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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155화 (155/182)

155화

주환은 손을 들어서 침대 위를 짚고 있는 데스티나의 왼손을 잡았다.

데스티나는 놀랬지만 그 손을 빼지는 않았다.

“지금은 이렇게 같이 있잖아. 모든 것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어.”

“그렇다면 좋겠지만.”

데스티나는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서 주환에게 보여주었다.

“내가 잃어버린 오른손은 다시 돌아왔지.”

데스티나의 오른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게 진짜 나의 팔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다. 이 팔은 나의 것이 아니다. 마치 나와는 다른 존재가 몸을 잠식해 나가는 느낌을 계속해서 느끼고 있지.”

데스티나는 오른손을 쥐었다가 다시 펴 보였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무엇인 줄 아나? 나는 이 팔이 저주처럼 느껴지면서도 또한 축복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칼데브 마을에서 나오기 전 데미안과 대련을 했을 때 이 팔이 아니었다면 결코 데미안에게 이길 수 없었을 거다. 그때 이 팔은 분명 나의 의지를 넘어서는 움직임을 보이며 데미안을 공격했으니까.”

“조금 과민반응을 하는 것일 수도 있어. 너도 모르는 사이에 네가 더 강해진 것일 수도 있잖아. 데미안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신이 아니야. 데미안도 무적의 존재는 아니란 말이야.”

“그럴까?”

“그렇다니까.”

“주환. 만약.”

데스티나는 무언가를 예감한 듯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내가 이후에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된다고 하더라도 너는 끝까지 내 동료로 남아줄 수 있겠나?”

데스티나의 물음에 주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할게.”

주환이 약속을 하자 데스티나의 얼굴에 미소가 퍼졌다.

그리고 데스티나가 무언가 말을 하려는 그 순간 누군가가 주환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침대에 앉아 있는 두 사람, 그리고 침대 밑에 숨어 있던 한 사람의 시선이 모조리 그 문에 쏠리게 되었다.

주환은 자신도 모르게 데스티나의 손을 놓은 다음 방문을 향해서 말했다.

“네. 누구시죠?”

“저. 사라예요.”

의외의 인물이 등장하자 주환은 놀란 표정으로 데스티나를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직 안 주무시나요?”

“아, 아 네! 지금 자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무슨 일이신데요?”

“단둘이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단둘이?’

사라의 말에 주환은 다급해졌다.

“잠시만. 잠시만요!”

주환은 데스티나에게 황급히 속삭였다.

“데스티나! 잠깐만 숨어 있어봐. 지금 ”

“숨으라고?”

데스티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체 어디에 숨으란 말인가?”

그때 침대의 밑에서 두 개의 손이 빠져나와 데스티나의 양다리를 잡았다.

“자, 잠깐!”

데스티나가 놀라 소리를 지르려 하자 주환은 재빨리 데스티나의 입을 막고는 그녀의 몸을 받쳐서 침대 밑으로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유도했다.

안쪽에서 당기는 강한 힘으로 속절없이 침대의 밑으로 빨려 들어간 데스티나는 그 안쪽의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온을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온은 어둠속에서 눈을 빛내면서 누운 채로 데스티나에게 인사했다.

“너!”

데스티나가 놀라자 이온은 손을 들어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두 사람이 침대 밑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주환은 침대의 이불을 한 번 정리한 다음 밖을 향해서 말했다.

“들어오세요.”

철컥.

그의 말과 함께 문이 열리면서 바깥에 서 있던 이의 모습이 드러났다.

문 앞에는 사라가 서 있었다.

사라는 안쪽으로 들어오면서 문을 닫았다.

침대에 앉아 있던 주환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슨 일이시죠?”

“잠자리는 편안하신가요?”

“네. 아주 좋은 방을 주셔서 오늘 밤은 편안하게 보낼 수 있겠네요.”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주환 님은 칼데브 마을의 영주님이시니 아무 방이나 드릴 수는 없죠.”

“정확히 말하자면 영주가 아니라 영주 대행이지만요.”

“아버지가 돌아가지 않으시면 그대로 주환 님이 영주가 되실지도 모를 일이죠. 아무튼.”

사라는 침대에 걸터앉으면서 주환을 바라보았다.

“잠시 앉으셔서 차분히 이야기를 좀 나누실까요?”

* * *

주환 일행이 루퍼트의 저택에서 밤잠을 설치는 소동을 벌이고 있을 때.

카미유는 홀로 부두에 나가 밤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부두의 끝에 양반다리로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후우.”

그녀가 내뱉은 담배 연기가 검은 바다를 배경으로 구름처럼 나타났다가 허공으로 흩어져 갔다.

카미유의 옆에서는 술병이 놓여 있었다.

카미유는 담배를 피우면서도 가끔 술병을 들어 그 안에 있는 술로 목을 축였다.

“크아. 좋다.”

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카미유는 즐겁다는 듯 그렇게 내뱉었다.

남들이 보면 취객이 밤바다에서 진상을 피우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 그녀는 나름의 목적이 있었다.

카미유는 부두에 앉아 수상한 배가 드나드는 것을 살피는 중이었다.

그녀는 낮 동안 항구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 목격한 유령선과 비슷한 규모의 배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그 배 중에는 루퍼트가 소유하고 있는 배들도 있었다.

그러한 배들은 낮 동안 전혀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카미유는 늦은 밤을 이용하여 유령선의 흔적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늦은 밤에 움직이는 배는 없었다.

“물고기도 잘 안 잡히네.”

카미유는 낚싯대를 들어 올려서 끝을 확인했다.

낚싯대를 드리운 지 꽤 긴 시간이 지났지만, 미끼는 그대로 있었다.

‘가정을 처음부터 다시 세워야 하는 건가.’

카미유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뒤쪽에서 그녀를 향해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있었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니 두 명의 경비대원들이 손에 램프를 들고 그녀를 향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경비대원들이 물음에 카미유는 낚싯대를 들고 씨익 웃었다.

“밤낚시.”

“이런 시간에 낚시라고?”

경비대원들은 카미유에게 가까이 오더니 그녀가 주변에 놔둔 미끼통과 술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술에 어지간히 취했나 보군.”

“여기서는 제대로 먹을 수 있는 게 술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내가 직접 물고기를 낚아 보려는 거야.”

“그래? 노력은 가상하지만 헛수고일 거야.”

“어째서?”

“언제부터인가 이 바다에서는 더는 물고기가 잡히지 않아. 물고기를 잡으려면 더 멀리 나갈 수밖에 없지. 그리고 겨우겨우 잡은 물고기도 상태가 매우 좋지 않은 것들뿐.”

“그럼 그때부터 계속 그런 고기를 먹어온 건가?”

“어쩌겠어. 어차피 구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인데. 소문에는 어떤 부잣집은 음식을 밖에서 가져온다지만 그건 돈 많은 집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우리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야.”

“그것참 안타까운 일이네.”

카미유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는 주머니에서 돈을 얼마 꺼내어 경비대원들에게 내밀었다.

“뭐야?”

“술을 한잔했더니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못 참겠어. 이걸로 새벽까지 여는 술집이 있으면 술이나 한잔하고 들어가라고.”

경비대원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면서 잠시 고민하더니 그 돈을 받았다.

“설마 이래 놓고 뇌물수수로 고발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 쩨쩨한 짓은 안 해.”

“아무튼 고마워. 그럼 낚시 잘하라고.”

돈을 받자 기분이 좋아진 경비대원들은 그녀를 뒤로하고 부두를 벗어나려고 하였다.

“잠깐.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카미유는 떠나는 경비대원들을 불러 세웠다.

“뭐가 궁금한데?”

“혹시 이 항구에 수상한 범선이 들락날락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

“수상한 범선?”

“목격한 사람들의 말로는 유령선처럼 생겼다고 하던데.”

경비대원 두 사람은 뭔가 알고 있는 듯한 얼굴이 되었지만, 곧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리고 카미유는 그들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런 게 있었으면 벌써 우리가 발견했겠지.”

경비대원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동료를 황급히 이끌었다.

“자. 돌아가자.”

그렇지만 나머지 한 명은 카미유에게 뭔가를 말해주고 싶은 눈치였다. 그는 동료에게 끌려가면서 카미유에게 말했다.

“그런 건 여기에는 없어. 여기에는 없다고.”

그 말만을 남기고 두 사람은 부두에서 벗어났다.

“음.”

사라지는 두 사람을 보면서 카미유는 곰방대를 깊게 빨았다.

“여기에는 없다라.”

카미유는 방금 사라진 경비대원이 ‘여기에’라는 말에 악센트를 주면서 말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여기에 없다는 것은 다른 곳에는 있다는 이야기겠지.”

카미유는 생각을 확장시켜 나갔다.

‘방금 했던 말이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 거였다면 ‘여기에’라는 말에 범위를 확 좁혀볼 수 있지. 여기에, 즉 이 부두에서는 그 유령선을 볼 수 없지만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어. 그렇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카미유는 몸을 돌려 다시금 캄캄한 밤바다에 시선을 두었다.

‘단지 이 항구에서만 배가 들락날락할 것이라는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겠군. 이 도시 어딘가에 항구를 통하지 않고 배가 다닐 수 있는 비밀 부두가 있다면?’

* * *

“자. 앉으세요.”

사라는 침대의 한쪽을 짚으면서 주환이 그곳에 앉게끔 권유했다.

주환을 바라보고 있는 사라의 눈빛은 왠지 상당히 요염하게 빛나고 있었다.

병약하긴 했지만 사라에게는 신비로워 보이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는 하얗고 창백한 피부가 그러한 아름다움을 더욱더 강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어서요.”

“네. 알겠습니다.”

주환은 사라와 거리를 두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스윽.

그러자 사라는 자신의 몸을 끌어당겨서 주환과의 거리를 단숨에 좁혀왔다.

“제가 싫으신가요?”

“왜 그런 걸 물으시죠?”

“주환 님이 지금 저를 멀리하려는 것 같아서요.”

“딱히 그런 건 없습니다. 그나저나 찾아오신 용건부터 좀 듣고 싶은데요.”

“아까 식사 시간에 저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죠?”

그것은 사실이었다.

식사 시간 때에 사라가 주환 일행이 겪었던 모험담 등을 듣고 싶어 했기에 주환은 그 자리에서 자신이 엮었던 일들 일부를 각색해서 들려주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들을 듣는데 너무나도 즐거웠거든요. 그렇게 즐거웠던 건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그러셨다니 저도 기쁘네요.”

“저는 평생은 집에 갇혀서 살았고, 이 도시를 떠나본 적도 없어요. 그래서 저는 주환 님 같은 모험가를 동경해 왔었죠.”

사라는 그렇게 말하며 주환의 손을 더욱더 강하게 잡았다.

“주환 님이 겪으신 모험담을 더 들려주실 수 있나요?”

“글쎄요. 뭘 더 들려드릴 만한 게 있을지.”

주환이 기억을 더듬으면서 이야기할 만한 것을 찾고 있을 때 사라는 점점 더 주환에게 몸을 가까이 밀착시켰다.

주환이 가만히 좀 더 옆쪽으로 가면 사라는 더욱더 주환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아무리 봐도 이 아가씨.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쪽에 목적이 있는 것 같은데.’

“죄송하지만 이야기는 다음에 들려드리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러자 사라는 손을 뻗어서 주환의 팔을 잡았다.

“눈치가 없으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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