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카미유는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는 방법을 이리저리 궁리했다.
우선 다시 바다로 내려가 암초 위에 올라서서 그 사이를 떠돌고 있는 나룻배를 다시 뒤집는 것이 첫 번째 방법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은 그대로 절벽 위로 계속 올라간 다음 도빌 워터 쪽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두 가지 방법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하던 카미유는 문득 아래쪽에서 흘러 다니고 있는 나룻배에 눈길을 주었다.
나룻배는 파도에 밀리고 밀려서 절벽의 바로 아래쪽까지 밀린 상태였다.
카미유는 우선 나룻배를 뒤집기 위해서 줄을 풀면서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떠돌던 나룻배가 절벽의 안쪽으로 흘러서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뭐야?”
그것은 절벽의 아래쪽에 나룻배가 들어갈 수 있는 동굴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을 깨달은 카미유는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앞에 거대하게 입을 벌리고 있는 동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상당히 큰 동굴인데.”
카미유는 그 동굴의 입구의 크기를 가늠했다.
적당한 규모의 범선이라면 그 동굴을 통과하는 것이 가능했다.
“설마 여기가 숨겨진 비밀 부두인 건가?”
카미유는 그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그렇지만 근처에 암초들이 있는데.”
카미유는 여전히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몸을 돌려서 동굴 주변의 암초들을 확인했다.
확실히 동굴 주변에는 암초들이 제법 있었지만, 동굴의 바로 앞쪽에는 암초들이 없었기에 범선이라도 조종을 잘한다면 아슬아슬하게 출입을 할 수 있는 수준은 되었다.
그리고 역으로 암초들 때문에 이쪽에는 범선이 출입하기 힘들다는 인상을 주어서 그 암초들이 비밀부두의 존재를 숨겨주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한 번 확인해 봐야겠어.”
카미유는 자유로운 다른 손으로 와이어를 날렸다.
검지손가락에서 발사되는 것은 몸을 지탱할 수 있는 로프지만 엄지손가락에 발사되는 것은 금속의 와이어였다.
와이어는 절벽에 나 있는 다른 굵은 나무를 잘라내었으며 잘린 나무는 절벽의 앞쪽으로 떨어졌다.
카미유가 건틀릿을 조작하자 나무를 감고 있던 금속장치가 끝 부분이 풀리면서 그녀는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녀의 몸은 아까 그녀가 잘라서 절벽의 아래로 떨어뜨렸던 나무의 위로 정확하게 올라섰다.
그녀가 절묘하게 중심을 잡았기에 그 나무는 바닷속으로 가라앉지도 뒤집어지지도 않았다.
“그럼 안에 뭐가 기다리고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볼까?”
파도에 의해 그녀가 타고 있는 나무는 점점 동굴 안으로 밀려가면서 그녀 역시 자연스럽게 동굴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동굴 안쪽으로는 더는 달빛이 들어오지 않았기에 카미유는 하염없이 어둠 속으로 밀려들어 갈 뿐이었다.
* * *
나무 위에 올라탄 카미유는 물이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안쪽으로 계속해서 흘러들어 갔다.
“너무 어두운걸.”
안쪽으로 깊게 들어가던 카미유는 자신이 두르고 있는 망토의 안쪽에서 작은 램프를 꺼낸 다음 램프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성냥으로 램프의 안에 있는 작은 초에 불을 붙이고는 그 뚜껑을 닫았다.
카미유가 꺼낸 램프는 안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이 작은 구멍으로만 모여서 나올 수 있는 그러한 램프였으며, 그렇기에 촛불을 마치 랜턴처럼 좁지만 강한 불빛으로 변화시켜 주는 능력이 있었다.
카미유는 램프를 들어서 이곳저곳을 비추어 보았다.
동굴의 안쪽은 대단히 넓었기에 램프의 불빛으로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흘러가던 카미유는 불안한 느낌을 받았다.
“이러다가 하염없이 깊은 곳으로 들어가 버리는 건 아니겠지.”
그녀를 안쪽으로 밀고 가는 물살은 점점 약해졌다.
그때 앞쪽에서 작게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카미유는 그것이 앞서서 흘러가고 있던 뒤집어진 나룻배가 어딘가에 부딪힌 소리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동굴도 끝이 있다는 이야긴데.’
카미유는 램프를 앞쪽으로 내밀었다.
그녀의 생각대로 나룻배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멈춰 있었다.
나룻배를 막고 있었던 것은 거대한 나무 기둥들이었으며 그 위에는 올라갈 수 있도록 두꺼운 나무들이 길게 깔려 있었다.
그것은 동굴 안쪽에 만들어져 있는 부두였다.
“드디어 찾았다!”
카미유는 기쁜 마음에 그렇게 외쳤다.
그녀의 목소리가 동굴 안에 울리자 그녀는 다급히 자신의 입을 막았다.
정말로 숨겨진 비밀부두라면 이곳을 누가 지키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숨을 죽이고 있었지만 나타나는 이는 없었다.
카미유가 타고 있던 나무가 부두에 부딪히기 직전 그녀는 몸을 날려서 부두 위로 올라섰다.
부두의 근처에는 배를 출항시킬 수 있는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 있었다.
카미유는 몸을 낮춘 다음 부두의 바닥을 램프로 비추어 가면서 자세히 살폈다.
‘최근까지도 사용된 흔적이 남아 있어.’
카미유는 부두 위에 서서 자신이 들어왔던 동굴의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지금 부두에 정박해 있는 배가 없다는 것은 이미 이 부두를 떠났다는 건데.’
만약 이 부두를 정말 유령선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면 부두에 배가 없다는 것은 그 배가 지금쯤 사람들을 납치하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오기까지 기다렸다가 잡혀 온 사람들을 구출해야 할까?’
카미유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지만 한 번 출발한 유령선이 언제 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카미유는 조사를 위해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더욱더 안쪽으로 서서히 걸어 들어가던 카미유는 동굴의 안쪽이 막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굴의 벽에 선 카미유는 벽을 짚어가며 상태를 확인했다.
동굴의 벽에는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었다.
그것은 평범한 문이 아닌, 돌로 만든 석재 문이었다. 그리고 여닫이문이 아닌 미닫이문 방식이었다.
카미유는 그 문을 열 방법을 찾았지만, 문을 여는 방법을 쉽게 알 수 없었다.
‘당연히 그렇겠지.’
계속해서 방법을 찾던 카미유는 드디어 손잡이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손잡이는 동굴의 벽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굵은 봉의 형태를 하고 있었으며 그 봉을 잡고 아래쪽으로 내리면 모종의 장치가 작동하게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카미유는 그 봉을 잡고 아래쪽으로 당겼다.
그녀는 그것이 석문을 열 수 있는 스위치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화륵!
갑작스러운 소리에 카미유는 몸을 돌렸다.
어느새 동굴의 안쪽은 환하게 빛으로 채워져 있었다.
카미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동굴 벽에는 횃불들이 여러 개가 줄지어 꽂혀 있었는데 그 모든 횃불에 불이 들어와 있어서 어둡던 동굴의 안쪽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그녀가 작동시켰던 스위치는 문을 여는 스위치가 아닌 불을 켜는 스위치였던 것이다.
‘이건 밤 작업을 위한 장치인 것 같네. 아니지. 동굴 안쪽은 낮이라도 어두워. 그러니 이런 장치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겠네.’
카미유는 다시 스위치를 위로 올렸다.
그러자 마치 누군가 깊은 한숨을 쉬는 것처럼 바람이 불어오는 소리가 나더니 켜져 있던 횃불들이 일제히 꺼졌다.
그리고 카미유는 다시 스위치를 내렸다.
다시금 줄줄이 켜지는 횃불들.
순간 카미유는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다시 스위치를 올려서 불을 켰을 때 어느새 여러 명의 사람이 나타나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깜짝이야.”
놀란 카미유는 스위치에서 손을 떼었다.
카미유는 처음 보는 이들이었지만 골목에서 주환과 이온을 습격했었던 바로 그 좀비들이었다.
검은 두건에 금속 재갈을 물고 있는 좀비들이 여러 마리가 카미유를 포위하듯이 둘러싸고 있었다.
“대체 어디 있다가 나타난 거야?”
카미유는 그렇게 말하면서 앞으로 나섰다.
그 물음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그들은 좀비 특유의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카미유에게 적대감을 드러낼 뿐이었다.
카미유는 좀비들을 둘러보았다.
“너희. 괴물들이구나.”
카미유는 괴물사냥꾼의 직감으로 그들이 살아 있는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너희들이 집 지키는 개인 거냐?”
역시나 대답이 없다.
“대답해 줄 수 있는 녀석은 없어?”
동굴 안에 울리는 것은 오로지 카미유의 목소리뿐이다.
“에휴.”
카미유는 한숨을 내쉰 다음 손을 앞쪽으로 내밀었다.
그리고는 손가락들을 자기 쪽으로 까딱거리면서 도발했다.
“할 말이 없으면 어서 덤비기나 해라. 나도 빨리 끝내고 술 한잔하러 가야 하니까.”
그녀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좀비들은 단숨에 한꺼번에 카미유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때 카미유는 검지의 로프를 아래로 늘어뜨렸다.
그러자 그 끝에 달린 금속 장치가 동굴의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에 장착된다.
찰칵.
장착되는 소리가 들리자 카미유는 로프를 휘둘렀다.
퍽!
로프가 휘둘러지자 그 끝에 달린 돌멩이가 달려오던 좀비 중 한 명의 얼굴에 명중했다.
명중한 좀비의 머리뼈가 박살이 나면서 좀비는 뒤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카미유는 적당한 크기의 단단한 구체가 있으면 그것을 로프에 연결해 마치 연병기 중 하나인 ‘유성추’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카미유는 좀비들이 다가올 때마다 돌이 달린 로프를 휘둘러서 급소를 맞추었다.
좀비들이 사방으로 다가왔지만 카미유가 무기를 마구 휘둘러대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상대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 좀비.
그들은 인해전술로 카미유에게 마구잡이로 동시 공격을 해댔다.
한 마리가 옆쪽에서 달려들자 카미유는 다른 손의 건틀릿을 조작해 건틀릿의 손목 쪽에서 길쭉한 날붙이가 튀어나오게 했다.
데스티나를 상대할 때 사용하던 바로 그 무기였다.
카미유는 그 날붙이로 공격하는 좀비의 목을 날려 버렸다.
카미유는 그러면서도 돌멩이로 다른 좀비의 턱을 박살 내 버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협공해 오는 좀비들의 수가 많았기에 카미유는 로프와 날붙이를 회수하고는 두 손의 엄지손가락 끝에 있는 사출구를 개방했다.
그리고 양쪽으로 얇은 금속 와이어들이 발사되었다.
두 줄의 와이어가 서로 교차하듯이 지나가자 공격하던 좀비들의 몸이 잘려 나가면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제 남은 좀비들은 많지 않았다.
좀비들과 한참 싸움을 벌이고 있던 카미유는 부두 쪽에서 바닷물이 참방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슉!
그 순간 수발의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가 카미유의 귓가를 스쳤다. 카미유는 재빨리 몸을 날렸지만 팔 쪽에서 뜨거운 고통을 느꼈다.
그 때문에 카미유는 중심으로 잃고 바닥으로 넘어졌다.
카미유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를 공격하고 있던 좀비들은 마치 장승처럼 우뚝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좀비들의 몸을 크고 긴 꼬챙이들이 수도 없이 관통해 있었다.
좀비들의 몸은 그야말로 고슴도치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 꼬챙이는 뼈로 만들어져 있는 듯 상아색을 띠고 있었다.
카미유는 자신의 팔을 스치고 지나간 것들이 바로 그 꼬챙이들임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