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
“…….”
데스티나와 그녀를 상대하던 이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서로의 목에 검을 겨누고 있는 두 사람.
그 누구도 먼저 검을 내리는 이가 없었다.
“무기를 내리도록.”
먼저 권유한 쪽은 데스티나였다.
“내가 미쳤냐? 그쪽부터 먼저 내리시지?”
상대방도 지지 않고 맞받아친다.
“내릴 생각이 없다는 건가?”
“이렇게 내 목에 무기를 겨누고 있으면서 바랄 걸 바라야지.”
“그건 피차 마찬가지 아닌가. 그리고 먼저 공격을 한 것은 네 쪽이었고.”
“몰래 미행한 건 당신 쪽 아닌가?”
서로의 말싸움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데스티나는 한숨을 내쉬더니 천천히 검을 내렸다.
“계속 이러고 있어 봐야 끝이 없겠군. 이러면 내가 너를 공격할 생각이 없다는 게 확실해지겠지. 안 그런가?”
데스티나는 검을 내렸지만, 상대는 계속해서 그녀의 목에 날붙이를 겨누고 있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역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무기를 회수할 수밖에 없었다.
무기를 내린 상대는 데스티나를 향해서 물었다.
“대체 왜 나를 미행한 거지?”
“나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 이 도시에 방문했다. 그렇지만 단서를 찾지 못하던 차에 계속 나와 우리 일행을 감시하고 있는 이를 발견해서 그 뒤를 쫓게 된 거지.”
“그게 바로 나란 말이지?”
“그래.”
“확실히 당신들이 인어의 주방에 들어온 뒤부터 계속 감시하고 있던 것은 사실이야. 그렇지만 나는 당신들을 몰라. 내가 알아본 것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무기니까.”
상대의 말에 데스티나는 메고 있던 은말뚝 발사기를 꺼냈다.
“이 무기 말인가? 이 무기를 어떻게 알고 있지?”
“알 수밖에 없지. 그건 바로 내가 만든 무기거든.”
“이럴 수가.”
상대의 대답에 데스티나는 깜짝 놀랐다.
“그건 내가 지인에게 만들어 준 물건이야. 그게 어째서 당신 손에 들어가 있는 건지 설명해 봐.”
“당신이 이 무기를 만들었다면 이 무기를 테오라는 사람에게 주었겠지.”
“그래. 당신도 그를 알아?”
“실제로 만난 일은 없다. 단지 그의 딸을 알고 있을 뿐.”
그 딸은 루카를 의미했다.
상대는 기억이 난다는 듯 말했다.
“테오에게 들은 기억이 나. 이름이……. 루카라고 했던가? 딸이 늑대인간에게 살해당한 일로 나를 찾아와 늑대인간에게 복수하고 싶다고 해서 그 무기를 만들어 주었어.”
“그 딸은 죽지 않고 살아 있다.”
“뭐?”
이번에는 상대가 놀랄 차례였다. 그녀는 놀라면서 쓰고 있던 망토의 후드를 벗어 버렸다.
후드 안에 감추어져 있던 상대는 바로 다크엘프였다.
훤칠한 키에 선이 굵은 날카롭고 성숙한 분위기의 미인이었지만 문제는 그녀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은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보라색의 긴 머리칼을 트윈테일로 묶고 있었다.
그 머리를 본 데스티나가 손을 들어서 그녀의 머리를 가리켰다.
“그 머리.”
그러자 상대도 손을 들었다.
“지적하지 마.”
“그렇지만.”
“남이사 무슨 머리를 하고 다니든 말든. 머리 스타일이야 자기만족이잖아.”
“그야 그렇지만.”
“그렇게 치면 당신 포니테일도 그닥 어울리지 않아.”
“이봐. 나는 아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 하긴 그렇네. 미안.”
다크엘프는 시원스럽게 사과했다.
“그나저나 루카가 살아 있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이야기하자면 좀 길어진다.”
그렇게 말하며 데스티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서 서서 이야기를 들을 건가?”
“그럴 수는 없지.”
다크엘프는 데스티나를 스쳐 지나가면서 자신이 왔던 길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당신의 동료도 인어의 주방에 남아 있겠지. 그곳으로 가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자고. 시원한 술도 한잔하면서 말이야. 술 정도는 내가 사지.”
* * *
두 사람이 인어의 주방으로 돌아왔지만, 그곳에 주환과 이온은 남아 있지 않았다.
“당신 동료는 다 가 버린 것 같은데.”
다크엘프의 말에 데스티나는 두 사람이 뭔가 단서를 잡았음을 직감했다.
‘그랬으니 그 짧은 시간 안에 자리를 떴겠지. 그럼 우선은 두 사람에게 맡겨 두어야겠군.’
다크엘프가 먼저 자리에 앉자 데스티나 역시 그녀를 따라서 테이블의 맞은편에 앉았다.
두 사람을 본 주점 주인이 오자 다크엘프는 맥주 두 잔을 주문했다.
“안주 없이 맥주만 시키는 손님들이 너무 많구만.”
주문을 받은 주점 주인이 투덜거리자 다크엘프는 미안하다는 듯 씨익 웃었다.
“아. 미안. 이 집 안주에서는 무슨 오줌 지린내 같은 게 나서 말이야.”
갑작스러운 폭언에 주점 주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미안하오.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데 도통 예의라고는 찾을 수 없군.”
데스티나가 주인에게 대신 사과하자 다크엘프는 주인을 향해서 윙크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안주는 개판이지만 맥주는 맛있었어. 그러니까 맥주만 빨리 가져다줘.”
다크엘프의 말에 주점 주인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주인이 사라지자 다크엘프는 데스티나를 보면서 물었다.
“담배 피워도 되나?”
“얼마든지.”
“아. 고마워.”
다크엘프는 허리춤에서 아주 기다란 곰방대를 꺼내더니 그 안에 담뱃잎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사이에 주인이 맥주가 가득 찬 나무잔을 가져와 불만이 있다는 듯이 테이블에 쾅하고 내려놓았다.
그렇지만 다크엘프는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곰방대에 불을 붙인 다음 그 끝을 빨았다.
“후우.”
그녀가 내뱉은 담배 연기가 주변을 채워나갔다.
“내 이름은 카미유. 당신은?”
“데스티나.”
“데스티나?”
데스티나의 이름을 들은 카미유의 눈이 커졌다.
“당신이 성전기사단의 단장인 데스티나?”
“그렇다. 아니. 이제는 단장을 그만두었으니 전 단장이라고 해야겠지.”
“그래? 당신이 정말 그 데스티나라면 믿을 만한 사람인 건 확실하겠네.”
카미유는 나무잔을 들어서 데스티나에게 내밀었다.
“자. 시원하게 한잔하자고.”
“지금은 일하는 중이다.”
“괜찮아. 괜찮아. 천하의 성전기사단의 전 단장님. 이런 맥주 한 잔으로 취할 리는 없잖아.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사는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시원하게 마시라고.”
카미유의 권유에 데스티나는 자신의 앞에 있는 맥주잔을 바라보더니 곧 그것을 들었다.
“자. 짠.”
카미유는 잔을 부딪친 다음 이어서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하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데스티나는 적당히 입을 축였다.
“아. 맛있다. 맛있어.”
금세 한 잔을 다 마셔 버린 카미유는 잔을 내려놓은 다음 카운터에 있는 주인에게 이어서 주문했다.
“여기 맥주 한 잔 더!”
주문을 한 카미유는 기분 좋은 얼굴로 데스티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성전기사단의 전 단장님이 어째서 이런 곳까지 온 거야?”
“그것도 사정이 있다.”
“사정이 많으신 분이네. 뭐. 그럴 수도 있지.”
카미유는 웃으면서 다시금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아까 술을 마시다가 나간 건 우리를 유인하기 위해서였나?”
데스티나의 물음에 카미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만약 당신들이 나를 노리는 자들이라면 나를 쫓아올 거로 생각했거든.”
“적이 많은가 보군.”
“많지. 아주 많지.”
주인이 새로운 맥주를 가져다주자 카미유는 바로 컵을 집어 들었다.
“내 직업을 괴물 사냥꾼이야. 별명은 ‘검은 거미’. 그래도 이 바닥에서는 유명한 편인데 내 별명 들어본 적 있어?”
“미안하군. 평생은 전쟁터에서 보내다 보니.”
“그래. 그럴 수 있지. 괴물 사냥꾼이라는 게 괴물들 퇴치해 주고 수고비 받고 이리저리 여행하는 낭만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낭만이랑은 정말 거리가 멀어. 의뢰인이 몰래 이중계약을 하면 같은 괴물 사냥꾼에게 죽을 수도 있어. 괴물들을 사냥하다 보면 의뢰인들과 척을 지는 경우도 많지. 이래저래 적이 많은 직업이라니까.”
“그럼 우리를 라이벌 괴물 사냥꾼으로 착각한 건가?”
“그럴 수밖에 없었어. 당신들이 테오의 일에 엮여서 테오를 죽이고 그 무기를 빼앗은 줄 알았지. 그리고 이번에는 나와 같은 의뢰에 엮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한번 확인해 보려고 일부러 밖에 나갔더니 곧바로 나를 뒤쫓아 오잖아. 그래서 나를 노리는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
“그렇지만 너무 성급한 판단이었다.”
“그건 미안하게 생각해.”
두 번째 잔도 비워 버린 카미유는 데스티나에게 물었다.
“그럼 들려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카미유의 물음에 데스티나는 칼데브 마을에서 있었던 일과 그 일로 인해 주환 일행이 도빌 워터까지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진지한 얼굴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미유는 한숨을 내쉬었다.
“테오가……. 죽은 거구나. 착한 사람이었는데.”
“나도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젠장. 친구가 죽었는데 이러고 있을 수 없지.”
“뭘 할 생각인가?”
“뭘 하겠어. 추모주를 마셔야지. 주인장 여기 맥주 한 잔 더!”
카미유는 세 번째 맥주를 주문했다.
“그래서 단서가 없으니까 여기까지 왔고, 내 거동이 수상해 보여서 쫓아왔다는 거지?”
“그렇다. 이번에는 이쪽에서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뭔데? 대답해 줄 수 있는 데까지는 대답해 줄게.”
그렇게 말한 카미유는 술이 들어가자 답답해진 듯 자신이 입고 있는 망토를 내려다보았다.
“술을 먹으니까 더워지네. 혹시나 나를 노리는 놈들이 있을까 봐 이걸로 가리고 다녔는데. 지금은 당신과 같이 있으니까 괜찮겠지?”
카미유는 입고 있던 망토를 벗어 버렸다. 그러자 데스티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카미유는 망토 안쪽에 몸매가 다 드러나는 가죽 재질의 짧은 바지와 상의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좀 시원해지네.”
“무슨 그런……. 그런 풍기 문란한 옷을 입고 다니는가?”
“내 옷차림이 뭐가 어때서?”
“그런 차림은 너무, 너무…….”
“천박하다고?”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군.”
“상관없잖아. 네가 입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눈에 띄는 옷을 입고 다니면서 자객에게 당하질 않기를 바라는 건가?”
“패션은 생명이거든. 물론 진짜 생명도 중요하지만.”
그러는 사이 세 번째 맥주가 그녀의 앞에 놓인다.
“아무튼 이야기해 봐. 궁금한 게 있다면서.”
“우리가 이곳에 온 것도 그렇지만 당신 같은 괴물 사냥꾼이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은 뭔가 사정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맞아. 여행차 이곳에 온 건 아니야. 의뢰를 받고 온 거지.”
“의뢰? 의뢰인이 누구인지 알려줄 수 있나?”
“알려줄 수는 없지. 단지 비밀이라기보다는 의뢰인이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이라서 말이야. 그래서 일일이 설명해 주기가 쉽지 않아서 그런 것뿐이니까. 오해하지는 말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유령선 이야기 들어봤어?”
“유령선. 어릴 적에 시종장이 해주던 무서운 이야기 중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던 기억이 나는군.”
“너희는 모르고 있겠지만, 언제부터인지 유령선이 이곳저곳에서 출몰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