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더는 무리예요! 이 이상 가면 배가 저 괴물에게 당해요!”
벨루드는 빨리 아래쪽으로 닻을 던졌다.
데스티나는 낚싯배의 뱃전에 섰다.
그것은 그녀의 온몸을 노출시키는 행위였기에 주환은 놀라고 말았다.
“데스티나! 위험해!”
그렇지만 데스티나는 그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전히 정신을 집중하였다.
그녀가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상대는 바로 자신의 오른손이었다.
‘그때 내가 데미안을 이길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데스티나는 단숨에 롱소드를 뽑았다.
‘나를 도와다오!’
챙!
데스티나는 롱소드를 휘둘러 날아오는 뼈꼬챙이를 쳐냈다.
그것은 단 한 번에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팔을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움직여서 날아오는 뼈꼬챙이들을 검으로 맞추어 사방으로 날려 버렸다.
“역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군.”
데스티나는 자신의 다리에 마나를 실었다.
그녀는 여행하는 도중에도 자신의 단련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녀가 툴레오의 갑옷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단련할 때마다 당시에 힘을 사용하던 그 감각을 필사적으로 다시금 불러내었다.
그리고 그 감각을 겨우겨우 다시 잡아낸 테스티나는 툴레오의 갑옷을 착용하면서 익힌 마나 사용 감각을 응용하여 자신의 것으로 체득해 갔다.
데스티나는 정신집중과 명상 등을 통하여 그 느낌을 점점 강력하게 실체화시킬 수 있었고, 그것을 성공할 때마다 마나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은 점점 강해져 갔다.
데스티나는 검뿐만 아니라 몸에 마나를 이동시킬 수 있는 신체 감각을 터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다리를 마나의 얇은 막이 감싸자 데스티나는 배에서 물 위로 뛰어내렸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던 주환은 데스티나가 부두까지 수영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데스티나는 물 위를 달리고 있었다.
마치 얼어붙은 빙판 위를 달리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움직임.
그녀는 자신의 다리에 모인 마나를 이용해서 물에 빠지지 않도록 하면서 부두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데스티나가 물 위에서 달릴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없었다.
물 위를 달리던 데스티나는 다리에 모인 마나가 흩어져 버릴 순간에 몸을 날려서 자신이 목표로 하던 부두의 위쪽으로 간신히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한 데스티나의 모습을 보며 주환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저 녀석. 언제 저런 기술을 익힌 거지?”
그러나 주환은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배가 멈추지 않고 계속 괴물 문어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배가 언제 멈추는 거죠?”
주환이 괴물 문어에게 반격하면서 벨루드에게 묻자 벨루드는 배를 멈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대답했다.
“닻이 제대로 걸리지 않아요! 지금 온 힘을 다하고는 있지만!”
벨루드의 노력으로 배는 점점 멈추고 있었지만, 배의 앞머리는 어느덧 괴물 문어의 촉수가 닿을 수 있을 정도까지 나아갔다.
“벨루드! 안전한 곳에 몸을 숨겨요!”
“이곳에 안전한 곳이 어디 있겠어요!”
그때 촉수 중 하나가 낚싯배를 내리쳤다.
쾅!
촉수가 낚싯배에 충돌하자 낚싯배의 앞부분이 부서지면서 배가 크게 흔들렸다.
“으앗!”
배가 흔들리면서 벨루드는 물에 빠져 버렸으며 주환은 떨어지기 일보 직전에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스륵.
주환은 무언가 자신의 몸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이런!”
놀랍게도 방금 배를 내리쳤던 촉수가 움직여서 주환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으윽!”
촉수는 주환을 휘감은 다음 서서히 위쪽으로 들어 올렸다.
주환은 빠져나가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지만, 서로의 힘 차이로 보았을 때 지금 촉수에 잡힌 주환은 인간의 손가락에 잡힌 벌레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카미유의 말처럼 괴물 문어의 촉수 안에는 뼈 조직으로 차 있었기 때문에 진짜 문어의 다리처럼 빈틈없이 달라붙어 오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조이는 압박감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젠장. 이러다가 부러지겠어!’
이대로 있다가는 주환의 온몸의 뼈가 부러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괴물 문어는 그것을 원하는 듯 조이는 압박감을 점점 더 강하게 늘려갔다.
주환은 어쩔 수 없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려 자신의 방탄조끼 안쪽으로 더듬었다.
그리고 안쪽에 숨겨진 비밀고리를 잡았다.
‘이걸 벌써 쓰게 될 줄이야.’
주환은 그 고리를 잡아당겼다.
퍽!
원래는 더 큰 폭발음이 나야 했지만, 방탄조끼의 앞부분과 촉수가 맞닿아 있었기에 마치 둔기로 가죽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날 뿐이었다.
방탄조끼의 앞에 붙어 있는 패드들이 마치 클레이모어처럼 폭발하면서 주환을 붙잡고 있는 촉수 일부를 터뜨려 버렸다.
주환을 붙잡고 있는 촉수는 그것을 버티지 못하는지 주환을 감고 있는 것을 포기하고 그의 몸을 놓아주었다.
그러자 촉수에 잡혀 있던 주환은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떨어지고 있던 주환은 움직일 수가 없음을 느꼈다.
촉수에게 강하게 조여졌던 고통과 방탄조끼를 터뜨리면서 그 반발력을 온몸으로 받은 충격이 합쳐져 그의 몸을 마비시켰기 때문이었다.
주환이 물에 빠지기 직전.
어느새인가 다시 천장에 매달린 카미유가 주환에게로 빠르게 날아왔다.
탁!
그리고 카미유는 주환을 한 손으로 껴안은 다음 진자 운동을 하면서 가장 고점에서 금속 장치를 풀었다.
“괜찮아?”
주환을 껴안은 채로 카미유가 그렇게 물었다.
“고마워!”
두 사람은 바닥에 착지하며 몸을 굴렸다.
그때 주환은 몸을 가눈 뒤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조심해!”
카미유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촉수 하나가 깔아뭉개기 위해 아래쪽으로 무섭게 쇄도하고 있었다.
카미유는 옆쪽으로 몸을 날렸으며 주화도 몸을 굴려서 그 공격을 피했다.
공격을 피한 주환은 고개를 들었다.
주환을 잡았던 그 촉수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 촉수는 마치 문어의 다리를 입으로 깨물은 것처럼 중간 부분이 완전히 뜯겨 나가 있었다.
그 안쪽에 들어 있던 뼈로 된 통로가 모습을 드러낸 채였다.
주환은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지만, 간신히 총을 들어서 부상을 당한 촉수를 향해서 계속해서 총을 발사했다.
부상을 당한 사이에 제대로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그 부상당한 촉수는 주환의 공격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수면의 안쪽으로 점점 사라져 갔다.
그리고 카미유는 자신을 공격했던 촉수를 향해서 양손을 뻗었다.
카미유의 양쪽 엄지손가락에서 금속 와이어가 발사되면서 촉수의 몸통을 질질 감았다.
와이어가 몸통을 감자 건틀릿의 기계 장치가 작동하면서 촉수를 거세게 조였다.
“조각조각 내주지.”
카미유는 와이어가 파고들어 가면서 촉수를 여러 등분으로 잘라 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와이어가 제대로 파고들지 못하고 있어.’
카미유가 사용하는 금속 와이어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았지만 웬만한 단단한 물체들도 간단히 자를 수 있을 정도의 놀라운 절삭력을 가진 물건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그 와이어가 괴물 문어의 촉수에는 먹히지 않았다.
‘어째서?’
와이어가 먹히지 않자 곧 촉수와 카미유 사이에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촉수에게 끌려가지 않게 안간힘을 쓰던 카미유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금 괴물 문어의 촉수에서는 끈적한 체액이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그 체액이 와이어에 달라붙어서 절삭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되어 먹은 괴물이야.”
“카미유! 잘 잡고 있어!”
주환은 카미유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가 붙잡고 있는 촉수 쪽으로 달렸다.
그가 향하고 있는 곳에는 촉수의 끝 부분에 위치한 커다란 구멍이 있었다.
뼈꼬챙이가 발사되는 바로 그 구멍.
주환이 목표하는 곳은 바로 그곳이었다.
“뭘 할 생각이야?”
“그 구멍이 움직이지 않게 잘 잡아줘!”
“잡아 달라고 해도.”
카미유가 아무리 버티려고 해도 거대한 촉수를 움직이지 못하게 계속 잡아두는 것은 무리였다.
카미유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 날뛰던 촉수는 어느 순간 그 방향을 한 곳으로 고정했다.
그것은 바로 주환이 있는 방향.
주환이 촉수의 구멍을 노리는 것처럼 그 촉수 역시 동시에 주환을 노리고 있었다.
슉!
촉수의 구멍에서 뼈꼬챙이가 발사되었다.
주환은 아드레날린 제어를 통해 그 뼈꼬챙이를 간신히 피했다.
주환은 그 구멍 쪽으로 최대한 가까이 다가간 다음 돌격소총의 총구를 그 구멍 쪽으로 겨누었다.
정확히는 총구의 아래쪽에 달린 유탄발사기의 발사구로 겨눈 것이었다.
주환은 유탄발사기에 달린 방아쇠를 당겼다.
통!
가볍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장전되어 있던 유탄이 구멍의 안쪽으로 쏙하고 들어갔다.
펑!
안으로 들어간 유탄은 곧바로 안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그러자 촉수의 내부가 순간 부풀어 오르더니 그 촉수의 피부를 찢고 폭발의 불꽃이 터져 나왔다.
“지금이야!”
카미유는 촉수가 약해진 틈을 타 와이어를 더욱더 강하게 조여 나갔다.
석뚝.
내부의 폭발 때문에 파열된 피부 쪽의 파고든 와이어는 그 안쪽에 부서진 뼈까지 잘라내더니 이윽고 그 거대한 촉수를 두 동강으로 만들어 버렸다.
쿵!
잘려 나간 촉수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몸과 연결된 부분은 도망치듯이 물속으로 가라앉으면서 사라졌다.
그리고 바깥에 나와 있는 촉수는 단 두 개.
그중 하나의 촉수는 데스티나가 상대하고 있었다.
타닷!
데스티나는 촉수에서 발사하는 꼬챙이들을 검으로 쳐내면서 빠르게 이리저리 움직였다.
지금 데스티나는 왼손에 은말뚝 발사기를 장착 중이었다.
꼬챙이들을 쳐내면서 기회를 보고 있던 데스티나는 기회를 잡자마자 왼손을 들어서 은말뚝 발사기를 촉수에 겨누었다.
퉁퉁!
은말뚝 발사기에 장전되어 있던 두 개의 은말뚝이 날아가 촉수에 박혔다.
데스티나는 빠르게 다음 말뚝들을 장전했다.
촉수의 공격을 다시금 피하면서 두 번째로 장전한 두 발의 은말뚝을 다시금 발사.
그 은말뚝들 역시 빗나가지 않고 전부 다 촉수의 몸통에 박혔다.
그리고 그 말뚝들은 전부 다 촉수의 몸통에 일정한 간격을 이루면서 박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데스티나가 노리던 것이었다.
데스티나는 위쪽으로 몸을 날려 가장 아래쪽에 박혀 있는 은말뚝을 마치 철봉에 매달리듯이 잡았다.
그리고는 기계체조 선수처럼 몸을 움직여서 위쪽에 박혀 있는 은말뚝으로 몸을 옮겨서 점점 위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데스티나는 그런 식으로 촉수의 위쪽으로 올라갈 셈이었다.
데스티나는 촉수의 위로 올라갔지만, 촉수에서 뿜어지는 체액 때문에 제대로 촉수의 몸을 디딜 수가 없었다.
그러자 데스티나는 다리에 마나를 모아 가장 위에 박혀 있는 은말뚝을 밟고는 높게 위로 솟구쳤다.
높이 올라간 데스티나는 공중에서 물구나무를 서듯 거꾸로 선 다음 롱소드를 앞세우고 물총새처럼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