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그녀는 데스티나가 로즈버드 빌리지를 떠나온 이후로 계속해서 그 뒤를 쫓았던 것이다.
데스티나는 이온을 관찰했다.
그녀는 이온이 누구인지 잘 몰랐으며 그것은 이온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교롭게도 비를 쫓는 자들과의 싸움에서 두 사람은 서로 직접 마주친 적이 없었으며, 모든 싸움이 끝났을 때 두 사람 다 오랜 시간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온이 데스티나를 쫓아온 것은 그녀가 주환을 잘 알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산적인가?”
데스티나의 물음에 이온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그런 무시무시한 일은 하지 않아요.”
“그럼 어째서 내 뒤를 쫓고 있었던 거지?”
데스티나는 자신이 메고 있는 롱소드의 손잡이로 천천히 손을 가져갔다.
이온은 데스티나와 싸울 생각이 없었기에 그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서 손을 들었다.
“저는 사실 주인님을 찾고 있어요.”
“주인님?”
데스티나는 말을 이었다.
“당신은 어느 귀족가의 하인인 건가?”
“아뇨. 제가 아까 보니까 당신이 제 주인님을 알고 계신 것 같아서요.”
“아까라니.”
“나이츠 빌리지란 곳에서 누군가와 싸우고 있을 때요.”
데스티나는 이온이 자신과 데미안의 대련 장소에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걸 보고 있었나 보군. 그런데 당신의 주인이 누구이기에 내가 알고 있다는 거지?”
“아. 제 주인님은 주환 님이세요.”
천진난만하게 대답하는 이온의 말을 들으면서 데스티나는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
“주……환?”
“네.”
“방금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네?”
“주환이 당신의 주인님이란 말…….”
“네. 사실이에요.”
이온의 대답에 데스티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데스티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 대체 언제부터 주환에게 당신 같은 하인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선 내 소개를 해야겠군. 나는 주환은 동료인 데스티나라고 한다.”
“아. 데스티나 님이시로군요. 저는 주환 님을 모시고 있는 이온이라고 해요.”
통성명이 끝나자 이온은 손을 내렸다.
“그런데 어쩌다가 주환의 하인이 된 거지?”
“말씀드리자면 좀 긴데요,”
“상관없다.”
데스티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나아가던 방향으로 시선을 두었다.
“어차피 갈 길이 머니 들어 줄 시간은 충분히 있으니까.”
* * *
뚜벅뚜벅.
어두운 공간에 갇혀 있던 레브는 누군가가 자신이 있는 곳으로 걸어오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그가 갇혀 있는 곳은 나이츠 빌리지에 만들어져 있는 어느 한 감옥의 안.
그는 오르페우스 호의 밑에 있던 동굴에서 성전 기사단에 의해 끌려 나온 후 하염없이 그 감옥의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는 데미안이 언젠가는 자신을 죽이리라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기에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죽음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성전 기사단은 계속 그를 살려 두고 있었다.
지금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식사를 가져다주는 시간대에 울리는 발걸음 소리였다면 레브는 그 발걸음 소리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발걸음 소리는 식사시간대가 아닌 시간대에 울리고 있었다.
‘드디어 나를 죽이러 오는 건가.’
발걸음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왔으며 드디어 그 발소리의 주인이 감옥 문의 앞에서 섰다.
“레브 씨?”
레브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감옥의 문 앞에는 아르테어가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지? 나를 죽이려고 온 건가? 만약 나를 죽이려고 온 거라면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군.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의식을 잃을 때가 있어. 당신들에게 자비심이 있다면 그때에 내 목숨을 가져가 주길 부탁하고 싶군.”
“저는 당신을 죽일 생각이 없어요.”
“그럼 무슨 일이지?”
“당신에게 부탁할 것이 있거든요.”
“부탁?”
“당신은 변이체들의 정신을 조종할 수 있죠?”
“조종한다는 것은 너무 과장된 거야. 나는 특정 파장을 내뿜어서 변이체들을 얌전하게 안정화할 수 있을 뿐이지.”
“물론 그렇지만 그게 결국에는 변이체들을 조종하는 방법의 기본이겠죠. 그게 더 발전하면 정말로 변이체들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되는 거고요.”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뭐지?”
“제가 당신의 목숨을 사고 싶은 거죠.”
“이해가 되질 않는군.”
“말 그대로예요. 당신은 이제부터 변이체들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에 협조를 해주어야겠어요. 당신이 그 연구에 협조한다면 제가 당신의 목숨 정도는 보장을 해드리도록 할게요. 그게 싫다면 지금 이야기하세요. 지금 거절한다면 바로 기사단원들이 당신을 죽이기 위해 이곳으로 내려올 테니까요.”
* * *
데스티나와 이온이 동행하여 칼데브 마을로 향하고 있을 때쯤.
주환은 칼데브 마을에서의 사건이 마무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마을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새로운 사건이 벌어지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칼데브 마을의 입장에서는 영주와 그 후계자를 한꺼번에 잃어버린 상황.
칼데브 마을의 주민들은 새로운 영주를 선출할 준비를 해야 했다.
그리고 그러한 준비가 이루어지는 동안 임시 영주 대행으로 선출된 사람은 엉뚱하게도 주환이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지?’
주환은 영주의 임시 집무실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마을 사람들이 비어 있는 집 중 적당한 곳을 물색하여 마련해 준 곳으로, 새로운 영주가 탄생하기 전까지 그가 임시로 사용하는 거처였다.
주환은 모든 일이 끝나고 루카와 함께 칼데브 마을을 떠나려고 했지만, 그가 떠날 수 없는 두 가지의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는 앞에서도 언급하였듯 주환은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영주 대행을 임명받았다.
갈레오스의 다음가는 실권자였던 경비대장은 안토니오의 손에 살해당했으며, 그러한 안토니오를 처치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주환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제법 믿음직해 보였을 것이다.
주환은 그러한 제안을 거절하고 싶었지만, 마을 사람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가 없어도 마을이 운영되는 것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기에 그의 역할은 사실 경비대장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가 떠날 수 없었던 두 번째 이유는 다름 아닌 루카의 문제였다.
같이 나이츠 빌리지로 돌아가자는 주환의 권유를 루카는 생각해 보겠다는 대답으로 넘겼지만, 이후에 루카는 주환에게 갑작스러운 폭탄선언을 날렸다.
[나는 산에 올라가겠어.]
루카는 그 말만을 남기고는 로렌조가 숨어 있던 산으로 올라가 버렸다.
그녀는 지금 로렌조의 움집에서 생활하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주환이 그녀를 만류했지만, 루카는 자신 때문에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속죄하고 싶다는 말로 주환의 만류를 뿌리쳤다.
루카의 결심이 굳었기에 주환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요즘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네.”
주환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모험을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의 주변에는 여러 명의 동료가 있었다.
데스티나, 루카, 엘레나, 이온 그리고 같이 다니지는 않았지만, 여러모로 그를 서포트해 주었던 이브와 타마두크까지.
그렇지만 지금 그의 곁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데스티나는 깨어났을까? 아니면 아직도 혼수상태에 있는 걸까? 그리고 이온은 어떻게 되었을까?’
동료들에 대한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주환이 이런저런 걱정에 잠겨 있는 동안 누군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주환이 그렇게 말하자 문이 열리면서 주환의 수발을 담당하고 있는 하인이 종이 뭉치를 손에 들고 집무실의 안으로 들어왔다.
“실례하겠습니다.”
하인은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한 뒤 책상에 앉아 있는 주환을 향해서 다가왔다.
그리고 그는 책상의 위에 종이 뭉치들을 올려 두었다.
“오늘 결재가 필요한 사안들입니다.”
주환은 종이 뭉치를 받아들고는 그 내용을 읽어 보았다.
결재가 필요한 사안들이라고 하더라도 그다지 심각한 사안들은 없었다.
‘암탉이 알을 못 낳고 있는 일, 양젖이 생각만큼 많이 나오지 않는 일…….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나로서는 그다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데. 그나마 좀비들에 대한 목격이 빈번해진 일은 좀 심각해 보이는걸.’
결재 사안들을 훑어본 주환은 적당히 처리하고는 하인에게 종이 뭉치를 돌려주었다.
“좀비들이 주변에서 점점 기승을 부린다고 하니까 야외 순찰을 좀 더 강화할 수 있도록 전달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종이 뭉치를 받아들었음에도 하인이 나갈 기색이 없자 주환은 그에게 물었다.
“또 하실 말씀이 있는 건가요?”
“실은 영주 대행님을 찾아오신 손님이 계십니다.”
“손님이요?”
그렇게 되묻는 순간 주환의 머릿속에서 데스티나와 이온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새로운 영주님을 모시는 일에 대해서 전에 설명해 드렸던 적이 있지요?”
하인의 설명에 주환은 맥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하인의 말만으로도 지금 찾아온 사람이 주환의 동료와는 관계가 없는 인물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네. 기억하고 있어요.”
칼데브 마을의 영주 가족이 모두 죽고 난 뒤 마을에서는 새로운 영주를 세우기 위하여 이리저리 사람을 수소문하는 중이었다.
그중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한 갈레오스의 동생을 다시 불러들이자는 의견도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본디 칼데브 마을의 출신이면서 갈레오스만큼이나 능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칼데브 마을에서는 현재 갈레오스의 동생에게 다시 마을로 돌아와 줄 것을 권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 놓은 상태였다.
“그 일 때문에 손님이 온 모양입니다.”
“그래요?”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어떤 부분이요?”
“그쪽에서 사람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저희가 보낸 전령과 같이 오면 될 일인데 저희 쪽의 전령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갈레오스 님의 동생분과 함께 있는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문제는 없지만. 어쩐지 걱정입니다.”
주환은 하인이 걱정하는 바를 이해하면서도 문제가 생겼을 거라는 생각은 굳이 하지 않았다.
“그럼 손님을 들여보내 주세요.”
주환의 부탁에 하인은 묵례를 하고는 바로 집무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하인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의자에서 일어섰던 주환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지금 집무실로 들어온 자가 바로 비를 쫓는 자들의 복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를 쫓는 자들에 소속된 마법사들이 입는 검은 색의 로브.
그리고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주환은 더욱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가스파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