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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145화 (145/182)

145화

데스티나의 허락에 루카는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면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데스티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잠을 청하지 못하던 데스티나는 어느 순간, 루카의 어깨가 들썩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데스티나는 손을 들어서 그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다.

데스티나가 느끼기에 루카는 분명 그녀의 품속에서 울고 있었다.

루카가 흘리고 있는 눈물이 데스티나의 앞섶을 적셨다.

“아빠…….”

루카는 작게 흐느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데스티나는 루카의 몸을 더 강하게 끌어안아 주었다.

그러면서 데스티나는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황제가 도망갔음에도 끝까지 수도에 남아 사람들을 구하고 좀비와 괴물들의 손에 희생되셨던 아버지.

그러한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자 데스티나는 정녕 자신이 옳은 일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났다.

‘데미안의 말 대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을 옳은 일이었던 것인가?’

지금 그녀의 물음에 대해 대답해 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그렇지만 황제를 만나야겠다는 그녀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데스티나 역시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웠지만, 아버지가 생전에 남기신 말씀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사로 태어난 자는 죽을 때까지도 기사다. 검을 잘 다룬다고 해서 기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절대로 꺾이지 않는 강철 같은 충성심을 품어야 진정한 기사가 되는 것이다.]

황제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고 새로운 왕조를 만들겠다는 데미안의 결심을 보면서 데스티나는 아버지의 말이 옳았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데스티나는 생각을 거듭하다가 데미안을 불충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음을 깨달았다.

데미안 역시도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충성심이 있었다.

단지 그 충성심의 방향이 나라의 황제가 아닌 데스티나 개인에게 쏠려 있었던 것일 뿐이었다.

데미안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데스티나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데스티나로서는 그의 뜻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데미안의 충성심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린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데스티나는 자신의 품속에서 눈물을 짓고 있는 루카를 다독이면서 반드시 모든 일을 바르게 돌려놓을 것을 다짐하였다.

* * *

데스티나와 루카가 움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즈음.

주환은 집무실에서 이온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선 이것부터 받으세요.”

이온은 자신이 챙겨온 짐을 주환에게 내밀었다.

“저 짐은 뭐야?”

“이브 씨가 주인님 가져다드리래요.”

“이브가?”

주환은 집무실의 책상에 가방을 올린 뒤 안을 확인했다.

우선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것은 바로 그 안에 들어 있던 쪽지 한 장이었다.

주환은 그것을 들어 읽어 보았다.

[위험한 적을 만나셨다면 이미 무기들을 소진하셨을 것 같아 보충할 수 있도록 보내드립니다.]

그 쪽지는 이브가 쓴 것이었다.

쪽지를 읽은 주환은 가방을 뒤집어서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을 탁자로 꺼냈다.

그 안에 있는 것들은 이번에 주환이 안토니오와 싸우면서 대부분 소비해 버렸던 물건들이었다.

여분의 비살상탄과 속성탄들.

주환이 가장 놀랐던 것은 그가 입고 다녔던 개량형 방탄조끼와 흡사한 조끼가 그 안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이브는 그가 가지고 있는 무기를 고쳐 주는 데 그쳤지만, 지금은 그와 비슷한 수준의 복제품을 만들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긴. 미리 눈치챌 수도 있었는데. 방탄조끼에 그런 폭발 장치를 했을 때 말이야.’

복제품은 주환이 쓰던 것과는 좀 다른 면이 있었지만, 기본적인 성능은 거의 같은 물건이었다.

그리고 가방에는 새로운 물건도 들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유탄 발사기였다.

주환이 이브에게 유탄 발사기에 관한 이야기를 지나가듯이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에 관심을 둔 이브가 자신이 가진 기술을 사용해서 나름대로 시제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 유탄 발사기는 손잡이가 달려서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돌격 소총의 총열 밑부분에 장착하여 돌격 소총을 발사하면서도 동시에 유탄까지 발사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보조 장치에 가까웠다.

이브의 기술력과 솜씨에 감탄한 주환은 곧장 한쪽에 놓여 있던 돌격 소총을 들고 와서 그 아래쪽에 유탄 발사기를 장착해 보았다.

연결 부분이 빈틈없이 딱 맞았다.

그리고 언제든지 사용해 볼 수 있도록 유탄들 역시 다른 탄들과 같이 들어 있었다.

주환으로서는 정말 든든한 보급품이 아닐 수 없었다.

주환은 이브에게 고맙다는 연락을 취하려고 했지만, 손거울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기억했다.

이브는 더 이상 일회용 손거울을 만들지 않았다.

그녀는 마법사뿐만이 아니라 언제든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텔레포트 장치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녀의 연구가 성공한다면 지역의 이동에서 일대 혁명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네.”

주환이 대답하자 문이 열리면서 하인이 들어왔다.

낮에 주환에게 결재할 것들을 가져다주면서 비서의 역할까지 담당하던 바로 그 하인이었다.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요?”

“영주 대행님께 보고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하인은 그렇게 말하며 무언가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들고 있는 것은 손잡이가 달린 길쭉한 하얀색의 금속 상자였는데, 꽤나 무게가 나가는지 조금 낑낑거리면서 안쪽으로 가져왔다.

“제가 받을게요.”

이온은 바로 하인에게 다가와 그에게서 상자를 건네받았다.

그는 힘겹게 옮기던 상자이지만 이온은 한 손으로 가볍게 그 상자를 다룰 수 있었다.

그것을 본 주환은 그것이 아티팩트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어째서 아티팩트가?’

“이걸 어디에서 나셨죠?”

“갈레오스 영주님의 집 지하실에 감춰져 있던 물건입니다.”

“지하실에요?”

“예. 갈레오스 영주님의 집터에서 새로운 공사에 착수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물건이랍니다.”

그 아티팩트는 성인의 키에 버금갈 만큼 길이가 길었지만, 두께는 상당히 얇았기에 마치 커다란 검을 수납하는 수납장처럼 보이기도 했다.

특이한 것은 상자의 가운데에 들 수 있는 손잡이는 달렸지만, 그것을 열 수 있는 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건 열 수가 있나요?”

“생긴 것이 상자 같지만 여는 방법을 알 수가 없는 물건입니다.”

주환이 아무리 찾아봐도 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세간에는 이런 것들을 아티팩트라고 부른다지요?”

“알고 계시는군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듣기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저희가 보기에 영주 대행님은 아티팩트에 대해서 잘 아시는 것 같더군요.”

주환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 물건들이 아티팩트급이었으니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여기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런 물건은 저희 같은 무지렁이들에게는 불길한 물건일 뿐입니다. 특히나 갈레오스 님께서 그런 일을 당하셨으니 이것을 발견한 사람들이 불안에 떠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렇다면.”

“이번에 영주 대행님이 사라진 전령분을 찾아서 루퍼트 님의 댁을 직접 방문하시는 걸로 압니다. 그렇다면 청컨대 이 물건을 그 루퍼트 님께 가져다주셨으면 합니다.”

주환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갈레오스와 로렌조, 그리고 안토니오까지 죽은 이후, 칼데브 마을 측에서는 루퍼트에게 다시 마을로 돌아와 그 뒤를 이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지만 루퍼트는 그것을 거절하였으며 동시에 갈레오스의 동생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포기했다.

그 사실이 마을에 퍼지자 갈레오스가 가지고 있던 재산들은 안토니오가 죽인 사람들의 피해를 보상하기 위하여 쓰이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것이 오늘 주환이 데스티나와 이온이 오기 전까지 처리하던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 아티팩트만큼은 마을에서도 그 처리가 난감했던 것이다.

하인이 말한 대로 아티팩트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 아티팩트가 대단한 보물로 받아들여질 수도, 저주받은 흉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다.

갈레오스와 두 아들이 모두 죽었으니 사람들에게 이 물건은 흉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것은 갈레오스 님의 유품으로 볼 수 있으니 루퍼트 님도 이것을 받아들이실 겁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흉물을 처리해 버릴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주환이 그것을 받아들이자 하인은 인사를 하면서 그의 방을 나섰다.

주환은 그 상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그것이 갈레오스가 늑대 인간 사건을 해결하면 그들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바로 그 가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정말로 그 물건이 맞는다면 주환과 루카에게 그 아티팩트에 대한 소유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환은 그것을 루퍼트에게 전달할 마음을 먹었다.

갈레오스가 건 조건은 문제의 해결이었지만 주환과 루카는 갈레오스도 로렌조도 구하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주긴 했으나 결국, 영주의 가족들은 전부 다 죽고 만 것이다.

‘아마 루카도 이걸 보면 같은 생각을 하겠지. 이번 일로 산에 틀어박힐 정도니까 말이야.’

주환의 얼굴이 우울해지자 이온은 의아한 얼굴로 그를 향해 물었다.

“주인님, 왜 그러세요?”

그녀의 물음에 주환은 억지로 웃음을 띠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신경 쓰지 마. 별일 아니니까. 그 아티팩트는 잘 챙겨 둬. 유품이니 도빌 워터에 잘 가져다드려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잘 챙길게요.”

이온은 그렇게 말하며 마치 군인처럼 경례했다.

* * *

주환과 루카가 처음 칼데브 마을을 방문했을 때 타고 왔던 말은 여전히 마구간에서 얌전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환은 도빌 워터로 향하기 위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말 두 필을 더 빌렸다.

말 세 마리는 주환, 데스티나, 이온이 타기 위한 것이었고, 나머지 한 마리는 그들의 짐을 싣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하얀색의 상자 역시 그 말의 등에 실렸다.

로렌조의 목숨을 빼앗았던 은 말뚝 발사기와 은 말뚝들은 데스티나의 손에 들어갔다.

루카는 그 무기들을 데스티나에게 맡기며 그것이 아버지의 유품이지만 데스티나가 잘 사용해 주길 바란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모든 준비를 마친 세 사람은 말을 타고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칼데브 마을을 빠져나갔다.

그들은 지도를 따라 목적지인 도빌 워터를 향해 나아갔다.

세 사람이 도빌 워터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그들은 사방을 감싸고 있는 짜디짠 바닷물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사방은 어두웠다.

그들이 밤에 도빌 워터에 다다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시간대로는 한낮에 가까웠다.

비가 올 모양인지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사방을 뒤덮고 있는 하얀 갈대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서 말을 몰던 세 사람은 비로소 도빌 워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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