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모르겠어. 내가 원한을 산 일이 있다면 비를 쫓는 자들 정도일 텐데.”
그들은 아르테어가 일을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자네가 만났다는 그 프란시스는 정말 가스파르가 맞는 건가?”
“만약 그가 아니라 쌍둥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닮을 수는 없어. 머리 스타일이나 옷차림까지 완벽하게 똑같았으니까.”
주환의 대답에 데스티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가 자네를 모른 척하긴 했지만 사실 그것이 함정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만 내가 봤을 때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 그리고 우리한테 해를 끼치려면 다른 방법도 많을 테고.”
“그럼 주인님은 그 도빌 워터라는 곳으로 가실 건가요?”
“가야지. 어찌 되었건 지금은 이곳 영주 대리이니까.”
“저도 당연히 동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가는 곳까지 제가 주인님을 편안히 모실게요.”
기쁘게 외치는 이온을 보면서 데스티나 역시 입을 열었다.
“나도 동행하도록 하겠네. 그나저나.”
데스티나는 루카를 떠올렸다.
“루카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루카도 당연히 같이 데려가고 싶지만, 워낙 고집이 세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데스티나는 산속으로 들어가 버린 루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실력이 산속에서 썩어 가는 것도 원치 않았다.
“내가 찾아가서 설득을 해보지.”
데스티나는 주환에게 그렇게 제안했다.
“그럼 우리도 같이 갈게.”
주환이 그렇게 말했지만 데스티나는 그것을 거절했다.
“아니. 나 혼자 다녀오도록 하겠네.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혼자가 나을 수도 있네. 주환 자네는 떠날 수 있는 채비를 해두게. 언제든지 이곳을 떠날 수 있도록.”
데스티나의 고집에 주환은 하는 수 없이 그녀에게 루카가 사는 움집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지금 출발하도록 하지.”
데스티나가 바로 떠나려고 하자 주환은 그녀를 막았다.
“곧 날이 저물기 시작할 거야. 어두워지는데 산을 오르려고?”
“지금 바로 출발하면 날이 완전히 저물기 전에 도착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출발하려는 거야.”
루카가 있는 움집의 위치를 완전히 파악한 데스티나는 주환과 이온을 뒤로하고 루카를 설득하기 위해서 저택을 나섰다.
* * *
데스티나가 산을 오르고 있을 때쯤 날은 점점 저물어 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빛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기에 데스티나는 산을 올라 비로소 주환이 말했던 그 움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움집 안에 인기척은 없었다.
데스티나는 움집의 입구를 가리고 있는 거적을 들어 올려 안을 들여다보았지만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설마 어디론가 떠나 버린 것은 아니겠지?’
데스티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녀는 누군가 근처에서 몸을 날리는 소리를 들었다.
데스티나는 움집에서 잠시 물러났다.
몸을 날린 장본인은 어느 새인지 움집의 지붕 위에 올라서 있었다.
이미 주변에는 햇빛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달빛이 대신하고 있었다.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달.
그 달빛은 공기를 가르면서 지상으로 내려와 지붕에 있는 이의 몸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은색의 빛.
반쯤 늑대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해 있는 루카가 지붕 위에 앉아 데스티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루카는 옷을 입고 있지 않았지만 온몸에 나 있는 은색의 털들이 몸을 가려 주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는 옷을 입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데스티나와 루카의 눈이 마주치자 루카의 커다란 은색 꼬리가 살랑거렸다.
루카는 입에 물고 있던 토끼를 놓으면서 입을 열었다.
“데스티나.”
루카의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가득했다.
“루카.”
그리고 그것은 데스티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 * *
“누추한 곳인지만 나름대로 청소는 자주 하고 있으니까 앉고 싶은 곳에 앉아.”
루카의 권유에 데스티나는 흙을 쌓아서 만든 침대 위에 앉았다.
데스티나는 루카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물었다.
“인간의 모습보다 그 모습이 더 편한 건가?”
데스티나의 모습에 루카는 피식 웃었다.
“어떤 모습을 해도 다 거기서 거기야. 나도 내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 인간인지 괴물인지.”
루카의 목소리에서 자조적인 느낌이 배어 나왔다.
“루카. 너는 괴물이 아니다. 괴물은 단지 겉모습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데스티나는 오르페우스호에서 겪었던 일을 다시 되새겼다.
“겉모습은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괴물과 다를 바 없이 행동하는 이들도 있으니까 말이다.”
“주환에게서 내 이야기 들었지?”
데스티나는 산에 오르기 전 루카의 과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온 참이었다.
“그랬지.”
“그럼 너도 알 거 아니야. 나는 몸도 마음도 다 괴물이 되어 버린걸.”
“루카.”
루카는 자신이 잡아 온 토끼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에는 길게 손톱이 나와 있었기에 전처럼 나이프를 가지고 손질할 필요가 없었다.
“밥은 먹었어?”
“아니. 아직 먹지 못했다.”
“밥이라도 먹고 오지 그랬어. 여기서 줄 수 있는 거라곤 이런 야생 동물이나 맛없는 풀들밖에 없는데. 주환이 영주 대행을 하고 있으니 괜찮은 식사를 챙겨 줄 수 있을 텐데.”
거기까지 말한 루카는 갑자기 표정을 바꾸더니 데스티나에게 다가와 그녀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데스티나는 루카의 머리칼과 몸의 털이 피부에 닿았기에 간지러움을 느꼈지만, 굳이 루카를 말리지 않았다.
루카는 특히 데스티나의 오른손의 냄새를 중점적으로 맡았다.
“이 팔.”
“아르테어가 다시 만들어 준 것이다. 파루시아교의 비법을 사용해서 다시 재생을 시킨 모양이던데.”
진지하게 냄새를 맡던 루카는 고개를 들어 데스티나를 바라보았다.
“데스티나. 지금 너한테서 불길한 냄새가 나.”
“불길한 냄새?”
“지금은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어.”
데스티나는 루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데스티나에게서 물러선 루카는 손질하던 토끼를 다시 잡고 손질하던 것을 이어 나갔다.
“루카. 지금 네가 겪고 있는 그 혼란을 이해할 수 있다. 네가 살던 로덴 마을에서 벌어진 비극에 네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
루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것은 네가 스스로 행한 일이 아니다. 루카 너는 너의 정신이 아니었고 늑대인간으로서의 본능만 남은 상태였겠지.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일이니 그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구함으로써 네 죄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지 않을까?”
데스티나의 설득을 들으며 루카는 손질을 끝낸 토끼를 잠시 다른 곳에 걸어 놓았다.
“너희 말이 맞을지도 몰라. 로덴 마을에서 있던 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나는 그 일에 대해서 벌을 받을 일이 없겠지. 내가 입을 닫으면 되고 너희가 그 사실을 숨겨 주면 되니까. 그러면서 세상을 돌아다니며 나름 착한 일을 한답시고 속죄를 하면 끝나는 일이잖아. 그렇지?”
데스티나는 그 말과는 달리 루카가 전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렇지만 이건 스스로의 양심에 대한 문제야. 그런 일을 벌여 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세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
루카는 데스티나를 바라보았다.
“데스티나 너는 기사이니까 더 잘 알고 있을 거 아냐. 기사들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이건 명예에 관련된 일이니까.”
루카가 그렇게까지 말하였기에 데스티나는 더는 설득해 봐야 소용이 없음을 알았다.
“그렇군. 미안하다.”
“뭐가?”
“이렇게까지 찾아와서 설득하는 행위 자체가 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할 것까지야. 데스티나 네가 미안할 것은 없잖아. 아무튼, 밥 안 먹고 왔다니까 나랑 같이 밥이나 먹자. 혼자 있을 때는 간단하게 먹지만 손님이 왔으니 오랜만에 솜씨를 좀 발휘를 해볼게.”
루카는 그렇게 말하며 한쪽에 처박아 두었던 자신의 짐을 꺼내 왔다.
그 안에는 그녀가 전에 만들어 두었던 조미료들과 요리 기구들이 들어 있었다.
* * *
“어때?”
데스티나가 토끼로 만든 스튜를 한 수저 떠서 입에 넣는 것을 보면서 루카는 그렇게 물었다.
“달라진 게 없군.”
“그래?”
“네가 하는 음식은 항상 맛있었으니까.”
보잘것없는 움집에서의 식사였지만 루카가 정성을 다해 만들었으니 그 음식이 데스티나의 입에 맞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루카가 주환의 파티에 합류한 이후 식사 당번은 대부분의 경우 루카였으며, 주환 일행은 루카가 만드는 음식에 항상 만족하고 있었다.
데스티나는 식사를 하면서 루카에게 말했다.
“당분간은 이런 밥을 먹을 수 없겠군.”
데스티나가 굳이 당분간이라는 말을 붙인 것은 언젠가 루카가 다시 파티에 복귀할 것임을 믿는다는 암시였다.
루카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두 사람은 그간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식사가 끝나고도 두 사람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다.
그렇기에 밤이 깊어지고 세상은 깊게 잠이 들었다.
데스티나가 내려갈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루카가 그녀에게 말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갈래?”
“그래도 괜찮은가?”
“너만 괜찮다면 상관없어. 뭐. 제대로 된 창문도 없어서 벌레들이 득시글하지만, 침대는 두 명이 충분히 누울 수 있을 정도는 되거든.”
루카가 사용하는 흙 침대에는 제대로 된 이불도 없어서 말린 풀을 쿠션처럼 깔아 놓을 뿐이었다.
“나는 상관없다. 전쟁 때 야전에서나 우리가 같이 여행을 다니며 노숙할 때는 더 지독한 데서도 잠을 청하곤 하지 않았는가. 그에 비해 이 정도 침대라면 궁궐의 침대와 다를 바가 없지.”
“설마 그 정도까지야.”
루카의 대답에 두 사람은 동시에 웃음 짓고는 잠을 잘 준비를 청했다.
데스티나는 자신의 장비를 벗고는 흙 침대에 누웠다.
말린 풀들이 까슬까슬했지만 잠을 자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루카는 데스티나의 옆에 누웠다.
“춥지 않아?”
루카는 데스티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낮에는 괜찮았지만, 밤이 깊어지는 조금 으슬으슬해지는 것 같군.”
데스티나의 대답에 루카는 자신의 꼬리를 데스티나에게 내밀었다.
“자. 덮어.”
“덮어도 되는 건가?”
“그럼. 나도 잘 때 이 꼬리를 몸에 둘둘 말고 자거든.”
루카의 꼬리는 보통 늑대인간들의 꼬리보다 훨씬 풍성했기에 데스티나로서는 그 꼬리를 자신의 몸에 올렸을 때 이불과 다를 바 없는 푹신함을 느낄 수 있었다.
“실례하도록 하지.”
루카의 권유를 받아들인 데스티나는 루카의 꼬리로 자신의 몸을 덮었다.
그러면서 데스티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따뜻함을 느꼈다.
“따뜻하군.”
“그렇지?”
루카는 배시시 웃더니 갑자기 몸을 끌어당기면서 데스티나를 껴안았다.
“오늘은 이렇게 하고 자도 될까?”
루카는 데스티나에게 부탁했다.
“얼마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