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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142화 (142/182)

142화

분명히 녹색의 비를 온몸에 들이부어 살덩이 괴물로 변신했다가 다른 차원으로 사라져 버렸던 가스파르가 지금 멀쩡한 모습으로 그를 만나러 온 것이다.

가스파르가 살덩이 괴물로 변해서 모두를 위협했다는 사실을 엘레나에게 들은 바가 있는 주환이었다.

‘설마 지난번의 복수를 하러 온 건가?’

주환은 재빨리 허리춤에 손을 대었다.

그곳에는 주환의 권총이 홀스터 안에 수납되어 있었다.

그가 권총의 손잡이를 잡으려고 할 때, 집무실로 들어온 가스파르는 주환을 보면서 물었다.

“당신이 칼데브의 영주 대행입니까?”

그의 말을 들었을 때 주환은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만.’

주환은 가스파르의 눈빛을 잘 살폈다.

아무래도 그를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지금 가스파르는 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어. 대체 무슨 일이지?’

주환은 가스파르의 속셈을 알아보기 위해서 권총의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는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제가 칼데브의 영주 대행입니다. 원래 영주셨던 갈레오스 님은 불행한 사고로 얼마 전에 돌아가셨죠.”

“네. 이곳 영주님의 소식은 전령분을 통해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주환은 가스파르가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가스파르는 주환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환의 책상 앞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앉아도 되겠습니까?”

“앉으시죠.”

주환의 대답에 가스파르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주환 역시 자신의 자리에 앉은 다음 가스파르 몰래 책상의 아래쪽으로 손을 넣었다.

그곳에는 장전된 돌격 소총이 얌전하게 놓여 있었다.

주환은 그 총을 들고는 서서히 방향을 바꿔서 그 총구의 끝이 가스파르를 향하게 했다.

물론, 총은 책상의 밑에 있었으니 그 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가스파르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주환은 등줄기에서 차가운 소름이 내달리는 것을 느꼈다.

주환은 오르페우스 호의 갑판에서 계속해서 증식하는 살덩이 괴물들과 싸운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가스파르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가 되었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가스파르가 본심을 보이면 나는 물론이고 이 마을 사람들 모두가 무사할 수 없겠지.’

주환은 언제든 발사할 수 있도록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제가 여기 찾아온 이유는…….”

“잠깐만요.”

주환은 가스파르의 말을 막았다.

“왜 그러시죠?”

주환은 다시 가스파르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그때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가 입고 있는 복장도 분명 비를 쫓는 자들의 로브.

“먼저 제 쪽에서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말씀하시죠.”

“당신은 비를 쫓는 자들 아닙니까?”

주환은 가스파르에게 단도직입적으로 그렇게 말했다.

사실 주환은 가스파르의 방문 목적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주환은 로즈버드 빌리지의 다락방에서 가스파르가 촌장과 하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가스파르는 이곳의 사람들을 실험체로 끌고 갈 생각인 거야.’

주환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지만, 그가 주환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비를 쫓는 자들이요? 그게 뭡니까?”

“네?”

이번에는 주환이 당황할 차례였다.

“비를 쫓는 자들을 모른다고요?”

“네. 처음 듣는 이름이로군요.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그게 저랑 관련이 있는 겁니까?”

“아니. 그게.”

주환은 말문이 막혔다. 갑작스러운 질문으로 가스파르의 가증스러운 연기를 박살 내주고 싶었지만, 진심인지 아닌지 가스파르는 비를 쫓는 자들에 대해 모르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었다.

들고 있는 총에서 손을 뗄 수는 없었기에 주환은 어색했지만, 턱짓으로 그가 입고 있는 옷을 가리켰다.

“당신이 입고 있는 그 옷. 그 옷이 바로 비를 쫓는 자들이라는 증거이니까요.”

“이 옷 말씀이신가요?”

가스파르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뜻이 있는지는 전혀 몰랐군요.”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당신의 이름이 뭐죠?”

“제 이름은 프란시스입니다.”

‘프란시스?’

“가스파르가 아니고요?”

“아닙니다. 제 이름은 프란시스입니다.”

그렇게 대답하던 가스파르 아니, 프란시스는 무언가를 알겠다는 듯 자신의 턱을 어루만졌다.

“지금 하시는 말씀을 들어 보니 마치 당신은 저를 알고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우선 말씀드리자면 저는 사실 저 자신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뭐라고요?”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저는 과거의 기억을 대부분 잃어버렸죠. 제 본명도 제 과거도 알지 못합니다. 프란시스라는 이름도 다른 사람이 붙여 준 거고요. 이 옷도 그저 제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옷이기에 입고 다니는 것뿐입니다.”

주환은 그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영주님은.”

“정확히는 영주 대행입니다.”

“영주 대행님은 저를 알고 계십니까?”

프란시스의 물음에 주환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최대한 머리를 굴려야 했다.

주환은 자신이 가진 모든 카드를 내보이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뇨. 인제 보니 제가 착각을 한 것 같네요. 제가 예전에 들었던 사람의 인상착의랑 좀 비슷해서요.”

“영주님, 아니 영주 대행님이 들었다는 그 사람이 저의 과거일 확률이 있을까요?”

“그거야 모르죠.”

주환은 황급히 화제를 바꾸었다.

“그러고 보니 저를 찾아온 이유가 있으실 텐데.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좀 들어 보도록 할까요?”

주환의 말에 프란시스는 알겠다는 듯 몸가짐을 바로 했다.

“제가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는 칼데브 마을에서 보내 주신 소식에 대해 답변을 해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한마디로 전령 대행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그런데 저희 쪽에서 보낸 전령은 지금 어디에 계신 거죠?”

주환의 물음에 프란시스는 곤란하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씀드리기가 좀 곤란합니다.”

“어째서요?”

“그 전령분은 실종되었으니까요.”

“예?”

“말 그대로입니다. 그 전령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렇기에 그분 대신 제가 전령의 역할을 맡아서 이곳으로 올 수밖에 없었죠.”

프란시스가 가져온 소식은 주환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내가 보았을 때 프란시스는 분명 가스파르가 맞지만 지금 나를 속이려는 것 같지는 않아. 그 전령이 사라진 것은 분명 사실일 거야. 칼데브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해결했더니 이번에는 대체 또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주환은 그렇게 생각하며 프란시스에게 말했다.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들어 보도록 하죠.”

“우선 제 상황부터 먼저 말씀드려야겠군요.”

프란시스는 그렇게 운을 떼었다.

“제가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깨어난 것은 얼마 전의 일입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떤 분의 저택이더군요.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제가 그곳에 있었는지 그리고 제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기억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환은 그가 가스파르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비를 쫓는 자들의 일원으로 활동할 때를 떠올렸다.

“그리고 저는 한 여인의 손에 구조되었습니다.”

“여인이요?”

“예. 그분은 갈레오스의 동생분인 루퍼트 님의 따님이셨죠. 산책을 목적으로 해변가로 나왔다가 우연히 저를 발견하신 거였죠. 저는 어찌 된 일인지 기절한 채로 해변가에 밀려와 있었다고 합니다.”

갈레오스의 동생인 루퍼트는 개인적인 이유로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바닷가에 있는 항구도시인 ‘도빌 워터’에 자리를 잡은 뒤 거대한 낚싯배들을 사들여 도시 안에서도 손꼽히는 대부호로 성장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에게는 외동딸인 ‘사라’가 있었는데, 지금 프란시스가 말하고 있는 루퍼트의 딸은 바로 그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분 덕택에 저는 루퍼트 님의 식객으로서 도빌 워터에 편안히 머물 수 있었습니다. 의외로 루퍼트 님은 저 같은 불청객을 받아들여 주셨죠. 제가 루퍼트 님과 사라 님의 친절에 힘입어 그 집에서 머물고 있을 때 칼데브 마을에서 온 전령분이 도착하셨죠.”

“그 루퍼트란 분은 꽤나 슬퍼하셨겠군요. 형도 그 조카들도 끔찍한 일을 겪었으니.”

그 조카들 중 한 명인 안토니오를 죽이는 데 일조한 주환으로서 마음 편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랬습니다. 전령분이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실 때 저도 그 자리에 있었기에 잘 알고 있죠. 특히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신 것을 가장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아무튼, 전령분은 루퍼트 님께 다시 칼데브 마을로 돌아와 주실 것을 간청했습니다. 루퍼트 님은 고민에 빠지셨고요. 그분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시겠지만, 자신이 도빌 워터에서 이루어 놓은 것을 뒤로하고 귀향하는 것은 큰 결단을 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 전령분은 대체 언제 사라지신 거죠?”

“전령분은 대답을 가지고 가기 위해서 잠시 루퍼트 님의 저택에 머무르셨죠. 그런데 어느 순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루퍼트란 분의 대답도 듣지 않고요?”

“그렇습니다. 아무도 그 행방을 알지 못했죠.”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대답을 듣지 않고 마을로 돌아간 것 아닐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머물던 방에 짐이 그대로 놓여 있었거든요. 혹시나 짐을 놓고 이곳으로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곳에 오니까 역시나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분이 말도 없이 돌아가셨다면 저보다 먼저 칼데브 마을에 도착을 해야 했는데 전령분은 아직도 칼데브 마을로 돌아오지 않았으니까요.”

“확실히 그렇네요.”

그렇다면 둘 중 한 가지였다.

말도 없이 떠난 전령이 칼데브 마을로 돌아가던 도중 실종이 되었거나.

아니면 도빌 워터 안에서 실종되었거나.

“그럼 가스… 아니, 프란시스 씨는 그 전령분이 도빌 워터 안에서 사라진 거라고 확신하시나요.”

“네.”

“그렇게 생각하시는 확실한 근거는요? 오는 도중에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르는데요.”

“우선 루퍼트 님의 태도가 갑자기 변화하신 게 마음에 걸리더군요. 전령의 이야기를 들으셨을 때는 분명 고민에 빠져계셨는데 전령분이 실종된 이후 바로 칼데브 마을에는 절대 돌아가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전령분의 실종에 관해서도 관심을 거두어 버리셨고요.”

“그건 이상하긴 하네요.”

“그리고 제 마음에 걸리는 것은 바로 도빌 워터에 사는 사람들의 태도였습니다. 도시의 유력자를 찾아온 손님이 실종되었는데도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죠.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그 일에서 관심을 끊으려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전령이 사라지자마자 모두가 하나같이 수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리고 가장 크게 마음에 걸렸던 것은 미치광이에게서 들은 이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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