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여기도 고래가 있네.”
“아까 풍향계에도 고래가 있었죠?”
주환뿐만 아니라 이온도 그것을 확인한 모양이었다.
“아마 이 교단의 상징은 이 고래인 모양인데.”
저벅.
두 사람은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바닥의 그림을 관찰하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기둥 뒤에 있는 문 중 어느 문에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누군가 두 사람을 향해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푸른색의 사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의 왼쪽 가슴에는 역시나 금속을 고래 모양으로 깎은 작은 배지가 달려 있었다.
특이한 것은 그가 후드로 머리를 가리고 있었으며, 사제복의 색과 비슷한 푸른색의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상대의 목소리는 남성의 것이었다.
주환과 이온에게 다가온 상대는 두 사람을 훑어보았다.
“이 도시의 분들이 아니신가 보군요.”
“네, 맞습니다.”
주환의 대답에 상대는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했다.
“저는 하마스 교단의 헤스컴이라고 합니다. 제가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을지요?”
“네. 사람을 좀 찾고 있는데요.”
“그러시군요. 저희 교단과 관계된 분이십니까?”
“원래 찾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이 교단의 사람이 그 사람의 행방을 알고 있을 수도 있어서요.”
“찾고 계시다는 사람은?”
“칼데브 마을을 아시나요?”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헤스컴은 뭔가를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도시에 사시는 루퍼트 씨가 그 칼데브 마을 출신이라고 들은 적은 있습니다.”
“루퍼트 씨를 잘 아시는가 보군요.”
“알다마다요. 그분은 저희 교단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해주시는 분 중 한 분이십니다.”
“투자요?”
“투자라고 표현을 하니까 좀 세속적으로 들리는군요. 투자라기보다는 신께 바치는 헌금이지요. 루퍼트 씨는 이곳에서 어업으로는 손으로 꼽히는 분이십니다.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신앙이 있죠. 바다가 워낙에 위험한 곳이니까요.”
그때, 주환은 이온의 표정이 좀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의아함을 느꼈다.
“아, 잠시만요.”
헤스컴에게 잠시 양해를 구한 주환은 이온을 옆쪽으로 데리고 갔다.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어?”
그러자 이온은 헤스컴의 눈치를 보면서 주환에게 작게 속삭였다.
“저 남자, 온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요.”
“무슨 냄새?”
“시장에서 맡았던 그 냄새요. 마치 생선이 썩어 가는 듯한 냄새요.”
이온의 감각은 주환보다 민감했기에 그가 미처 감지하지 못한 냄새를 맡은 모양이었다.
주환은 헤스컴을 힐끗 본 뒤에 이온에게 속삭였다.
“잘 들어. 내가 이곳에서 저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 테니까. 너는 따로 단서를 찾아봐 알겠지?”
“그렇지만 주인님을 혼자 둘 수는…….”
“나는 괜찮으니까.”
주환의 명령에 이온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자리를 떴다.
그러자 주환은 다시 헤스컴에게로 돌아왔다.
“아,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제 일행이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서요.”
“그런가요? 제가 치료를 해드릴 수도 있는데요. 저는 사제이지만 치료사도 겸하고 있거든요.”
“괜찮습니다. 그냥 바람을 좀 쐬면 나아질 것 같다고 하네요.”
“그렇군요. 혹시나 계속 몸이 좋지 않으시다면 저에게 문의를 하셔도 됩니다.”
“친절하시군요. 좀 의외네요.”
“의외라뇨?”
“이런 말씀을 드리면 오해하실 수 있지만, 이곳에 왔을 때 주민분들이 외지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그렇지만 이곳에 와보니 제가 착각을 한 것 같기도 하고요.”
주환의 말에 헤스컴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뭐,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어느 곳이나 외지인들을 배척하는 분위기는 존재하니까요. 특히 요즘은 어획량이 많이 줄어서 먹고 살기가 힘들어진 면이 있어서요. 그렇기에 다들 조금은 마음이 각박해진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군요.”
“저희 하마스 교단은 외지인분들도 언제나 환영입니다.”
헤스컴은 악수를 건네듯 손을 내밀었다.
주환은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는 양손에 다 장갑을 끼고 있었다.
주환은 손을 내밀어서 헤스컴의 손을 잡았다.
물컹.
순간, 주환은 손안에서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악수를 하고 있는 주환의 손안에서 느껴지는 것은 인간의 손보다 더 부드러운 무언가를 잡고 있는 것 같다는 감각이었다.
헤스컴과 악수를 한 주환은 다시 자신의 목적으로 돌아갔다.
“아무튼 칼데브 마을에서 루퍼트 씨에게 전령을 보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 전령을 통해 루퍼트 씨가 칼데브 마을로 돌아왔으면 한다는 요청을 전달하려고 했었죠.”
“그랬군요. 루퍼트 씨에게 손님이 찾아오신 적이 있다는 것은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확한 일을 모르고 있었고요.”
“전령은 루퍼트 씨에게 용건을 전달했지만, 루퍼트 씨는 그 용건을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전령이 실종되어 버렸습니다.”
“그럼 찾고 계시다는 분이.”
“네. 그 실종된 전령입니다.”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루퍼트 씨에게 손님이 찾아오신 건 들어서 알고 있지만, 그 후에 그분이 어떻게 되셨는지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저희 교단에서 그 전령에 대한 행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그 전령의 실종에 대한 목격자를 찾고 있었는데 그 전령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하마스 교단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누구죠?”
“부두 근처에 돌아다니는 남자인데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라고 부르더군요.”
“미치광이.”
헤스컴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아마 길버트를 말씀하시나 보군요.”
“길버트요? 그럼 그 사람은 하마스 교단 사람이 확실한 겁니까?”
“네, 맞습니다. 아까 치료사에 대해서 말씀드린 적이 있죠?”
“네.”
“길버트는 저희 교단 소속의 치료사 중 한 명입니다. 아니. 이었다고 말씀드려야겠네요.”
“어째서 그런 거죠?”
“당연한 일이죠. 정신이 나가 버렸기 때문에 치료사의 역할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겁니까?”
“저희도 알 수가 없습니다. 길버트는 최근까지 루퍼트 씨의 따님인 사라 아가씨의 치료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주환은 헤스컴의 입에서 루퍼트와 사라의 이름이 나오자 흩어져 있던 단서가 조금씩 이어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미치기 직전까지는 계속 치료를 담당했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 전에 치료를 그만두었죠.”
“어째서요?”
“길버트는 그다지 실력 있는 치료사가 아니었습니다. 실력이 없다기보다는 교단의 지침을 잘 따르지 않는 경향이 있었죠. 처음에는 그의 방식이 성과가 있었지만, 나중에 별 차도가 없자 길버트는 사라 아가씨의 치료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후에 정신이 나가 버리면서 치료사뿐만이 아니라 교단에서도 이탈해 버렸죠.”
“지금 길버트 씨도 실종 상태입니다.”
“안타까운 일이군요. 항상 부두 근처를 헤매고 다닌 친구니 실수로 물에 빠졌을지도 모를 일이죠.”
헤스컴의 목소리에는 그다지 안타까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전령분을 찾고 계신다면 당신은 칼데브 마을 쪽 사람인 겁니까?”
“네. 지금은 제가 칼데브 마을의 영주 대행을 맡고 있습니다. 실종된 전령을 찾아서 마을로 돌려보내는 게 제 임무고요.”
“그럼 이 도시를 수색하실 생각이신가 보군요?”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밖에는 없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가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저는 이곳에 정보를 얻으려고 왔습니다. 그렇지만 알고 계신 게 없다면 지금으로서는 별다른 것을 부탁드릴 수가 없겠네요. 그렇지만 이후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도움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하군요.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죠. 가시기 전에 저희 교단을 좀 구경시켜 드리고 싶은데요.”
헤스컴의 권유에 주환은 그의 너머로 보이는 교단의 문들을 바라보았다.
헤스컴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친절했지만, 주환은 지금 그를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나중에. 나중에 한번 구경을 오도록 하죠. 지금은 제 동료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주환이 그렇게 거절하자 헤스컴은 교단 건물의 문 쪽에 시선을 두었다.
“아아, 그랬죠. 동료가 기다리고 계셨죠.”
헤스컴의 목소리는 조금 바뀌어 있었다.
주환의 귀에는 그의 목소리가 한층 음울하면서도 음흉하게 들렸다.
“여러분은 어디서 묵으시나요?”
“루퍼트 씨의 댁에서 신세를 질 것 같습니다. 왜 그러시죠?”
주환의 물음에 헤스컴은 뒷짐을 지면서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살펴 가시길.”
* * *
주환의 명령에 따라서 건물의 바깥으로 나온 이온은 곧장 그 주변을 둘러보았다.
겉보기에는 그다지 문제가 없는 건물이었다.
이온은 자신이 과민 반응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지만 헤스컴이라는 자의 몸에서 풍겨 오던 악취는 분명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바깥에서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곳이 없나?’
이온은 건물을 빙 돌면서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곳을 찾았다.
그녀로서는 교단 사무소의 안으로 들어가서 보았던 문들의 뒤편이 궁금했던 것이다.
건물의 뒤편으로 간 이온은 건물의 위쪽에 스테인드글라스가 달린 것을 발견했다.
이온은 곧장 분사기를 개방하고는 조심스럽게 몸을 띄웠다.
분사기를 너무 강하게 발동시키면 소음이 생길 수가 있기에 이온은 저출력으로 서서히 위로 올라갔다.
스테인드글라스가 달린 곳까지 올라간 이온은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렇지만 스테인드글라스를 이루고 있는 유리 조각들은 대부분 색이 들어간 불투명 유리였다.
포기하려던 이온은 작은 투명유리가 달린 곳을 발견하고는 그곳에 한쪽 눈을 가져다 댔다.
안쪽은 어두웠지만, 이온은 내부가 어떤 모습인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창문은 넓은 방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 방 안에는 여러 명이 같이 앉을 수 있는 기다란 의자들이 가득했다.
특이한 점은 보통 그런 의자들은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하도록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방 안의 의자들은 마치 원을 그리듯 방의 가운데를 볼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온은 그 방의 한가운데에 큰 구멍이 뚫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째서 방 안에 저런 구멍이 있는 거지?’
그런데 그 순간, 그 구멍의 옆쪽에서 바닥과 같은 재질로 된 돌 덮개가 저절로 움직이더니 그 구멍의 위를 완전히 덮어 버렸다.
돌 덮개와 구멍의 크기가 완전히 일치했기에 구멍이 있던 바닥은 이젠 멀쩡한 바닥으로 보일 뿐이었다.
샤삭.
이온은 아래쪽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에 황급히 밑으로 내려왔다.
그녀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그녀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