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이놈!”
다음 공격해 오는 경비대원의 곤봉이 아슬아슬하게 카미유의 얼굴 쪽을 스치고 지나간다.
카미유는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할 수 있도록 살짝 백스텝을 밟은 다음 그대로 앞쪽으로 짧은 스텝으로 밟으면서 앞 손을 뻗었다.
권투의 기본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잽 공격.
짧은 잽으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일은 대단히 힘들었지만, 방금 공격을 받은 경비대원은 뒤로 나동그라져 버렸다.
정확하게 유효한 타점을 치는 솜씨와 건틀릿의 단단함이 합쳐졌을 때 카미유의 주먹은 그야말로 흉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카미유의 주먹에 맞은 이들은 단 한 방에 무력화가 되어 버렸다.
이번에는 두 사람이 동시에 공격해 들어왔다.
그들이 마구잡이로 곤봉을 휘두르자 카미유는 양팔을 모아 방패처럼 만들어 그들의 공격을 받아내었다.
쿵! 쿵!
곤봉이 건틀릿에 막혀 카미유를 직접 공격하지는 못했지만 계속해서 공격을 받는다면 건틀릿의 기계 장치가 완전히 망가질 수 있었기에 카미유는 상체를 옹크린 다음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상대들의 사이드로 빠져나갔다.
잠시간의 틈이 생기자 카미유는 왼쪽에 있는 상대의 허리 뒤쪽을 쳤다.
“끄악!”
맞은 경비대원은 비명을 지르면서 그대로 바닥에 나자빠졌다.
간장치기.
현대 권투에서는 금지되어 있는 기술로 그 공격을 받은 이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카미유가 왼쪽의 상대를 쳤을 때 오른쪽에 있던 경비대원이 몸을 돌리면서 비스듬하게 곤봉을 휘둘렀다.
퍽!
카미유는 어쩔 수 없이 그 공격을 자신의 등으로 받아내었다.
“윽.”
카미유는 작게 신음을 흘리면서 몸을 회전시켰다.
아직 상대도 몸을 완전히 돌리지 못한 상태. 카미유의 눈에 경비대원의 뒷목이 보였다.
카미유는 팔을 휘둘러서 그의 뒷목을 강타했다.
그러자 경비대원은 앞쪽으로 넘어지면서 바닥을 미끄러져 나아가 근처에 있는 벽에 충돌했다.
이제 남은 것은 포승줄을 들고 있는 두 명의 경비대원들.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싸움에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동료가 순식간에 쓰러져 버리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채로 카미유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미유는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와이어를 날렸다.
날아가던 와이어는 두 사람이 들고 있는 포승줄들을 조각조각 내 버린 뒤 다시 그녀의 손으로 회수되었다.
후두둑.
경비대원들이 들고 있던 포승줄은 마치 파스타면처럼 여러 가닥으로 잘려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포승줄이 쓸모없어지자 한 명의 경비대원이 검을 뽑아든 다음 카미유에게 달려들었다.
“죽어라!”
경비대원은 기합을 내지르면서 카미유의 머리에 검을 내리쳤다.
탁!
카미유는 마치 기도를 하듯 손을 모으면서 자신의 머리로 떨어지는 검을 잡았다.
카미유는 검을 멈추게 한 뒤 한 손으로는 그 검날을 잡아 무력화시키고 다른 손으로 그 경비대원의 턱을 어퍼컷으로 올려쳤다.
휘릭!
맞은 경비대원은 뒤쪽으로 한 바퀴 돌면서 바닥으로 쿵 하고 떨어져 내렸다.
대부분의 경비대원을 제압한 카미유는 마지막 남은 경비대원을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 전의를 상실한 모습이었다.
“하아. 숨차네.”
카미유는 숨을 몰아쉬었다.
“담배를 끊든지 해야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곧장 곰방대를 꺼내 불을 붙였다.
“원하는 게 뭡니까?”
경비대원이 입을 열자 카미유는 곰방대를 빨면서 대답했다.
“여기로 왔던 납치 피해자들, 지금 다 어디로 가 버린 거지?”
“그 사람들 다 고향으로…….”
“지금 그따위 거짓말이 먹힐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카미유가 눈을 부릅뜨면서 압박하자 경비대원은 겁을 먹은 듯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물러났다.
“사실은 교단에서 데려갔습니다.”
“교단? 교단이라면 하마스 교단?”
“네. 이곳에 종교 교단이라면 하마스 교단밖에 없으니까요.”
“하마스 교단이 어째서 그들을 데려간 거지?”
“그거야 그들은 우리 쪽에서 납치한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카미유의 물음에 대답해 준 것은 경비대원이 아니었다.
카미유는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경비대원들과 싸움을 벌였던 곳과 연결된 좁은 통로.
그리고 그 통로의 끝 부분에 누군가 서 있었다.
푸른색의 가면과 그와 같은 색을 띠고 있는 로브.
하마스 교단의 헤스컴이 바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당신은?”
카미유는 이야기하던 경비대원을 놓아두고 복도의 끝에 서 있는 헤스컴과 대치했다.
“당신이 그녀가 말했던 사람이로군요. 그 동굴을 혼자 찾아오셨었죠?”
카미유는 자신이 처음 동굴을 발견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에도 가면을 쓴 사람을 잠깐 봤었는데. 당신도 가면을 쓰고 있네. 그럼 두 사람이 서로 동료라고 봐도 되는 거겠지?”
“그렇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헤스컴이라고 합니다.”
“당신은 하마스 교단의 사람인 거고?”
“그것도 맞습니다.”
“허.”
카미유를 감탄스럽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는 건가?”
“이 정도로 밝혀진 상황에서 감추는 것 따위는 무의미해졌으니까요.”
“그건 우리를 없애겠다는 뜻이겠지?”
“그래야죠. 이쪽도 이쪽의 사정이 있거든요.”
“잡혀온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지?”
“저희 교단에서 보호하고 있습니다.”
“보호라고? 뻔뻔하네.”
카미유는 손을 들어서 헤스컴을 가리켰다.
“사람들을 납치해서 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거야?”
“교단에서 하는 일은 다 비슷합니다. 잃어버린 신성을 회복하는 것이죠.”
“괴물 사냥꾼 일을 하면 말이야. 반드시 느끼게 되는 게 있어. 알려줄까?”
“무엇이죠?”
“내가 사냥하는 괴물들보다 인간들이 더욱더 괴물에 가깝다는 거야. 신의 이름을 앞세운다면 그 어떠한 일이라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너희 같은 녀석들이 너무 많거든.”
“저희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헤스컴은 그렇게 말하면서 복도를 걸어 점점 카미유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카미유는 다가오는 헤스컴을 보면서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헤스컴이 하얀 가면의 동료하면 그 역시 그 하얀 가면과 비슷한 수준의 능력을 갖추고 있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범선에서의 싸움에서 마지막 순간에는 하얀 가면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었지만, 그것은 주환과의 협공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녀 혼자였다면 하얀 가면과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을지 장담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얀 가면을 쓰고 있던 그 여자가 사라인 건가?”
카미유는 다가오는 헤스컴에게 물었다.
“그렇다고 할 수도 있죠.”
“대답이 애매한데?”
그 순간 헤스컴은 자신의 로브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카미유가 움직였던 것도 그와 동시였다.
카미유는 헤스컴을 향해서 와이어를 날렸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것인지 헤스컴은 뒤로 물러서려고 했지만 카미유가 날린 와이어는 헤스컴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스윽.
그리고 헤스컴이 쓰고 있는 가면은 두 조각이 나 버렸다.
투둑.
잘린 가면이 스르륵 미끄러져 복도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헤스컴의 얼굴이 드러나자 카미유는 어째서 그가 가면을 쓰고 있을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의 안쪽에는 그녀가 싸웠었던 괴물 문어의 얼굴이 있었다.
물론 괴물 문어는 범선에 비견될 정도로 거대했지만 지금 헤스컴의 얼굴은 괴물 문어의 머리와 비슷하게 생겼을 뿐, 그 크기는 인간의 얼굴 크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치 가면의 안쪽에 또 다른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얼굴 대부분은 뼈 조직으로 덮여 있었으며 턱의 윗부분에 입으로 보이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럴 수가!”
카미유의 뒤에 서 있던 경비대원은 헤스컴의 얼굴을 보더니 비명과도 같은 탄식을 흘리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경비대 건물의 문을 박차면서 밖으로 도망쳐 버렸다.
카미유는 도망치는 경비대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헤스컴에게 말했다.
“아. 아까 했던 말 취소하도록 할게. 아까 당신보고 괴물보다 더한 놈이라고 했지만 이제 보니까 그냥 괴물일 뿐이었잖아.”
“방금 공격은 새로웠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은 날붙이를 날리는 공격인가 보군요.”
헤스컴은 카미유의 기술을 곧바로 간파해내었다.
“그렇지만 당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은 저와는 상극입니다.”
주륵.
헤스컴이 말을 마치자마자 그의 로브 아래쪽으로 고약한 냄새가 나는 끈적한 체액이 흘러내렸다.
“날붙이는 제 몸에 상처를 내기가 힘듭니다. 제 체액에 미끄러져 버리거든요.”
카미유는 헤스컴이 하는 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동굴에서 괴물 문어를 상대할 때도 같은 문제로 고생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지금 그녀의 오른손 건틀릿은 더는 와이어를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상대하기도 까다로운 적을 절반의 힘으로 상대해야만 하는 상황.
그사이에 헤스컴은 품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그것은 작은 병이었는데 그 안에는 검은색의 액체가 들어 있었다.
헤스컴은 그 병을 열어서 안에 들어 있는 검은 액체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러자 검은 액체는 바닥으로 떨어지더니 마치 작은 구슬들처럼 하나하나 응집되어 갔다.
그리고 응집된 검은 구슬들은 저절로 움직이면서 카미유를 향해서 빠르게 굴러 왔다.
카미유는 불길함을 느꼈기에 움직이면서 그 구슬들을 피하려 했지만, 그 구슬들의 목표는 처음부터 카미유가 아니었다.
검은 구슬들은 카미유에게 당해서 쓰러져 있는 경비대원들에게 각각 하나씩 퍼져 나갔다.
경비대원들에게 간 각각의 검은 구슬들은 기절한 경비대원들의 얼굴을 타고 올라가 그들의 입, 혹은 콧구멍을 통해서 그 안으로 들어갔다.
검은 구슬이 몸속으로 들어가자 쓰러져 있던 경비대원들은 눈을 번쩍 떴다.
“크아악!”
눈을 뜬 경비대원들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면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의 검은 액체를 좀비들에게 주입하면 강력한 좀비들로 재탄생합니다.”
고통스러워하는 경비대원들을 바라보면서 헤스컴은 그렇게 말했다.
“입에 재갈을 물고 있던 바로 그 좀비들을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런 좀비들은 보통의 좀비들보다 훨씬 강력한 신체능력과 지능을 얻게 되죠. 그렇기에 그들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배에 태워서 데려올 수가 있는 겁니다. 물론 아무리 지능이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좀비는 좀비. 인간을 물어서 자신의 동료로 만들고 싶다는 본능이 조금은 남아 있기에 그들이 인간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재갈을 물려놓는 것이지만요.”
카미유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경비대원들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피부가 고통스러운 듯 자신들의 옷을 벗거나 찢어 버린 다음 자신들의 피부를 미친 듯이 문질러 대었다.
“그렇다면 그걸 인간에게 사용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보시는 대로입니다.”
촤르륵!
어느 순간 경비대원들의 고통스러워하는 몸부림이 멎었다.
그들의 움직임이 멈추자 그들 모두의 온몸에서 비늘이 돋아나기 시작하였다.
몸의 이곳저곳에서 돋아난 은색의 비늘들은 그 범위를 삽시간에 넓혀가더니 경비대원들의 전신은 이윽고 그 비늘들로 덮여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