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163화 (163/182)

163화

“그것이 바로 아르테어 님이 정제한 약입니까?”

“그중에서도 가장 정제된 버전이죠.”

아르테어는 그것을 데미안에게 내밀었다.

데미안이 그것을 받자 아르테어는 말을 이었다.

“데미안 님은 데스티나 님의 팔이 다시 생긴 것을 기억하고 계시죠?”

“그렇습니다.”

“그러한 기적도 바로 이 약 덕분이에요.”

“정말입니까?”

“네. 그리고 그 대련에서도 데스티나 님이 이길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그 약 때문인 거죠.”

“그렇다는 것은…….”

“이 약이 있다면 이전보다 훨씬 강한 힘을 얻을 수 있는 거예요.”

아르테어의 말에 데미안은 그 주사기를 내려다보았다.

“저는 데스티나 님을 치료한 것을 후회하고 있어요. 회복되시자마자 그렇게 떠나 버리실 줄은 몰랐으니까요.”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데스티나가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아르테어의 계산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데스티나에게 주입한 약은 지금 데미안이 들고 있는 약과 같은 종류가 아니었다.

그녀가 데스티나에게 주입한 약은 다른 약들과는 다른 어떠한 ‘장치’가 되어 있었다.

“아르테어 님은 제가 이걸 맞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네. 제가 마을 사람들 그리고 단원들을 상대로 임상시험을 진행한 것은 데미안 님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약을 만들기 위해서였으니까요.”

데미안은 아르테어가 준 약을 가지고 고민에 빠졌지만, 쉽사리 그것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는 고민 끝에 그것을 다시 아르테어에게 돌려주었다.

“저에게 생각을 좀 더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네. 알겠어요. 그렇지만 저희에게 시간이 그리 많이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무슨 말씀이시죠?”

“저희가 데스티나 님을 보내드렸기 때문이죠. 그분은 황제를 찾아서 떠나셨고, 그분이라면 황제가 다시 돌아올 수 있게끔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때쯤이면 데스티나 님은 더욱더 강해져서 우리들의 앞을 막을 수도 있어요.”

아르테어의 말에 데미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볼 일입니다.”

데미안은 몸을 돌려서 곧장 치료소를 빠져나갔다.

치료소를 나가는 데미안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르테어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약하신 분. 그렇기에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 * *

데스티나가 카미유의 방에서 깨어났을 때쯤에는 날이 저물고 있었다.

“으읏.”

겨우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데스티나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지는 것을 느꼈다.

‘두통이 엄청나게 심하군.’

머리는 어지러웠으며 입안은 바짝 말라서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데스티나의 옆에 놓여 있는 물병을 들어서 목을 축인 다음에야 겨우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데스티나는 카미유와 인어의 주방에서 계속해서 술을 마시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어쩌자고 그렇게 술을 마셔댔는지 모르겠군.’

데스티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방 안에는 그녀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는 카미유의 방인가?’

데스티나는 카미유의 방을 빠져나와서 여관의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녀가 밖으로 나갔을 때 해안선 너머로 붉은 노을이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다들 어딜 간 걸까.”

데스티나는 카미유가 인어의 주방에서 여전히 술을 마시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에 인어의 주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그녀는 낯익은 누군가가 부두 쪽에서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곳에는 주환이 바다 쪽을 바라보면서 서 있었다.

“주환.”

데스티나는 부두 쪽으로 걸어갔다.

주환은 데스티나가 걸어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제 일어났네?”

“미안하다. 생각 없이 술을 너무 많이 마셔 버렸군.”

데스티나는 주환의 옆에 섰다.

“뭘 하고 있었나?”

“그냥. 노을이 좋길래 구경 좀 하고 있었어. 카미유에게 잡혀 있다간 술독에 빠져나올 수가 없을 테니까.”

“무슨 말인지 잘 알겠군.”

“지금은 이온이 카미유를 상대해 주고 있거든.”

“그래서 혼자 있던 거였나?”

“응. 그리고 혼자서 조용한 시간을 가지고 싶기도 했고.”

“내가 자던 방이 카미유의 방인가?”

“응. 당장 데려갈 수 있는 곳이 거기밖에 없어서.”

“그러고 보니 내 짐들이 전부 그곳에 옮겨져 있더군.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루퍼트 씨 저택에서 쫓겨났어.”

주환은 데스티나가 카미유와 술을 마시고 있을 때부터 잠들었던 때까지 벌어졌던 일들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주환과 이온이 교단의 사무실에 숨어들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눈치챈 듯 보이는 헤스컴 때문에 재빨리 사무실에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루퍼트 씨와 유령선이 관련이 있다는 것은 거의 확정이로군.”

“그래서 카미유랑 다 같이 그 비밀부두로 가기로 했어.”

“그래서 내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린 건가?”

“그런 것도 있지만, 우리로서는 제대로 된 배를 빌리기가 힘들었거든. 특히나 카미유가 비밀부두를 찾았을 때 빌렸던 나룻배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배를 가진 사람들이 더욱더 우리에게 배를 빌려주려 하지 않더라고.”

“뭔가 대책이 있나?”

“벨루드가 배를 구하러 갔어.”

“벨루드가?”

“우리가 배가 필요하다는 걸 듣더니 우리를 도와주고 싶다고 했어. 아무리 벨루드라도 차마 아버지에게 배를 빌릴 수는 없었나 봐. 교단 사무실에서 아버지에게 빼앗은 돈으로 우리가 쓸 만한 배를 빌린다고 하던데. 그래서 벨루드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참이야.”

“모험을 좋아한다지만 벨루드의 전투 능력은 형편없다. 그곳에서 벨루드를 지키면서 싸우기는 힘들 텐데.”

“그렇지만 거기까지 배를 몰아줄 사람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니까. 우리 중에 배에 익숙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리고 벨루드가 자기 약혼자를 지켜야 한다고 그렇게 고집을 부려서 말이야.”

“약혼자라.”

그렇게 중얼거린 데스티나는 놀라면서 손을 들어 자신을 가리켰다.

“그거 지금 나를 의미하는 건가?”

“그렇지. 벨루드는 너를 무조건 약혼자로 만들고 싶은 것 같던데.”

“난감하군.”

데스티나는 허탈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벨루드 같은 타입은 싫은 거야?”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서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인데 그러면서도 쉽게 약혼자라는 것을 입에 올리는 순간부터 너무 가벼운 남자라는 생각이 드는군.”

“그쪽은 네가 엄청 마음에 드는 모양인데.”

“벨루드가 좋아하는 것은 그저 성전기사단의 단장이 가진 이미지뿐이지. 그는 진정한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니까.”

“음. 진정한 데스티나라.”

주환은 그렇게 말하다가 웃으면서 데스티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진정한 데스티나의 모습을 알고 있는 걸까?”

“글세……. 나조차도 나의 전정한 모습을 모르니까.”

“그럴지도 몰라. 그렇지만 나는 최소한 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알고 있으니까.”

“너무 추켜세워 주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아. 나는 너를 존경하고 있거든.”

“존경?”

“그래. 그냥 네가 나한테 보여주는 그 모습, 그 자체로 너를 존경해. 네가 강해서 존경하는 것도. 네가 기사라서 존경하는 것도 아니야. 그냥 데스티나 너라는 사람 자체를 존경하는 거니까.”

“고맙다.”

데스티나가 주환에게 고마움을 표했을 때.

“데스티나 님!”

그 순간 엄청난 목청으로 뿜어져 나오는 목소리가 데스티나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두 사람의 시선은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낚싯배 한 대를 몰고 오는 벨루드의 모습이 있었다.

그는 깨어난 데스티나의 모습을 보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저를 마중 나와 계셨군요? 감격입니다!”

“그런 건 아닌데.”

데스티나의 말은 그에게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낚싯배를 몰고 오던 벨루드는 능숙하게 부두의 옆에 배를 정박하더니 부두의 안쪽으로 펄쩍 뛰어 내려섰다.

“자. 이렇게 쓸 만한 배를 하나 구해 왔습니다.”

“배를 모는 게 엄청 능숙한데요.”

“뭐. 지금은 그만두었지만 어릴 때는 아버지를 따라서 배를 엄청나게 탔거든요. 그냥 배가 저의 놀이터나 마찬가지였죠. 그래서 더 아버지가 저를 못마땅해하시는지도 몰라요. 어릴 때는 배를 좋아했으니까.”

“이 정도 배라면 충분하겠군.”

“정확히 무슨 일을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마 이 배가 박살 나거나 하지는 않겠죠?”

“그건 장담할 수 없다.”

“네? 그럼 곤란한데요.”

놀란 벨루드는 곧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데스티나 님이 하시는 일이니 이 배가 부서지든 말든 제가 끝까지 책임지겠습니다.”

“고맙다.”

“약혼자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그 약혼자라는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도 언젠간 허락해 주실 겁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자. 그럼 기다리고 계실 동료분들에게도 이 기쁜 소식을 전하러 가죠. 그럼 저 먼저 가겠습니다.”

폭풍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내뱉은 벨루드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인어의 주방으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데스티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로 정신이 하나도 없게 만드는 친구로군.”

* * *

그리고 그날 저녁.

주환 일행을 태운 낚싯배는 벨루드의 조종으로 정박해 있던 부두를 떠났다.

벨루드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중무장 상태였다.

아까부터 시끄럽게 떠들던 벨루드였지만 그들의 무장 상태를 보고서는 범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게 될 것임을 직감했다.

낚싯배가 밤바다를 천천히 나아가자 이온은 가져온 가방의 안에서 작은 바구니를 꺼냈다.

“다들 제대로 식사 못 하셨죠?”

이온이 바구니를 열자 그 안에 있던 샌드위치들이 드러났다.

“웬 샌드위치야?”

주환이 그렇게 묻자 이온은 샌드위치 하나를 꺼내 주환에게 내밀었다.

“프란시스 씨가 가져다주신 거예요. 여관에서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할 거라고 하셔서요.”

“아. 정확한 말씀이야.”

이온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카미유는 웃으면서 자신의 품속에서 육포를 꺼내 그것을 잘근잘근 씹었다.

“나도 여기 와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가 없었거든. 그래서 매일매일 이 육포로 때우고 있었지. 스프가 먹고 싶은 날이면 이 육포를 물에 넣어서 끓여 먹기도 했다니까.”

“사람들의 피부가 그렇게 창백해진 건 아마도 이 바다의 물고기를 먹었기 때문이겠죠?”

이온은 데스티나와 카미유에게도 샌드위치를 주면서 그렇게 물었다.

“그럴 가능성이 높다. 어느 정도 섭취를 해야 그렇게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벨루드.”

데스티나의 부름에 배를 조종하고 있던 벨루드가 대답했다.

“네. 데스티나 님.”

“마을 사람들의 창백한 피부는 자연스러운 게 아닌 것 같은데.”

“네. 맞아요.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변한 것 같은데. 문제는 피부색이 문제가 아니라 피부색이 변할수록 사람 자체가 무기력하게 변하는 게 더 문제죠.”

“무언가 바다를 망치고 있어.”

주환은 밤바다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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