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18화 (18/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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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7: 협회 (1)

Episode 7: 협회 (1)

토요일에도 던전 파티를 지원하고, 차원문 봉쇄 보고서를 쓰느라 하루 종일 일했다.

다른 일에 비해서 급여가 센 편이기는 하지만, 일도 많다.

최정윤은 토요일 근무에 대한 보상으로 받은 월요일 아침을 즐기고 있었다.

회사에서 직원들 숙소로 쓰는 오피스텔 1층의 브런치 카페.

“최정윤 대리님!”

이준기였다.

같은 오피스텔에 사니까 우연히 만날 수도 있지만, 이럴 수가.

지난 월요일 길드에 들어왔으므로 이제 겨우 일주일째.

그런데 이미 던전 두 개를 소화했다.

일주일 만에 무려 일곱 레벨을 올려 벌써 13레벨이다.

대스타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니, 친해져서 나쁠 건 없다.

물론 구원자들은 대개 개자식들이니 조심은 해야겠지만.

“이준기 구원자님.”

가격이 더럽게 비싸서, 50% 할인 혜택을 받는 충무공 길드 사람들 외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 가게다.

구원자들에게는 요일 개념이 없으니, 오늘 가게가 텅텅 빈 것도 월요일이기 때문은 아니다.

“오늘, 쉬시나 봐요. 전 최 대리님 휴일은 대체 언젠지 궁금했는데. 쉬시기도 하는군요.”

“저도 쉴 때는 쉬어야죠. 저도 그렇지만 이준기 구원자님도 엄청 바쁘게 사셨잖아요. 지난주에.”

“빨리 레벨업 해서 사람 구실 해야죠.”

“일주일에 던전 두 개 뛰는 사람이 어딨어요.”

사실은 세 개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최정윤 대리를 찾아온 것도, 던전을 하나 더 뛰기 위해서다.

이준기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난번 저녁 먹을 때, 윤동직 탱커님이 가시겠다고 손드신 던전 있잖아요.”

“아, 그거요?”

“제가 워낙 저레벨이라서 조심스럽긴 한데요, 더 이상 손드는 사람이 없다면 제가 가고 싶습니다.”

“네?”

“아무래도, 레벨 때문에 힘들까요?”

“아뇨. 그게 아니라. 그게 대단히 위험한 던전이거든요. 오죽하면 몇 달씩이나 방치되고 있겠어요. 사실 방치도 아니고, 지금까지 수십 명이 죽어 나갔어요. 그래서 지금 지원자가 없는 거고요. 공격대를 다섯 번이나 보냈는데 깨지 못하고 있다고요. C급인 데다가, 2층짜리예요.”

“2층이요?”

“네, 2층. 맵이 두 배로 큰 거죠. 몬스터도 두 배고요.”

“게다가 C급?”

“C급 던전이면 최소 권장 레벨이 20레벨 정도 되니까, 전국적으로 봐도 적격자가 백 명이 안 되는 거예요. 우리 길드에도 손에 꼽을 정도고요. 윤동직 탱커님이 가겠다고 하시니 일단 서류에는 적어 놨지만, 윤동직 탱커님도 사실은 레벨이 안 맞는 거죠.”

당연한 얘기지만, 이준기는 최정윤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나중에는 내전으로까지 이어지는, 한국 길드협회 내분 사태의 씨앗을 뿌린 던전.

한국 최초의 C 랭크 2층 던전, 속칭 ‘해운대’.

구원자들 사이에서는 ‘밸런스 패치’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수십 명이 사망하고, 수십 개의 아이템이 증발했다.

몬스터들에 비해 구원자 쪽이 유리한 상황이 지속되자, 신이 균형을 맞추려고 내려보낸 밸런스 패치라는 것이다.

장착 중인 아이템 무조건 1개 소멸.

그런 무시무시한 퇴각 페널티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퇴각했다.

아이템보다 목숨이 중요하다는 걸 여실히 깨닫게 해준 던전.

아이템만 잃어버리고 나온 사람들은 그나마 나은 처지였다.

D급 이하 던전과는 달리 인원 제한도 있다.

15명.

그중 2명이 서울 북부의 대형 길드, ‘충무공’에 할당된 인원이었다.

만약 이준기가 포함된다면, 윤동직, 이준기 모두 20레벨 이하의 저레벨이다.

관할 길드인 문경새재 측은 이도협 부회장이 와주기를 바라는 상황.

현재 전국 랭킹 7위의 이도협 부회장.

물론 랭크 2위인 권영호 회장이라면 더 좋겠지만, 그렇게까지 노골적인 요구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조막손이라도 빌린다는 말도 있잖아요. 제가 누굴 대신해서 가겠다는 건 아니고요, 끝까지 자리가 차지 않는다면, 제가 가겠다는 이야깁니다.”

“네, 알겠어요. 걱정은 되지만 일단 서류에 넣어놓을게요.”

“감사합니다. 저 커피 사 올 건데, 뭐 드실래요? 제가 쏘겠습니다.”

늦여름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서 이준기가 상큼하게 웃었다.

그렇게 웃는 걸 보자 최정윤도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이 사람이라면 괜찮을지도 몰라.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니까.’

*****

한국 구원자 길드협회.

다들 그냥 협회라고 부르는 단체지만, 외부 사람에게 협회라고 하면 어떤 협회인지 헷갈릴 수밖에.

공식 약어는 한길협.

언론 기사에서는 보통 그렇게 부른다.

미국과 유럽, 중국에 이어 한국에 구원자들의 길드가 우후죽순으로 생기자, 길드 사이에서 여러 가지 일을 조율하는 단체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협회를 잘 만드는 한국 사람들.

광속으로 협회가 만들어졌다.

얼마 안 되는 시간을 쪼개 회장단도 뽑고, 운영에 들어갔다.

구원자들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세상의 모든 직업, 모든 배경, 모든 성격이 다 망라되어 있다.

당연히, 정치질에 능한 사람들도 있다.

협회 준비위에서 위원장을 맡으면 그대로 협회장이 되고, 장기 집권이 가능하다는 것 정도는 기본으로 꿰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준비위 위원장이었고, 협회가 정식으로 발족한 이후에는 죽 협회장을 하고 있는 구원자, 이상덕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김 비서, 신 총장님 어디 가셨어요?”

“사무총장님 오늘 오전에 조금 늦게 출근하시겠다고 연락하셨습니다. 따님 학교에 일이 있으시다고.”

“아, 그래요? 총장님 출근하시면 제 방으로 좀 오시라고 말씀해 주세요.”

“네, 회장님.”

길드는 구원자들의 이익단체.

그 이익단체들 사이의 의견조율을 위한 이익단체인 협회의 대표, 즉 회장은 당연히 구원자여야 한다.

그러나 잡일을 맡는 사람들까지 구원자일 필요는 없는 법.

신학길 사무총장을 비롯한 사무처 사람들은 일반인이었다.

구원자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월급쟁이 총장.

역시 정치질에 능하고 이상덕 회장과 죽이 잘 맞는다는 점만 빼면, 신학길 총장은 언제든지 교체 가능한 소모품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감히 회장인 자신에게 말도 안 하고 늦게 출근이라니.

“아이고, 회장님! 죄송합니다. 이렇게 늦어질 일이 아니었는데.”

“총장님, 뭐가 그리 호들갑이에요? 문 닫으시고, 앉으세요.”

이상덕 회장이 웃으며 말하자 신학길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회, 회장님, 지각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김 비서한테 얘기하고 늦게 나오신 건데, 뭐가 지각이에요? 괜찮으니 문 닫고 와서 앉으세요.”

신학길은 이상덕이 시키는 대로 문을 닫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이상덕은 소파에 앉는 신학길을 뱀 같은 눈으로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요, 신학길 총장. 지금 젤루 급한 게 뭐라고 생각해요?”

“네? 네, 회장님. 급한 거라면, 아무래도 내년도 차원문 처리 단가를 정부와 잘 협상하는 것이···”

“농담이죠? 신 총장이 그 정도로 멍청할 리가··· 다시 잘 생각해 봐요.”

“네? 아, 그렇군요. 회장님. 구원자들 던전 귀환율이···”

“뭐라고? 이봐, 신학길이. 머리가 안 돌아가? 네가 어쩌다가 그 자리에 앉게 됐는지, 다 잊어버렸어? ‘총장님, 총장님’ 하고 불리니까 세상이 다 네 것 같냐?”

“아닙니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머리가 아둔해서 그렇습니다. 지금 제일 급한 일이 뭔지, 제발 일깨워주십시오.”

“이런, 미친···”

신학길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학길아. 지금 젤루 급한 건, 네 자리를 잘 지키는 거다. 무슨 얘긴지 이제 좀 알겠냐?”

“네?”

“아직도 모르겠어?”

“아! 네, 알겠습니다. 박충기 얘기군요!”

“그렇게 느려서야, 그 자리 지키겠어?”

“죄송합니다, 회장님. 박충기 건은 제가 늘 신경 쓰고 있습니다. 심려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이상덕은 천천히 뒤로 기울여 등받이에 몸을 완전히 얹었다.

헛기침을 한번 하고, 점잔을 빼는 목소리로 돌아간 그는 말했다.

“회장단 선거, 그거 얼마 남지 않았어요. 신경 좀 잘 써주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대책이 있기는 해요?”

“회장님, ‘해운대’ 있잖습니까. 그게 이번 주말입니다.”

“그래서요? 그게 박충기네 길드 관할이다? 뭐 그런 시시한 얘기 하는 거 아니죠?”

“연합 공격대 구성 중이잖습니까. 지원자가 없어요. 공격대가 계속 죽어 나가니까 다들 겁먹은 거죠. 그래서 박충기가 직접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15명 다 못 채운다는 말도 있고요.”

“아, 그래요?”

“문제가 한 방에 해결될 수도 있다는 거죠, 회장님. 다음 선거고 뭐고, 박충기가 들어가서 죽어버리면···”

“신 총장! 쉿! 입조심 하세요. 아무리 좋은 얘기라도, 큰 소리로 떠들 얘기가 아니잖아요.”

*****

충무공 길드 부회장, 이도협은 담배에 불을 붙이다 말고 최정윤을 쳐다보았다.

“엥? 정말이에요?”

“네, 부회장님.”

“그래서 최 대리는 그걸 그러마 했어? 13레벨이 C급 던전에 간다는 게 무슨 얘긴지 몰라? 죽겠다는 거잖아? 자살 방조죄야.”

“네?”

“최 대리, 순진하기는. 농담이야. 하지만, 안돼. 아무리 최근에 들어온 쪼렙 딜러라지만, 그렇다고 죽으러 가겠다는 걸 가라고 할 순 없지.”

“알겠습니다.”

최정윤이 나가자, 이도협은 담배용 공기청정기를 켜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처음에야 그냥 총알받이로 쓸 겸, 정부 지원금 받으려고 받은 녀석이지만, 이거 갈수록 골치덩어리네. 지난번 던전, 내가 아니라 자기가 깼다고 소문이라도 내면 어떡하지? 기자들을 상대로는 몰라도, 공격대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떠벌이면?’

이도협은 전화를 들었다.

“아, 박충기 회장님? 아, 길마를 회장님이라고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불러요? 설마, 협회장 그거 아직도 노리고 계시는 거예요? 저야 박 회장님 출마하시면 무조건 찍어 드리죠. 지난번 선거 때도 제가 누굴 찍었겠어요. 아, 오늘 전화 드린 이유는요, 해운대, 그 건 어떻게 진행 중인지 궁금해서요.”

담뱃재가 책상 위로 떨어졌다.

이도협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공기청정기도 껐다.

“네. 네? 정말요? 저희도 지금 사정이 만만치 않은데. 지난주에 두 명이나 죽었다고요. 주말에 죽은 놈은 제가 그래도 유망주라고 찍은 놈인데, 갑자기 죽어버리니. 그런데 하긴, 지난주에 새로 들어온 녀석이 고속 렙업을 했으니 길드 전력은 뭐 그대롭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요.”

이도협은 전화기에서 입을 떼고 숨을 크게 쉬었다.

“아, 네, 회장님. 한숨 좀 쉬었습니다. 지난주에 고속 렙업한 그 녀석. 이제 레벨 13이 됐는데, 해운대에 가겠다고 손을 들어서요. 그렇게 되면 우리 길드는 18렙 윤동직하고 두 명이 다 적정렙 미달이잖아요. 저렙도 저렙 나름이지. 자살 방조하냐고, 비서한테 한마디 했습니다. 아, 비서가 아니고 대리요. 우리 사무직원.”

담배 개비를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던 이도협이 눈을 크게 떴다.

“보내라고요? 정말 그 정도로 궁하신 거예요? 13레벨이라니까요. 23레벨이 아니고. 하하하. 농담도 잘하시네. 네. 네. 알겠습니다. 주말에 뵙죠. 권 회장이 주말에 골프 약속 있다고 못 간다고 해서요, 브리핑하구 기자회견은 제가 참석해야죠. 네, 네. 안녕히 계십쇼.”

전화를 끊고 이도협은 재떨이에 가래침을 뱉었다.

‘13레벨을 받아주겠다니, 정말 지원자가 없나 보구만. 들어가서 콱 죽어버리면 좋겠구만. 정부 지원금이고 자시고, 지금 내 체면이 훨씬 더 중요하지.’

이대로 지원자가 없으면, 결국 이도협이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퇴각 페널티 때문이라도, 고급 아이템을 둘둘 두른 이도협이 가는 건 리스크가 크다.

아이템보다 목숨이 더 소중하다는 걸 일깨워 준다고 해서, ‘메멘토 모리’라고도 불리는 던전이다.

이러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퇴각 페널티 따위, 잊어버리게 된다고.

이도협은 캐비넷을 열었다.

조니 워커 블루 레이블 십여 병이 일렬로 도열해 있었다.

방을 나갈 때 문을 잠그고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

이도협은 손을 뻗어 병 하나를 꺼냈다.

파란색 레이블을 손가락을 쓰다듬어 보면서, 그는 생각했다.

‘참 좋은 술이다. 선물로 주기에는 아까울 정도지. 하지만, 목숨값이라고 생각하면.’

이도협은 바깥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최 대리!”

최정윤이 허둥지둥 문을 열고 들어왔다.

“네, 부회장님.”

“윤동직 탱커, 오늘 집에서 쉬는 거죠?”

“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저녁때 나 좀 보자고 연락 좀 해줘요. 근처 일식당에 예약도 좀 해 주시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이도협이 조니 워커 블루 레이블을 내밀었다.

“네?”

“이거 퀵서비스 불러서 윤동직 탱커한테 보내줘요. 포장도 좀 예쁘게 해서. 내 선물이라고. 열심히 하는 모습 보기 좋다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예쁜 글씨로 카드도 한 장 써줘요.”

최정윤이 문을 닫고 나가자, 이도협은 이상덕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길협 회장 이상덕.

박충기와 통화 중에는 협회장 선거에서 계속 그를 밀었다고 말했지만, 사실 이도협은 협회장 파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아마 박충기도 그걸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서로 모른 척하면서 웃었을 뿐.

‘이준기, 네놈이 굳이 죽을 길을 가겠다면, 내가 보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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