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동굴의 한쪽에서 등장한 이들은 바로 카미유와 전투를 벌였던 비늘 괴물로 변한 경비대원들이었다.
그들은 각자 커다란 손수레를 밀고 있었는데 그 손수레에는 각각 여러 명의 인간이 마치 짐처럼 쌓여 있었다.
어둠 속이었지만 카미유는 그 수레에 실려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 구출했던 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들을 다 죽인 거야?”
카미유는 경악에 빠져 헤스컴에게 그렇게 물었지만 헤스컴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직 모두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지 않은 인간은 아무런 소용이 없거든요. 그리고 저들이 난동을 부리거나 한다면 하마스 신께서 노여워하실 수 있기에 저렇게 잠시 잠들게 만들어 놓은 겁니다.”
손수레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동굴 안으로 싣고 온 경비대원들은 손수레를 동굴의 가운데에 있는 검은 연못의 근처까지 밀고 가더니 바로 그 근처에 손수레를 멈추고는 실려 있는 사람들을 연못의 앞에 가지런히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카미유는 헤스컴에게 말했다.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게 좋아.”
“신에 대한 경배는 멈출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경비대원들은 모든 이들을 내려놓은 뒤 손수레를 끌고 자신들이 왔던 곳으로 다시금 돌아갔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헤스컴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검은 연못이 마치 끓어오르듯이 부글거렸다.
“이제 당신도 신을 맞이할 준비를 하십시오.”
“젠장. 멈춰! 멈추라고!”
“오로지 신을 위해. 그 어떤 어려움에도 신을 경배하라.”
헤스컴이 읊조리듯이 말하자 검은 연못에서 무언가 솟아오르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동굴의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한 존재였다.
그 존재의 아래쪽에 달린 것은 카미유가 비밀부두에서 보았던 괴물 문어의 촉수가 연상됐지만, 그보다 훨씬 어두운색을 띠고 있었으며 그 촉수들의 사이사이에는 마치 산호초 같은 가지들이 솟아올라 있었다.
그 존재의 다리는 두족류에 가까웠지만, 상체는 두족류와는 전혀 달랐다.
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히드라처럼 아주 거대한 검은 뱀머리 여러 개가 그 위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상체는 온전하지 않은 듯 그 여러 개의 뱀머리 중에서도 다수는 그 목이 잘려 나간 상태였다.
검은 연못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괴물은 온몸에서 검은색 물을 줄줄 흘리면서 연못의 위로 떠올라 있었다.
“저분이 바로 하마스 신님이십니다.”
연못으로 떠오른 괴물을 바라보면서 경외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 헤스컴을 보면서 카미유는 그 괴물의 존재에 압도감을 느끼면서도 헤스컴의 말에서 모순을 찾아내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너희 하마스 교단의 상징은 거대한 고래, 그런데 저기에 있는 저 괴물의 어디가 고래로 보인다는 거야? 저건 아무리 봐도 하마스 신이 아니야!”
카미유의 항변에 헤스컴은 조용히 하라는 듯 자신의 입 쪽에 촉수를 세웠다.
“쉿. 이제 하마스 신님이 제물을 받아들이실 겁니다.”
연못에 떠 있던 하마스는 헤스컴의 말대로 그 거대한 뱀머리 중 하나를 아래쪽으로 내렸다.
연못가로 숙인 뱀머리는 그곳에 가지런히 누워 있는 잠든 이들의 냄새를 맡아 보았다.
이윽고 하마스는 입을 크게 벌렸다.
꿀꺽.
마치 뱀이 쥐나 새알을 삼키듯 하마스는 한꺼번에 여러 명의 사람을 그 거대한 입으로 삼켜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카미유는 그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제발 멈춰!”
“그건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멈추게 하라고!”
“자자. 진정하세요. 이제 거의 끝났습니다.”
헤스컴의 말대로였다. 이제 하마스의 앞에 남아 있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멈추지 않고 눈앞에 있는 인간들을 삼켜대던 하마스는 마치 소화를 시키려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더니 다시 고개를 숙여서 남아 있는 모든 인간을 마무리로 삼켜 버렸다.
이제 더는 남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모두는 하마스 뱀머리의 목구멍 안쪽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모든 이들을 삼켜 버린 하마스는 더 이상의 볼일은 없다는 듯 다시금 검은 연못의 안쪽으로 천천히 하강했다.
꾸르륵.
그리고 하마스가 그 거대한 몸은 연못의 속으로 숨겨 버렸을 때 동굴의 안쪽은 침묵만이 지배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이번에도 잘 마무리가 된 것 같군요.”
헤스컴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며 카미유를 바라보았지만 카미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발악하는 것은 포기한 겁니까?”
헤스컴의 조롱에 카미유는 분노에 찬 눈으로 헤스컴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너는 반드시 내 손으로 갈가리 찢어서 죽게 만들어 주마. 그게 싫다면 지금 당장 나를 죽이는 게 좋을 거다.”
* * *
아침이 되자 시종장은 저택의 복도를 가로질러 사라의 방으로 향했다.
사라의 방문에 선 그는 노크하지 않고 살짝 그녀의 방문을 열었다.
아침까지 이어지던 소란스러움은 이미 잦아들어 있었다.
사라의 방에는 사라와 주환, 그리고 데스티나가 있었다.
사라는 자신의 침대에 누워서 숙면을 취하고 있었으며 주환과 데스티나는 어제의 장비들을 그대로 걸친 채로 벽에 기대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사람 인(人)의 형상처럼 어깨를 기댄 채 서로를 의지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방에 있는 모두가 잠들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시종장은 그들이 깨지 않도록 살짝 문을 닫고는 루퍼트의 서재로 갔다.
루퍼트는 잠들어 있지 않았다.
그는 주환과 데스티나의 이야기를 듣던 바로 그 자세 그대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던 것이다.
루퍼트의 서재로 들어온 시종장은 그에게 말했다.
“지금 모두 자고 있습니다.”
“그런가.”
그제야 루퍼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가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일어난 루퍼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외출복으로 갈아입고는 시종장과 같이 저택을 빠져나갔다.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그렇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루퍼트와 시종장이 향한 곳은 바로 하마스 교단의 사무실이었다.
사무실에 도착한 루퍼트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안으로 들어갔을 때 마치 그가 올지 알고 있었다는 듯 헤스컴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지런하군. 아침 일찍부터 예배를 드리고 있었던 건가?”
“항상 반복되는 일과니까요. 그리고 어제 일이 좀 있어서 잠을 자지 못하고 지금까지 깨어있던 겁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이시죠? 벨루드 씨가 가져갔던 헌금을 다시 가져오신 겁니까?”
헤스컴은 그렇게 말하면서 루퍼트와 시종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지만 두 분 손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군요.”
“딸아이의 이야기를 하러 왔네.”
“네. 또 다른 치료사가 필요한 겁니까?”
“시치미 떼지 마.”
루퍼트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지금까지 내 딸을 이용한 건가?”
“무슨 말씀이신지?”
헤스컴의 목소리는 조롱조에 가까웠다.
“말 그대로일세. 그리고 칼데브의 영주대행이 결국에는 그 동굴까지 찾아내고 말았더군. 그가 나에게 와서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었어.”
“네. 뭐.”
헤스컴은 장갑을 낀 손을 들어서 자신의 가면을 문질렀다.
“저 역시 그 일에 대해 수습을 하느라고 좀 골치가 아프긴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수습할 수 있는 수준의 일이 아니야.”
“수습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말 그대로 그는 칼데브의 영주도 아닌 그저 영주대행일 뿐, 그리고 칼데브 마을이 도빌워터에 간섭할 수 있는 그 어떤 권리도 없습니다. 황제가 사라져 중앙정부도 마비되었기에 이곳에 수사관이 올 수도 없죠.”
“자네도 들었겠지만 칼데브 영주대행은 성전기사단의 단장과 함께 움직이고 있어. 지금 두 사람 다 우리 집에 있지.”
“성전기사단은 껄끄럽긴 하지만 성전기사단의 단장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단원들도 없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분명 무슨 사정이 있는 걸 겁니다. 루퍼트 씨.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들을 어둠 속에 묻어 버리고 이 마을을 신성을 다시 바로 세우는 것이지요.”
“언제부터 내 딸을 끌어들인 거지?”
“끌어들이다뇨. 사라 아가씨 스스로 찾아오신 겁니다.”
“뭐라고?”
“루퍼트 님은 사라 아가씨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것 같군요.”
“내가 내 딸에 대해서 모른다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그분은 더욱더 강한 힘을 갈구하고 있었습니다. 힘이라기보다는 그 힘은 단순한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몸을 더 건강하게 할 수 있는 치유력을 의미하는 거죠.”
“어째서 나에게는 그것을 숨기고 있었던 거지?”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사라 아가씨는 하마스 신님의 축복을 받으셨죠?”
하마스의 축복.
지금 이 도시에 있는 자 중 하마스의 축복을 받은 이는 단 두 사람뿐이었다.
한 명은 헤스컴, 그리고 다른 한 명의 루퍼트의 딸 사라.
비늘 괴물로 변한 경비대원들 역시 하마스의 축복을 받은 것과 비슷했지만 진정한 하마스의 축복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하마스의 진정한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하마스의 힘을 일부 나누어 받는다는 것이며, 그 힘을 받은 자는 인간을 뛰어넘는 힘을 얻게 되지만 하마스의 충직한 시종이 되어야만 한다.
사라가 하마스의 축복을 받은 이유는 죽어가는 자신의 운명을 변화시키기 위함이었다.
길버트가 사라져 버린 뒤 사라는 숨을 거두기 일보 직전의 상황까지 몰리게 되었다.
그러자 루퍼트는 헤스컴에게로 와 사라에 대한 걱정을 이야기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헤스컴은 루퍼트와 사라를 교단의 지하에 있는 하마스에게로 데려갔다.
그리고 사라는 그곳에서 하마스에게 직접 축복을 받았다.
그럼으로써 사라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휠체어 신세를 져야 했지만 침대에서만의 생활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건강을 대가로 루퍼트는 온전히 하마스 교단의 요구에 묶이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소비하면서 하마스 교단의 뒤를 봐주어야 했던 것이다.
헤스컴의 말에 루퍼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축복이라는 것은 그저 병을 낫게 해 주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어. 내 딸이 하마스 신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 따위는 꿈에도 몰랐다고.”
“하마스 신님을 모실 수 있다는 것은 축복 중에서도 축복입니다.”
“그딴 말로 얼버무리려 하지 말게.”
“아무튼 사라 아가씨는 하마스 신님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하마스님과 비슷한 성질을 얻게 되셨습니다.”
“그게 뭐지?”
“하마스님은 지금 부상당한 몸을 치유하고 계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살아 있는 인간을 흡수하셔야 합니다.”
루퍼트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마스 신을 치유하기 위해서 하마스 교단은 계속해서 살아 있는 인간을 지하에 있는 하마스에게 바쳤다.
그들이 처음에 바쳤던 것은 바로 하마스 교단의 사제들이었다.
사제들은 그것이 신을 위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마스에게 몸을 바쳤지만, 그것은 한계가 있었다.
지금 하마스 교단에 헤스컴을 제외하고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하마스 신에게 인간을 바치는 작업을 더 이상 내부에서만 해결할 수 없었기에 헤스컴은 자신들이 도움을 준 루퍼트와 결탁하여 도시의 외부에서 인간들을 납치해 끌고 왔던 것이다.
하마스 교단에 유령선으로 위장한 범선을 제공한 것도 역시나 루퍼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