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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5: 고블린 광산 (1)
Episode 5: 고블린 광산 (1)
차원문 소멸 조건은 고블린 광산 폭파지만, 던전 안에 고블린 광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광산이 차지하는 면적은 맵 전체의 4분의 1 정도.
게다가 대부분이 지하에 들어가 있으므로 그 위로는 그냥 언덕이고 숲이다.
광산 안쪽은 정찰이랄 게 없다.
좁고 긴 갱도다.
멀리서 보고만 지나갈 수 있는 그런 위치가 나오지 않는다.
입구의 경비병 두 마리를 정리한 이후부터는 계속해서 사냥을 해야 전진이 가능했다.
입구에서 50미터 정도 들어오니 두 갈래 길이 나타났다.
던전 입구 오두막에 비치되어 있던 광산 지도에 따르면 두 갈래 길은 나중에 다시 합쳐진다.
입구의 50미터를 제외하면 고리 모양으로 된 광산이다.
패시파이어의 막강한 성능 덕분에 사냥이 수월하기는 했지만, 광산은 꽤 깊었다.
광산은 반 정도가 정리된 상태.
나중에 파티원들이 들어오면, 함께 몬스터도 정리하고 폭약도 설치하면 된다.
‘이제 바깥 구경을 좀 해볼까.’
이준기는 인벤토리를 점검했다.
가지고 들어온 힐링 포션 네 개 중 한 개를 마시고 세 개가 남아 있다.
두 개는 지난번 던전 보스의 방에서 얻은 것이다.
두 개는 이번 던전 입구의 자판기에서 골드로 산 것이다.
넉넉히 준비하는 것도 좋지만, 인벤토리 공간도 생각해야 한다.
힐링 포션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안이하고 느슨하게 플레이할 가능성도 있다.
사람이니까.
예전에 그 주제를 가지고 동료와 이야기하던 것이 생각났다.
“힐링 포션은 그래도 충분하게 챙겨야지. 그렇지 않으면 매너가 아니잖아. 힐러에게 부담도 되고.”
“인벤토리에 힐링 포션이 넘쳐나면, 아무래도 좀 감각이 둔해지기는 하잖아? 안 그래? 나는 그런데.”
“하긴 그렇지. 힐링 포션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하면, 아무래도 조심조심 할 수밖에 없으니. 사소한 던전에 목숨 거는 꼴이잖아.”
“지금 딱 그런 상황이지. 힐러들 생각해 준다고 물 마시듯 마셔버렸으니.”
“일본놈들이 배신을 때릴 줄이야.”
“우리가 너무 순진했어. 저 녀석들 나오는 꼴이 역사 시간에 배운 갑신정변, 그때와 똑같았는데 말야.”
“그래서 역사 공부를 해야 하는 건가.”
“이제 잡담은 그만하고 움직이자. 놈들이 계속 정찰 중일 거야. 우리 둘뿐이니까. 빨리 정리하고 싶겠지.”
이번에는 그 역사가 재현되지 않을 것이다.
이준기가 막을 거니까.
그걸 위해서라도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구원자로 빨리 성장해야 했다.
‘광산의 반을 정리하고 오크도 꽤 잡았지만 아직 레벨 8이다. 갈 길이 멀군.’
책 80권을 몸 주위에 휘감고 빛의 방패를 들고 싸우던 자신의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한 이준기였다.
그에게 레벨 8은 까마득하게 갈 길이 먼 햇병아리로 생각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
차원문을 들어오자, 평소와 마찬가지로 던전 입구 오두막이 그들을 맞았다.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반갑네요. 오두막.”
“다른 건 모르겠고, 힐링 포션은 충분하게 사놔. 힐러님 힘들지 않게.”
“알겠습니다, 윤동직 탱커님!”
“폭약을 세 개 설치해야 한다는 건데. 세 개만 가지고 들어가도 될까?”
“그럼 네 개 가지고 들어가죠. 한 사람이 하나씩.”
“미리 들어갔다는 그 사람은 챙겨 갔을까?”
“그 정도로 센스 있는 사람은 아니지 않을까요. 좀 개념 없어 보이는데.”
“좋아. 그럼 한 사람당 하나씩 챙기고, 나는 두 개 가지고 들어간다. 힐러님 대신 내가 하나 더 들고 갈게.”
“탱커님, 저 괜찮은데요. 제가 들고 갈게요.”
“제가 들고 들어갈게요. 힐러님은 아직 레벨이 낮아서 인벤토리 여유도 없으시잖아요.”
“감사합니다.”
“지도는요?”
“지도는 상철이 네가 챙겨라. 지금 여기서 지도 볼 시간이 어딨냐. 가면서 확인하자.”
“넵.”
오두막을 나서자, 울창한 숲이 펼쳐졌다.
간밤에 비가 왔는지, 바닥이 조금 젖어 있었다.
흙바닥에 운동화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이런, 이런. 레벨 식스가 레벨만 낮은 것이 아니라 센스도 형편없군.”
이상철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게. 아무리 비 온 뒤라고 하지만 바닥에 발자국을 이렇게 선명하게 찍으면서 돌아다니는 건 좀 문젠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겠군요. 이게 얼마나 오래된 발자국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따라가 볼까요?”
“그래. 어차피 일단 탐색을 좀 해야 하니까.”
“어디서 몬스터들에게 다굴 당하고 있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됩니다. 하하.”
그들은 발자국을 따라서 이동했다.
아니, 이동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선명한 운동화 발자국은 여남은 개가 전부였다.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발자국이 더 없는데요?”
“이거, 무슨 뜻이죠?”
“글쎄. 무슨 뜻이지?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하지만, 주변에 피라든가, 싸운 흔적이 없어요.”
“구원자를 그냥 납치한다든가, 한입에 꿀꺽하는 그런 몬스터가 있나요, 혹시?”
“아뇨. 제가 아는 한, 그런 건 없습니다. 힐러님.”
윤동직이 대답하면서 침을 삼켰다.
‘설마 그런 몬스터가 정말 있다면,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만으로도 긴장해서 목 뒤가 결리는 느낌이었다.
구원자가 된 이후로 돈이 많아져서 최고급 시설에서 치료를 받고는 있지만, 가끔 긴장하면 목디스크가 도졌다.
“탱커님.”
“응?”
“이 근처를 수색해야 하나, 여쭤봤어요.”
“그래, 그러자. 너무 멀리 떨어지지는 말고, 주위로 한 100미터 정도만 살펴보자. 괜찮지?”
“네.”
“힐러님은 저하고 같이 가요. 저렙이시니까 아무래도 위험하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그들은 세 방향으로 찢어져서 수색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철이 소리를 질렀다.
“으아악!”
“뭐야!”
윤동직이 소리가 난 방향으로 돌아보고 물었다.
“시, 시체가!”
“거기서 기다려!”
윤동직과 정이채가 도착했다.
이상철은 시체 옆으로 2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눈을 다른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이상철!”
“네.”
“이건 죽은 오크잖아. 몬스터 죽은 것도 시체라고 부르냐?”
“아, 그렇네. 오크네요. 하핫. 전 그냥 갑자기 시체가 보여서 놀라서.”
“던전, 얼마 만에 들어와 본거야?”
“한 달 정도 됐겠죠?”
“맨날 술 퍼마시고 클럽에서 밤새고 그러다가 온 거지? 어젯밤에 뭐 했어?”
“아, 대장님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어젯밤에 제가 뭘 했든 무슨 상관이에요.”
“무슨 상관이냐니. 우린 지금 한 파티잖아. 파티원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는 건 당연한 거지.”
“저 그런 놈 아닙니다. 저에 대해 뭘 안다고 그렇게 막말을 하시는 거예요. 저 술 별로 안 좋아해요. 어제도 긴장돼서 조금 마신 것뿐이고요.”
“죽은 오크를 보고 사람 시체로 착각을 하는 게 말이 돼?”
“사람으로 착각을 한 게 아니고, 그냥 놀란 거라고요.”
“소리 질렀잖아. 시체 봤다고. 그걸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했겠어? 이해가 안 돼? 술이 아직도 안 깼어?”
“아니, 시체 보고 놀랄 수도 있지, 소리 좀 질렀다고 이래도 되는 겁니까? 탱커면 다예요? 그리고 상관없는 술 얘기는 좀 그만하죠? 네?”
“아까부터 술 냄새 풍기는 걸 그냥 참고 있었는데, 뭐가 어째?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죽 마셨지? 내 말이 틀려?”
“아니, 내가 술을 마시든 말든 무슨 상관이에요?”
“음주 운전까지 한 놈이 뭐가 어째?”
“뭐, 놈이요?”
이쯤 되자, 옆에 서서 듣고만 있던 정이채도, 싸우는 소리를 듣고 달려온 안상혁도 나서서 말렸다.
“딜러님, 그냥 잘못했다고 하세요.”
“탱커님, 이제 그만 참으시죠.”
사람들이 말리자, 윤동직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이상철이 혀를 차며 말했다.
“아, 정말 일진이 왜 이러냐. 6렙밖에 안되는 쪼렙 뒤치닥거리하러 들어와서, 시작부터 쿠사리나 먹고.”
“아, 이 자식이!”
윤동직이 이상철을 바라보며 호통을 치자, 안상혁이 그의 팔을 잡았다.
“맞는 말이잖아요. 강찬성 그 할아버지는 왜 빠지고 그래가지고. 어디서 자기 레벨 반밖에 안 되는 놈을 대타로 보내고. 이게 말이 돼요?”
“야, 이상철.”
“네. 왜요?”
“너, 나가라.”
“네?”
이상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형님!”
안상혁도 놀랐다.
“흠. 탱커가 원래 이런 걸 담당하는 포지션이기는 하지만. 오늘 파티는 정말 너무 개판이다. 나, 18레벨이거든. 이런 1층짜리 D급 던전은 혼자서도 쓸어버릴 수 있어. 너희들은 그러니까 그냥 관광차 날 따라온 거라고. 그래서 강찬성 어르신이 6렙짜리를 대타로 보내도 내가 가만히 있었던 거고. 너희들, 그거 설마 몰라? 힐러님은 아시죠?”
“아. 네. 탱커님. 그게.”
정이채가 얼버무리자, 윤동직이 다시 물었다.
“뭐라고 얘기 듣고 오신 거예요?”
“힐도 별로 할 일 없을 거라고, 그냥 따라가서 던전 클리어하고 보상템 먹고 나오면 된다고 부회장님이 얘기하시긴 했어요.”
“알겠냐, 이상철? 네 입장이 어떤 건지? 그러니까, 좋게 말할 때, 나가라.”
“나가라는 게 무슨 말이에요? 던전 밖으로 나가라고요?”
“그래. 나가라는 말에 무슨 다른 뜻이라도 있냐?”
“퇴각하면 장착 아이템 떨궈야 된다는데, 나가라구요? 저 무기도 엄청 좋은 건데, 물어주실 거예요?”
“네가 파티에서 역할을 제대로 못 해서 내보내는 건데, 내가 왜 네 무기를 물어주냐? 살아서 나가는 걸 고맙게 생각해야지. 글구 네 무기, 하! 그게 지금 네 수준에서는 좋아 보이겠지. 그럼 내 무기는 어떻게 보이냐? 엄마라도 팔아서 사고 싶어 보이냐?”
“동직이 형님!”
안상혁이 끼어들었다.
“그래, 그래. 어머니 얘기한 거는 내가 사과하마. 취소할게. 아무튼, 이상철 넌 나가줘야겠어. 저놈 나가지 않으면 난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인다.”
*****
광산 바깥에는 오크가 많았다.
물론 고블린들이 훨씬 더 많았지만, ‘고블린 광산’이라는 이름에 맞지 않을 정도로 많은 오크들이 있었다.
D급 던전에 오크 무리는 너무하다고 생각한 건지, 네댓 마리씩 떼 지어 돌아다니는 고블린과는 달리, 이준기가 지금까지 잡은 오크는 전부 혼자 다니는 녀석들이었다.
‘C급 이상 던전에서 오크를 숱하게 볼 테지만, 일단 거기에 가기 전에 ‘오크 학살자’ 업적을 달성하면 좋기는 할 텐데.’
오크 학살자 업적을 달성하는 방법은 두 가지.
누적해서 총 100마리의 오크를 죽이거나, 아니면 두 시간 안에 오크 다섯 마리를 오버킬하는 것이다.
쉽지 않은 업적이지만, 보상은 어마어마하다.
‘오크 학살자 반지. 오크에 대한 치명타율이 무려 30% 포인트나 증가한다.’
이름조차 ‘고블린 광산’인 던전에 오크가 100마리나 있을 가능성은 없다.
따라서 다섯 마리 오버킬을 노려야 한다.
총 체력의 150% 이상 대미지를 줘야 오버킬이 된다.
체력이 80 정도 되는 오크를 상대로 오버킬을 달성하려면 놈이 죽기 전에 120 이상의 대미지를 꽂아 넣어야 한다.
‘방법은 마나 폭발.’
이준기의 양손검, 패시파이어의 평균 대미지는 20.
세 방이 제대로 들어가면 약 60 정도의 대미지가 누적된다.
이때 마나 폭발을 먹이면 누적 대미지의 100%, 즉 60 정도가 들어간다.
총 120의 대미지가 들어가는 것이다.
‘누적 대미지가 59인데 마나 폭발을 썼다가는 스킬을 날리는 셈이다. 그러니까 계산 잘 하면서 싸워야 한다.’
지금까지 이 던전에서 잡은 오크는 총 14마리.
처음 몇 마리는 정찰 중에 엉겁결에 잡은 거라서 업적을 생각하지 못했다.
업적을 생각하고 나서 총 9마리를 잡았는데, 그중 넷이 오버킬로, 나머지는 그냥 죽었다.
첫 오버킬 이후 아직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시간 여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흐름이 좋지 않다.
벌써 세 마리 연속 오버킬 실패다.
조금 전도 마찬가지.
- 22!
- 17!
- 19!
이렇게 총 애매하게 대미지가 들어간 상태라면, 패시파이어의 다음번 공격이 오크를 죽이지 않기를 바라야 한다.
그래야 그 다음에 마나 폭발로 오버킬을 노릴 수 있으니까.
그런데 패시파이어의 대미지 레인지는 꽤 넓다.
최소 10에서 최대 30.
- 27!
- 오크 사냥꾼이 죽었습니다.
이런 전개였다.
총 85의 대미지.
오히려 경제적이라고 해야 할까, 오크의 피통 80을 간신히 넘기는 총 대미지.
오버킬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대미지 범위가 넓은 무기는 이런 문제가 있군. 사실 내가 평범한 입장이었다면 이게 별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업적 내용을 모두 다 알고 있는, 회귀자 이준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업적 달성까지 시간 여유는 충분한 편이지만, 오크 숫자는 그렇지 않았다.
숲이 넓기는 해도, ‘고블린 광산’이 테마인 던전에 오크가 많을 리 없다.
‘한 스무 마리 정도 있을까? 그렇다면 남은 건 대여섯 마리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