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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159화 (159/182)

159화

벨루드의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루퍼트는 손에 들고 있는 책을 들었다.

루퍼트가 벨루드의 머리를 책으로 내리치려고 하자 그것을 보고 있던 프란시스가 황급히 나섰다. 그러자 주환 일행도 프란시스의 뒤를 따랐다.

“루퍼트 님.”

프란시스가 나타나자 루퍼트는 움직이려던 손을 멈추었다.

“두 분이서 싸우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이곳에 너무 오래 머물렀으니 이제는 떠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자네는 떠날 필요가 없어!”

루퍼트는 단호했다.

“저를 구해주신 사라 아가씨의 은혜. 그리고 저를 지금까지 아들처럼 아껴주신 루퍼트 님의 은혜는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프란시스가 그 말만을 남기고 돌아서려고 하자 루퍼트가 그를 불러 세웠다.

“가지 말게.”

그러자 프란시스는 걸음을 멈추었다.

“벨루드는 그저 나에게 어떻게든 트집을 잡고 싶을 뿐이네. 죽은 제 엄마 핑계를 대면서 말이지. 자네에 대한 내 생각은 변함이 없어.”

“루퍼트 님…….”

“정말 대단하시군요.”

벨루드는 비꼬듯이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하신다면 저도 그럼 아무하고나 약혼해도 상관없으시겠죠?”

“뭐라고?”

루퍼트는 손을 들어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벨루드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주환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주환 일행을 살펴보고는 그들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벨루드는 갑자기 데스티나에게 다가가더니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

“무슨?”

놀란 데스티나가 팔을 빼려고 할 때 벨루드는 데스티나의 팔을 잡아당기며 벨루드에게 보란 듯이 외쳤다.

“저는 그럼 이분이랑 약혼하겠습니다.”

“뭐!”

벨루드의 폭탄선언에 그를 제외한 모두가 경악에 빠지고 말았다.

* * *

“아야야. 잠깐만요. 잠깐만요!”

벨루드는 지금 데스티나에게 팔이 꺾인 채로 그녀에게 호소하고 있는 중이었다.

“말로 합시다. 말로.”

벨루드는 데스티나에게 하소연했지만 데스티나는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데스티나는 벨루드의 팔을 꺾은 상태로 제압하여 저택의 안쪽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시종장과 프란시스는 데스티나를 말리려고 하였지만, 루퍼트는 벨루드의 버릇을 고쳐주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두 사람에게 벨루드를 신경 쓰지 말 것을 명령했다.

“갑자기 팔을 잡다니. 아주 무례한 행동이었다.”

“알았으니까. 좀 놔줘요. 나는 싸움 못해요. 난 평화주의자라고요.”

벨루드가 계속해서 그렇게 애원하자 데스티나는 꺾었던 그의 팔을 놓아주었다.

그러자 벨루드는 아픈 팔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데스티나의 눈치를 보더니 곧 웃음을 지었다.

“싸움을 잘하시는 분이네. 어디서 배운 거죠?”

벨루드의 말에 데스티나는 손가락을 들어서 그를 가리켰다.

“나는 너희 집안싸움에 관여할 생각이 없다.”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벨루드는 입을 삐죽이며 그렇게 말했다가 주환 일행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그런데 당신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죠? 설마 우리 누나가 또 바닷가에서 당신들을 주워온 것은 아니겠죠? 프란시스만으로도 골치가 아픈데 당신들까지 끼어들면 곤란하단 말입니다.”

그러자 주환이 나서며 벨루드에게 말했다.

“우리는 칼데브에서 왔습니다.”

“칼데브요? 아. 저희 큰아버지가 거기에 영주님으로 계시죠. 갈레오스 님이요. 큰아버지는 잘 계신가요?”

벨루드의 대답에 주환 일행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큰아버지의 일에 대해 들은 게 없나요?”

“네. 제가 멀리 나갔다가 이번에 집에 다시 들어온 거거든요.”

벨루드는 분위기의 심각성을 눈치챘다.

“설마 큰아버지께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그의 물음에 데스티나는 벨루드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차피 알 일이니 당신에게 해줄 이야기가 있다. 당신의 친척들에 관한 이야기이니 반드시 알아야 할 테지.”

* * *

“그럴 수가…….”

주환의 설명이 끝나자 벨루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주환 일행과 벨루드는 저택의 밖으로 나와 저택의 앞마당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큰아버지가, 로렌조 형이…….”

벨루드는 눈물을 흘리면서 마당의 한쪽에 있는 나무를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젠장! 젠장! 어째서 그런 일이!”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이온이 벨루드를 말렸다.

“진정하세요. 당신 탓이 아니잖아요.”

이온의 위로에도 벨루드는 나무를 때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건 다 제 탓이란 말입니다!”

세 사람은 벨루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안토니오가 입고 있었다던 그 갑옷. 그거 제가 구해다 준 거니까요.”

벨루드의 대답에 그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벨루드는 간신히 눈물을 닦으면서 말을 이었다.

“저는 모험가예요.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고 있죠. 저는 싸움 실력 같은 것은 없어서 가지고 있는 돈으로 사람들을 돕기 때문에 다른 모험가들에게는 도련님이라고 놀림을 받기도 하지만 남을 돕고 싶은 마음이 중요한 거잖아요. 젠장. 왜 이렇게 횡설수설하는 거야.”

벨루드는 자기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돌아다니다가 그 하얀색의 갑옷을 구하게 되었어요. 저는 검은 다룰 줄 모르기도 하고 안토니오가 갑옷을 수집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갑옷을 구한 뒤에 칼데브 마을에 들려서 안토니오에게 그 갑옷을 선물해 줬어요. 그런데 그게 이렇게 될 줄은…….”

벨루드가 절망적인 표정을 짓자 데스티나는 벨루드에게 다가갔다.

“그건 네 탓이 아니다. 그 갑옷에는 신이 깃들어 있었지. 그 신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것은 안토니오의 탓이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너는 네 사촌을 생각해서 한 일이었고 그것을 원망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데스티나의 위로에 벨루드는 눈물 젖은 눈으로 데스티나를 바라보았다.

“상냥하시네요. 강하면서도 그 상냥함. 꼭 데스티나 님 같아요.”

주환 일행은 순간 벨루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데스티나 님 모르세요?”

벨루드는 주환 일행의 벙찐 표정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성전기사단의 단장님이신 데스티나 님. 그분이 바로 제 이상형이거든요. 그분을 뵌 적은 없지만 데스티나 님은 당신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해서 저도 모르게 말이 헛나왔네요. 죄송합니다.”

* * *

“당신이 데스티나라고요!”

데스티나의 자기소개를 들은 벨루드의 눈은 커지다 못해서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그렇다. 거짓말 따위는 하지 않는다.”

데스티나의 말에 벨루드는 황급히 양손으로 자신의 양손으로 눈물을 닦고 데스티나의 손을 잡았다.

“정말로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그럴 것까지야.”

데스티나의 손을 잡았던 벨루드는 놀라서 데스티나의 손을 놓았다.

“혹시 다시 제 손을 꺾으실 건 아니죠?”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

“이런 대체. 이런 우연이 있을까요. 눈물이 나오면서도 또 동시 웃음이 나오네요. 슬픈 일이랑 기쁜 일이 이렇게 한꺼번에 찾아오다니 대체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조차 모르겠어요.”

“아까도 말했듯 나는 너희 집안일에 끼어들 생각은 없다. 그리고 더는 성전기사단의 단장도 아니고.”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말 그대로다. 성전기사단을 그만두었다는 이야기지. 아무튼.”

데스티나는 벨루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무슨 사정인지 다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아버지와 뭔가 오해가 있다면 잘 풀어보도록 하라.”

“프란시스를 받아들이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런 말은 아니야. 그렇지만 아버지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일이 풀릴 수도 있는 거니까.”

“저도 프란시스를 미워하지는 않아요. 저는 원래 사람들을 돕기를 좋아하고 프란시스가 어려운 일이 있다면 그를 돕는 것까지는 상관없습니다. 그렇지만 약혼이라뇨. 누님의 인생이 걸려 있는 일인데 그렇게 경솔하게 상대를 정하다니 아버지도 너무하신 일이죠. 누님의 일이기에 제가 필요 이상으로 격해진 것은 인정하지만요.”

“루퍼트 씨도 무슨 생각이 있으시겠지.”

“아버지의 생각은 궁금하지도 않아요.”

벨루드는 고개를 숙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그저 아버지는 저의 모든 게 마음에 안 드실 뿐이에요. 저에게 이 가문을 물려주실 생각이 없으니 급하게 다른 후계자를 물색하시는 거겠죠.”

“아들에 대한 기대감이 큰 것은 모든 아버지의 공통점일 테니까.”

“저기.”

벨루드는 고개를 들었다.

“데스티나 님.”

“뭐지?”

“정말로 저랑 결혼해 주실래요?”

“뭐?”

벨루드의 말에 데스티나를 비롯한 주환과 이온은 어처구니없음에 다리에 힘까지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약혼이나 결혼이 애들 장난처럼 보이는가? 아까 자신의 아버지에게 불만을 느꼈으면서도 스스로 똑같이 행동하는가?”

“아닙니다. 저는 절대 장난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데스티나 님과 프란시스는 다르죠. 프란시스는 정체도 모르는 떠돌이지만 데스티나 님은 구국의 12가문 출신이자 성전기사단의 단장님이시잖아요. 물론 지금은 전 단장님이시지만요.”

벨루드는 데스티나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서며 말을 이었다.

“아까 아버지 앞에서는 반항적으로 굴기 위해서 데스티나 님을 약혼자로 선언한 것도 있지만, 그때도 데스티나 님이 제 이상형과 가까워 보였기에 저도 모르게 그런 행동이 나왔던 거예요. 그리고 지금 제 평생의 이상형이 눈앞에 있는데 그 기회를 포기할 리가 없잖아요?”

“아, 아무튼 이런 식의 행동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제발, 받아주세요! 저는 데스티나 님이 저를 받아주실 때까지 계속해서 구애할 겁니다. 정말이에요!”

“포기하게! 차라리 내가 이 자리를 벗어나야겠군.”

데스티나는 그렇게 말하며 저택의 정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디 갈 생각이야?”

주환이 그렇게 묻자 데스티나는 저택의 정문을 열면서 주환을 돌아보았다.

“카미유를 만나러 갈 생각이다. 조사의 성과가 있었는지 들어야겠지.”

사실 벨루드를 피할 목적이 더 컸지만 어찌 되었건 데스티나는 카미유에게 새로운 소식을 들을 생각이었다.

“저희도 같이 갈까요?”

이온의 물음에 데스티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카미유가 없으면 같이 헛걸음하는 거니 너희는 다른 곳에서 정보를 조사해 주길 바란다.”

데스티나가 저택을 나서려고 하자 벨루드가 황급히 그녀에게 따라붙었다.

“데스티나 님. 같이 가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필요 없다.”

“저도 이곳 출신이라 도시를 속속들이 잘 안다고요.”

“필요 없다니까.”

데스티나가 벨루드의 제안을 거절하고 있을 때 저택의 창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것은 바로 벨루드의 누나인 사라였다.

“벨루드.”

사라는 벨루드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렀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서 이 누나의 얼굴도 안 보고 어디를 가는 거니?”

사라의 말에 벨루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데스티나와 자신의 누나를 번갈아 가면서 바라보다가 데스티나에게 소리쳤다.

“데스티나 님. 기다려 주세요! 우선 누님을 먼저 뵙고 데스티나 님을 도와드릴게요!”

그 말만을 남기고 벨루드는 저택의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골치 아프군. 내가 기다려 줄 리가 없지 않은가.”

“왜 그래? 미래의 신랑감인데.”

주환이 농담을 던지자 데스티나는 주환을 노려보았다.

“그딴 농담은 재미없다.”

데스티나는 저택의 정문을 열고 거리로 나갔다.

데스티나가 사라지자 주환과 이온은 다시금 저택의 위층을 바라보았다.

사라는 여전히 창문으로 몸을 내민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라는 주환을 보면서 살풋 미소를 짓더니 이윽고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창문을 닫았다.

그 모습을 보던 주환은 이온에게 물었다.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는 눈치지?”

“확실하게 기억하는 웃음이었어요. 보통 몽유병은 몽유 상태를 기억 못 하지 않나요?”

“정말 몽유병이긴 한 거야?”

두 사람은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저택의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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