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특전사의 이세계 뽀개기-138화 (138/182)

138화

* * *

“드디어 마무리됐네.”

아르테어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방에서 진행하고 있던 실험을 마무리 지었다.

녹색의 비를 이용한 새로운 시약을 만들어 내는 시험.

아르테어는 비를 쫓는 자들이 진행한 이전의 실험 결과들을 참고하고 괴목의 과일을 이용하여 더 개량된 시약을 만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촉박했기에 아르테어로서는 어느 정도 안정화된 수준에서 결과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녹색의 비는 오로지 오르페우스호에서 가져온 것들뿐.

실험을 하면 할수록 원재료라 할 수 있는 녹색의 비가 점점 소모되었기에 아르테어는 그 재료들이 모두 소모되기 전에 실험체들에게 사용할 수 있는 버전의 시약을 만들어 내야 했다.

그 실험체는 물론 나이츠 빌리지와 로즈버드 빌리지의 정착민들.

그리고 여전히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데스티나였다.

잠을 아껴가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알파 버전의 시약이 지금 아르테어의 손에 있었다.

아르테어는 시약을 주사기에 집어넣은 뒤에 자신의 방을 빠져나왔다.

데스티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환자용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르테어는 데스티나에게 가까이 간 뒤 그녀의 옷을 걷어서 오른쪽 어깻죽지가 드러나게 했다.

“이제 제가 선물을 드리도록 하죠.”

아르테어는 그렇게 말하며 데스티나의 어깨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당신이 깨어날 수 있을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당신이 죽게 된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어요. 데미안 님이 더는 당신을 볼 수 없다는 걸 위안 삼아야 할지도요.”

아르테어는 주사기의 끝을 눌러서 그 안에 있는 시약을 데스티나의 몸 안으로 주사했다.

* * *

벌컥.

“단장님!”

데미안은 그렇게 외치며 치료소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방금 아르테어의 전갈을 통해서 데스티나가 다시 깨어났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지체하지 않고 단숨에 이곳까지 달려온 것이었다.

치료소의 안으로 들어온 데미안은 환자용 침대에 앉아 있는 데스티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아르테어가 서 있었다.

“데미안 님.”

치료소를 들어온 데미안을 발견한 아르테어가 그렇게 말하자 데스티나 역시 고개를 돌려서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데미안은 침대로 쪽으로 다가와 데스티나의 상태를 살폈다.

“단장님. 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그러자 데스티나는 멍한 눈초리로 데미안을 올려다보았다.

데스티나의 반응에 불안해진 데미안은 아르테어를 바라보았다.

아르테어 역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르테어 님. 설마 뭔가 잘못된 겁니까?”

데미안의 물음에 데스티나는 손을 들어서 침대의 안쪽을 짚고 있는 데미안의 손을 잡았다.

“내가 자네를 잊을 리가 없잖은가.”

데스티나의 말에 데미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정말로 다행입니다. 단장님.”

“내 기억 능력이나 지각 능력에 별다른 이상이 생긴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더니 지금 눈앞의 상황들이 모두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말이지.”

“모든 게 현실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을 구출할 수 있었고요.”

데미안이 자신도 모르게 대부분이라고 말한 것은 자신의 손으로 베어 버린 감염자들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일까.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있었던 일들은 방금까지 아르테어 님에게 들을 수가 있었다. 모든 일이 무사히 끝날 수가 있어서 다행이로군.”

“그렇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데미안은 순간 데스티나의 오른팔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분명 데스티나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을 때 그녀의 오른쪽 어깻죽지의 아래쪽 부분은 완전히 소멸한 상태였지만 지금 그녀의 팔은 완벽하게 재생되어 있었다.

‘이럴 수가.’

“단장님. 그 오른팔은.”

데미안이 묻자 데스티나는 자신의 왼손으로 재생된 오른팔을 만져보았다.

“내가 정신을 잃기 전에 내 오른팔이 사라지는 것을 분명히 보았지. 하지만 지금 깨어나 보니 내 오른팔은 더할 나위 없이 멀쩡하게 존재하고 있었어. 내가 헛것을 봤던 것인가?”

데미안이 대답하기 전에 아르테어가 먼저 대답하였다.

“파루시아 님의 가호로 인해서 데스티나 님의 잃어버린 팔이 점점 재생할 수 있도록 하는 축복을 내렸습니다. 데미안 님은 치료 과정을 보지 못하셨기 때문에 놀라시는 것 같습니다.”

아르테어의 말에 데스티나는 데미안에게 물었다.

“그런 건가?”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지만, 데미안은 아르테어의 말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내 동료들은 어디에 있지?”

내 동료들.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 데스티나의 말에서 데미안은 작은 실망감을 느꼈다.

데미안은 성전 기사단이야말로 데스티나에게 동료라고 불릴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을 가진 집단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주환, 루카, 엘레나 등은 데미안의 처지에서 그저 스쳐 지나가는 뜨내기들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새 그들은 데스티나의 머릿속에서 동료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그분들은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의 파견을 부탁했습니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건가?”

“그렇습니다.”

“걱정되는군. 내가 깨어 있었다면 같이 갔을 것을.”

“단장님. 이제는 단장님이 그런 작은 일을 일일이 신경 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는 단장님이 저희를 이끌어 주셔야 합니다.”

데미안의 권유에도 데스티나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러한 일들이 어찌 작은 일이겠는가. 그들을 보냈다는 것은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일 테지. 일손이 부족하다면 누구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움직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데스티나의 말을 듣고 있던 데미안은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치 데스티나가 그들을 버릴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사람은 그 위치에 따라서 해야 하는 일이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데미안 자네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그것과 이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데스티나는 몸을 움직이더니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본 아르테어가 그녀를 만류했다.

“아직은 과도하게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데스티나는 침대에서 나와 치료실의 바닥에 우뚝 섰다.

그리고 그녀가 걸음을 옮기려 했을 때, 그녀는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쓰러지려고 하는 데스티나를 데미안이 부축했다.

계속해서 침대에 누워 있었던 데스티나였기에 다리 쪽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데미안이 부축하자 데스티나는 다시금 스스로 힘으로 서려고 노력했다.

“괜찮다.”

망설이던 데미안이 놓아주자 데스티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다시금 넘어질 뻔하기도 했지만 데스티나는 비틀거리면서도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는 데 성공했다.

데스티나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매일매일 아르테어가 데스티나의 몸을 마사지해 주었기 때문에 그녀는 비교적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어느 정도 걷는 것에 익숙해진 데스티나는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이곳에서 기사단을 지휘하는 것도 중요하겠지.”

멈추어 선 데스티나는 고개를 돌리며 데미안에게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뿔뿔이 흩어진 후에 이만큼의 사람들을 모으고 조직한 것은 자네의 공이 커. 그것은 절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기사로서의 헌신,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겠지.”

“그리고 이제는 단장님이 저희를 이끌어 주셔야 합니다.”

데스티나는 시선을 돌려 허공을 바라보았다.

“나는 황제 폐하를 만날 것이다.”

황제를 찾는다.

“그건…….”

데스티나의 선언에 데미안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자네는 황제 폐하를 원망하고 있겠지?”

데미안은 대답하지 않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불충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자네에게서 아버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 역시도 순간 황제 폐하를 원망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생겨났지.”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직접 황제 폐하를 뵙고 그 이후를 생각하고 싶다.”

데스티나는 몸을 돌렸다.

“자네는 어떻게 하고 싶은가?”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으십니까?”

“자네가 아직도 나의 친구라면 그렇게 해주길 바란다.”

“저는 더 이상 황제를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더 이상 황제와 그 측근들은 아무런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되었으니까요.”

“다른 단원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인가?”

“그렇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이유는 한 가지였다.

그가 다시 성전 기사단을 모았을 때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사라진 인물들만을 거두어들였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황제를 모시지 않는 단체가 되어 버렸지만 계속해서 성전 기사단이라는 이름을 유지했던 것은 오로지 그 소식을 듣고 데스티나가 찾아오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솔직히 말해 줘서 고맙다.”

“단장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이제는 단장님이라고 부를 필요 없다.”

“그게 무슨…….”

“여기 있는 모두는 자네가 거두어 주게. 자네가 새로운 단장이 되는 거다.”

데스티나의 충격적인 발언에 데미안은 이를 악물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에게 성전 기사단의 단장은 단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그건 그 누구도 아닌 당신입니다.”

“나는 떠날 걸세.”

“어째서입니까.”

“아까도 말했듯 나는 황제 폐하를 뵐 생각이다. 황제 폐하를 설득하여 다시 이쪽의 세상으로 돌아오시기를 청할 수밖에 없지.”

데스티나는 잠시 말을 끊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전우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기류가 흘렀다.

“내가 황제 폐하를 모시기로 한다면 자네와는 적이 될 수밖에 없어. 그렇기에 그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자네와 성전 기사단 식구들을 나에게서 떨어뜨려 놓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도, 그렇게도 그 무능한 황제에 대한 충성을 관두실 수가 없는 겁니까?”

“나는 기사다.”

데스티나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나는 기사로 태어났고 기사로 죽는다. 단지 그것뿐이지.”

“제가 태어난 대로 살았다면 저는 좀도둑으로 살다가 이름도 모를 곳에서 비참하게 죽었겠지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분은 당신입니다.”

“그렇기에 나도 자네를 존경한다. 데미안 너는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으니까.”

데스티나의 말을 듣고 있던 데미안은 주먹을 꽉 쥐었다.

“단장님. 단장님의 결심이 그러시다면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습니까?”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오랜만에. 저와 대련을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대련?”

데미안의 말에 데스티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방금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사람에게 좀 무리한 부탁을 하는 거로 생각하지는 않나?”

“무례하고 억지스러운 부탁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데미안 역시 자신이 억지를 부리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조건을 달겠습니다. 만약 대련하면서 단장님의 목검이 저에게 단 한 번이라도 닿는다면 제가 진 것으로 하겠습니다.”

“짐작은 가지만, 무슨 목적의 대련인 건가?”

“단장님이 이기시면 단장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그렇지만 제가 이긴다면 단장님은 계속 이곳에 머물러 주십시오. 제가 바라는 것은 오직 그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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