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154화 (154/182)

154화

주환과 이온, 그리고 데스티나는 각자의 방에 짐을 풀고는 가벼운 차림으로 식당으로 내려왔다.

식당은 이미 식사를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프란시스의 말대로 도빌 워터의 바깥에서 구해온 신선한 재료들이 사용되었기에 도시에서 맡던 냄새가 아닌 맛있는 냄새가 식당의 안을 채우고 있었다.

“이쪽으로.”

식당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던 프란시스가 세 사람을 안내하였다.

루퍼트는 식탁의 상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프란시스는 세 사람을 적당한 자리에 배치해 주었다.

그들이 자리에 앉자 시종장과 시종들이 식사에 필요한 식기들을 가져와서 각자의 앞에 내려놔 주었다.

식사 준비가 끝나자 루퍼트는 주환 일행을 둘러보았다.

“그럼 편하게들 식사하시게.”

루퍼트의 말이 떨어지자 비로소 세 사람은 식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 전령이라는 사람은 찾았나?”

“아직은 단서를 더 찾아보고 있습니다.”

주환의 대답에 루퍼트는 고기를 썰면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내 귀에 가장 먼저 들어왔을 거라네. 자네가 알지는 모르겠지만 이래 봬도 난 이 도빌 워터 안에서는 나름의 입지를 구축하고 있으니까.”

“그러시군요.”

주환은 루퍼트에게 반응을 보기 위해서 말을 이었다.

“아까 하마스 교단에 다녀왔습니다.”

고기를 썰던 루퍼트의 손이 잠시 멈추었다.

“그곳에 무슨 볼일이 있었나?”

“별건 아니고 그냥 정보 수집 차원에서 다녀온 겁니다. 그곳에서 이야기를 들으니 루퍼트 씨가 하마스 교단에 헌금을 많이 내신다고 하던데요.”

“그게 문제 될 게 있나?”

루퍼트는 갑자기 심기가 불편해진 모양이었다.

“문제 될 건 없습니다. 그저 하마스 교단에서 루퍼트 씨를 많이 의지하는 느낌이어서요.”

“그럴 테지. 지금까지 내가 준 돈으로 호의호식하면서 살았을 테니까.”

‘헌금을 많이 내는 사람치고는 그 교단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은데.’

주환은 루퍼트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한편 주환과 루퍼트가 이야기하는 동안 한쪽에 서 있던 프란시스가 슬쩍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데스티나가 그에게 물었다.

“같이 식사하지 않는 건가?”

“네. 저는 따로 사라 아가씨의 식사를 챙겨드려야 해서요. 이따가 다시 내려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그때 식당의 입구에서 사라가 들어오면서 프란시스에게 그렇게 말했다.

“사라 아가씨.”

프란시스는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식사는 제가 가져다드리려고 했습니다만.”

“언제나 챙겨주셔서 고마워요. 그렇지만 오늘은 식당에서 식사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요.”

“무리할 필요는 없단다. 얘야.”

루퍼트가 사라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사라는 식당의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사라의 걸음걸이는 조금씩 비틀거리는 등 아슬아슬한 면이 있었지만, 그녀는 무리 없이 식당의 안쪽으로 이동하여 주환의 옆에 섰다.

“오늘은 몸 상태가 괜찮아요. 그래서 이렇게 걸어 다녀도 아주 괜찮을 정도예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사라는 테이블에서 의자를 빼고는 다소곳이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는 안쪽에 서 있는 시종장을 향해서 말했다.

“제 식사는 이쪽으로 가져다주세요.”

“알겠습니다. 아가씨.”

시종장은 사라의 말에 곧바로 부엌 쪽으로 사라졌다.

“항상 방에만 있으니 너무 외롭고 힘들어요. 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과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하던 시간도 그립고요. 그래서 이렇게 일부러 내려온 거예요.”

사라의 말에 루퍼트는 곤란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다시 또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러니.”

“그때는 프란시스 씨가 있잖아요.”

사라는 그렇게 말하며 프란시스를 바라보았다.

“안 그런가요? 프란시스 씨?”

“아가씨께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제가 반드시 지켜 드릴 겁니다.”

사라의 시선을 받으면서 프란시스는 그렇게 대답했다.

* * *

밤이 늦은 시각. 루퍼트 저택의 분위기는 음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주환은 잠을 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지금 자신의 방에 들어와 있는 이온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내일은 어떻게 움직이실 생각이세요?”

“글쎄. 생각 같아서는 루퍼트 씨를 좀 더 조사해 보고 싶지만 사실 하마스 교단 쪽에 더 신경 쓰여서 말이야.”

“확실히 그렇죠. 저희가 하마스 교단을 빠져나오자마자 습격을 당했으니까 하마스 교단 쪽에서 뭔가 손을 쓴 것 같아요.”

“루퍼트 씨와 하마스 교단. 서로 뭔가 관계가 있어. 그걸 알면 실마리가 풀릴 것 같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잠시 이어지는 침묵.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이온이었다.

“주인님.”

“왜?”

“프란시스 씨, 사라 아가씨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확실히 그래 보이더라.”

주환은 이온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프란시스가 사라를 배려하는 행동이나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 등, 주환이 보았을 때 그가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들에 거짓이 숨어 있다고 하더라도 사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진실처럼 느껴졌다.

“보기 좋더라고요.”

“그렇지만 프란시스는 가스파르야.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프란시스는 사라 아가씨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를 불렀다고 했지.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오히려 프란시스의 손에서 사라 아가씨를 지켜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지만 일부러 저희를 부를 이유가 없잖아요.”

“혹시나 복수를 위해서라면?”

“그렇다고 치기에는 방법이 너무 복잡하지 않아요? 프란시스, 즉 가스파르가 다른 차원에서 돌아왔다면 같이 넘어갔던 클레이브나 루드비히도 같이 왔을 가능성이 높잖아요. 그렇지만 그들은 지금 아무 소식이나 움직임도 없죠. 복수한다면 같이 움직이지 않을까요?”

“가스파르는 그때 클레이브와 적이 된 상황이었어. 그래서 따로 움직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잖아.”

“가스파르가 혼자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그는 그때 녹색의 비를 이용해서 엄청난 힘을 얻었어요. 저 같으면 그냥 그 힘을 이용해서 우리를 뭉개 버리려고 할 것 같은데요.”

주환은 이온의 말이 맞다는 생각을 했다.

프란시스가 예전의 가스파르라면 이런 식으로 꾀어내서 복수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면 세 사람뿐만 아니라 성전기시단이 다 달려들어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이온이 오르페우스 호를 포기하고 다른 차원으로 날려 버렸던 것이니까.

‘어떻게 해서 가스파르는 자신의 힘을 잃어버린 거지?’

“애초에 다른 차원으로 가 버린 가스파르와 여기에 있는 프란시스가 동일인물이긴 한 걸까?”

주환은 근본적인 부분에서 의심을 던졌다.

주환의 말을 들은 이온은 그때 자신과 엘레나가 오르페우스 엔진실에서 겪었던 일을 떠올렸다.

이온이 오르페우스의 엔진실로 들어갔을 때, 그녀는 그곳에서 살덩이 괴물과 싸우고 있는 엘레나를 발견했었다.

그리고 이온은 엘레나를 도와서 그 살덩이 괴물을 작은 차원의 문을 통해서 다른 곳으로 보내 버렸던 것이다.

가스파르의 본체는 공허차원에 갔다고 하더라도 엔진실에서 날려 버린 가스파르의 일부는 어디로 갔을지 이온으로서도 알 길이 없었다.

조절되지 않는 차원의 문은 다른 차원으로 보내는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같은 차원 안에서 먼 거리를 이동시킬 수 있는 순간이동기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온이 조종실에서 엔진실로 단숨에 이동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으니까.

이온은 그 사실을 주환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프란시스는 가스파르 자체라기보다는 가스파르의 일부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네.”

이온의 이야기대로라면 프란시스와 가스파르가 확실한 동일인이라는 당위성이 생기는 셈이었다.

생각을 정리하던 주환은 피곤함을 느꼈기에 자신의 베개를 정리하면서 이온에게 말했다.

“피곤하다. 나는 이제 자야 할 것 같아.”

“네. 안녕히 주무세요.”

정적.

“이온?”

“네. 주인님?”

“내가 방금 한 이야기 들었지?”

“네. 주무신다면서요.”

“그럼 너도 나가야 하지 않겠어?”

“괜찮아요. 저는 여기가 편하거든요.”

지금 이온은 주환이 누워 있는 널따란 침대의 밑에 들어가 있었다.

“내가 안 괜찮아서 그래. 그리고 대체 왜 아까부터 침대 밑에서 나오질 않는 거야?”

“저의 임무는 주인님을 지키는 것. 주인님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 자리가 저에게는 편해요.”

“내가 안 편하다니까. 나는 괜찮으니까 그냥 빨리 나가줄래?”

“잠이 안 오시면 자장가라도 불러 드릴까요?”

“말 돌리지 말고.”

“옛날이야기는 어떠세요?”

“내가 애냐?”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놀란 주환은 몸을 일으켰다.

방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바로 데스티나였다.

“데스티나?”

“아직 잠들지 않았군.”

방으로 들어온 데스티나는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무슨 일이야?”

“별일은 아니다. 단지.”

주환은 데스티나의 손에 롱소드가 들려 있는 것을 깨달았다.

“화장실을 간다고 했던 이온이 돌아오지 않아서 말이지.”

주환 일행은 2개의 방을 받았는데 데스티나와 이온은 2인실을 같이 쓰게 되었으며 주환은 혼자 1인실을 사용했다.

“그래서 이온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이온은 자동인형이니 화장실을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래서 찾아보던 중이었다.”

“이온은…….”

주환이 이온이 침대 밑에 있다는 걸 말하려고 했을 때.

이곳에는 이온이 없다고 생각한 데스티나는 주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주환.”

“응?”

“나는 너를 믿을 수 있는 동료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고마워.”

“너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나?”

“당연하지.”

“그렇군.”

갑자기 데스티나가 쓸쓸한 표정이 되자 주환은 이불에서 나와 데스티나의 옆에 앉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요즘 갑자기 두려운 감정이 들었다.”

“두렵다니. 뭐가?”

“잊히는 것이 말이다.”

“누구도 널 잊지 않아. 나도 마찬가지고.”

“너도 알겠지만 나는 한 번 죽었었다.”

“무슨 소리야. 너는 그냥 잠들어 있었을 뿐이야.”

“내 몸은 내가 잘 알고 있다. 아마 그때 그 상태는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던 상태였을 것이다. 숨이 끊어지지 않았더라도 조만간 숨이 멈추었겠지. 어떻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인지 알 수가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무사히 돌아왔잖아.”

“그때. 내 온 힘을 다해서 루드비히의 공격을 막아내었을 때, 내 목숨을 툴레오에게 바치겠다고 했었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두려웠다. 나는 언제나 내 목숨을 타인을 위해서 바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그 순간이 다가오자 도망쳐 버리고 싶은 생각뿐이었지. 가장 두려웠던 것은 내 목숨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진짜 두려웠던 것은…….”

데스티나는 고개를 돌려서 주환을 바라보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사라져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