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동굴의 벽 쪽에는 마치 그림자놀이처럼 횃불을 등진 무언가가 꾸물거리면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비치고 있었다.
부두 쪽에는 놀랍게도 거대한 여덟 개의 촉수가 솟아올라 쓰러져 있는 카미유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촉수들은 코브라처럼 움직이면서 이리저리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오징어나 문어의 촉수와 닮아 있었지만, 그와는 달리 그 끝에 꽃의 그것과 비슷한 봉오리가 달려 있었다.
카미유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촉수의 공격을 받은 좀비들은 전부 동굴의 바닥으로 쓰러졌다.
카미유는 그 촉수가 자신을 구해준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촉수야말로 이 동굴을 지키고 있는 진짜 파수꾼임을 눈치챘다.
카미유가 일어섰을 때 촉수의 끝에 있는 봉오리들이 벌어졌다.
봉오리들이 벌어지자 그 안쪽에 숨겨져 있던 둥그스름한 뼈 부분이 드러났다.
‘촉수 안에 뼈가 있다고?’
문어나 오징어의 촉수와 닮았다고 생각한 카미유는 촉수 안을 채우고 있는 뼈를 보면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뼈에는 각각 하나씩 구멍이 뚫려 있었다.
구멍을 통해 뼈 꼬챙이들이 기관총처럼 발사되었다.
카미유가 움직이자 그녀가 있던 자리에 뼈꼬챙이들이 박혔다.
동굴의 바닥을 돌바닥이었지만 그 돌바닥에 박힐 만큼 뼈꼬챙이의 관통력은 어마어마하였다.
뼈꼬챙이들이 발사되는 속도가 워낙 빨랐기에 단순히 달리는 것만으로는 그것들을 다 피해낼 수 없었다.
카미유는 위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로프가 발사되어 높이 솟아올랐다.
금속 장치가 동굴의 천장에 박히면서 카미유의 몸을 지탱해 줄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게 되자 카미유는 로프를 감았다.
그러면서 카미유의 몸은 공중으로 올라갔다.
촉수에서 발사되는 뼈꼬챙이들은 카미유가 위쪽으로 빨려 올라가자 그를 따라가면서 사선으로 벽에 박혔다.
카미유는 위로 올라가면서 망토에 달린 두건을 쓴 다음 망토의 목 쪽에 달린 둥근 단추를 꾹 눌렀다.
그녀가 단추를 누르자 그녀의 모습은 마치 투명인간에 된 듯 공중에서 사라졌다.
사실 그녀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착용하고 있는 망토는 주변의 색깔을 복제하는 ‘카모플라쥬’ 망토로서 지금 망토의 색깔은 주변의 어두운 동굴 색을 완전히 복제하고 있었다.
자신의 몸이 드러나지 않게끔 망토를 여미면서 동굴의 천장에 매달린 카미유는 생각에 잠겼다.
‘지금 혼자서 저 괴물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야. 상대한다 치더라도 범선이 돌아오거나 저 괴물의 동료가 돌아온다면 꼼짝없이 포위당하게 돼.’
고민하던 카미유는 낮에 만났던 데스티나를 떠올렸다.
‘데스티나, 그녀의 동료들이라면 상당히 강하겠지. 그렇다면 그들의 도움을 받는 수밖에 없어.’
이제 카미유는 이 동굴을 빠져나가 다시 도빌 워터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룻배로 빠져나가는 방법은 불가능했다.
흘러왔던 나룻배는 촉수들의 옆에 있었으며 그 안에 있던 노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녀가 택할 방법은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방법뿐이었다.
‘할 수 있을까?’
카미유는 망설여졌지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미유는 로프에 매달리지 않은 반대쪽 손을 동굴의 입구로 갈 수 있는 방향으로 뻗었다.
그리고 그 손에서도 로프를 발사하여 동굴의 천장에 고정했다.
이어서 가장 처음 로프를 고정했던 부분을 풀자 마치 공중그네를 타는 곡예사처럼 카미유는 반원을 그리며 쭈욱 나아갔다.
그녀는 그러한 방식으로 비밀 부두에서 멀어져 동굴의 입구 쪽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때 촉수들이 다시 카미유를 겨냥했다.
‘어째서 걸렸지?’
촉수들은 단순히 시야만으로 적을 찾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촉수들은 카미유가 있는 곳에 뼈꼬챙이를 발사했고, 카미유는 필사적으로 공중그네를 연속으로 건너가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꼬챙이들이 피하면서 이동했다.
드르륵.
석문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카미유는 도망치면서 고개를 둘려 석문이 있던 쪽을 바라보았다.
석문이 열리자 카미유를 공격하던 촉수들이 공격을 멈추고 서서히 다시 동굴의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아직 횃불들이 켜져 있기에 석문이 열린 것을 볼 수 있었지만 카미유가 비밀 부두에서 멀어져 가면서 그 모습은 아주 흐릿하게 보일 뿐이었다.
열린 석문에는 누군가가 서 있었다.
카미유는 필사적으로 상대의 인상착의를 확인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렇지만 석문은 다시 소리를 내면서 닫히기 시작했다.
석문이 닫히는 순간 카미유는 멀리 있는 상대의 얼굴을 잠깐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아무리 해도 상대의 이목구비를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아주 순간적으로 본 얼굴의 이목구비가 극히 희미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 * *
주환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는 중천에 떠 점심때를 바라보고 있는 시점이었다.
‘늦잠 잤다.’
주환은 황급히 침대에서 일어나 찌부드드한 몸을 이리저리 풀었다.
어제 있었던 좀비들과의 전투와 밤늦게까지 이어졌던 소동 때문에 주환의 몸에는 아직도 피로감이 남아 있었다.
사실 사라의 의미심장한 행동에 대한 기억 때문에 주환이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었다.
하품을 하면서 침대에서 내려온 주환은 몸을 숙이고는 침대의 밑을 들여다보았다.
침대의 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침대 밑을 확인한 것은 프란시스와의 대화가 끝나고 주환이 다시 잠자리로 들려고 했을 때 끝까지 주환의 침대 밑을 사수하려던 이온을 데스티나가 억지로 밖으로 끌고 나간 기억이 생생했기 때문이었다.
이온이 없는 것을 확인한 주환은 옷을 갈아입은 다음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온과 데스티나가 배정받은 방을 두드려 보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둘 다 어디 간 거지?’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위해서 복도를 걷던 주환은 1층이 시끌시끌한 것을 느꼈다.
주환은 계단을 내려갔다.
층계참에는 주환이 찾던 이온과 데스티나가 서 있었다.
“무슨 일이야?”
주환이 두 사람에게 묻자 데스티나는 대답하지 않고 1층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1층에서는 세 사람이 서 있었는데 그중 두 사람은 서로 말다툼을 하는 중이었으며 나머지 한 사람은 그 두 사람을 말리고 있었다.
한 명은 주환이 익히 알고 있는 프란시스였으나 다른 한 사람은 그로서는 처음 보는 남성이었다.
그는 모험자를 연상시키는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갈색의 곱슬머리에 잘생긴 외모의 청년이었다.
주환은 그의 피부가 전체적으로 창백해 보이는 도빌 워터 사람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시종장은 두 사람 사이에서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소 있었다.
“어째서 당신이 아직도 이 집에 남아 있는 거야?”
곱슬머리 청년이 프란시스에게 따지자 프란시스는 진정하라는 듯 입을 열었다.
“다 루퍼트 님의 배려 덕분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놨더니 보따리까지 내놓으라는 격이군. 내가 분명히 다음에 왔을 때는 내 눈에 띄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렇지만 루퍼트 님이 프란시스님은 언제까지고 이곳에 머물러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시종장이 청년을 달래듯 그렇게 말하자 청년은 시종장에게 소리를 쳤다.
“언제까지 그렇게 아버지 핑계를 대고 있을 거야! 좋아. 그럼 내가 직접 아버지와 담판을 짓겠어. 지금 아버지는 어디에 계시지?”
“뒷마당에서 독서를 하고 계십니다.”
“알겠어. 당장 그곳으로 가지.”
청년은 그렇게 말한 뒤 프란시스와 시종장을 스쳐 지나가면서 저택의 1층을 가로질러 정원으로 통하는 뒷문으로 걸어갔다.
시종장이 그의 뒤를 황급히 따라가자 주환 일행을 1층으로 내려와 굳은 표정을 한 프란시스에게 다가갔다.
주환 일행이 내려오자 프란시스는 굳어 있던 표정을 애써 풀었다.
“이거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 드리고 말았군요.”
“무슨 일이죠?”
“뭐. 제가 이 집에 온 이후로 늘 있는 일입니다. 오늘은 도련님이 잠시 집에 들르시는 날이거든요.”
“도련님이요?”
“예. 제가 어젯밤에 말씀드렸던 벨루드 도련님이 저분이십니다.”
* * *
주환 일행은 프란시스를 따라서 뒷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갔다.
뒷문에는 정원으로 통하는 길이 나 있었는데 그 길의 주변은 잘 정돈된 정원용 식물들이 꾸미고 있었다.
길을 따라서 정원의 안쪽으로 들어가자 그들은 정원 안쪽에 놓여 있는 흔들의자에 책을 들고 앉아 있는 루퍼트와 그의 앞에 서 있는 벨루드를 볼 수 있었다.
프란시스는 루퍼트와 벨루드를 중재하기 위해서 정원으로 온 것이었지만 날이 잔뜩 서 있는 벨루드의 말을 듣고는 섣불리 정원의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렇기에 마치 프란시스와 주환 일행은 기회를 잡지 못하고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아버지. 프란시스가 어째서 아직도 이 집에 남아 있는 겁니까?”
벨루드의 질문에 루퍼트는 보고 있던 책을 덮었다.
“오자마자 이 아비에게 따지는 거냐?”
“제가 따지지 않게 생겼습니까?”
“그거 재미있구나.”
루퍼트는 벨루드를 보면서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세상에 불쌍한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고 언제나 노래를 하던 게 바로 벨루드 너 아녔느냐?”
“물론 바다에서 죽어가던 프란시스를 구한 것은 찬성입니다. 그렇지만 대뜸 사라 누님의 약혼자로 정하시다뇨. 우리는 프란시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 역시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고요. 그런 수상한 남자에게 누님을 주시겠다는 겁니까?”
“프란시스는 좋은 청년이야. 너희 누나에게 헌신을 다하고 있어. 그런 사람이라면 네 누나의 약혼자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잠깐 그런 연극을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에요. 제가 지금 온 세상을 여행하고 있는 것은 아시죠?”
“잘 알지. 돈은 한 푼도 벌지 않으면서 집안의 돈을 가지고 온갖 곳에 돈을 버리면서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돈을 버리는 게 아닙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 이 세상에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넘쳐나고 있다고요. 아버지야 계속 이 도시에 계시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겠지만요.”
두 사람의 말다툼은 격해지고 있었다.
“저는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금품을 갈취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보았습니다. 지금의 세상은 아무리 경계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세상이라고요. 그런데 어디에서 온 것인지 어떠한 사람인지도 모르는 그런 사람을 대뜸 누나의 약혼자로 정하신 걸 저보고 쉽게 이해하라는 말씀이세요?”
“네가 이해하지 않으면 어쩔 거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네가 언제 한 번 집안에 신경을 쓴 적이 있었냐. 가슴이 이상한 헛바람이 들어서 집안일을 내팽개치고 평생을 밖에 쏘다니는 놈이 무슨 자격으로 집안일에 간섭하는 거야.”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니까요.”
“네놈이 아들 노릇이나 제대로 한 일이 있느냐? 네놈이 한 일이라고는 우리 집 재산을 잔뜩 들고 나가서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놈들에게 퍼주는 한량 같은 짓거리밖에 없지.”
루퍼트는 성을 내면서 의자에서 일어섰다.
“아버지가 어머니께 잘하셨다면 제가 밖으로 나갈 일도 없었을 겁니다.”
“뭐라고? 이 자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