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프란시스는 사라를 에스코트하듯이 살짝 부축하면서 루퍼트의 방으로 이끌고 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데스티나는 주환에게 속삭였다.
“뭔가 사람이 바뀐 것 같군. 그때에는 상당히 비열한 인간이었다고 기억하는데.”
“기억이 없어지면 성격도 바뀌는 것일지도 모르지. 아니면 아직 본성을 드러내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저 프란시스란 사람은 제가 오르페우스호에서 보았던 가스파르란 인물과 완전히 동일인물인 건 틀림이 없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정말로 저희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온은 괴물로 변한 가스파르를 다른 차원으로 날려 버렸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중간에 가동이 멈추어 버렸기 때문에 기억이 불완전하긴 했지만, 다른 이들의 목격담을 통해서 자신의 시도가 성공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저자가 연기를 하는 거라면 분명 어느 순간에는 그것이 드러날 거야. 그러니 방심하고 있을 수는 없겠지.”
주환은 두 사람에게 그렇게 주의를 시켰다.
* * *
프란시스에게 안내를 받은 세 사람은 이윽고 루퍼트의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프란시스가 노크하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게.”
마치 가래가 잔뜩 낀 것 같은 탁한 목소리였다.
문이 열리고 먼저 안에 들어간 프란시스는 칼데브 마을에서 사람이 왔음을 알렸다.
이윽고 루퍼트의 허가가 떨어지자 프란시스는 세 사람을 안쪽으로 이끌었다.
세 사람이 루퍼트의 방으로 줄줄이 들어가자 프란시스는 마지막에 들어온 사라를 부축하고는 방의 한쪽에 놓여 있는 의자에 그녀를 앉혔다.
방으로 들어간 주환 일행은 방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루퍼트와 마주했다.
루퍼트는 대머리에 비대한 체구를 가진 중년의 남성이었는데, 그는 갈레오스의 동생임에도 갈레오스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이는 외모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피부 역시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창백했다.
프란시스가 루퍼트에게 그들을 소개하자 루퍼트는 주환 일행을 둘러보았다.
“자네들이 올 거라고 프란시스가 미리 언질을 주었었지. 그럼 자네가 형님의 뒤를 이은 사람인가?”
루퍼트의 물음에 주환은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단지 잠시 영주 대행을 하고 있을 뿐이죠. 일이 마무리되면 바로 그만둘 생각입니다.”
“혹시나 나에게 칼데브의 영주직을 맡아달라고 부탁하러 온 거라면 헛수고일세. 나는 이 마을 떠날 생각이 없으니까.”
“그것에 대해서는 이미 프란시스 씨에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와주시면 좋겠지만, 그것을 억지로 권할 수는 없는 일이죠. 그렇지만 저희가 여기까지 찾아온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말해보게.”
“첫 번째로 갈레오스 님의 유품을 전달해 드리려고 왔습니다.”
“유품?”
이온은 들고 있던 하얀색의 상자를 가져와 루퍼트의 앞에 내려놓았다.
“이게 형님이 남기신 유품이라는 건가?”
“예. 갈레오스 님의 집 지하실에서 발견된 물건입니다. 갈레오스 님의 재산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나야 평생을 먹고 살아도 남을 만큼의 재산이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그것들을 포기한 것은 조카 놈이 벌인 끔찍한 일에 대한 작은 속죄이기도 하네.”
“그 일은 원하시는 대로 처리했습니다. 이건 처리가 끝난 이후에 발견되었는데 칼데브 마을에서는 이것을 루퍼트 씨에게 양도하길 원하고 있더군요.”
“그렇군. 그럼 이것은 내 나름대로 처리를 하도록 하지. 그럼 두 번째 이유는 뭔가?”
“칼데브 마을에서 이곳으로 보낸 전령이 실종되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
“그 전령을 만나셨지요?”
“그랬지. 그에게 내 의견을 확실하게 전달했네. 그렇지만 프란시스가 그 전령이 사라져 버렸다고 하더군. 그래서 프란시스를 대신 보냈던 걸세.”
“저희는 그 전령을 찾으려고 왔습니다.”
“그 일 때문에 영주 대행이 직접 온다는 말인가?”
“그 전령을 마지막에 목격한 사람의 말에 따르면 그 전령은 바다의 괴물에게 끌려갔다고 하더군요.”
“나도 프란시스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지. 그렇지만 그 목격자는 미치광이라고 하더군. 미치광이의 말을 얼마나 믿을 수가 있겠나? 나도 그를 알고 있지만, 그는 허황한 거짓말들을 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서 빌어먹고 사는 인물이었네.”
“그럼 루퍼트 씨는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시죠?”
“우연이 겹친 일일지도 모르지. 프란시스는 그가 이곳에서 실종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는 모종의 이유로 예정보다 빨리 도빌 워터를 떠났고 그러다가 좀비에게 습격당했을지도 몰라.”
“아무리 급해도 짐을 이곳에 두고 떠났단 말입니까?”
주환의 물음에 루퍼트는 입을 다물었다.
주환 일행은 루퍼트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자네들이 그 실종된 전령을 찾고 싶다면 마음대로 하게. 딱히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없겠지만, 최소한 자네들은 손님이니 박대하지는 않도록 하지.”
루퍼트는 프란시스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손님방을 내어 주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루퍼트는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주환은 루퍼트를 더 압박해 보고 싶었지만,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이후에 협조를 얻을 수 없을 수도 있었기에 지금은 한 발짝 물러나기로 했다.
주환 일행이 프란시스를 따라서 루퍼트의 방을 나섰지만 사라는 여전히 루퍼트의 방에 남아 있었다. 주환 일행이 나오자 프란시스는 그들을 각자 묵을 수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저를 따라오시죠.”
이윽고 주환 일행은 방을 하나씩 배정받을 수 있었으며 그들은 자신의 방에 짐을 풀고는 다시 복도로 나왔다.
프란시스는 복도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령분의 짐은 어디에 있죠?”
주환이 묻자 프란시스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루퍼트 님이 처분하신 모양입니다.”
“남의 짐을 마음대로 처분하셨단 말입니까?”
주환은 점점 루퍼트의 행동이 수상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어떡하실 생각이십니까?”
프란시스의 물음에 데스티나는 주환을 보면서 말했다.
“우선 그 전령이 바다 괴물에게 끌려갔다면 바다나 항구 쪽을 조사해 보는 게 좋을 듯하다.”
“내 생각도 그래. 정말로 전령이 그곳에서 사라졌다면 그곳에 무언가 단서가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그곳까지 제가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출발하실 건가요?”
“그래야죠. 어두워지면 단서를 찾아내기 힘들 테니까.”
* * *
주환 일행은 루퍼트의 저택을 나선 뒤 프란시스의 안내를 받아서 도빌 워터의 항구로 나갔다.
항구에는 어업으로 유명한 도빌 워터답게 여러 대의 배들이 들어오거나 나갈 수 있도록 많은 수의 부두들이 항구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항구에는 돌아다니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정박해 있는 배들을 보면서 데스티나는 프란시스에게 물었다.
“날이 저물려면 시간이 꽤 남았는데도 배들이 항구에 많이 남아 있군.”
“지금은 물고기들이 잘 잡히지 않기 때문에 배들도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작은 배들은 가끔 나가서 조금씩이라도 잡아 오기는 하지만요.”
프란시스의 말대로 그들은 소형 선박이 드나드는 물양장에서만 작은 배들이 드나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째서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 건가요?”
이온이 그렇게 물었다.
“그건 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까지도 도빌 워터는 대단히 어획량이 풍부한 곳이었다고 하더군요. 특히 전쟁이 끝난 뒤의 도빌 워터에서는 기록적인 어획량을 자랑했다고 하죠. 루퍼트 씨가 큰 재산을 모으실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죠. 그런데 근래부터 물고기가 갑자기 잡히지 않게 되었답니다. 어부들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죠.”
항구에 도착한 일행은 잠시 그곳을 둘러보았지만, 수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주환은 프란시스에게 그 미치광이에 대해서 물었다.
“그 미치광이가 무슨 말을 했다고 하셨죠?”
“그가 하는 말은 대부분 알아들을 수가 없었는데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은 ‘타지 손님을 바다괴물이 끌고 갔다’ 이 한마디뿐이었습니다.”
프란시스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부두 너머의 물결치는 바다 쪽으로 향했다.
“그럼 한번 바다로 가보도록 하죠. 거기에서는 뭔가 발견될 수도 있으니까.”
주환의 말에 프란시스는 다시 그들을 이끌고 걸음을 옮겼다. 부둣가를 지나 어느 정도 더 이동을 하자 하얀 모래가 깔린 해변이 그들의 앞에 펼쳐졌다.
주환 일행은 푹신푹신한 백사장의 모래를 밟으면서 밀려오는 바다 쪽으로 다가갔다.
“주인님!”
바다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던 이온이 놀라면서 주환을 바라보았다.
“바다가 검은색이에요!”
이온의 말대로였다. 주환은 자신의 발끝까지 밀려오는 바닷물을 내려다보면서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마치 먹물을 가득 들이부은 듯한 검은 색의 바다.
주환 일행이 멀리서 보았을 때는 바다의 색이 그토록 검은지 깨닫지 못했지만 지금 그들의 눈앞에 있는 바다의 색은 밤바다와 그리 다를 것이 없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로 오염된 바다라면 물고기들이 다 도망갔다고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겠군.”
그것이 데스티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온은 쭈그려 앉아서 밀려오는 바다에 손을 집어넣었다.
“위험해.”
주환이 말리려고 했지만, 이온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닷물을 조금 떴다가 한두 방울 맛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주환은 기겁을 했다.
“위험하게 뭐 하는 거야!”
맛을 본 이온의 표정이 변했다.
“이건.”
“뭔가 있어?”
“짜네요.”
“바닷물이니까 당연하지.”
“오르페우스호에 있었던 정밀 기구들 정도는 아니지만, 저도 뭔갈 입에 넣으면 나름 성분 분석을 할 수가 있어요. 그렇지만 지금이 바닷물은 제가 알던 바닷물과 그다지 다를 건 없어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미량 섞여 있는 느낌인데 정확하게는 알 수가 없네요.”
주환과 이온이 바닷물의 성분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동안 계속해서 바다를 관찰하고 있던 데스티나는 주환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만약 그 전령과 미치광이가 바다로 끌려갔다고 한다면.”
“시체가 떠내려오지 않는 이상,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
“프란시스. 듣자 하니 당신은 바닷가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던데.”
데스티나의 물음에 프란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발견되었을 때 저는 기절한 상태였으니 정확히 어디서 발견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이 해변부근이 아닐까 싶군요.”
“사라 아가씨가 구해 주셨다고 했었죠?”
“그렇습니다.”
“제 판단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라 아가씨는 몸이 안 좋으신 것 같으시던데.”
“맞습니다. 어릴 적부터 지병이 있으셨죠. 원래는 방 밖으로 나가시는 것도 힘드실 정도였다고 하더군요. 보통 때는 휠체어를 타시니까요. 기분 전환을 위해 시종장님의 도움으로 이곳까지 나오셨다가 저를 발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프란시스의 말에 주환은 기억을 더듬었다.
‘휠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