간은 전투식량을 먹어야 한다.

몇 끼씩이나 사람답지 못한 식사를 할 생각에, 이도협은 호텔 조식을 과식하고 말았다.

‘속이 좀 부대끼는데. 이럴 땐 달달한 커피가 제격이지.’

조금 이따 보니, 박충기가 자기 길드 사람 여러 명과 함께 들어왔다.

질문을 퍼붓는 기자들에게 사무처 직원 한 명을 던져주고, 나머지는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도협 부회장! 안녕하신가.”

“박충기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나는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로.”

길드 직원에게 주문을 말하고, 박충기는 이도협 옆자리에 앉았다.

“오늘 공격대 멤버, 전원 확정됐나요?”

“네, 그럭저럭.”

“탱커는요?”

“한상태 회장이 옵니다.”

“오!”

이도협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마음에 드시죠?”

“한상태 회장까지 오면 기자들 말마따나 드림팀 맞네요.”

한상태. ‘퇴마문’ 길드의 마스터.

현재 대한민국 전체를 통틀어서 탑랭커다.

레벨 1위.

흙 몰빵 전문화로는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경우다.

그래서 별명도 ‘돌덩어리’다.

“드림팀 멤버가 한 명 더 있습니다.”

“네? 누구요?”

“바로 저요. 음핫핫핫!”

“아, 그럼요. 박 회장님이야 당연히. 하하하”

웃자고 한 말인지, 이도협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한상태도 그렇지만 박충기 역시 길드 마스터다.

길드 마스터도 구원자이고, 레벨업은 해야 하니 차원문에 들어가기는 해야 한다.

하지만, 수십 명이 죽어 나간 던전에 입장하는 리스크를 감수하다니, 무늬만 리더십이 아니라는 증거다.

이도협의 길드, ‘충무공’의 마스터 권영호는 지금 이 자리에 없지 않은가.

길드 직원이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를 들고 왔다.

“밀크는?”

“지금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내 취향 모르나? 미리 좀 타가지고 올 것이지.”

그렇게 말하는 박충기의 목소리가 떨린다고 이도협은 생각했다.

박충기가 짜증을 내는 상대는 밀크티도, 길드 직원도 아니다.

창문 바깥, 전경들이 이중으로 둘러싸 만든 ‘사람의 벽’ 뒤로 크게 솟아오른 차원문이다.

*****

“브리핑 시작하겠습니다.”

- 차원문 고유번호 11497. 랭크 C. 2층 구성. ‘오크 전쟁기지’

- 차원문 소멸 조건: 오크 전투 대장의 사망.

- 차원문 소멸 보상: 에픽 아이템 1개, 레어 아이템 2개 이상.

- 퇴각 페널티: 장착 아이템 랜덤 1개 소멸. 1레벨 강등.

“헉!”

스타벅스를 가득 메운 청중 군데군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퇴각 페널티 때문일 것이라고, 이도협은 생각했다.

‘장착 아이템 소멸은 이 던전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으니 다들 알고 왔을 테지만, 1레벨 강등은 몰랐을 테지.’

“퇴각 페널티를 왜 보십니까? 퇴각 안 하실 거잖아요. 보상을 보셔야죠. 무조건 에픽 1개 이상 떨어집니다. 전설템이 나올지도 몰라요!”

사회자가 말재간으로 웃겨보려고 했지만 청중의 반응은 싸늘했다.

시청률 1위를 기록 중인 차원문 관련 예능 프로그램 메인 MC가 오늘의 사회자였다.

‘우린 목숨 걸고 뛰어드는 건데, 그걸 예능 오락거리로 삼다니. 우리가 널 좋아할 리가 없잖냐. 생각을 좀 하고 살아라.’

그렇게 생각하는 이도협 뒤쪽에서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는 길드 사람들의 말이 들렸다.

“도대체 쟤는 왜 온 거래요? 우리 중에 자기 팬이라도 있을 줄 알고 온 건가? 제정신이에요?”

“왜 왔겠어요. 돈을 엄청나게 받으니 왔겠지. 협회에서 농간을 부린 거 아니겠어요.”

“협회라면, 이상덕 협회장?”

“아니, 신학길 총장요. 사상 최대의 이벤트다, 이런 식으로 스폰서 왕창 받고 그거 일부 떼어준 거라고 들었어요. 쟤도 머리가 있을 텐데 돈이 아니면 여길 왜 왔겠어요.”

사회자가 마이크에 대고 ‘흠흠’ 소리를 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써먹는 트레이드 마크라서 그런지, 구원자가 아닌 길드 직원 몇몇이 킥킥거리며 좋아했다.

“다음은, 오늘의 하일라이트! 공격대원 소개입니다!”

구원자들은 가만히 있었지만, 방송사에서 따라온 직원 몇 명이 바람잡이용 환호성을 내질렀다.

- 공격대장 겸 리드: 박충기 회장. 문경새재 길드. 28레벨.

- 탱커

- 한상태 회장. 퇴마문 길드. 31레벨.

- 성나린. 탑픽 길드. 23레벨.

- 윤동직. 충무공 길드. 18레벨.

- 힐러

- 길수연. 6PM 길드. 24레벨.

- 최아람. 문경새재 길드. 21레벨.

- 하정태. BURN 길드. 20레벨.

- 딜러

- 이도협 부회장. 충무공 길드. 27레벨.

- 남궁훤. 힐사이드 길드. 25레벨.

- 소현배. 문경새재 길드. 24레벨.

- 김형채. 코리아 길드. 23레벨.

- 문아린. 신이 선택한 자들 길드. 21레벨.

- 김새로미. 브릴리언트 길드. 20레벨.

- 장혁수. 문경새재 길드. 17레벨.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형식적인 박수 소리에 섞여 길드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여기저기에서 수군대는 인물평은 물론 기본이다.

“윤동직? 저 사람 그, 전직···”

“깡패라는 그 사람, 맞죠? 바로 며칠 전에 파티원 하나를 반 죽여놨다고 하던데? 아니, 아예 죽여놨다고 했던가?”

“메탈엔젤 성나린까지 등장했네요. 이거 정말 드림팀이네.”

“성나린 죽으면 안 되는데, 저 팬이란 말예요.”

“길수연이 리드 힐러네?”

“오, 길수연! 빛의 여신!”

처음부터 내놓으라 하는 길드 운영진들 이름이 호명되자, 사람들이 웅성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딜러진 후반부 이름은 집중해서 듣는 사람들도 없었다.

같은 직업군 내에서 호명 순서는 레벨 순서다.

딜러진 뒤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갈 일은 없다.

다만, 조금 후에 차원문 안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공격대원들은 촉각을 세우고 듣고 있었다.

공격대원들에게조차 지금 처음으로 멤버 명단이 공개되는 것이라서 그랬다.

어제 저녁때까지도 공격대 자리가 다 차지 않았다는 소문도 돌았다.

사회자가 딜러진 마지막 멤버 이름을 호명하면서 명단 발표를 마쳤다.

- 이준기. 충무공 길드. 13레벨.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뭐? 13레벨?”

“죽으러 가는 거야?”

“충무공 길드에서 무려 세 명이야.”

“버스 태워주는 건가? 제정신이야? 버스는 만만한 곳에서 태우든가.”

계획대로 되었다.

이도협은 썩소를 지으며 박충기에게 다가갔다.

“박충기 회장님!”

“이도협 부회장.”

“이준기는 웨이팅 리스트 아니었습니까? 우리 길드 배정은 두 명이고요, 저랑 윤동직.”

“그게 말야, 이 부회장.”

“설마?”

“맞아, 소문대로 어제 저녁때까지 공격대 자리 하나가 비어 있었다고.”

“그래서, 웨이팅 리스트에 이준기 외에 아무도 없었다는 겁니까, 설마?”

“그 설마가 맞아. 웨이팅 리스트엔 이준기 한 명뿐이었네.”

“그렇다고 우리 길드 배정을 셋으로 늘리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 일이라면, 저한테 미리 연락하셨어야죠. 권 회장한테라도 알리신 거예요?”

“응. 사실 권 회장한테 전화를 했더니.”

“했더니?”

“자네한테는 알리지 말라고 하더군.”

“길길이 뛸 거라고?”

“그, 그래. 맞아, 그런 표현을 쓰더군.”

“이 자리에서 제가 길길이 뛰는 거 보실 생각이세요?”

“아, 아냐! 제발 좀 참아주게. 권 회장도 동의한 거야.”

“우리 길드 두 명이니까, 제가 나가면 되겠군요.”

“아니, 이 부회장. 왜 이러나. 우리 사이에. 10분 뒤에 자네 이름이 포함된 보도자료가 나갈 건데.”

“보도자료 다시 쓰는 게 뭐 대숩니까? 13레벨이 낀 공격대가 대수죠!”

“자네가 말한 대로 드림팀이잖아. 13레벨 한 명 끼어도 상관없을 전력이잖아.”

“차라리 14명으로 가세요.”

“다들 목숨 걸고 이 자리에 나와 있네. 제발 한 번만 참아주게.”

“그럼, 제가 빠지겠습니다.”

이도협은 그렇게 말하고 스타벅스 문을 박차고 나왔다.

‘계획대로다. 이준기가 설마 저기서 살아나오지는 못하겠지.’

*****

이상덕이 길드협회장 자리를 유지하는 이유.

그를 찬성하는 표가 그를 반대하는 표보다는 많다는 얘기다.

‘해운대’ 차원문 레이드 브리핑 장소에도 그의 끄나풀이 여기저기 깔려 있었다.

협회 사무총장 신학길은 한꺼번에 몰려드는 카톡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11시 3분. 결정적인 카톡이 도착했다.

신학길은 협회장 사무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노심초사하며 휴대폰을 확인하던 이상덕이 고개를 들었다.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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