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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160화 (160/182)

160화

주환과 이온이 다시 정원으로 나갔을 때에도 루퍼트는 정원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두 사람이 정원으로 들어오자 루퍼트는 곧장 책을 덮어 버렸다.

책을 펼치고는 있었지만, 그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여 버렸군.”

“그렇진 않습니다. 저도 부모님과 만나면 다툴 때가 있거든요.”

“그런가? 그쪽에 있는 아가씨는 부모님과 사이가 어떤가?”

루퍼트는 이온이 인간이 아니라는 걸 못 알아본 모양이었다.

루퍼트의 물음에 이온은 기억을 더듬었다.

“만들어 주신 분을 부모님으로 친다면 사이가 나빴던 일은 없었던 것 같네요.”

루퍼트는 이온의 말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굳이 그것을 물어보지 않았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주변 사람들에게 아무리 인정을 받는다고 해도 자식 문제만큼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야.”

루퍼트는 테이블에 책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인사를 하러 온 것은 아닌 것 같고 나에게 볼일이 있나?”

“네. 좀 여쭤볼 것이 있어서요.”

“뭐지?”

“프란시스가 이 일에 매달리는 가장 큰 동기 중의 하나는 부두에 돌아다니는 한 미치광이에게서 전령이 바다괴물에게 끌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랬군.”

“저희가 조사를 해 보니 그 미치광이는 사실 하마스 교단의 길버트라는 치료사였다는 군요.”

“길버트?”

“네. 그리고 길버트는 사라 아가씨의 전담 치료사였지만 후에 쫓겨났고요. 그게 사실입니까?”

“사실이라네.”

“프란시스는 길버트를 몰랐던 겁니까?”

“그랬을 걸세. 길버트가 사라의 치료를 그만둔 뒤에 사라가 프란시스를 발견했던 것이니까. 그런데 프란시스가 길버트를 만났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군.”

“대체 길버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무슨 일 따위는 없네. 그저 길버트라는 치료사가 실력이 없었기에 치료를 그만두었을 뿐이야. 그리고 그가 미치광이가 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그 이유를 알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럼 그 문제에 대해서 더 여쭤 볼 것이 있습니다.”

주환은 그렇게 말하며 루퍼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길버트가 치료를 그만둔 뒤에 새로운 치료사가 사라 아가씨를 치료했습니까?”

“아니. 그 이후에 교단에서 파견된 치료사는 없었네.”

“그럼 어째서 계속해서 교단에 막대한 헌금을 내고 계시는 거죠? 교단의 치료사에게 맡겼지만, 효과가 없었지 않습니까?”

“이보게. 젊은이. 모든 것은 믿음이라네. 치료사의 역할을 부가적일 뿐, 진짜 치료를 가져다주는 것은 정성과 믿음이지. 모두가 믿음을 외치지만 그 믿음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것이 뭐겠나?”

“바로 돈이군요?”

“그래. 속물적이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네.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 줄 아나? 사라는 어릴 적부터 아주 큰 병을 앓고 있었지. 몸이 점점 굳어가는 병이었어. 그렇게 되면 다리부터 마비되기 시작하면서 허리, 상체, 최종적으로는 심장이 멈추게 되지. 그렇기에 사라는 어릴 적부터 침대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어. 우리가 이곳에 이사를 왔을 때 사라는 전신이 마비된 상태였어. 멈출 게 남아 있다면 심장뿐이었지.”

당시의 고통이 생각나는 듯 루퍼트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딸아이가 죽어가는 것을 보는 것밖에는 없었지. 그래서 이곳 하마스 교단에 헌금을 내면서 기도를 드렸네. 교단에서는 길버트를 보냈지. 처음에는 차도가 조금 보였지만 더 나아지는 게 없더군. 어쩔 수 없이 길버트는 교단으로 돌려보냈다네. 그렇지만 믿음을 버리지는 않았어. 그랬더니 어느 순간 사라의 몸의 점점 낫기 시작하더군. 그야말로 기적이었어. 하마스 신이 내려준 기적. 내가 그 정도의 정성을 보였기에 사라가 목숨을 건질 수가 있었던 거야.”

루퍼트는 마치 자신에게 변명하듯 그렇게 내뱉었다.

“그게 바로 내가 한 일이라고. 바로 내가!”

그러더니 루퍼트는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내 그런 노력도 모르고 멍청한 아들놈은 올 때마다 하마스 교단에게 더는 헌금을 하지 말라고 하지. 그 돈을 자기에게 주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말이야.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렇지. 자기 누나가 점점 건강해지는 것을 보면서도 그런 소리를 하다니. 그 녀석은 아직 어릴 뿐이야. 어린애라고.”

루퍼트의 넋두리를 듣고 있던 이온이 갑자기 그를 향해서 물었다.

“루퍼트 님은 유령선 소문에 대해서 들으신 적이 있나요?”

“유령선?”

이온의 말을 들은 루퍼트의 동공이 커졌다.

“네. 요즘 유령선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이곳저곳에서 퍼지고 있다는데요. 도빌 워터는 항구도시이니까 혹시 이곳에서 유령선이 출몰하지는 않았는지 여쭤보고 싶어서요.”

이온은 데스티나가 카미유에게 들었던 정보 일부를 루퍼트에게 들려주었다.

주환은 유령선에 관한 이야기를 기회를 봐서 할 생각이었지만 이미 이온의 입에서 유령선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기에 상황을 지켜볼 따름이었다.

그때 두 사람이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루퍼트가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저택으로 들어갈 수 있는 뒷문 쪽을 가리켰다.

“가게.”

“무슨 말씀이시죠?”

“가란 말이야!”

루퍼트는 소리를 질렀다.

“우리 집에 자네들이 있을 곳은 더 이상 없어. 형님의 유품이고 뭐고 자네들의 짐을 가지고 당장 떠나! 내 집에 자네들이 머물 수 있는 곳은 없단 말이야.”

루퍼트의 고함이 저택의 안까지 들렸는지 뒷문이 열리면서 시종장과 프란시스가 뛰어나왔다.

두 사람은 정원으로 와서 루퍼트와 대치하고 있는 주환과 이온을 바라보았다.

프란시스와 시종장은 지금의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루퍼트는 시종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당장 이 사람들의 짐을 싸서 밖으로 내놓게. 다 내보내란 말이야!”

프란시스는 주환에게 다가와서 상황을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프란시스가 그렇게 물었지만 주환으로서도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루퍼트의 명령을 받은 시종장은 고개를 숙이면서 다시금 저택으로 갔다.

“루퍼트 님. 이분들을 이렇게 내보내시면…….”

프란시스가 루퍼트를 만류하려고 했지만, 루퍼트의 뜻은 단호했다.

“나는 자네를 존중하고 지금까지 자네가 하는 일을 막은 적이 없네. 그렇지만 이자들을 더 이상 내 집에 두고 싶지 않아. 이제는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말란 말이야. 괴롭히지 말라고!”

루퍼트는 그렇게 외치면서 정원을 벗어나 저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루퍼트의 뜻이 워낙에 단호했기에 프란시스도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주환과 이온에게 말했다.

“우선 이 마을의 다른 숙소에서 묶으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제가 루퍼트 님을 어떻게든 설득해 볼 테니 여러분은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 * *

데스티나가 인어의 주방으로 들어갔을 때 카미유는 역시나 테이블 하나를 차지한 채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주점 안으로 들어온 데스티나를 발견한 카미유는 그녀에게 손짓했다.

“오. 왔네. 이쪽으로 와.”

데스티나가 카미유의 맞은편에 앉자 그녀는 손을 들어서 주인을 불렀다.

“주인장. 여기 맥주 한 잔.”

“나는 괜찮다.”

“괜찮아. 괜찮아.”

주인이 데스티나 앞에 맥주잔을 가져다주자 데스티나는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내가 사는 거니까. 쭉 마셔.”

카미유의 권유에 데스티나는 맥주잔을 잡고 그것을 입으로 가져갔다.

데스티나가 맥주를 마시기 시작하자 카미유는 어젯밤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도시에 비밀 부두가 있었단 말인가.”

“그래. 그 부두 안쪽에 들어갈 수 있는 비밀문이 있다는 건 알아냈는데 그곳을 지키는 괴물 문어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후퇴할 수밖에 없었어.”

“지키고 있는 것은 그 문어밖에 없었나?”

“아니. 이상한 괴물들도 있었는데 말이야.”

카미유가 좀비들의 인상착의를 알려주자 데스티나는 그들의 모습이 주환이 말했던 것과 일치하는 것을 깨달았다.

데스티나가 그 사실을 이야기하자 카미유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희도 습격당했다는 말이지?”

“그래. 그렇다면 이건 예삿일이 아니로군.”

데스티나가 맥주를 다 비우자 카미유는 이어서 주문했다.

“내가 생각을 해 봤는데. 너희들이 찾고 있다는 그 전령. 바다괴물에게 끌려갔다고 했잖아?”

“그랬지.”

“내가 만났던 그 괴물 문어. 그 문어가 그 미치광이가 말했던 그 바다괴물이 아닐까?”

카미유의 말에 데스티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군.”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 비밀부두를 만든 놈들은 배와 괴물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납치하고 있어.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끌려간 그 전령이 살아 있을 확률은.”

“높지는 않겠지.”

“그래서 말인데.”

카미유는 앞쪽으로 몸을 숙여 데스티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너희들도 나를 도와서 그 비밀 부두를 조사해 보는 게 어때? 그러면 더 이상 루퍼트를 조사할 필요 없이 바로 전령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물론 이 일에 루퍼트가 관련되어 있다면 그 대가를 치르게 되겠지만.”

카미유의 권유에 데스티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대답했다.

“내 동료에게 이야기를 해 봐야겠군.”

“그래. 그 정도만 해도 안심이야. 자 그럼 이제부터는 마음을 놓고 술을 마셔도 되겠네.”

카미유가 기분 좋게 술을 들이켜자 데스티나 역시 주인이 가져다 놓은 다음 맥주잔을 들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카미유를 따라서 계속 맥주를 마시던 데스티나는 그만 술에 취해 버리고 말았다.

“더는. 더는 못 마시겠다.”

데스티나가 포기를 선언하자 카미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제 일어나자. 내가 그 루퍼트의 저택으로 데려다 줄게.”

“제대로 걸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내 방에서 자든지. 아무튼, 가자.”

계산을 마친 카미유는 데스티나를 부축해서 일으켰다.

카미유가 데스티나를 부축하여 인어의 주방 밖으로 나갔을 때 그녀는 밖에 서 있는 낯익은 이들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데스티나를 처음 보았던 날 그녀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녀.

바로 주환과 이온이었다.

“당신은?”

주환은 카미유를 보면서 그렇게 물었다.

“잘되었네. 데스티나가 술에 좀 취해서 말이야.”

“좀 취한 게 아닌데요.”

주환의 지적에 카미유는 머리를 긁적였다.

“전적으로 내 잘못이야. 오랜만에 술친구가 생겨서 계속 술을 권했거든. 데스티나도 마음이 약해서 거절을 잘 못한 모양이고. 아무튼 너희들이 데스티나를 루퍼트 저택으로 데려다 주었으면 좋겠는데.”

“이제는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이온의 대답에 카미유의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카미유는 두 사람이 데스티나의 짐까지 바리바리 싸든 채 이곳까지 왔음을 깨달았다.

“뭔가 사정이 있나 보네.”

“그 저택에서는 쫓겨났으니까요. 이곳에 여관 거리가 있을 거란 이야기를 들어서 온 거에요.”

“어……. 너희들…….”

그들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데스티나가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무슨 술을 이렇게 마신 거야?”

“깨어난 뒤로는 술을 마신 적이 없어서……. 그래서 몸 상태가 여전한지 알아보려다가……. 너무 무리했다…….”

데스티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듯 축 늘어져 버렸다.

주환은 데스티나가 쓰러지지 않게 붙잡아 주었다.

카미유는 인어의 주방 위쪽을 가리켰다.

“저 위에 내가 묵는 방이 있어. 우선 데스티나를 그곳으로 데려가자고. 너희들이 원한다면 그곳에 너희들의 짐을 풀어도 상관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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