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미치광이라뇨?”
“도빌 워터의 부두 쪽에 항상 돌아다니는 미치광이가 있습니다. 그는 부두에 살면서 낚시꾼들이나 어부들에게 생선을 빌어먹고 삽니다. 그는 항상 헛소리하기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데 저는 그곳을 지나다가 그가 중얼거리고 있는 소리를 들었죠.”
“뭐라고 하던가요?”
“타지의 손님을 바다의 괴물이 데려갔다고요.”
주환은 오싹한 기분이 되었다.
“우연치고는 기가 막힌 우연이었죠. 저는 궁금함에 그에게 다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를 물었지만, 그 미치광이는 더는 대답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먹을 거라도 가져다주면 더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그 길로 루퍼트 님의 저택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챙겨서 곧장 부두로 돌아갔지만, 그 미치광이는 사라진 뒤더군요. 그리고 그 미치광이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프란시스는 양손의 깍지를 끼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도빌 워터는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마을입니다. 제법 큰 도시이지만 타지 사람에게는 대단히 폐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요. 누구도 그 전령에 관해서 이야기하려는 사람이 없기에 제가 나서서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이곳 칼데브 마을까지 온 겁니다.”
“우선 루퍼트 씨는 이곳에 돌아오실 생각이 없으신 거군요?”
“맞습니다. 사실 제 역할은 그러한 사실을 칼데브 마을의 영주 대행분께 전달하는 것으로 끝입니다만.”
“다만?”
프란시스는 진지한 눈빛으로 주환을 바라보았다.
“전령분의 입을 통해서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괴물을 사냥하거나 위험한 일을 해결하는 데에 전문가들이라고 하더군요. 그렇기에 마을 사람들이 그 실력을 믿고 영주 대행을 맡긴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제 개인적으로 부탁을 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이죠?”
“전령이 실종되었으니 칼데브 마을에서 수색을 벌일 것은 자명한 일이겠죠. 그렇지만 전문가인 영주 대행님이 직접 도빌 워터로 오셔서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아봐 주시지 않겠습니까?”
프란시스의 부탁에 주환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전령분이 실종되었는지 말이죠?”
“네. 도빌 워터의 군인들은 그 일에 관심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프란시스 씨가 그 일에 매달리는 이유가 뭐죠?”
“영주 대행님이 보시기에 저는 그저 루퍼트 님의 식객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이번 전령 실종 사건은 루퍼트 님과 관계가 있는 사건일 뿐 저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죠. 제가 이 일에 관심을 두는 것은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그게 뭐죠?”
“저는 사라 님이 위험한 일에 휘말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프란시스의 눈동자에 서려 있는 진지함을 느낀 주환은 우선 자신이 들고 있던 돌격소총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지금 프란시스는 과한 걱정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칼데브 마을에서 보낸 전령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기에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영주 대행인 주환의 결단이 필요했다.
주환은 곧 결단을 내렸다.
“그럼 그 일에 착수하도록 하죠.”
“받아들여 주시는 겁니까?”
“그렇지만 지금 당장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같이 힘을 써주던 동료들이 없으니까요.”
“그 뜻은 알겠습니다만 빨리 움직이시지 않으면 사건의 단서들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최대한 빨리 대책을 마련해 보기로 하죠. 그럼 프란시스 씨는 이제 어떡하실 생각이시죠?”
“영주 대행님을 모시고 같이 도빌 워터로 가는 것이 좋겠지만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시니 저 먼저 도빌 워터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미치광이의 말이긴 하지만 그 말을 들으니 사라 아가씨의 곁을 오래 떠나 있는 것이 영 걸리는군요.”
프란시스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곧장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프란시스는 집무실의 문 쪽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문고리를 잡고 나가려던 프란시스는 고개를 돌려서 주환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제 과거에 대해 뭔가 아시는 게 있으시다면 저에게 꼭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프란시스의 말을 들었을 때 주환은 프란시스가 주환이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음을 이미 눈치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반드시 주환이 일을 해결하러 와주기를 바라는 이유까지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주환을 통해서 자신의 과거를 알아내려는 것이다.
* * *
영주 대행인 주환의 지시 덕분에 칼데브 마을의 경비대원들은 마을 밖 순찰 경비를 더욱더 강화하게 되었다.
안토니오의 손에 의해서 경비대장과 수 명의 경비대원들이 사망했지만, 그들은 절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들의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였다.
마을의 주변에 출몰하는 좀비들의 숫자가 좀 더 늘어났다는 보고가 있었기에 경비대원들은 더 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마을 밖을 돌아다니며 좀비들을 사냥하고 다녔다.
그들이 바깥에 있는 좀비들을 정리해 주어야 마을 사람들이 안심하고 바깥을 왕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주요한 길목을 돌아다니며 수색을 하던 경비대원들은 이윽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좀비들의 무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모두 멈춰.”
경비대원들 중 한 명이 신호를 보내자 모두들 멈추고 다음 신호를 기다렸다.
“석궁을 장전해.”
다음 지시가 떨어지자 경비대원들은 등에 메고 있던 석궁을 꺼낸 다음 그 석궁에 볼트를 장전했다.
나머지가 석궁을 장전하고 있는 동안 좀비들을 관찰하고 있던 경비대원이 놀랐는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어어?”
그가 소리를 내자 석궁을 장전하던 경비대원들은 그를 책망했다.
“조용히 해라. 네 목소리 때문에 좀비들이 이쪽으로 몰려들겠다.”
동료들의 책망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길 좀 봐.”
감시역의 말에 나머지 경비대원들은 석궁을 장전하는 것을 멈추고 좀비들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저쪽에서 사람이 오고 있어.”
그의 말마따나 두 명의 행인이 좀비들이 있는 쪽으로 빠르게 다가가고 있었다.
“저들이 위험하다. 빨리 우리 쪽에서 손을 써줘야 해!”
행인들이 위험에 빠졌다고 생각한 경비대원들의 손이 더욱더 분주해졌다.
그들이 석궁을 완전히 장전하고 일제히 좀비들을 겨누었을 때, 그들은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먼저 행인 중 금발 머리에 평복을 입은 여인이 등에서 롱소드를 뽑더니 앞에서 달려드는 좀비들을 단숨에 베어 버렸다.
그녀가 한 번 휘두르자 2~3마리의 좀비들이 한꺼번에 쓰러져 갔다.
“대단한 솜씨다.”
경비대원들은 석궁을 발사하는 것도 잊어버리고는 그 싸움을 홀린 듯이 지켜보았다.
검을 든 여인이 움직이자 그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붉은 머리의 여인 역시 좀비들을 향해서 달려갔다.
그녀는 앞선 여인과는 다르게 아무것도 들지 않고 있었다.
“뒤에 있는 쪽은 맨손이야.”
경비대원들은 그녀가 좀비들에게서 어떻게 몸을 지킬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좀비들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붉은 머리 여인의 대응법은 단순했다.
그녀는 좀비를 향해서 주먹을 날렸다.
퍽!
그녀가 날릴 주먹이 단숨에 좀비의 얼굴을 관통해 버렸다.
아무리 좀비의 피부가 썩어서 문드러진 상태라지만 그 안에 있는 두개골은 여전히 단단했다.
그것을 주먹 한 방에 박살 내는 괴력은 경비대원들로서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대체 저 두 사람은 뭐지?”
앞에 있던 좀비를 쓰러뜨린 붉은 머리 여인은 다른 좀비를 향해서 돌려차기를 날렸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뒤꿈치에서 날붙이가 튀어나와 좀비의 목을 잘라 버렸다.
그것을 멀리서 보고 있던 경비대원들의 눈에는 그녀가 발길질 한 번으로 좀비의 목과 몸통을 분리해 버린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두 사람이 수 명의 좀비들을 정리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모든 좀비가 쓰러지자 두 사람은 멀찍이서 그들을 관찰하고 있던 경비대원들 쪽으로 다가왔다.
“우리 쪽으로 온다.”
좀비들을 학살하는 무서운 솜씨에 얼이 빠져 있는 경비대원들에게로 도착한 두 사람.
성전 기사단의 전 단장인 데스티나와 안드로이드 이온은 경비대원들을 보면서 각각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실례하겠다.”
두 사람이 인사하자 경비대원들 역시 얼떨결에 인사했다.
그들을 쭉 둘러보던 데스티나는 입을 열었다.
“지금 목적지에 거의 도착한 것 같은데 조금 헤매고 있던 참이었다. 당신들은 혹시 칼데브 마을이 어디인지 아는가?”
* * *
한편 주환은 마을을 경비대와 함께 마을을 돌아다니며 문제가 있는 곳이 있는지 점검을 하는 중이었다.
그때, 주환의 경비대원 중 한 명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주환에게 말했다.
“누군가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그 말에 주환은 연병장을 향해서 걸어오고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
주환은 단번에 그 두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주환은 두 사람을 향해서 달려갔다.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던 데스티나와 이온 역시 주환을 바로 알아보았다.
그리고 비로소 주환이 두 사람의 앞까지 뛰어왔을 때, 데스티나는 점잖이 그를 향해서 인사했다.
“오랜만이로군, 주환. 그간…….”
그때, 그녀의 옆에 있던 이온이 앞쪽으로 뛰어 주환에게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이온은 주환을 껴안았다.
“주인님! 보고 싶었어요!”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데스티나는 눈이 커지면서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그리고 놀란 것은 주환도 마찬가지였다.
주환은 두 사람이 깨어났다는 것에 대한 기쁨, 그리고 갑자기 껴안아 오는 이온의 행동에 대한 당혹스러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자, 잠깐만! 너희들!”
데스티나는 황급히 손을 뻗어서 이온의 뒷덜미를 잡아서 당겼다.
그러자 주환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던 이온이 뒤쪽으로 끌려왔다.
“아앗. 잠깐만요.”
이온은 떨어지기 싫어했지만 데스티나 역시 뭔가 필사적인 면이 있었다.
“그러면 주환이 당황해하잖나!”
“그래도 상관없잖아요.”
엎치락뒤치락 두 사람의 몸싸움은 한참을 길게 이어졌다.
* * *
시간이 지나 비로소 상황이 정리된 뒤.
지금 세 사람은 칼데브 마을의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정말로 다행이야, 데스티나.”
“고맙군.”
주환은 진심으로 데스티나의 귀환을 축하해 주었다.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고 내내 걱정했던 주환이었기에 그는 지금 어느 때보다도 큰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주인님. 저도 칭찬해 주세요.”
이온의 말에 주환은 다른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이온 네가 없었으면 오르페우스호에서의 일은 해결할 수 없었을 거야. 그리고 무사히 다시 돌아와 줘서 고마워.”
주환의 칭찬에 이온은 아이처럼 웃었다.
이윽고 세 사람은 갈레오스의 집이 있던 자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원래 있던 갈레오스의 집은 안토니오의 손에 의해서 무너졌기 때문에 지금은 그 모든 잔해가 사라지고 새로운 건물이 세워지고 있었다.
그곳에서 주환은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두 사람에게 설명해 주었다.
이브의 별장에서 있었던 암살 미수 사건.
칼데브 마을에서 있었던 안토니오와의 싸움.
그리고 가스파르로 추정되는 인물인 프란시스의 방문까지.
데스티나와 이온은 자신들이 잠들어 있는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들으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데스티나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툴레오의 무구가 이번 사건을 일으킨 가장 큰 원흉이었다는 사실을 듣고 씁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데스티나는 툴레오의 무구에 대한 생각을 접고는 주환에게 암살 미수 사건에 대해 물었다.
“누가 주환 자네를 해치려고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