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161화 (161/182)

161화

“자. 얼추 된 것 같네.”

카미유는 자신의 침대에 데스티나를 눕히고는 주환과 이온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들은 카미유가 묵고 있는 여관방으로 올라왔으며 주환과 카미유가 잠든 데스티나를 침대에 눕히는 동안 이온은 가지고 온 짐을 방의 한쪽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너희 이야기는 들었어.”

“저희도 당신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카미유 씨죠?”

“그래. 만나서 반가워. 아무튼, 너희는 어떻게 할 거야? 방을 구할 생각이라면서.”

“잠시 짐을 여기에 풀긴 했지만 결국은 방을 잡아야겠죠.”

“그럼 내 옆방으로 잡아. 보니까 지금 이곳에는 외지 손님이 거의 없는 것 같으니까.”

“신경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딱딱하게 격식 차릴 필요 없어. 물론 내가 너보다 나이가 훨씬 많겠지만, 그냥 편하게 말하도록 해.”

“그럼 그래도 될까?”

“그래. 얼마든지.”

그때 바깥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데스티나 님!”

소리가 어찌나 큰지 쩌렁쩌렁하게 울려 여관의 안까지 들려올 지경이었다.

두 사람은 그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이건 벨루드 씨의 목소리인데요?”

“그건 알겠는데 목청이 엄청나게 큰데?”

벨루드를 모르는 카미유는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뭐야. 저건?”

“벨루드라고, 루퍼트 씨의 아들이야.”

“루퍼트의 아들이라. 믿을 만한 사람이야?”

“아직은.”

“그렇군.”

카미유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벨루드 못지않은 사자후를 날렸다.

“데스티나는 여기에 있어!”

주환과 이온은 깜짝 놀라서 양쪽 귀를 막았다.

“알겠습니다!”

밖에서 벨루드의 대답이 돌아온다.

“이제 밖에서 올라올 것 같으니까. 저 사람은 너희들이 상대해 줘. 알겠지? 그리고 데스티나가 깨어나고 적당한 시간이 되면 우리는 유령선을 찾으러 갈 거야. 알겠지?”

“유령선?”

“그때 데스티나 님이 말해 주셨던 그 유령선 사건을 말하는 것 같은데요?”

“그래. 그 유령선. 아무튼 이따가 보자고.”

주환과 이온은 카미유의 배웅을 받으며 그녀의 방을 나섰다.

쿵쿵쿵.

계단을 뛰어오르는 소리가 들리고 여관 2층의 복도로 벨루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다들 여기 계셨군요.”

“여기까지 데스티나를 찾아온 겁니까?”

“누님께 잠시 인사드리러 다녀온 사이에 먼저 가 버리셔서 여기까지 찾아온 겁니다. 지금 데스티나 님은 어디 계시죠?”

“데스티나 님은 주무시고 계세요.”

“한낮인데요?”

“피곤하신가 봐요.”

“저희 저택이 있는데 어째서 이런 곳에서 주무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설마 저를 피해서 여기까지 오신 건 아니시겠죠?”

“그건 아닐 테지만.”

주환은 그런 이유도 조금은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말을 이었다.

“사실은.”

주환은 루퍼트와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루퍼트가 그들을 쫓아낸 것에 대해서 벨루드에게 설명해 주었다.

“아버지도 정말 너무하시는군요.”

벨루드는 정말로 분노한 듯 보였다.

“제가 쫓아내라는 프란시스는 그렇게 감싸고도시면서 데스티나 님은 가차 없이 쫓아내셨다는 겁니까?”

‘데스티나뿐만 아니라 우리도 같이 쫓겨나온 건데. 우리는 안중에도 없군.’

“그렇다는 거죠.”

“대체 아버지의 생각은 이해할 수가 없어요. 프란시스는 떠돌이고 데스티나 님은 성전기사단의 전 단장님이신데. 이미 그 입장부터가 비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고요.”

거기까지 말한 벨루드는 주환과 이온을 보면서 말했다.

“제가 아버지를 설득하겠습니다.”

“가능할까요? 아마 화만 더 돋우는 일이 될 텐데.”

“상관없어요.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일은 그냥 못 넘어갑니다. 아무튼, 여기서 기다리세요. 제가 당장 아버지에게 가서 담판을 짓고 올 테니까요.”

분을 참지 못하며 벨루드가 계단을 내려가자 주환은 그의 등을 향해서 물었다.

“그런데 혹시 데스티나의 거취만 부탁할 건가요?”

주환의 물음을 들은 벨루드는 고민하는 듯하더니 곧 대답했다.

“두 분도 부탁은 해 볼게요.”

‘우리는 부탁할 생각도 없었구만. 저 친구.’

여관의 밖으로 나가는 벨루드를 보면서 주환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벨루드 씨, 좀처럼 돌아오지 않네요.”

카미유의 옆방을 빌린 뒤 짐 정리를 하고 있던 이온은 옆에서 같이 정리하고 있던 주환에게 그렇게 말했다.

“내가 봤을 때는 허락받기는 힘들 거야. 딱 보니까 루퍼트 씨도 벨루드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던데. 그런 상태에서 부탁을 해 봐야 큰 의미는 없겠지.”

“근데 루퍼트 씨, 유령선 이야기에 엄청나게 예민하게 굴던데요.”

“분명 그 유령선 사건에 루퍼트 씨가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겠지. 그나저나 우리도 하염없이 시간만 보낼 수는 없어. 유령선인지 뭔지를 찾기 전에 우리도 뭔가 더 깊은 조사를 해야지.”

“그럼 하마스 교단으로 다시 가실 생각이신가요?”

“그럴 거야. 그럼 지금 출발하자.”

주환과 이온은 여관을 나서 하마스 교단의 사무실로 향했다.

교단의 사무실에 도착한 두 사람은 다시 헤스컴을 만나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번에는 몰래 교단의 내부를 파악해 보는 것으로 서로 합의를 보았다.

이온이 살짝 문을 열자 두 사람은 재빨리 그 문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의 안쪽에는 세 사람이 서 있었다.

주환과 이온은 그림자에 숨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세 사람에게로 서서히 접근했다.

그렇지만 너무 가까이 갈 수는 없었기에 두 사람은 기둥의 뒤에 숨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은 헤스컴과 루퍼트, 그리고 커다란 가방을 들고 있는 시종장이었다.

그 세 사람의 분위기는 상당히 심상치 않았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헤스컴은 루퍼트에게 그렇게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겠네. 이제는 이 교단에 그렇게 많은 헌금을 할 수가 없어. 물고기가 잡히지 않아서 자네들이 원하는 수준의 헌금량을 맞출 수가 없다고.”

“그러시군요. 이해합니다.”

헤스컴은 이해한다고 말했지만 주환은 그의 목소리에 감정이 실리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성이 부족하면 사라 아가씨가 옛날로 돌아갈지도 모릅니다.”

“나도, 나도 그런 것쯤은 알아.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야.”

“신께서는 헌금은 원하십니다.”

“신에게 핑계 대지 마! 돈이 필요한 것은 너희들일 뿐이잖아. 신에게 돈 따위가 무슨 소용이겠어. 그리고 나는 신을 위해서 충분히 희생해 왔다고. 그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지금 하마스 님을 모욕하시는 겁니까?”

음산한 헤스컴의 말에 루퍼트는 놀라 한 발짝 물러났다.

“나, 나는 하마스 신을 모욕할 생각은 없어.”

“하마스 님은 당신에게 기적을 하사해 주셨습니다. 만약 하마스 님이 아니었다면 당신의 따님인 사라 아가씨는 지금쯤이면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었을 겁니다. 이것 역시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그렇긴 하지만. 그것을 위한 희생이 너무나…….”

헤스컴은 손을 들어서 루퍼트의 어깨를 잡았다.

“자식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게 어디 있겠습니까. 당신의 헌신은 전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사라 아가씨는 완벽히 건강한 상태가 아닙니다. 다시 몸이 악화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어요. 사라 아가씨가 완벽히 건강해질 때까지라도 루퍼트 님이 약해지셔서는 안 되는 겁니다.”

헤스컴의 회유를 들으면서 루퍼트는 이를 악물었다.

루퍼트는 헤스컴의 손을 쳐냈다.

“아무튼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도움을 줄 순 없어. 정성을 보이라면 보이겠어. 하지만 내 딸을 가지고 더 이상 나에게 협박질을 하지 마!”

루퍼트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헤스컴은 고개를 비틀면서 루퍼트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마치 인간의 것이 아닌 것 같은 울림을 띄고 있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생기신 모양이군요. 루퍼트 님.”

그때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교단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바로 루퍼트를 만나러 갔었던 벨루드였다.

“벨루드 씨는 루퍼트 씨를 만나러 가지 않았나요?”

이온이 주환에게 작게 속삭였다.

“저택에 루퍼트 씨가 없으니 이곳까지 찾으러 온 모양이야.”

벨루드는 거침없이 세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아버지. 또 이곳에서 돈다발을 바치고 계신 겁니까?”

“이건 네가 참견할 바가 아니다.”

“벨루드 씨로군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헤스컴이 벨루드에게 인사했지만 벨루드는 그 인사를 받지 않았다.

그는 시종장에게 가서 그가 들고 있는 돈 가방을 빼앗아 들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루퍼트가 호통을 쳤지만 벨루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버지. 이런 곳에 헌금을 해 봐야 돈을 버리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이 돈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있는 이상 우리 집에서 하마스 교단에 헌금하는 일은 단연코 없을 겁니다.”

“너. 이 녀석.”

“루퍼트 씨.”

헤스컴은 루퍼트에게 말했다.

“이건 하마스 님에 대한 반항이라고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헤스컴의 말에 루퍼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아니야. 나는 그저 헌금량을 줄여 달라고 부탁하러 왔을 뿐이야. 헌금 자체를 멈출 생각은 하지 않았어.”

“자꾸 하마스, 하마스라고 하는데.”

벨루드는 손을 들어서 헤스컴을 가리켰다.

“너희들이 말하는 하마스. 정말로 신이 맞기는 한 거야?”

“당신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지금 저렇게 바다가 죽어가고 있는데 너희가 말하는 그 바다의 신은 뭘 하고 있는 거지? 너희들은 그저 신의 이름을 빌려서 사람들을 갈취하고 있을 뿐이잖아.”

“바다가 죽은 것은 단지 정성이 부족할 뿐입니다.”

“정성? 어떻게 더 정성을 쏟지? 도시 사람들이 전부 다 바다에 뛰어들기라도 할까?”

“벨루드. 그 입 닥쳐라!”

루퍼트가 벨루드를 막으려 하였지만 벨루드는 멈추지 않았다.

“지금 이 도시에 누가 와 있는지 알아? 바로 성전기사단의 단장님이신 데스티나 님이 와 계셔. 이름 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겠지?”

“성전기사단의 단장이 말입니까?”

이번에는 헤스컴도 조금 동요를 한 듯했다.

“그래. 이래 봬도 내가 그분이랑 굉장히 친한 사이거든.”

벨루드의 허풍에 주환과 이온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만 더 우리 집을 괴롭히면 데스티나 님께 부탁해서 이 썩어 빠진 교단을 다 엎어 버릴 거야. 각오해 두라고.”

벨루드는 돈 가방을 들고 뛰어서 교단을 빠져나갔다.

“저런 철없는 녀석!”

루퍼트는 혀를 차면서 시종장을 이끌고 벨루드를 쫓아서 교단의 밖으로 나갔다.

모두가 교단을 빠져나가자 홀로 남은 헤스컴은 몸을 떨면서 손을 들어 자신의 가면을 어루만졌다.

그때 헤스컴은 무엇인가를 느낀 것인지 주환과 이온이 숨어 있는 기둥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그는 기둥의 뒤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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