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그런데 이렇게 여러 명이 함께 사냥을 나가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네.”
카미유는 어느새 술병의 마개를 따면서 그렇게 말했다.
“항상 혼자 움직였던 건가?”
“대부분은. 내가 초짜일 때는 다른 괴물사냥꾼들과 같이 움직이려고 했었지. 그래야 서로서로 지켜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문제가 있었나요?”
“사냥할 때는 별문제가 없었지만 결국에는 사냥이 끝나고 그 몫을 배분할 때 문제가 발생했어. 사냥을 할 때 모두가 균등하게 활약을 할 수는 없어. 누군가는 보조에서 끝나고 누군가는 결정타를 먹이지. 처음에는 균등하게 나누기로 약속을 하고 그 계약이 비교적 잘 지켜지지만 불공정한 일이 쌓이고 쌓이면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게 되는 거야.”
“그래서 혼자 다니는 거네?”
“그래. 마지막으로 팀을 짰을 때. 하아.”
카미유는 한숨을 내쉬면서 병에 입을 가져갔다.
“팀의 리더가 나머지들을 전부 다 죽여 버렸거든.”
카미유의 말에 주환은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까지 죽이려고 했는데 나는 겨우겨우 도망칠 수 있었지. 그때부터 팀을 이루는 일은 피해 왔어. 그렇지만 결국은 이렇게 되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용케 우리와 팀을 짤 생각을 했군.”
“글쎄. 그냥 감이라고 해야 하나? 너희는 사리사욕 때문에 움직이는 녀석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거든.”
그들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벨루드가 나지막이 그들에게 말했다.
“지금 목적지에 거의 도착한 것 같아요.”
벨루드의 말에 주환 일행은 긴장하면서 몸을 돌려 사방을 경계했다.
주변에 그들을 노리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더 나아가자 카미유가 찾아냈던 그 거대한 절벽의 동굴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벨루드가 모는 낚싯배는 암초를 피해서 천천히 거대한 절벽 동굴의 입구로 흘러들어 갔다.
동굴의 안으로 들어가면서 카미유는 익숙한 어둠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었다.
“동굴 안에서는 바람을 제대로 받을 수 없어서 물살에만 의지해야 해서 빨리 나갈 수는 없어요.”
주환 일행에게 그렇게 설명한 벨루드는 불을 밝히기 위해서 횃불을 찾았다.
“너무 어두워서 불을 밝혀야겠네요.”
“그럼 우리 위치를 적들에게 들키지 않을까?”
주환의 말에 벨루드는 횃불에 불을 붙이면서 대답했다.
“동굴 안이 너무 어두워서 잘못하면 동굴 벽에 들이받을 수도 있어요. 동굴의 벽 쪽에도 암초들은 있을 거고, 만약 배에 구멍이라도 나면 그대로 가라앉는 거죠.”
벨루드는 여러 개의 횃불을 배의 이곳저곳에 달았다. 그리고 횃불의 불씨가 배로 떨어지지 않도록 재를 받을 수 있는 그릇들을 횃불의 아래쪽에 설치했다.
그래도 멀리까지 볼 수 없었기에 주환은 짐에서 플래시 라이트를 꺼내서 돌격소총에 장착하고는 불을 켜고 앞쪽으로 조준했다.
카미유도 램프를 준비해서 배가 나아가는 방향에 빛을 비추었다.
위잉.
그때 서치라이트가 돌아가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이온의 눈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오면서 앞쪽을 환하게 만들었다.
“이 정도면 잘 보이겠죠?”
이온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자 주변의 동굴의 벽까지 상세하게 볼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주환을 제외한 모두가 그것을 보고 감탄했다.
“엄청난 눈빛이네.”
“이제 앞에서 적이 접근해도 걱정 없이 볼 수가 있어요.”
시야가 확보되자 낚싯배는 물살에 몸을 맡기고는 동굴의 안쪽으로 하염없이 흘러들어갔다.
“들어가는 건 들어가는 건데. 나올 때가 문제겠는데요?”
벨루드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가장 좋은 것은 카미유가 발견했다는 그 비밀문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입구는 이쪽일지라도 분명 출구는 다른 쪽으로 연결되어 있을 거야.”
“그러면 결국 이 낚싯배는 버리고 가야 한다는 거잖아요.”
“뭐. 나중에 찾으러 오면 되지.”
카미유는 태평한 목소리로 벨루드를 위로했다.
“잠시만요.”
이온이 손을 들면서 일행의 주위를 끌었다.
“슬슬 그 비밀부두가 보이는 것 같아요.”
이온의 말에 일행의 시선이 모두 한 곳에 집중되었다.
이온의 눈에서 발사되는 빛이 닿는 곳에 나무로 된 부두 일부가 드러나 있었다.
“조심해. 그 문어 괴물은 바로 저 부두의 앞쪽에 있었으니까.”
카미유가 일행에게 경고했다.
“잠깐만요. 문어 괴물이라뇨?”
벨루드는 당황한 듯 주환 일행에게 물었다.
그는 주환 일행에게 아무것도 듣지 못한 상태였다.
“만약 공격이 시작되면 벨루드 너는 이 배에 엎드려서 숨어 있어라. 난전이 벌어지면 네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으니까.”
데스티나의 말에 벨루드는 기쁘다는 듯 소리쳤다.
“역시 데스티나 님은 저를 걱정해 주시는 거군요!”
“잠깐! 조용히 해라. 벨루드. 여긴 적진이다!”
“둘 다 조용히 해!”
“너희들 다 시끄러워.”
서로가 서로에게 언성을 높이고 있을 때 부두 근처의 수면에서 무엇인가가 스멀스멀 움직였다.
마치 수면이 부글거리는 듯한 움직임.
다른 누구보다 그것을 제일 빨리 발견한 이온은 위험을 느끼고 일행에게 소리쳤다.
“엎드리세요!”
그것이 신호가 되자 일행 모두가 배의 바닥에 몸을 날렸다.
그리고 수면 바깥으로 4개의 촉수가 솟아올랐다.
그날 밤 카미유를 괴롭혔던 바로 그 촉수.
촉수의 끝에 있는 봉오리는 이미 열려서 그 안에 있는 구멍을 드러내고 있었다.
두두두두두!
마치 미친 듯이 북을 때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4개의 구멍에서 뼈꼬챙이들이 낚싯배를 향해서 발사되었다.
타다닥!
뼈꼬챙이들 중 일부는 뱃전에 박혔으며 나머지는 배의 위쪽을 스치면서 날아갔다.
콰직!
뼈꼬챙이들 중 몇 개는 뱃전을 관통해서 그 흉악한 끝머리를 주환 일행에게 드러냈다.
“몸을 웅크려!”
데스티나의 말에 일행은 최대한 납작 엎드려서 뼈꼬챙이들의 공격을 피했다.
“이거 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이 꼬챙이는 저 괴물의 뼈로 이루어진 것 같아요! 온몸의 뼈를 다 쓸 수는 없으니 언젠가는 끝나지 않을까요?”
주환은 고개를 살짝 들어 보려고 했다.
그때 꼬챙이 중 하나가 뱃전의 끄트머리에 부딪히면서 위쪽으로 튕겨 나갔다.
그 꼬챙이는 빙글빙글 돌면서 주환의 머리 쪽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끝이 주환에게 박히기 일보 직전에 이온이 손을 뻗어서 그 꼬챙이를 잡았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어. 괜찮아. 덕분에.”
주환 일행은 공격이 끝나기를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괴물 문어의 공격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낚싯배의 앞부분은 그야말로 고슴도치와 다를 바가 없게 변해 버렸다.
“저기. 문어 다리에는 뼈가 없잖아요?”
벨루드가 겁에 질린 채로 그렇게 말하자 카미유는 누운 상태로 술을 홀짝이면서 대답했다.
“저 괴물의 원래 모습은 문어이지만 더는 문어로 볼 수 없을 만큼 변화한 것 같아. 아마 저 다리의 안쪽에 뼈로 된 통로가 만들어지고 그 통로를 통해서 계속해서 저 뼈꼬챙이를 발사하는 메커니즘이겠지. 그 통로는 중간마다 조각 나 있어서 어느 정도는 자유롭게 구부러질 수 있는 형태일 테고. 마치 우리의 손가락처럼 말이야. 물론 어떻게 저렇게 많은 꼬챙이를 계속해서 발사할 수 있는지 알 순 없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술이 들어가시나 보네요.”
“계속 기다리는 것도 지루하잖아.”
카미유의 설명을 듣던 데스티나는 일행에게 말했다.
“저 다리에 뼈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보통의 문어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리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포기한 대신 멀리까지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을 얻은 모양이군.”
“그렇다면 흩어지자.”
카미유는 일행에게 그렇게 제안했다.
“어차피 뭉쳐 있어 봐야 저 꼬챙이들의 표적이 될 뿐이야. 그렇지만 우리가 흩어져서 빠르게 움직이면 저놈은 그 움직임에 각각 대응할 수밖에 없어. 다리에 뼈가 차 있다면 생각보다 빨리 움직일 수도 없을 테고.”
카미유의 말에 주환은 벨루드를 향해서 물었다.
“벨루드. 지금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왔죠?”
주환의 물음에 배의 뒷전에 숨어 있던 벨루드는 살짝 고개를 내밀어 정황을 살폈다.
“이제 부두에 거의 다 도착한 것 같아요. 조금만 더 지나면 저 괴물에게 당할 판이라고요.”
벨루드의 말에 주환은 돌격소총의 비살상탄을 일반탄으로 교체하면서 일행들에게 말했다.
“그럼 내가 엄호할 테니까. 모두가 한꺼번에 흩어지는 거야.”
주환의 말에 카미유는 위쪽을 가리켰다.
“그럼 나는 위로 올라가지. 전에도 이곳에서 그렇게 빠져나왔거든.”
“저는 물속으로 들어갈게요.”
“물속?”
모두의 시선이 이온에게 쏠린다.
“당신, 인어인가요?”
벨루드가 그렇게 묻자 이온은 고개를 저었다.
“무한정 있을 수는 없지만, 수중에서도 기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거든요. 그리고 괴물이 수면 아래에 몸을 숨기고 있는 이상 놈의 본체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것은 저밖에 없어요.”
“나는 배가 좀 더 가까워지면 바로 부두로 올라가도록 하겠다. 그럼 모두 준비된 건가?”
각자 자신의 할 일이 정해지자 모두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먼저 시작할게.”
주환은 총을 들고는 총을 든 팔만을 밖으로 내민 다음 방아쇠를 당겼다.
타다다당!
조준을 하지 않고 발사하는 것이었지만 물 위로 나와 있는 괴물 문어의 다리가 대단히 컸기에 주환은 분명 몇 발 정도는 명중할 것이라고 믿었다.
주환이 계속 총을 발사하기 시작하자 어느 순간 괴물 문어의 공격이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
“지금이야!”
주환의 외침에 카미유는 천장으로 로프를 발사했다.
로프에 달린 금속 장치가 천장에 고정되자 카미유는 번개같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온은 수면으로 몸을 날려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공격이 잦아들자 주환은 몸을 일으킨 뒤 제대로 조준을 해서 공격을 감행했다.
이제 남은 것은 데스티나였다.
“벨루드! 부두에 더 가까이 붙을 수는 없나?”
“저 괴물이 버티고 있어서 더 이상 가까이 가는 것은 무리예요! 배를 잃지 않으려면 지금 닻을 내려야 해요!”
“최대한 가까이 붙여!”
데스티나의 명령에 닻을 내리려던 벨루드는 좀 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한편 천장에 매달렸던 카미유는 반대 팔에서 로프를 발사하여 공중그네를 옮겨가듯이 빠르게 이동해 부두의 안쪽으로 뛰어내렸다.
“무사히 도착했군.”
그녀의 뒤쪽에서는 괴물 문어의 촉수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 촉수는 지금 주환 쪽을 신경 쓰고 있었기에 카미유는 좀 더 여유가 있었다.
카미유는 비밀 문이 있는 벽으로 달려간 다음 전에 발견했던 스위치를 찾았다.
스위치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카미유가 스위치의 막대를 내리자 동굴의 벽에 걸려 있는 횃불들이 한꺼번에 켜졌다.
동굴 안에 수많은 횃불이 켜지면서 시야가 확보되자 주환은 훨씬 더 쉽게 괴물 문어의 촉수를 상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벨루드의 낚싯배가 더 이상 부두로 가까이 가는 것은 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