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그 다리로 배를 잡아서 말인가?”
“이곳으로 드나드는 배의 규모가 크다면 들어온 배가 다시 뱃전을 입구 쪽으로 돌리는 것이 힘들겠지. 그렇지만 아까 그 괴물 문어가 있다면 그 배를 잡아서 그대로 밀어 바깥으로 내보내 줄 수가 있어. 그리고 근처 있는 암초에서도 보호해 줄 수도 있고.”
“확실히 일리가 있네요.”
이온이 카미유의 말에 동의하자 주환은 일부가 부서진 낚싯배를 보면서 말했다.
“카미유 네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이 유령선을 붙잡을 기회일 수도 있어. 유령선이 이 부두로 다시 돌아왔을 때 우리를 발견한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도망치지 못할 거야. 그들은 괴물 문어가 자신을 바깥으로 보내줄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그럼 우선 안쪽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찾으면서 부두의 동태를 살피도록 하지.”
데스티나의 말에 주환 일행은 카미유의 안내를 따라서 동굴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동굴의 안쪽에는 석문이 달린 돌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환 일행은 석문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여기 문이 있네요.”
이온이 석문으로 다가가서 문의 손잡이를 찾아보았지만 잡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이온은 문을 더듬으면서 손가락을 집어넣을 수 있는 곳이 존재하는지 조사했지만, 문틈이 딱 들어맞았기에 그러한 틈은 없었다.
“아무리 봐도 그냥 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때처럼 마도과학을 바탕으로 하는 잠금장치라면 여는 것을 시도해 볼 수 있지만, 이 문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나 봐요.”
“내가 처음 왔을 때 열어보려고 했지만 단순한 방법으로는 열 수 없는 것 같아.”
카미유는 기억을 더듬었다.
“그렇지만 분명히 열리는 것을 봤어.”
“어떻게?”
“이 동굴을 탈출하기 직전에 안쪽에서 누군가 문을 열었거든.”
“인상착의는?”
“거리도 멀고 어두워서 제대로 보지는 못했는데. 얼굴을 이상할 정도로 보기가 힘들었어.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가면?”
카미유의 입에서 가면이란 말이 나오자 곧바로 주환과 이온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단어에 반응한 것은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벨루드 역시 진지한 눈빛으로 카미유를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가면이었어?”
주환이 묻자 카미유는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확실하다고는 하기 힘들지만, 아무튼 그런 느낌이었어.”
‘카미유는 이 동굴에서 우리를 습격했던 그 이상한 좀비들을 만났었다고 했지. 그리고 카미유가 목격한 가면 쓴 자. 그럼 이 동굴은 루퍼트 씨뿐만이 아니라 하마스 교단과도 관련이 있을 수가 있다는 뜻인가?’
주환이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 이 문을 여는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지. 이 부두로 배가 드나든다면 안쪽뿐만이 아니라 분명 바깥에서도 여는 방법이 있을 거다. 보안 때문에 쉽게 그 방법을 할 수 없도록 해 놓았겠지만.”
데스티나는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샅샅이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두가 흩어져서 석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동굴 안이 어둡기는 했지만, 횃불들이 그 안을 밝히고 있었기 때문에 동굴의 내부를 뒤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리 해도 석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없었다.
“이거 안쪽에서만 열 수 있는 구조가 아닐까?”
아무리 찾아도 방법을 알 수 없었던 주환이 일행들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그럴 리가 없다. 구조와 비교하면 너무 비효율적인 방식이야.”
방법을 찾는 것을 포기한 이온은 석문의 앞에서 섰다.
“그냥 부숴 버릴까요?”
이온의 말에 모두가 흥미를 보이면서 그녀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부술 수 있겠어?”
“시도는 해 봐야죠.”
이온은 그렇게 말하고는 석문의 앞에서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뒤에서 물러났다.
“합!”
이온은 주먹으로 석문을 강하게 갈겼다.
뻑!
엄청난 충격음이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주먹으로 석문을 때린 이온은 문에서 떨어지면서 손을 털었다.
“꿈쩍도 안 하네요.”
“뭐 그렇겠지.”
주환이 그렇게 말하자 이온은 주환을 실망하게 하기 싫었는지 재빨리 다시 석문으로 다가갔다.
“여러 번 때리면 될지도 몰라요.”
이온은 석문에 붙어서 이번에는 한 발이 아닌 연타를 날리기 시작하였다.
미친 듯이 주먹으로 연타를 날린 이온은 멋지게 옆차기를 날린 다음 그 반동으로 백 플립을 돌면서 뒤로 착지했다.
석문에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으아아아!”
이온은 분노의 목소리를 내지르며 파괴자 모드로 돌입하려고 하였다.
그때 카미유의 목소리에 이온은 파괴자 모드로 들어가려는 것을 멈추었다.
“혹시 그 괴물 문어가 문을 여는 역할도 했다면?”
“그 문어가?”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카미유의 말에 그들은 다시 부두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부두 밑에서 유유히 흐르고 있는 바닷물을 바라보면서 데스티나는 말했다.
“괴물 문어가 열쇠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면 보안장치로는 일석이조로군. 침입자가 괴물 문어를 죽여 버리면 자동으로 안쪽에서 있는 석문은 열지 못하게 되는 것일 테니.”
“제가 물속에 들어가서 그 괴물을 상대했을 때 괴물의 크기에 놀라서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 괴물이 몸으로 가리고 있던 부두 밑쪽에 문을 열 수 있는 장치가 있을 수도 있어요.”
“그걸 확인하는 방법은 단 하나인데.”
모두의 시선이 이온에게 쏠린다.
“네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이온은 알겠다는 듯 마치 수영선수처럼 몸을 날려서 부두 밑의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주환 일행이 물속으로 들어가는 이온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자기 벨루드가 작게 소리쳤다.
“저기 좀 보세요!”
벨루드의 외침에 나머지 일행은 동굴의 입구 쪽으로 바라보았다.
여러 개의 횃불이 마치 도깨비불처럼 공중에 떠서 일정한 속력으로 비밀부두를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 횃불들은 어두운 동굴을 밝히기 위해 배에 설치된 횃불들이었다.
지금 배가 동굴의 입구를 통과하여 그들을 향해 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환 일행은 횃불이 달린 높이를 통해서 그 배가 자신들이 타고 온 낚싯배보다 훨씬 큰 배라는 것을 깨달았다.
“불을 꺼야 하지 않을까?”
부두 쪽으로 오고 있는 배를 보면서 주환이 입을 열었다.
“이미 이곳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면 상대 쪽에서 의심할 텐데.”
“아니. 너무 늦었다. 우리가 상대를 발견했으니 저쪽에서도 우리를 볼 수가 있다. 지금 불을 끄면 이곳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바로 알려주는 거겠지. 우선 숨어 있다가 기습하는 방향으로 가자.”
데스티나의 말에 주환 일행은 우선 부두에서 벗어나 동굴 안쪽으로 물러섰다.
동굴의 안쪽 벽에 붙으면 상대에게서 어느 정도 숨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동굴의 벽에 몸을 숨긴 뒤 주환이 일행에게 물었다.
“저 녀석들 들어오지 않고 바로 도망치면 어쩌지?”
“그렇지는 않을 것 같아. 우리가 저쪽을 볼 수준이면 이미 동굴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왔다는 이야긴데. 저 정도 큰 배라면 갑자기 동굴을 빠져나가는 건 힘들 거야. 우선 끝까지 들어와서 동태를 살피려고 할 가능성이 커.”
카미유의 말에 벨루드가 손을 뻗어 부두 쪽을 가리켰다.
“부두 쪽에 아직 저희 낚싯배가 남아 있어요.”
“그러면 확실하게 들어올 거다. 저 낚싯배를 타고 올 정도라면 침입자의 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테니까.”
“내가 봤을 때 아마 저게 내가 말했던 유령선일 것 같아.”
“저들을 놓쳐서는 안 돼.”
주환 일행은 배가 안쪽 깊은 곳까지 계속해서 들어올 수 있도록 기다렸다.
배는 그들이 기다리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천히 부두 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쿵!
부두 쪽에 머물러 있던 낚싯배가 범선과 부딪치면서 큰 소리가 났다.
낚싯배는 당구공처럼 튕겨 한쪽으로 밀려 나갔다.
낚싯배를 밀어내 버린 범선은 서서히 부두의 앞에 멈추었다.
숨어 있던 주환 일행은 상대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서 귀를 기울였다.
그렇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타닥!
무언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발걸음 소리.
그리고 그 소리는 한두 개가 아니었다.
데스티나는 고개를 살짝 내밀어 부두 쪽의 동태를 살폈다.
검은 두건을 쓰고 있는 좀비들.
여러 마리의 검은 두건 좀비들이 부두에 내려와 있는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의 뒤쪽에는 커다란 범선이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런 도구를 이용하지 않고 범선의 위에서 그대로 뛰어내린 듯했다.
“그때 봤던 그놈들이야.”
주환 역시 상대를 확인하고 일행에게 그렇게 말했다.
좀비들 역시 침입자들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그들이 있는 곳으로 수색하고 있었다.
“내가 신호하면 바로 나간다.”
데스티나는 손을 들었다.
“저는 어떻게 하죠?”
긴장했는지 벨루드는 마른 침을 삼키면서 데스티나에게 물었다.
“너는 낚싯배를 책임져야 한다. 적들은 우리가 맡을 테니.”
“조심하세요.”
“고맙다. 그럼…….”
데스티나는 신호를 주었다.
“나가자!”
데스티나의 신호에 일행은 그림자에서 벗어나 부두가 있는 쪽으로 뛰어나갔다.
주환 일행이 모습을 드러내자 반대쪽으로 올라오고 있던 좀비들 역시 그들을 발견했다.
“크르르.”
입에 재갈을 물고 있는 좀비들은 짐승과 비슷한 으르렁거림을 내면서 그들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주환이 가운데를 맡자 데스티나와 카미유는 각각 그를 중심으로 좌우로 퍼져 나갔으며, 가장 뒤에 있던 벨루드는 좀비들의 관심이 앞서 달리고 있는 세 사람에게 쏠리자 벽에 붙은 채 몸을 숨겨 부두 쪽으로 나아갔다.
검은 두건을 한 좀비들은 분명 일반적인 좀비들보다 강력했다.
손톱과 이빨을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어 감염의 위험은 없었지만 순수한 신체능력만을 보았을 때 검은 두건의 좀비들은 평범한 좀비뿐만이 아니라 신체를 단련한 인간들보다도 확실히 우위에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주환 일행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데스티나는 앞에서 공격해 오는 좀비를 향해 검을 가로로 휘둘러 그의 상체와 하체를 단번에 분리해 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그 뒤에서 따라오던 좀비를 향해서 은말뚝을 발사했다.
퉁!
활시위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은말뚝이 따라오던 좀비의 얼굴을 완전히 관통했다.
데스티나는 들고 있던 롱소드를 입에 물고는 쓰러지는 좀비의 얼굴에서 은말뚝을 뽑아내었다.
데스티나는 은말뚝에 마나를 실었다.
그 다음으로 공격하는 좀비는 펄쩍 뛰어 데스티나의 위쪽을 공격하려고 하였다.
그와 동시에 데스티나도 뛰어올랐다.
좀비의 몸놀림은 예사롭지 않았지만 데스티나는 좀비보다 훨씬 높게 뛰어오를 수 있었다.
데스티나는 좀비 위까지 솟아올라 들고 있는 은말뚝을 좀비의 정수리에 내리꽂았다.
마나가 실려 있는 은말뚝은 마치 젓가락으로 두부를 찌르듯이 단숨에 좀비의 단단한 두개골을 뚫고 들어가 좀비의 온몸을 관통한 다음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시금 시체로 돌아간 좀비가 동굴의 바닥으로 추락하자 데스티나는 그의 몸을 밟으면서 동굴 바닥으로 내려섰다.
한편 주환은 달려드는 좀비들을 향해서 돌격소총을 사정없이 갈겨댔다.
초집중모드를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사격을 하는 주환에게 지금 달려오고 있는 좀비들은 그저 좋은 과녁에 지나지 않았다.
카미유는 좀비들을 향해서 오른손의 와이어를 날렸다.
날아간 와이어는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정교하게 움직이면서 오른쪽에서 달려오는 좀비들의 사이사이를 지나갔다.
와이어의 끝이 빙글빙글 돌면서 여러 개의 고리를 만들더니 그녀의 앞에 있는 좀비들을 하나하나 묶어 버렸다.
좀비들은 하나의 와이어에 줄줄이 묶여 버린 굴비와 같은 신세로 전락했다.
그리고 와이어의 끝부분이 카미유에게 다시 돌아오자 카미유는 그 끝을 왼손 건틀릿에 연결하였다.
위잉!
그녀의 양손 건틀릿 기계 장치가 작동하자 와이어가 묶여 있는 좀비들을 조여 갔다.
서걱!
와이어를 당기는 힘이 강해지자 그 와이어에 묶여 있던 좀비들이 한꺼번에 잘려 나가면서 그들의 동강 난 몸이 동굴의 바닥으로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