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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 회귀자 (3)
Episode 1: 회귀자 (3)
각성자들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화면에 당황하고 허둥대며 처음 몇 시간을 보내는 것이 보통이다.
가족이나 친구 중에 각성자가 있는 경우라면 그나마 낫지만, 각성 후 두 시간이 지나기 전에 첫 킬을 달성하는 일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언제 각성할 것인지, 그걸 미리 알고 있던 그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 업적 보상: 스탯 포인트 10.
아직 2레벨도 되지 않았는데 스탯 포인트가 무려 10이 주어졌다.
스탯 포인트가 10이나 주어진 것을 보면, 기존의 첫 킬 달성 시간 기록도 꽤 훌륭한 편에 속한 모양이다.
‘다음번에 내 기록을 능가하는 구원자에게는 더 큰 보상이 주어지겠군. 아주 나중의 일이 되긴 하겠지만.’
이준기는 스탯 창을 열었다.
1레벨로 각성한 구원자들이 받는 기본 능력치가 표시되었다.
- 힘 10. 민첩 10. 체력 10. 정신력 10. 물리 저항 0. 마력 저항 0.
레벨업 할 때마다 받는 스탯 포인트는 겨우 5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1레벨에 스탯 포인트 10은 사기라고 할 만하다.
‘저레벨 때는 뭐든지 한 방만 잘못 맞으면 즉사다. 체력이 10이나 11이나 별 차이가 없지. 체력은 나중에 아이템으로 보충하면 그만이다.’
이준기는 처음으로 얻은 보너스 스탯 포인트 10을 전부 민첩에 몰아넣었다.
- 힘 10. 민첩 20. 체력 10. 정신력 10. 물리 저항 0. 마력 저항 0.
민첩이 20인 1레벨 구원자라니, 지금 이 던전에 존재하는 몬스터들은 눈뜨고 사기를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1레벨이라고 얕보고 덤볐다가는 다가오기도 전에 치명타를 맞고 증발해버릴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두 번째 고블린이 쓰러졌다.
이준기를 향해 달려오던 도중에 연속 치명타를 맞은 것이다.
- 치명타! 150%의 대미지를 입혔습니다.
- 치명타! 175%의 대미지를 입혔습니다.
치명타는 중복될수록 대미지가 점점 더 증가한다.
이준기는 죽어가는 고블린에게 다가갔다.
‘어차피 이 녀석이 죽으면 레벨업이다. 레벨업을 하면 소모되었던 책이 다시 재생된다. 그러니까 첫 기술은 너에게 화려하게 사용해 주마. 덕분에 업적도 달성할 것이고.’
고개도 들지 못하고 신음하는 고블린 앞에서, 이준기는 스킬 ‘마나 폭발’을 사용했다.
펑!
경쾌한 폭발음과 함께 총천연색의 작은 불꽃놀이가 벌어졌다.
- 마나 폭발로 고블린에게 23의 대미지를 입혔습니다.
두 번째 고블린의 목숨이 끊어짐과 동시에, 휘황찬란한 빛이 이준기를 휘감았다. 레벨업이다.
- 2레벨을 달성하였습니다.
- 스탯 포인트 5점이 지급됩니다.
그게 끝이 아니다.
- ‘스킬 사용으로 첫 킬’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 업적 보상: 스탯 포인트 5.
- ‘첫 번째 오버킬’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 업적 보상: 스탯 포인트 5.
- ‘칼 같은 스킬 사용’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 업적 보상: 스탯 포인트 5.
‘스킬 사용으로 첫 킬’은 무슨 내용인지 분명하고, 오버킬은 적에게 감당 못 할 수준의 대미지를 주었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체력의 150% 이상 대미지를 가했다는 이야기인데, 다 죽어가는 적에게 무지막지한 대미지를 가했기 때문에 달성한 것이다.
‘칼 같은 스킬 사용’은 스킬을 사용해서 적을 죽이고, 그 경험치로 레벨업을 했다는 이야기다.
세 가지 업적 모두, 누구나 언젠가는 달성하게 되어 있는, 말하자면 보너스 성격의 업적이다.
하지만 그 세 가지 업적을, 2레벨이 되면서 모두 동시에 달성한 것은 아마도 전 세계에서 이준기가 처음일 것이다.
스탯 포인트 20이 한꺼번에 생겼다.
당분간은 숨어서 화살로 기습하는 형태로 몬스터 사냥을 개시해야 한다.
따라서 민첩은 가장 중요한 스탯.
하지만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므로, 체력 역시 신경 써야 한다.
이준기는 양쪽에 10씩 밀어 넣고, 상태창을 확인했다.
- 힘 10. 민첩 30. 체력 20. 정신력 10. 물리 저항 0. 마력 저항 0.
2레벨이 되어 다시 책 한 권을 선택해야 한다.
화면에 일곱 권의 책이 빙빙 돌며 이준기의 선택을 기다렸다.
‘책 두 권을 조합하는 방법은 무려 28가지나 된다. 어떤 조합이 최선인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2레벨밖에 되지 않은 저레벨 캐릭터라면 답은 명확하지.’
이준기는 두 번째 책 역시 마나의 책을 골랐다.
‘1레벨일 때와 마찬가지로 고르면 된다. 책 두 권을 소모하는 화려한 기술을 쓰려고 하다가는 레벨업만 늦어질 뿐이다. 3레벨로 올라가기 위한 경험치를 쌓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마나 폭발을 두 번 쓰는 것이다.’
*****
마나 폭발을 두 번 연속으로 먹일 수 있다면, 스킬 시전 이전에 들어간 대미지의 3배를 짧은 시간 안에 집중시킬 수 있다.
그런 고급 스킬 콤보를 겨우 고블린을 상대로 쓸 수는 없다.
‘코볼트 부하들만 없다면, 이 던전 보스인 부두 술법사도 잡을 만한 기술이다.’
부하들만 없다면 말이다.
코볼트는 고블린보다도 체력이 약한 잡몹에 불과하지만, 언제나 몰려다니기 때문에 위험하다.
‘최소 네 마리가 몰려다니고, 그중 하나는 반드시 궁수로 편성된다. 개중에는 불화살을 쏘는, 상당히 짜증 나는 녀석들도 많지.’
코볼트 네 마리를 상대하려면 적어도 3레벨을 달성해야 한다고 이준기는 결론 내렸다.
예전에는 E급 던전에서 고블린들만 줄창 사냥하면서 레벨업을 했다.
길드에 들어가고 얼마 안 있어 탱커로 포지션이 고정되자, 솔로잉을 할 일은 아예 없었다.
이준기는 탱커로서 언제나 길잡이와 척후 역할을 함께 했지만, 모든 탱커가 그런 것은 아니다.
정찰과 척후 역할만 생각한다면, 바람 계열로 특화한 살수들, 소위 파운더나 스나이퍼가 더 잘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전투 상황을 지휘하는 것은 아무래도 대미지 딜러보다는 탱커가 담당하는 것이 낫다.
딜러들보다는 탱커나 힐러가 더 큰 그림을 보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레벨 2에 불과한 이준기였지만, 그는 모든 경험을 몸에 기억한 채로 과거로 돌아왔다.
모든 구원자들 중에서 최고의 강자로 군림한 조슈아 테일러와 맞서 싸웠던 그 경험까지도.
‘이제 혼자 다니는 고블린은 없는 것 같으니 두셋씩 몰려다니는 무리를 상대해야겠군.’
이제까지처럼 한 대도 맞지 않고 사냥하는 것은 더 이상 되지 않겠지만, 크게 다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고블린 두세 마리로 구성된 무리를 발견하면, 일단 동선을 파악하고 싸움터를 고른다.
다른 몬스터 무리와 얽히기라도 하면 현재 이준기의 레벨로는 끝장이다.
끝장이란 죽음이다.
던전에서 사망하는 구원자들의 경우, 강한 몬스터 한 마리에게 당하는 것보다 약한 몬스터 여러 마리에게 당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리고 그런 경우의 절반 이상은 한 무리의 몬스터를 사냥하는 도중 다른 무리와 얽히게 되는 경우, 소위 ‘애드’에 의한 것이다.
적들의 동선과 지형을 살펴보고 신중하게 전투를 진행하면 애드는 100% 방지할 수 있다.
그러나 안전사고가 일어나듯이 애드는 일어난다.
그리고, 안전사고가 역시 그러하듯 애드도 인명을 앗아간다.
고블린 두 마리를 발견하고 이준기가 화살을 날렸다.
한 마리가 종아리에 화살을 맞고 앞으로 엎어졌다.
다리에 화살을 맞고 쩔뚝거리는 녀석이 도착하기 전에, 이준기는 여유롭게 무빙탱을 하며 첫 번째 고블린을 끝장냈다.
다리를 다쳐 늦게 도착한 녀석도 쉽게 처리했다.
‘두 마리까지는 대미지를 입을 일이 없군. 무조건 밖에서 안으로 베는 공격만 하는 고블린의 검술이야 뻔하니까.’
게다가 리치도 고블린보다는 팔이 더 긴 인간 쪽이 훨씬 유리하다.
먼 거리에서 고블린을 발견하면 일단 숨어서 동선을 확인하고, 주변 상황까지 다 파악한 다음에 움직였다.
해가 질 때까지 시간은 충분하다.
최대한 신중하게, 차원문 안으로 들어온 첫날을 잘 보내야 했다.
*****
밤이 되자, 이준기는 던전 입구의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백 개도 넘는 던전을 다녀본 이준기의 경험에 따르면, 던전 입구의 오두막으로 몬스터가 진입하는 경우는 구원자가 직접 끌고 올 경우뿐이다.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
이준기는 고블린 시체에서 노획한 고깃덩어리를 꺼냈다.
무슨 고기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안다.
길드 전쟁 당시, 한국의 거대 길드 두 곳이 던전 안에서 크게 전투를 벌인 적이 있었다.
일주일 동안 지속된 아주 길고 고된 전투였는데, 가지고 들어온 식량이 바닥나자 몬스터에게서 노획한 식량을 먹어도 되는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이준기가 기미 상궁 역할을 자원했다.
뜨악한 표정을 짓는 길드원들을 앞에 두고, 이준기는 손에 든 고기를 입으로 가져가 크게 베어 물고 씹기 시작했다.
“먹을 만 한데요. 닭고기랑 새우 섞어 놓은 것 같은 맛인데.”
과장법이 다소 섞여 있기는 했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거짓말이라 해도, 선의의 거짓말이었다.
배고픈 상태로 싸우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치킨과 새우를 상상하며, 길드원들은 너도나도 냄비에 숟가락을 찔러넣었다.
입에 넣는 순간, 다들 조금쯤은 속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참고 먹을 만한 맛이라는 표현은 사실이었다.
그 전투에서 이기고 나서, 길드원들은 한목소리로 이준기가 일등 공신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때 저녁 먹고 힘을 내서 이긴 거잖아요. 이준기 탱커가 노획한 고기로 요리를 만들지 않았다면···”
처음 던전에 진입한 초짜 구원자가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바로 식량 문제다.
길드의 지원을 받으면 쉽게 해결되는 문제이지만, 넘쳐나는 1레벨 구원자가 길드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다.
빠른 시간 내에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가든지, 그게 여의치 않다면 빠르게 레벨업만 하고 던전에서 퇴각하는 방법을 택한다.
구원자들을 위한 던전 공략 사이트에도 정석으로 소개되어 있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준기는 이번에 그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밥시간이 되기 전에 혼자서 D급 던전을 클리어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적당히 레벨업만 하고 던전을 나가버린다면 다시 언제 레벨업의 기회가 올지 모른다.
그래서 이준기는 별 망설임 없이 차원문을 뛰어넘어 왔다.
식량은 안에서 구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부싯돌로 불을 피우고, 돌 몇 개를 괸 위에다 이준기는 소형 방패를 뒤집어 얹었다.
그리고 그 위에 노획한 고깃덩어리를 펼쳐놓았다.
솔직히 말해서,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그런 맛이다.
손질이 제대로 안 된 양고기에서 나는 그런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하지만 조금의 시간도 허비하고 싶지 않은 그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내가 쓰러진 후에, 가족들은 어떻게 됐을까. 공무원 시험 준비를 3년이나 하고도 늘 낙방이나 하던 나를 믿고 기다려 주시던 우리 어머니, 근로장학금으로 근근이 학교에 다니면서 연애조차 해보지 못한 내 여동생···’
그러나 ‘쓰러진 후’라는 건 없었다.
조슈아 테일러의 흑마법에 쓰러진 순간, 그는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회귀해 왔으므로.
‘세계가 조슈아 테일러 일당의 마수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우선 내가 실력을 길러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 그래야 불쌍한 우리 어머니와 동생이 노예가 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누린내가 나는 정체불명의 고기를 씹는 것이 하나도 괴롭지 않았다.
‘오늘은 나를 제외한 다른 구원자가 들어오지 않았다. 과연 내일도 그럴까?’
특별한 것도 없는 D급 던전이라서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 던전 역시 다른 비슷한 던전과 마찬가지로 해당 지역을 관할하던 길드의 몫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서대문구, 마포구, 그리고 영등포구를 관할하던 길드의 이름은 ‘드래곤볼’이다.
D급 던전이니 다섯 명 또는 여섯 명으로 구성한 파티를 보내올 것이다.
협회 차원의 조율도 없이, 길드조차 없는 무소속 구원자가 차원문에 뛰어든 상황.
게다가 갓 각성한 1레벨 구원자.
사상 초유의 일이다.
길드 소속 파티가 내일 들어올지 모레 들어올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이준기의 존재를 좋게 생각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구원자들 사이에 사소한 시비는 있을지 몰라도 진심으로 서로 적대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구원자든, 일반인이든 마찬가지로.
그게 완전히 틀린 생각이라는 것이 밝혀질 때까지 이제 몇 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역사가 완전히 바뀌지 않는 한, 곧 구원자들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