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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178화 (178/182)

178화

두 사람은 저택의 뒤편에 있는 정원으로 나갔다.

루퍼트가 의자에 앉아 책을 읽던 바로 그 장소.

어둠에 눈이 익숙해진 주환이었지만 지금 그가 의지할 수 있는 불빛은 프란시스가 들고 온 등불이 전부였다.

두 사람이 그곳에 도착하자 주환은 프란시스를 향해서 물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건 뭐죠?”

“이렇게 둘만 남았을 때 주환 님께 여쭤 보고 싶었던 것이 있습니다.”

프란시스는 들고 있던 등불은 한쪽에 있는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주환 님은 저의 과거를 알고 계시는 거죠?”

주환은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했다.

“제가 주환 님을 처음 만났을 때 주환 님은 저를 어떠한 이름으로 부르셨죠. 제 기억에는 ‘가스파르’.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요.”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시네요.”

“그게 제 원래 이름인 겁니까? 닮은 사람으로 착각했다는 대답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주환 님의 그 반응은 착각이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저를 잘 알고 있는 그러한 반응이었죠.”

프란시스의 말에 주환은 머리를 긁적였다.

“더는 숨길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역시 저를 알고 계셨군요.”

“잘 알고 있죠. 그런데 어째서 계속 추궁하지 않고 인제 와서야 물어보시는 거죠?”

“그것은 주환 님의 반응 때문이었습니다.”

“반응?”

“지인을 대하는 것 같은 반응이 아니라 마치 적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반응을 하셨죠.”

‘날카롭네.’

“그건 어쩔 수가 없었어요. 프란시스 씨, 아니 당신의 과거인 가스파르와는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던 사이이니까요.”

주환의 말에 프란시스는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그런 반응을 하셨던 거로군요. 그러한 반응 때문에 처음에 주환 님을 끌어들이기 싫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과거를 알고 싶었기에 주환 님을 반드시 끌어들여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죠. 벨루드 님이 저를 대하는 것을 보면 느끼시겠지만, 과거가 없는 이가 다른 곳에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제법 힘든 일이거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주환은 프란시스를 똑바로 보면서 말을 이었다.

“프란시스 씨는 분명 제가 아는 가스파르란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때의 과거는 잊고 이대로 살아가는 것이 더 좋을 거예요. 듣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겁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는 알고 있습니다. 주환 님의 반응을 보니 저 역시 평범한 삶을 살아오지는 않았겠죠. 저 역시도 수시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 집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떠한 사건의 낌새를 눈치채고 여러분을 끌어들이게 한 것도 그러한 과거의 영향이 있던 것이겠죠. 그렇지만 주환 님이 제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저처럼 자신의 과거를 알고 싶어 할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겠네요.”

주환은 그 자리에서 프란시스의 과거, 즉 가스파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주환은 자신이 직접 겪었던 가스파르의 모습, 그리고 그가 오르페우스 호에 갇혀 있을 때 가스파르를 겪었던 다른 이들의 경험담을 섞어 프란시스에게 들려주었다.

그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에도 프란시스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랬군요.”

그는 그저 그렇게 한 마디를 할 뿐이었다.

“거기까지가 제가 알고 있는 가스파르의 모습입니다.”

“제가 그 정도까지의 악인이었다는 거로군요. 그랬으니 주환 님이 저를 보고 놀라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군요.”

“처음에는 복수하러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했으니까요.”

“주환 님은.”

프란시스가 말을 하고 있을 때 등불이 일렁이면서 그의 얼굴에 그림자를 지게 하였다.

“그런 저의 과거를 알고 계심에도 제가 기억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믿어 주시는 겁니까?”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보았을 때 믿지 않을 수 없었죠. 그리고 겉모습만이 같을 뿐, 여러모로 아주 다른 사람이었으니까요.”

“제가 기억이 없다는 것은 믿으시지만, 저라는 사람 자체를 믿지는 않으셨군요.”

“솔직히 그랬기 때문에 이곳에서 얻은 정보들을 프란시스 님에게 온전히 전달하지 않은 것도 있어요. 프란시스 님의 의도가 온전히 순수한 것인지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렇군요. 물론 그 부분에서 주환 님이나 그 동료분들을 책망하거나 하려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저의 사정이 있듯 여러분도 여러분의 사정이 있을 테니까요.”

“그럼 이제 모든 궁금증이 풀리신 건가요?”

“궁금증이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지만 주환 님께 들을 수 있는 정보들은 대부분 다 들은 것 같군요.”

“여기까지 제가 말한 이상, 당신을 가스파르로 생각하고 대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물론 제 기억이 언제 다시 돌아올지는 알 수 없지만요.”

“그럼 다시 돌아가도록 하죠.”

주환이 그렇게 말하며 다시 저택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프란시스가 손을 들어서 제지했다.

“잠시만 기다리시죠.”

프란시스의 말에 주환은 멈춰 섰다.

“또 다른 볼일이 남은 건가요?”

“사실 주환 님을 기다리시던 또 다른 분이 계십니다.”

“그게 누구죠?”

“저쪽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프란시스는 정원의 더 안쪽의 어둠속을 가리켰다.

“기다리는 분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째서 저런 한쪽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죠?”

주환이 프란시스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말하자 프란시스는 주환의 뒤쪽에서 대답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이쪽으로 오실 겁니다.”

주환은 계속해서 어둠 속을 노려보았지만 그를 향해서 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대체 기다리는 사람이 오긴 오는 건가요?”

주환이 말하는 순간 그는 자신의 목에 와 닿는 날카롭고 차가운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단도.

지금 프란시스는 날카로운 단도를 들고 주환의 뒤로 다가와 그의 목에 그 날카로운 날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사실 이곳으로 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주환 님의 이야기를 듣고 비로소 마음을 굳힐 수 있었습니다.”

“뭘 말이죠?”

“제가 그렇게 악인이라면, 사라 아가씨를 지키기 위해서 좀 더 거리낌 없이 행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래서 이 자리에서 저를 죽이기라도 하겠단 겁니까?”

“그게 사라 아가씨를 지킬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겁니다.”

“사라 아가씨가 수상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군요.”

“…….”

“아닙니까?”

“그저 느낌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밤마다 철저하게 아가씨의 상태를 살폈죠. 저는 그 증거를 잡지 못했지만. 여러분은 뭔가를 발견하신 것 같더군요.”

“그래서 아가씨의 비밀을 어둠 속에 묻어 버리려는 겁니까? 저를 죽여서요?”

“네.”

“그런 식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저를 죽이고 데스티나를 죽이고, 그런 식으로 주변인들을 하나하나 없애 가면 이 일이 해결될 거라고 믿는 건가요?”

주환의 물음에 프란시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분명 당신은 악인이었지만, 적어도 저를 찾아왔을 때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으로 보였습니다. 아닙니까?”

주환의 설득에도 프란시스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스륵.

이윽고 프란시스의 단도가 주환의 목에서 멀어졌다.

주환이 뒤로 돌자 프란시스는 공격 의사가 없다는 듯 단도를 든 손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데스티나 님과 주환 님이 사라 아가씨의 방으로 들어가셨을 때 저는 다시 루퍼트 님을 찾아갔습니다.”

프란시스는 진지한 눈으로 주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의 입에서 사라 아가씨의 이야기가 나왔기에 저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라 아가씨의 안전과 행복만이 지금 저에게는 남아 있는 모든 것이기 때문이었죠. 루퍼트 님은 혼자 계시고 싶어 하셨지만 제가 억지로 뵙기를 청했던 것이죠.”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루퍼트 님은 사라 아가씨를 지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럼 루퍼트 씨가 프란시스 씨에게 뭔가를 지시하신 건가요?”

“이 이상은 말씀드리기가 어렵군요.”

프란시스는 말을 아끼면서 몸을 돌렸다.

“더 이상 숨기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죠?”

주환의 물음에 프란시스는 고개를 저었다.

“단지 진실을 숨기기 위해서 말씀을 드리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이곳까지 끌어들인 것은 바로 접니다. 그렇기에 저는 여러분들을 도와야 할 의무가 있고요.”

“그렇다면 어째서 말해주지 않는 건데요?”

“그것은 루퍼트 님의 명예 때문입니다.”

“명예요?”

“루퍼트 님은 지금 고뇌하고 계십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조만간 어떤 방식으로든 매듭지어지게 될 겁니다. 루퍼트 님은 선택을 앞두고 계신 거죠. 그렇기에 저는 루퍼트 님이 어떤 방식으로든 진짜 명예를 지키는 방법을 스스로 선택하시게끔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프란시스는 자신의 들고 있는 단도를 내려다보았다.

“제가 이 단도를 사용하려다가 포기한 것처럼 말입니다.”

* * *

주환은 프란시스와 함께 저택으로 돌아갔다.

사라의 방으로 돌아온 주환은 방을 나서기 전에 걱정과는 달리 사라와 데스티나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즐거워 보이는 것은 사라 쪽이었지만 데스티나도 나름 싫지 않은 듯 적절하게 사라와의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주환이 돌아오자 사라는 웃으면서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온 거야?”

사라의 물음에 주환은 멋쩍게 웃었다.

“그냥 남자들끼리의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 그건 나중에 이야기해 줄게.”

“어째서 숨기는 건데?”

“걱정하지 마. 나중에는 다 이야기해 줄 테니까. 참. 데스티나.”

주환은 이번에는 데스티나를 불렀다.

“왜 그러지?”

“잠깐. 따로 이야기를 좀 할 수 있을까?”

“알겠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이상하네. 어째서 아까부터 다들 나를 빼놓고 이야기하려는 건데?”

사라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불평을 했지만, 굳이 두 사람을 말리지는 않았다.

주환과 데스티나는 사라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그녀의 방을 나섰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자신들이 손님으로 왔을 때 썼던 방으로 이동했다.

방은 그들이 사용했을 때 그대로였다.

“나를 황급히 부르는 것을 보니 프란시스와 나갔을 때 무슨 일이 있었나 보군.”

“있긴 있었지. 프란시스에게 그에 과거에 대해서 전부 알려주었으니까.”

“그가 가스파르 시절이었던 때를 말인가?”

“응. 그쪽에서 먼저 물어오기에 이제는 숨기는 것도 의미가 없다 싶었거든.”

“그의 반응은 어땠지?”

“미묘해. 받아들이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이게 가장 중요한 건데, 루퍼트 씨가 프란시스에게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 같아.”

“그게 무엇인지는 들었나?”

“아니. 말해 주지는 않더라고. 지금 루퍼트 씨는 선택의 갈림길에 있고 루퍼트 씨가 스스로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기다리고 싶은 것 같았어.”

“그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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