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탱커가 민첩을 끝까지 찍음-6화 (6/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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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 엘리트 학살자 (2)

Episode 2: 엘리트 학살자 (2)

“오, 이게 에픽급 아이템! 촉감부터가 다르네.”

김현수가 개그맨같이 과장된 몸짓을 하며 방패를 쓰다듬었다.

“잘은 몰라도 구원자들 암시장에 내다 팔면 한 5억 원쯤 받지 않을까요?”

“와, 이준기 님 좋겠어요. 저는 언제 이런 아이템 들어보나.”

“댐딜러가 방패를 보고 침은 왜 흘리냐. 이준기 님, 축하합니다. 이건 길드 차원의 경사네요.”

“감사합니다.”

2022년 1월 말, ‘서울연합’ 길드에서 웃고 떠들던 것이 기억난다.

B급 던전에 10인 공격대로 들어갔다가 나온 물건이었는데, 서브 탱커였던 이준기가 쓰는 것으로 공격대 멤버 전원이 합의했다.

메인 탱커 방혁우는 더 좋은 방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현수의 말대로 암시장에 내놓으면 적어도 5억 원은 받을 수 있는 물건이다.

그걸 순순히 양보한 멤버들도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하긴, 그때는 아직 순수했던 시절이었으니까.’

한국에서 길드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아직 ‘매너’라든가 상식’이라든가 ‘공공의 이익’ 같은 말들이 먹히던 시절이었다.

“방패는 들 일도 없는 궁수가 그걸 왜 먹어요?”

“내다 팔아서 차 사려고 합니다. 뭐 잘못됐어요?”

길드 전쟁 이후에는 저런 대화가 오가는 것이 비일비재했다.

방패를 닌자한 궁수, 길드 전쟁 전이라면 협회 차원에서 아이템을 몰수했을 것이다.

그러나 길드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협회는 공중분해 되었다.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자기들끼리 싸우니 왜놈들이 쳐들어온 것 아닌가.’

그때 생각을 하니 입안에 쓴맛이 돌았다.

이준기는 전방의 엘리트 오크 경비병을 주시했다.

고기나 가죽을 얻기 위해서 사냥을 한 게 아니라 그냥 심심풀이였는지, 오크 경비병은 축 늘어진 곰의 사체를 바닥에 던지고 그 위로 침을 한 번 뱉은 다음 호숫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어제 저 녀석을 못 본 이유는, 저놈의 행동반경이 이 던전 전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순찰 패턴도 없이 자유행동을 하는 듯하다.’

정찰에 허점이 있었던 이유에 대해 자기 자신에게 브리핑을 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사실 그게 아니었다.

‘엘리트 오크 경비병이 있는 이상, 열쇳돌은 저 녀석이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거의 100%다. 문제는 지금 내가 저놈을 잡을 수 있느냐는 건데.’

던전의 랭크를 생각하면, 보스인 오크 부두 술법사는 10레벨 중반 정도의 4~5인 파티면 무난히 사냥이 가능하다.

엘리트 오크 경비병은 보스 다음이라고 보면 되겠지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일반적인 ‘은둔자 오두막’ 스타일 던전이라면, 엘리트 코볼트 궁수가 섞여 있는 코볼트 4~6마리의 부대가 준 보스급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희귀몹이 있는 경우라면 다르다.

희귀몹은 대개 혼자 돌아다니는 프리랜서 스타일인데, 혼자서 몬스터 한 무리 몫을 해야 하니 훨씬 세다.

일반적인 오크보다 피통은 두 배 정도 크고, 공격력도 20~30%는 더 세다.

‘희귀몹에 대해서는 경험이 별로 없어서.’

그건 다른 구원자들도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이준기 정도라면 아마 희귀몹을 가장 많이 만난 구원자 중 하나일 것이다.

‘쫄 것 없다. 희귀몹을 보면 땡큐라는 말이 나오는 게 보통이었는데. 보너스나 다름없다. 내가 레벨은 좀 낮아도 지금 갖출 건 다 갖췄으니.’

이준기는 상태창을 확인했다.

- 힘 10. 민첩 40. 체력 20. 정신력 10. 물리 저항 0. 마력 저항 0.

- 무기: 숏소드.

- 무기: 숏보우.

- 방어구: 소형 방패, 가죽조끼, 가죽바지.

인벤토리에 불화살이 두 개 있고, 마나 책 두 권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3레벨이 되어 새로 얻은 바람의 책도 마찬가지.

스킬창으로 전환하고, 이준기는 바람의 책으로 할 수 있는 스킬을 화면에 띄웠다.

- 바람의 가호. 바람 책 1권 소요. 우호적인 대상 1명. 바람의 가호를 불러와, 다음번 1회의 공격에 한해 힘과 민첩 수치를 10만큼 높입니다.

‘바로 이거다.’

이준기는 숨을 죽이고 엘리트 오크 경비병의 뒤를 밟았다.

조금만 더 가면 로밍 몹이 깔끔하게 정리된 구역이 나온다.

*****

휘유우우!

공기를 가르고 불화살이 날아갔다.

퍽!

엘리트 오크 경비병의 팔뚝에 불화살이 박혔다.

몸통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 소리를 듣고 팔을 들어 방어한 것이다.

엘리트 오크는 불화살이 박힌 자리를 오른손으로 눌러 불을 껐다.

치지이익.

‘역시 엘리트라 이건가? 그래도 생각과는 다를 거다.’

“쿠어어어!”

순간, 엘리트 오크가 고통을 못 이기고 괴성을 내질렀다.

‘바람의 가호’ 스킬로 힘과 민첩이 10포인트씩 가산된 공격이었다.

화살이 오크 팔뚝의 질긴 근육을 뚫고 들어가 아래팔 노뼈를 강타한 것이다.

도끼를 든 오른손을 공중에 휘저으며 오크 경비병이 이준기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준기는 침착하게 두 번째 불화살을 날렸다.

분노에 차 침착성을 잃은 오크의 허벅지에 불화살이 파고들었다.

이준기는 침착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크의 하반신을 향해 또 하나의 화살을 날렸다.

“크와아아!”

양쪽 허벅지에 화살을 맞고 고꾸라졌던 엘리트 오크가 울부짖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오른손을 허벅지로 가져가 아직도 불타고 있는 불화살을 마구잡이로 뽑아버렸다.

다른 허벅지에 박힌 일반 화살 역시 손아귀로 잡아 꺾어버렸다.

오크의 눈이 핏빛으로 불타기 시작했다.

광란 상태에 빠져든 것이다.

오크를 처음 사냥하다가 죽는 구원자들의 대부분이 바로 이 광란 상태의 오크에게 희생된다.

“크아아아아!”

맹렬한 포효, 훨씬 빨라진 움직임, 게다가 타는 듯한 붉은 안광까지.

초보 구원자를 패닉 상태로 몰아넣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준기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내가 죽인 오크가 만 마리는 될 거다. 광란하는 오크 따위야.’

이준기는 침착하게 땅바닥에 활을 내려놓고 등 뒤의 방패를 꺼냈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빈약한 숏소드를 뽑아 오른손에 들었다.

‘보급품 숏소드를 오크에게 휘둘러 본 적이 없다. 이게 과연 오크의 피부에 상처를 낼 수 있을까?’

이준기는 오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오크 역시, 광란 상태에 빠져 허벅지의 아픔도 잊은 채 전속력으로 그를 향해 돌진해왔다.

‘첫 번째 불화살은 금방 꺼졌지만, 그래도 힘을 두 배로 해서 쏜 것이다. 게다가 그 후의 화살 두 개까지. 대미지는 충분히 들어갔다.’

둘 사이의 거리는 이제 10미터.

5미터.

오크는 오른손의 도끼를 머리 위로 올리면서 내리칠 준비를 했다.

이준기는 숏소드의 날을 안쪽으로 해서 내리치는 도끼를 막을 준비를 했다.

왼손의 방패, 그리고 오른손의 칼날을 모아서, 최초의 일격만 견뎌내면 된다.

깡!

오크의 도끼날에 동강이 난 숏소드 칼날이 방패를 맞고 튀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마나 폭발!”

이준기는 주문이라도 외듯이 기술 이름을 외치며 스킬을 시전했다.

펑!

- 마나 폭발로 59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막대한 대미지가 한꺼번에 들어갔음에도, 엘리트 오크 경비병은 꿈쩍도 하지 않고 도끼날을 방패 안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상관없어.’

이준기는 왼손의 방패가 버텨주기를 기도하면서 두 번째 마나 폭발을 시전했다.

투명한 표지의 책이 이준기의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오크 경비병의 몸통을 향해 파고들었다.

펑!

- 마나 폭발로 107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마나 폭발의 총천연색 불꽃놀이에 섞여 엘리트 오크 경비병의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몬스터의 거대한 육체가 바닥으로 쓰러져 내렸다.

축하음과 함께 상태창이 떴다.

- ‘광란 오크 제압’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 업적 보상: 오크 분쇄자의 검.

- 오크 분쇄자의 검: 숏소드. 광란 상태의 오크에게 추가 피해를 입힙니다.

‘그래. 누구나 다 하는 이 업적.’

*****

‘오크 분쇄자의 검’은 사실 대단한 무기는 아니다.

오크에게는 피해를 입을 때마다 일정 확률로 광란 상태에 돌입하는 패시브 스킬이 있다.

피해를 입을 때마다 터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오크를 계속해서 잡다 보면 반드시 광란 상태의 오크를 죽이게 된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언젠가는 달성하는 업적이다.

그러나 3레벨 구원자가 광란 상태의 오크를 잡은 것은 아마 지금 이준기가 처음일 것이다.

남들은 10레벨이나 되어야 달성하는 업적이고, 그 시점에서 ‘오크 분쇄자의 검’은 특별히 좋은 무기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이준기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좋은 무기다.

광란한 오크의 도끼질을 한 방도 견디지 못하고 부러진 보급품 숏소드 따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고급 무기다.

인벤토리에 자동으로 들어간 ‘오크 분쇄자의 검’을, 이준기는 오른손으로 집어 왼쪽 허리춤에 찼다.

그리고 이준기는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쓰러진 오크 경비병의 시체를 뒤졌다.

과거에도 세 번밖에 만나지 못했던 희귀몹이다.

가슴이 뛸 수밖에 없다.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를 열어보는 느낌이다.

- 전리품을 획득했습니다.

- 마력 저항의 펜던트.

- 장신구. 에픽 등급.

- 착용 효과: 마력 저항 +5

- 사용 효과: 7개 영역 중 하나를 골라 해당 계열 마력 저항을 5분간 25만큼 증가시킵니다. 사용할 때마다 아이템이 영구히 파괴될 가능성이 10% 존재합니다.

‘이럴 수가.’

에픽급 아이템이니까 기대는 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모르긴 몰라도 몇억 원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부두 술법사 녀석, 당장 잡으러 가야겠군.’

이준기는 다른 룻도 살폈다.

- 열쇳돌.

- 보유 효과: 은둔자의 오두막을 볼 수 있습니다.

- 사용 효과: 은둔자의 오두막 주변의 마법 결계를 걷어내 접근 가능하게 만듭니다.

예상대로, 엘리트 오크 경비병이 열쇳돌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다시 던전을 한 바퀴 돌면서..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열쇳돌을 들자마자, 쓰러진 오크 경비병의 육중한 몸뚱이 뒤로 건물 한 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

이준기는 오두막을 멀리 두고 주변을 돌면서 그 규모를 살폈다.

‘이런 것도 오두막이라고 부르나? 괴랄한 네이밍 센스군.’

호수의 지름은 400에서 500미터 사이.

그 호수의 남동쪽 4분의 1을 뒤덮는 규모의 오두막이라니, 요새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평수로 치면 1만 평이 넘는다.

그야말로 대저택이다.

열쇳돌을 쓰면, 은폐된 공간과 바깥의 공간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다.

되돌릴 수 없다.

열쇳돌을 가졌으므로, 나중에 들어오는 공략 파티와 딜을 해도 된다.

단지, 그렇게 하는 것은 양날의 검이다.

보스 대신 이준기를 사냥하려고 덤벼들지도 모른다.

누차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사실, 그것은 던전이 밀폐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밖으로 새 나가지 않는다는 점.

현재 시각은 아침 9시 38분.

이틀 전 오후 9시에 발생한 차원문이다.

평소대로라면, 정부는 오늘 오후 9시까지는 통제권을 지키려고 할 것이다.

‘국회 앞에 발생한 차원문이라는 것이 변수다.’

정부로서는 체면 문제도 있고 해서 통제권을 오래 가져가려고 할 것이지만, 국회의원들은 정부를 못 믿겠다고 하면서 빨리 길드 협회에 던전을 넘기라고 할 수도 있는 일.

의원들 사무실이 모여있는 의원회관 정문 앞이니, 오히려 의사당 본관 앞에 생긴 경우보다도 더 난리법석을 떨 가능성이 높다.

이준기는 인벤토리를 열고 열쇳돌을 클릭했다.

그리고 ‘사용’ 버튼을 클릭했다.

녹색 윤곽으로 표시되어 있던 은둔자의 오두막, 아니 저택의 모습에 색깔이 덧씌워졌다.

과연 만만찮은 규모.

저택 안으로 들어가기 전, 앞마당에조차 순찰 몬스터가 있다.

‘그래봐야 코볼트다.’

경험치 바가 반 정도 찼으므로, 코볼트 부대 두셋을 처리하면 레벨업을 할 것이다.

이준기는 커다란 나무줄기 뒤에 숨어서 활시위를 당겼다.

코볼트 궁수가 화살을 다리에 맞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준기는 거리를 벌리기 위해 냅다 달렸다.

코볼트 보병들이 끼익 소리를 지르며 몰려오는 소리를 뒤로하고.

코볼트 궁수가 도저히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멀어지자, 이준기는 멈춰서서 코볼트 무리 중 한 마리의 다리를 향해 화살을 쐈다.

그리고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코볼트 보병들을 한 마리씩 순서대로 때려잡았다.

부가 효과가 없어도, ‘오크 분쇄자의 검’은 보급품 숏소드와는 달랐다.

찌르는 공격을 하든 베는 공격을 하든 칼이 들어가고 나오는 느낌이 부드러웠다.

보병 세 마리를 다 잡고 나서도 궁수는 아직 사거리에 들어오지 못했다.

쩔뚝거리는 코볼트 궁수를 상대로 이준기는 화살을 한 방씩 날리고 뒷걸음질 치기를 반복했다.

네 번째 화살을 맞고 쓰러진 코볼트 궁수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이준기는 보병들의 룻을 모두 확인하고 나서 궁수에게 다가갔다.

- 불화살 네 개를 획득했습니다.

‘이 녀석은 불화살은 한 개 더 갖고 있군. 고맙다.’

이준기는 불화살을 집어 화살통에 넣었다.

코볼트 궁수들에게 노획한 일반 화살도 충분히 있었다.

이준기는 상태창을 열어 전투 기록을 확인했다.

- 업적 ‘엘리트는 처음이야’.

- 달성 시각: 2021년 8월 30일 오전 7시 21분.

- 업적 ‘광란 오크 제압’.

- 달성 시작: 2021년 8월 30일 오전 9시 17분.

‘시간이 촉박한 편이지만, 못할 정도는 아니다.’

이준기는 몬스터들이 정리된 숲속 공간을 성큼성큼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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