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174화 (174/182)

174화

“프란시스 씨.”

“여러분이 방금 하신 이야기들. 루퍼트 님은 전혀 부정하지 않으셨죠. 그것은 여러분의 이야기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거고요.”

“우리도 그렇게 생각한다.”

“제가 여러분을 이 일에 끌어들였을 때 이렇게 큰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물론 루퍼트 님이 전령의 실종에 대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뭔가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저는 사라 아가씨를 위협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여러분에게 부탁을 한 것이었죠.”

주환과 데스티나는 그들의 입에서 사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누구보다 큰 충격을 받은 것은 프란시스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러분들의 말이 맞는다고 해도 사라 아가씨에 대한 이야기만큼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사라 아가씨는 집안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나갈 수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여러분 모두가 본 것이 아니라 당신들의 동료 한 사람이 확인한 거라면 그 사람이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프란시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데스티나는 고개를 돌려 사라의 방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프란시스. 지금 사라를 좀 만나 볼 수 있을까?”

“지금 말입니까?”

프란시스는 내키지 않는 듯했다.

“그렇지만 사라 아가씨는 지금 쉬셔야 합니다.”

“그래서는.”

프란시스는 데스티나가 하고 싶은 말을 눈치챘다.

“그래서는 제가 사라 아가씨의 알리바이를 만들어 드리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거로군요.”

“말 그대로다.”

데스티나의 대답에 프란시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신다면 어쩔 수가 없군요. 그렇지만 약속해 주실 게 있습니다. 사라 아가씨를 만났을 때 사라 아가씨를 막무가내로 추궁하거나 아가씨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동을 취하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약속하지.”

약속을 받아내자 프란시스는 두 사람을 사라의 방 쪽으로 안내했다.

사라의 방문에선 프란시스는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아가씨.”

프란시스의 부름에 안쪽에서 사라의 대답이 들려왔다.

“네. 프란시스 님. 무슨 일이시죠?”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이런 시간에 손님이 오셨다고요?”

“네. 아가씨도 알고 계신 분들입니다. 주환 님과 데스티나 님이십니다.”

프란시스가 두 사람의 이름을 말하자 안쪽에서 침대보가 움직이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려왔다.

“알겠어요. 두 분을 안으로 모셔 주세요.”

“알겠습니다.”

프란시스가 사라의 방문을 열자 데스티나와 주환은 사라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금까지 침대에 있었던 듯 사라는 침대의 한쪽에 걸터앉은 채로 들어오는 두 사람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주환 님. 데스티나 님.”

* * *

“들어오세요.”

데스티나와 주환이 사라의 방으로 들어오자 사라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섰다.

“아. 무리하실 필요는 없어요.”

주환이 만류하려고 했지만 사라는 괜찮다는 듯 웃었다.

“요즘은 몸이 아주 괜찮아져서 조금 걷는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지는 않아요.”

사라는 그렇게 말하며 문 쪽에서 버티고 있는 프란시스를 바라보았다.

“프란시스 님은 가 보셔도 좋아요.”

“하지만 아가씨. 무슨 문제라고 생기면…….”

“문제요?”

사라는 데스티나와 주환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이 두 분이 문제를 일으키실 만한 게 있나요?”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저희 셋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주시는 건 어렵지 않으시겠죠?”

사라의 권유에 프란시스는 묵례를 한 다음 하는 수 없이 사라의 방을 빠져나갔다.

“자. 그럼 이쪽으로 앉으세요.”

사라는 한쪽에 놓여 있는 의자로 두 사람을 이끌었다.

주환과 데스티나는 의자에 앉으면서 사라가 묘하게 흥분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평소에는 제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말씀이신가요?”

사라가 진지하게 묻자 주환은 당황하고 말았다.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농담이에요. 농담.”

사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음을 지었다.

“평소에는 몸이 아파서 그런 게 제 표정으로 드러나는 일이 많거든요. 그렇지만 지금은 정말로 기분이 좋아요.”

“무슨 좋은 일이 있으신가 보죠?”

“여러분이 이렇게 찾아와 주셨잖아요.”

두 사람은 지금 사라가 하는 말을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제 나이 또래의 손님이 저를 이렇게 찾아오시는 일이 거의 없거든요. 그리고 낮에는 좀 괜찮지만, 밤에는 조용하고 외로운데 이렇게 두 분이 와주셨으니 기쁜 것도 당연한 일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주환은 그렇게 말했지만, 자신들이 가져온 용건이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억지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 차라리 서로 말을 편하게 하는 게 어때요? 우리 서로 다 나이가 비슷하잖아요. 저는 항상 친구가 있었으면 했거든요.”

“원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지.”

데스티나의 말에 사라는 기쁘다는 듯 손뼉을 쳤다.

“받아줘서 고마워. 그럼 두 사람 차 한잔할래?”

“차? 고맙긴 하지만 이 밤중에 사람을 시키기는 좀 그런데.”

“아냐. 걱정하지 마. 내가 끓여줄 수 있으니까.”

사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걸음을 옮겨 침대의 옆에 있는 서랍장에서 차를 끓일 수 있는 다구(茶具)를 꺼냈다.

불을 피울 수 있는 작은 풍로, 찻주전자, 물 식힘 그릇, 찻잔과, 받침까지 차를 끓일 수 있는 충분한 세트가 사라의 손에 들리자 주환과 데스티나는 사뭇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차를 좋아하는데 차가 먹고 싶을 때마다 시종장님을 부르면 피곤하실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서 차 정도는 내가 직접 끓여서 먹으려고 준비했거든.”

사라는 풍로를 쟁반 위에 올려놓은 뒤 그 안에 숯을 집어넣고 능숙하게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손님이 오면 꼭 내 손으로 끓여주려고 했어.”

풍로에 불이 붙자 사라는 물병에 든 물을 찻주전자에 옮기고 주전자를 풍로의 위에 올렸다.

이윽고 주전자의 안에서 물이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데스티나와 주환은 사라의 진지한 모습을 보면서 선뜻 자신들이 온 목적을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찻잎을 씻어내는 작업과 다시 우리는 작업을 거쳐서 차가 완성되자 사라는 두 개의 찻잔에 차를 따른 다음 데스티나와 주환에게 그 차를 건네주었다.

“자. 여기.”

두 사람은 사라가 내민 차를 받아들었다.

“그럼 감사히 마시도록 하지.”

“하하. 데스티나 그렇게 딱딱하게 인사를 하지 않아도 돼. 데스티나는 기사라서 그런 건가?”

“미안하다. 그저 몸에 밴 습관 같은 거라서.”

“미안할 것까지야.”

찻잔을 받아들인 주환은 차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두 사람이 차 맛을 보고 있을 때 사라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참. 나 너희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어!”

그리고 사라는 눈을 빛내면서 말을 이었다.

“너희 둘, 사랑하는 사이니?”

사라의 물음에 두 사람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주환은 당황한 목소리로 사라에게 물었다.

“나는 몸 때문에 사교 활동을 할 수가 없어서 연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거든. 그래서 너희가 연인이라면 연애 이야기에 대해서 듣고 싶어서.”

“미안하지만 우리 두 사람은 그저 동료일 뿐이다.”

데스티나의 대답에 사라는 아쉬운 얼굴이 되었다.

“그렇구나…….”

“그나저나 사라. 너에게는 프란시스가 있지 않은가.”

“프란시스 님. 그래. 나한테는 그분이 있긴 하지.”

“그 사람은 너의 약혼자이기도 하고 루퍼트 씨에게 큰 신임을 얻고 있으니까. 너와는 잘 어울릴 것 같은데.”

“프란시스 님은 좋은 사람이야. 나한테도 잘 대해 주고 아버지도 좋아하시고. 물론 동생은 프란시스 님을 싫어하긴 하지만 그건 사람 자체를 싫어한다기보다는 그분의 알 수 없는 과거를 경계하는 것에 가깝지. 나도 그분을 좋아하긴 하지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사라를 보면서 주환은 물음을 던졌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어?”

주환의 물음에 사라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내가 정말로 그 사람을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 지금까지 이성 간의 사랑이라는 걸 해 본 적이 없으니까. 이게 사랑인 건지 아니면 불완전한 사람끼리 서로 느끼는 동정심 같은 것인지 구별을 할 수 없거든.”

몸이 불편한 사라.

자신의 과거를 잊어버린 프란시스.

사라는 서로에게 가진 호감이 특별한 상황에 빠져 있는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종의 교감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프란시스 씨 역시 진정한 나를 사랑해 주는 것이 아니라 몸을 아픈 사람을 간호하면서 느끼는 일종의 애처로움 때문에 의무감으로 나의 약혼자를 자처한 거일 수도 있고.”

“그렇진 않을 거야. 프란시스 씨를 오래 본 것은 아니지만 정말로 너를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

가스파르로서의 모습까지 알고 있는 주환으로서는 자신의 말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럴까.”

그렇게 중얼거리던 사라는 곧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 이야기만 하고 있었네? 너희는 무슨 일로 온 거야?”

“그게.”

주환은 말을 고르고 있었지만 데스티나는 어느 정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사라. 오늘 혹시 밖에 외출한 적이 있나?”

“오늘? 오늘은 나간 적이 없는걸.”

“확실한가?”

“응. 내 일이니까 내가 가장 잘 알지 않겠어?”

“혹시 아까 밤에 밖에 나갔다고 온 일이 있다거나?”

“그런 일은 없어. 너희도 알고 있잖아. 내가 몸이 불편하다는 걸.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내가 외출할 때는 항상 시종장님이나 프란시스 님이 동행하시거든. 그분들에게 물어보면 확인해 주실 거야.”

두 사람이 예상한 대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확실한 증거를 잡지 않는 이상 더 이상의 추궁이 무의미하다고 느낀 주환은 질문의 방향을 바꾸어 보았다.

“이건 다른 일 때문에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응. 물어봐.”

“길버트라는 사람 기억해?”

“길버트?”

사라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잘 알고 있어. 지금은 아니지만, 옛날에는 내 치료를 담당해 주시던 분이니까.”

“그 사람 어쩌다가 네 치료를 그만두게 된 거야?”

“음.”

사라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 다른 사람들한테는 이야기하지 말아줄래?”

주환과 데스티나가 동의하자 사라는 입을 열었다.

“길버트는 우리 아버지의 요청으로 하마스 교단에서 보낸 내 치료사였어. 인상도 좋았고 교단에서 소개해 준 사람이니까 믿고 맡길 수가 있었지. 그 사람이 주로 하던 치료법은 기도였지만 그 기도는 사실상 별 효과는 없었고 가장 효과가 있던 것은 그가 지어주던 약이었어.”

“약에 능통한 사람이었나 보네?”

“나도 처음에는 단순히 그렇게만 생각했어. 그 사람이 지어주는 약을 먹으면 아픈 게 좀 사라졌거든. 그렇게 해서 계속 그의 약을 먹었지만, 몸은 나아지지 않았어. 아픈 것은 줄어들었지만, 어느 순간 전과 같은 효능을 보려면 더 많은 약을 섭취해야 했지.”

사라의 이야기를 듣던 주환은 그 약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설마 그거 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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